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서울의 향기 - 서울특별시
제 48회 출연자 : 권해효 탤런트/배우
1965년 서울 출생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데뷔
<드라마의 제왕> <사랑을 믿어요> <유령> <드림하이2> 등 다수 드라마에 출연
1998년 SBS 연기대상 우수조연상
2012년 희망 서울 홍보대사
1. 기획의도
-인구 천만의 도시이자 수도 6백년의 기억을 간직한 고도(古都), 서울....
조선왕조의 건국과 함께 이 땅의 도읍이 되어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어온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엔 조선왕조의 5백년 도읍지였던 한양을 지키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냈던 이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있고,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낸 민초들의 소박한 삶과 희망이 담겨 있다.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초고층 빌딩들이 이곳저곳 들어섰어도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옛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펼쳐져 있고~
출근길 차량으로 가득한 한강 대교의 풍경 속에도
물길을 따라 지나온 세월의 추억이 담겨 있는데....
서울 600년의 진한 향기를 맡아본다.
2. 주요내용
1) 600년 수도 서울의 얼굴 -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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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타워>
-산 정상의 봉수대에서 봉화가 피어오르면 조선 왕조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 남산...
한양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진 이후, 남산은 파란만장한 세월을 서울 시민들과 함께 해온 명산이자 서울의 어디서든지 바라볼 수 있고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친근한 산이다. 19세기 말까지 서울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던 남산은 봉수대를 통해 100여년 전까지도 전국에서 올라오는 중요한 봉화가 집결되는 제 1 통신기지였는데, 현재도 남산타워가 세워져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중요한 통신기지로서 그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또한 애국가 2절에 나오는 소나무의 모델이 될 만큼 예로부터 소나무를 비롯한 각종 수목이 어우러진 남산의 울창한 숲은 지금까지도 서울 시민의 대표 휴식처가 되고 있는데... 이제는 남산의 상징이 된 노란색 시내버스를 타면 누구나 정상에 올라 사방으로 펼쳐진 서울을 볼 수 있는 곳, 남산을 만나본다
2) 조선의 심장, 궁(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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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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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덕궁>
-조선 왕조의 5백년 역사를 이끌었던 조선의 심장, 궁(宮)... 특히 조선의 건국과 함께 탄생한 경복궁은 조선 전기의 정궁으로 임진왜란으로 인한 소실과 재건을 거치면서 조선왕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현장인데... 정문인 광화문을 시작으로 근정전과 수정전, 경회루와 건청궁 등 조선 왕조의 산 증인으로 남아있는 경복궁의 사연을 비롯해서 영제교의 서수, 목조 건물인 경북궁의 화재 방지를 위해 곳곳에 설치된 벽사의 비밀과 조선의 해학이 담긴 경복궁의 옛 이야기를 만난다. 또한 왕실의 궁궐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황실의 위엄을 떨어뜨리려는 일제의 치밀한 계략에 의해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된 공원으로 폄하되었던 창경궁의 비운의 역사와 조선 후기의 정궁이었으나 창경궁과 함께 일본인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던 창덕궁과 후원... 일제의 율곡로 건설로 궁궐에서 떨어져 나가야 했던 종묘까지.. 격동의 시대를 겪어낸 조선 왕실의 궁(宮)이야기를 만난다
3) 닮은 듯 다른 두 마을의 이야기 -북촌과 서촌(세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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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서촌>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따라 가회동, 안국동, 계동, 재동, 삼청동을 아우른 북촌은 주로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곳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한옥마을이다. 한옥의 건축미를 보존하기 위해 한옥을 짓고 연구하는 목수 김길성 씨, 오래된 한옥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70대 노부부, 한옥이 좋아서 북촌 주민으로 산다는 외국인 킬번씨 부부와 조선 왕실의 의복에 금박 글씨를 입히는 금박연을 5대째 계승해온 80대 장인까지~ 북촌에서 조선 한옥을 지키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조선시대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에서는 조선의 예술혼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이 서촌 주민이었고, 효자동에서 80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보안여관은 예전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지금은 다양한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됐다. 한옥의 전통을 간직한 북촌과 골목길마다 젊은 예술가의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는 서촌, 닮은 듯 서로 다른 두 마을의 옛이야기를 만난다
