"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 첫사랑
/ Mon Coeur Est Fou"
- 달리다 / Dalida
Mon coeur est fou je ne peux le calmer 진정하지 못하는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Car j'ai rendez-vous 20, rue de courcelles 나 때문에 그 사람은 벌써 그곳에 와있을 거야
Et pour mon malheur ma voiture est bloquee 그런데 난 길이 막혀 아직 도착도 못했어
Depuis une heure pres de la tour Eiffel 에펠탑 근처에서 벌써 한 시간이나 지체하고 있어
Mon coeur est fou je suis dans le Metro 지하철에 갇혀있는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Je cherche partout ma correspondance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어
Mais je ne peux pas aller ou je voudrais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 밖에 꼼짝도 할 수 없었어
C'est chacum pour soi dans celle foule immense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난 고독에 빠지고 말았어
Je vais etre en retard 난 늦어지게 된 거야
Sera-t-il encore la 아직 난 희망은 버리지 않았어
Mais a six heures 하지만 6시야
Il me pardonnera 내 자신을 후회하고 있어
Mon coeur est fou on vient de s'arreter 심장이 멈춰버린 것처럼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Voila tout a coup qu'on nous fait descendre 갑자기 나타난 현실이 되고 말았어
Juste devant nous la rame a deraille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그냥 지나쳐 버렸어
Moi je suis a bout comment va-t-il le prendre 난 빨리가야 하는데 내 몸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어
Musique 연주
J'ai trois heures de retard 3시간이나 지났지만
Il ne sera plus la 그것은 긴 시간이 아니었어
Et a 9 heures du soir 오후 9시였어
Autant rentrer chez moi...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Mon coeur est fou il a telephone 그 사람의 전화에 설렌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Que le rendez-vous etait impossible 그 약속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어
Un trop grand retard l'en avait empeche 늦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너무 시간이 짧았었어
Mais pour demain soir ce sevait possible 하지만 내일은 가능할 것 같아
Mon coeur est fou, mon coeur est fou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Mon coeur est fou, mon coeur est fou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Mon coeur est fou, mon coeur est fou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Mon coeur est fou, mon coeur est fou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Mon coeur est fou, mon coeur est fou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달리다(Dalida, 1933-1987)'는 황금의 목소리를 지닌 배우이자 세계적인 샹송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고 1933년 이집트의 카이로(Cairo, Egypt)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요란다 크리스티나 지글리오티(Yolanda Cristina Gigliotti)'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삐에트로 지글리오티(Pietro Gigliotti, 1904-1945)'는 카이로 오페라하우스(Cairo Opera House)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어릴 때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음악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녀의 나이 21세 때인 1954년에는 미스 이집트(Miss Egypt)로 뽑힐 정도로 천부적인 미모를 지녔기에 영화에도 출연하였습니다. 그 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음악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956년에 그녀의 첫 앨범 'Son Nom Est Dalida'에 수록된 첫 히트곡인 '밤비노(Bambino)', '나를 사랑해줘요(Aime-Moi)', '마돈나(Madona)' 등의 곡을 불러 유럽 전 지역에 빅 히트되면서 가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밤비노(Bambino)'의 곡은 프랑스 톱 텐 차트에 무려 46주간 머무는 기록을 세웠고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57년에 앨범 'Miguel'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미구엘(Miguel)',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Maman, La Plus Belle Du Monde)', 1958년에 앨범 'Gondolier'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곤돌리에(Gondolier)', '이탈리아어 칼립소(Calypso Italiano)', 앨범 'Les Gitan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집시(Le Gitans)', '내 미지의 사랑(Inconnu Mon Amour)', '떠나라(Je Pars)', 1964년에 앨범 'Il Silenzio(Bonsoir Mon Amour)'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밤하늘의 트럼펫 / 적막의 블루스 / 안녕 내 사랑(Il Silenzio / Bonsoir Mon Amour)', '가족의 스캔들(Scandale Dans La Famille)', '그의 모자(Son Chapeau)',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 '조르바 댄스(La Danse De Zorba)'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밤하늘의 트럼펫 / 적막의 블루스 / 안녕 내 사랑(Il Silenzio / Bonsoir Mon Amour)'의 곡은 연주곡인 '밤하늘의 트럼펫 / 적막의 블루스(Il Silenzio)'에 가사를 붙여 '안녕 내 사랑(Bonsoir Mon Amour)'으로 리메이크하여 불렀습니다. 달리다는 그녀 특유의 애틋한 목소리로 불렀고 지구촌 곳곳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면서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밤하늘의 트럼펫 / 적막의 블루스(Il Silenzio)'는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 1907-1997)'이 감독을 맡았고 '조지 더닝(George Duning, 1908-2000)'이 음악을 맡은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 1953)'의 O.S.T. 곡으로 유명한 명곡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이며 세계적인 트럼페터인 '니니 로소(Nini Rosso, 1926-1994)'가 트럼펫 연주곡으로 작곡한 명곡입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특히 전사자들의 진혼곡으로 폭 넓게 연주되어 온 세계적인 명곡입니다.
