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일상의 사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함.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기다림 / 최승호
나의 기다림은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막 횡단이 끝나는 것이다
제주도가 보고 싶다
유채꽃밭 너머 현무암 돌담들
그 너머 청색 스펙트럼으로 출렁거리던 바다
바라본다
어린 낙타 여섯 마리
모래 파도치는 모래의 망망대해 바라본다
기다란 속눈썹 속의
이슬방울 같은 눈물
낮은 길다
지평선도 길다
젖먹이 낙타 여섯 마리
모래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에미
긴 목마름
바람에 부스스 일어나는 황갈색 털들
슬프다
나는 감정이 북어인 사람인데
가슴 속에 해류가 흐르면서
북어가 명태로 부활하려고 한다
- 최승호 시집 <고비 Gobi> 2007
북어 / 배우식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 부라리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 배우식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어부와 피조개 - 도선사 가는 길 15 / 한승원
산 위의 늙은 걸승은 한결같이 동안이었다
흰 이마에 볼이 상기된 그 걸승의 법문은 금강석 같았고
생불이라는 소문이 마을을 휘돌았다 그 걸승한테 반한
한 마을의 여염집 아낙이 그 걸승을 은밀히 불렀다
술을 권하고 고기를 권하고 그녀의 입술과 유방을
권하고 시커멓고 터불터불한 거웃에 묻힌 피조개의
진홍빛 속살도 권했다 그 모든 것들을 맛보고 난
걸승은 소처럼 웃으며 돌아갔다 자기의 모든 것을
걸승에게 맛보이고 난 그 여염집 아낙은 슬프고
억울한 목소리로 자기의 절친한 벗에게 그 걸승은
딱딱한 북어 껍질이나 늙은 나무 껍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말해서는 아니 될 것을
말한 그 아낙은 죽어서 어부가 되었고 당연히 맛볼
것을 맛본 그 걸승은 죽어서 피조개가 되었다
또 그 다음 생에서 피조개는 어부가 되고 그 어부는
피조개가 되었다 아 장난처럼 우습고도 슬프디슬픈
잡아먹기와 잡혀먹히기의 엇바뀌고 섞바뀌기여.
- 한승원 시집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