4) 담장 너머,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다 - 종로 육의전과 피맛골, 남대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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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보신각> <육의전 박물관>
-조선의 궁(宮)이 왕조의 역사를 품었다면, 궁궐 담장 너머의 시전에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진다. 조선의 대표 시전인 종로 육의전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중인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던 인사동, 한양의 정문인 숭례문 밖 칠패 시전에서 이어진 남대문 시장을 만나게 되는데~ 주로 조선 왕실과 사대부를 상대로 했던 종로 육의전, 그 뒤에는 임금의 어가 행렬을 피해 상인들이 육의전 뒤쪽의 골목길로 숨어 다니다가 골목 시전이 된 피맛골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조선의 화가를 양성하고 선발하던 도화서에 전국의 화원 지망생들이 몰려들면서 근처에 자연스럽게 지필묵을 파는 가게들이 생겨난 인사동은 여전히 화방과 고미술품 가게가 옛 기억을 품고 있다. 시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민초들의 삶을 따라 걷는 종로, 지난 2008년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남대문)의 복원 현장을 지나 없는 물건을 찾는 것이 더 쉽다는 서울의 대표 시장인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까지~ 오늘의 서울을 일궈낸 소박한 삶의 현장을 찾아가본다
5) 일장기 위에 먹으로 태극기를 그리다 - 천년 호국 고찰,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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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에서 발견된 태극기> <진관사 수륙대재>
-서울 근교의 4대 명찰 중의 하나인 삼각산 진관사... 고려 제8대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하여 천년의 맥을 이어온 진관사는 대대로 고려의 역대 왕들이 참배한 국찰이었고, 조선시대 역시 나라의 평온과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적 행사인 수륙재를 지내온 사찰이었지만 6.25 때는 절의 일부 건물들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다시 복구하는 과정에서 2009년 5월에는 진관사 안의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다가 일장기 위에 먹으로 그린 태극기가 발견되면서 호국고찰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불교계의 항일 운동을 주도하며 3·1운동과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던 '백초월'스님의 이야기와 천년 고찰 진관사에 담긴 옛 사연을 만나본다
6) 한민족을 품은 한강은 오늘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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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 한강공원> <한강>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5천년 한민족의 동맥처럼 흘러온 한강...
조선시대 한양으로 들어오는 뱃길이자 수로였던 한강을 따라 600년의 세월이 더해지면서 한강의 섬들 역시 그 운명이 바뀌었다. 한강의 뱃길을 따라 경강상인들이 오갔던 모래벌, 뚝섬 나루터는 60년대까지도 서울 시민들이 수영을 하러 즐겨 찾았던 가족 피서지였다가 지금의 뚝섬유원지가 됐고, 조선시대 배를 만드는 조선공들이 살았던 밤섬은 섬이 폭파되면서 철새 도래지가 됐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세조 때의 공신 한명회가 한눈에 반해서 정자 압구정을 지었다는 아름다운 섬, 저자도는 서울 시민들의 출근길인 올림픽대로가 되어 한강의 또 다른 일부가 되었고, 가수 싸이의 노래‘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강남은 한강의 범람이 잦았던 논과 밭이었는데 80년대 이후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서울의 새로운 문화중심지가 됐다. 반면,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옛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강남구에 위치한 세종대왕의 5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종가, 필경재는 조선 성종 때 지어진 이후 5백년의 세월 동안 전주 이씨의 종택으로서 후손들이 대대로 조상의 묘를 지키며 제사를 지내오고 있는데...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한강을 따라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