'조르바 댄스(La Danse De Zorba)'의 곡은 '마이클 카코야니스(Michael Cacoyannis, 1922-2011)'가 감독을 맡았고 그리스의 민중음악가이며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1925-)'가 음악을 맡아 작곡한 영화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4)' O.S.T.의 테마곡에 가사를 붙여 '조르바 댄스(La Danse De Zorba)'의 곡으로 리메이크하여 부른 명곡입니다. 역시 많은 인기를 이끌면서 크게 히트한 명곡입니다.
영화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4)'의 그리스에서의 타이틀은 '알렉시스 조르바(Alexis Zorba, 1964)'입니다.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가 1942년에 발표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를 토대로 하여 1964년에 마이클 카코야니스가 감독을 맡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음악을 맡아 제작되었으며 '앤서니 퀸(Anthony Quinn, 1915-2001)'이 극 중 '알렉시스 조르바(Alexis Zorba)' 역을 맡아 열연한 명화입니다.
그리고 달리다는 지금 흐르고 있는 '내 마음 정말 바보인 것 같아 / 첫사랑(Mon Coeur Est Fou)', '행복한 이별(Sois Heureux)' 등의 곡들도 불렀고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1967년에 앨범 'Olympia 67'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Je Reviens Te Chercher)', '라 반다(La Banda)', '내 사랑 그대(Toi Mon Amour)', '마마(Mama)', '차오 아모레, 차오(Ciao Amore, Ciao)', 1968년에 앨범 'Le Temps Des Fleur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꽃다운 시절(Le Temps Des Fleurs)', 그리스 출신 남성 밴드 그룹인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빗물과 눈물(Rain And Tears)'을 리메이크하여 부른 '빗물과 눈물(Quelques Larmes De Pluie / Rain And Tears)', '거리가 잠들 때(Dans La Ville Endormie)', '밤보라(La Bambola)', '검은 천사(Les Anges Noir / Angeltos Negros)', '일곱째 날(Le Septieme Jour)', '쉬어야 해요(Je Me Repose)', 1971년에 앨범 'Une Vie'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삶 / 일생(Une Vie)', '아니야(Non)', '마미 블루(Mamy Blue)', '아기 예수(Jesus Bambino)', '세월의 흐름 속에(Avec Le Temps)', 1973년에는 앨범 'Julien'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마음이 아파요(Je Suis Malade)', '그는 18세(Il Venait D'avoir 18 Ans)', '나를 위한 게 아니에요(Non Ce N'est Pas Pour Moi)', '빠롤레, 빠롤레(Paroles, Paroles)' 등의 곡을 불러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특히 '빠롤레, 빠롤레(Paroles, Paroles)'의 곡은 프랑스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빠롤레, 빠롤레(Paroles, Paroles)'는 말(대화) 이라는 뜻으로 사랑스럽게 속삭이는 사랑의 달콤한 속삭임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달리다가 프랑스의 영원한 슈퍼스타 '알랭 드롱(Alain Delon, 1935- )'과 로맨틱한 사랑의 속삭임을 나누는 사랑의 노래이며 프랑스어로 리메이크하여 부른 명곡입니다. 알랭 드롱의 부드럽고 달콤한 대사에 정감이 넘치는 달리다의 독특한 음색과 사랑스러운 화답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불후의 명곡인 것입니다. 이 곡은 그 당시 지구촌 곳곳의 수 많은 연인들로부터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았으며 달리다가 일약 국제적인 톱스타 가수로 도약하게 되는 분수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달리다는 1974년에 앨범 'Manuel'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마누엘(Manuel)', '아니마 미아(Anima Mia)', '지지 라모르소 / 사랑하는 지지(Gigi L'amoroso)', 1975년에 앨범 'J'attendrai'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난 기다릴 거야(J'attendrai)', '사랑의 추억(Mein Lieber Herr)', '라파엘(Raphael)', 1977년에는 앨범 'Salma Ya Salama'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이집트 민요곡인 프랑스어 '살마 야 살라마(Salma Ya Salama, French)', '사랑의 이야기(Histoire D'aimer)', '띠 아모 / 사랑해요(Ti Amo)', 그리스의 민중음악가이며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1925-)'가 작곡한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 Fevgi Stis Okto / The Train Leaves At Eight)'의 프랑스어 번안곡 '나의 형제 태양이여(Mon Frere Le Soleil)', 아라비아어 '살마 야 살라마(Salma Ya Salama, Arabic)' 등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1978년에는 미국 뉴욕의 카네기 홀(Carnegie Hall)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앨범 'Generation 78'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제네라숑 78(Generation 78)', '코메 프리마(Come Prima)', '그들은 내 노래를 바꾸었어요(Ils Ont Change Ma Chanson)', '볼라레(Volare)', '베사메 무초 / 열열한 키스(Besame Mucho)', '귀엽고 작은 비키니(Itsi Bitsi Petit Bikini)', '달라 달라다다(Darla Darladada)', '1979년에는 앨범 'Dedie A Toi(Monday Tuesday)'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오직 그대만 / 월요일 화요일(Dedie A Toi / Monday Tuesday)', '헬와 야 발라디(Helwa Ya Balady)', 1983년에는 앨범 'Les P'tits Mot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루카스(Lucas)', '내게 전화를 하세요(Telephonez-Moi)', '브라보(Bravo)', '그대를 사랑해요(J'aime)', '사랑(S'aimer)', 1984년에는 앨범 'Dali'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난 그댈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했을 뿐이에요(Pour Te Dire Je T'aime /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태양(Soleil)' 등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히트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돌아와요(Reviens-Moi)', '여섯째 날(Le Sixieme Jour)', '사랑의 고뇌(Problemorama)', '서기 2525년(L'an 2525 / In The Year 2525)', '두마리의 비들기(Deux Colombes)', '고향의 바이올린(Les Violons De Mon Pays)',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Concerto Pour Une Voix)', '사랑의 아랑페즈(Aranjuez La Tuavoce / Aranjuez Mon Amour)', '하얀 장미(Lady D'arbanvi)' 등의 곡들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녀는 실로 10여 개 국어로 노래를 부른 샹송 가수이자 국제적인 가수로 지구촌 곳곳에 그녀의 명성을 널리 떨쳤던 세계적인 정상의 여가수이자 배우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뛰어난 미모와 화려한 가수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전 남편들의 잇따른 자살 행위로 이어지는 불행한 인생, 순탄치 못한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는 헤어나질 못하였습니다. 달리다는 그녀의 불운의 삶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인생은 견디기 힘들다. 날 용서해달라...' 라는 짧디 짧은 유서 한장을 남긴 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습니다. 달리다는 1987년 5월 3일 스스로 한창 나이인 54세를 일기로 비운의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달리다는 첫 번째 남편이자 방송국 프로듀서였던 '루시앙 모리세(Lucien Morisse, 1929-1970)'와 결혼했으나 서로의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첫 결혼에 실패하였고 이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마음을 다시 추스렸고 1966년 음악가 '루이지 덴코(Luigi Tenco, 1938-1967)' 와 재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루이지 덴코는 자신의 산레모가요제 출전을 며칠 앞두고 극심한 노이로제 증상의 악화로 권총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에 충격이 컸던 달리다는 불행한 자신의 삶을 비관하게 되었고 1967년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후에 아직 달리다의 심신이 안정을 되찾기도 전에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인 루시앙 모리세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과 달리 냉정을 되찾았습니다. 오히려 달리다는 더욱 생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녀는 그녀의 자살 미수 사건 직후 인터뷰에서 '신께서 나를 거부한 것에 감사해요... 다시는 죽지 않을 겁니다...그리고 병문안하러 온 첫 남편 루시앙 모리세에게 내가 어제 자살을 시도 했지만 내가 한 짓을 당신은 절대로 따라 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으나 그가 자살하고 말았어요' 라고 인터뷰 기자들에게 밝힌 바 있었습니다.
생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달리다는 1973년 세 번째 남편이 되는 '리샤르 샹프레(Richard Chanfray, 1940-1983)'와 다시 재혼의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그러나 이 재혼 역시 결혼 7년만에 이혼에 이르렀고 이혼 후 3개월이 지나자마자 리샤르 샹프레마저 가스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렇듯 기구한 운명의 끈들이 그녀를 꽁꽁 묶어놓고 있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던 그녀는 결국 더는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파리 마치' 지의 '달리다의 생애' 기사 내용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생을 열망했음에도 죽음은 끊임없이 그녀를 유혹했다. 한동안 누구보다도 더 생을 사랑했다던 달리다는 죽음의 유혹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고 기술하였습니다.
달리다는 70여 개의 골드 디스크상을 받았으며 그녀의 2000곡이 넘는 샹송 디스크는 세계 음반시장에서 1억2천만장 이상이 팔리는 등 많은 인기와 함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트위스트, 디스코, 레게 등 여러 장르를 섭렵하였고 소화해낸 만능 샹송가수였으며 이 시대의 진정한 세계적인 샹송가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비운의 샹송 가수 달리다는 비록 우리들의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정감이 넘치는 목소리는 지구촌 만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습니다. 지구촌 만인들의 심금을 끊임없이 뜨겁게 울려주고 있는 불멸입니다.
첫댓글 선생님! 또 음악이 안나와요
향기로운 재스민 선생님 배경음악 버튼을 클릭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봄 최고로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