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 드리는 감사
고린도후서8:1-6
오늘은 7월 첫 번째 주일로서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맥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의 3대절기로 첫 번째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아주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농경시대가 아니고 보리나 밀 같은 여름곡식을 거의 재배하지 않는 시대에 구약에서 말씀한 맥추절을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맥추감사 절기를 없애기보다는 그대로 지키는 것이 더 좋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 년의 반을 지내면서 이 때쯤에 지난 반년을 돌아보며 감사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삶은 ‘항상, 쉬지 말고, 범사’를 잊어버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지난 반년을 지내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았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범사’가 무색할 만큼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 년의 반을 보내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럴 때 감사를 회복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기독교 치유상담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 교포 학생이 미국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서 1등을 합니다.
그 비결이 다섯 살 때부터 하루에 무조건 5가지 감사제목을 쓰는 습관을 갖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녁마다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제목을 쓰다보니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논리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도 지나치지 않고 감사로 보고, 큰 것도 감사하게 되고, 좋은 일도 감사, 나쁜 일도 감사하면서 논리가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전 미국 토론대회에서 1등을 하고 유명대학의 초청장을 받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5가지 감사의 습관을 들이면 다 전국 토론대회에서 일등을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감사하는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시편50편에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주겠다.”(표준 새 번역) 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①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②그런 사람들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요
③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원수들의 모함을 받아 한 달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넣는 조서가 다니엘을 겨냥하여 선포된 것입니다.
이러한 왕의 조서가 발표되었음에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드리던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죽음을 담보하고 기도하면서 무슨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이제 죽어도 족하다는 생각에 감사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우선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막으셨고 사자 굴에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던 원수들이 사자 굴에 들어갔고 다니엘은 더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아멘.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다시 한 번 우리의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중 일부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부탁하면서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을 예로 들어 말씀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고린도교회에 비해 여러 가지로 부족했습니다.
교회규모나 재정이나 모든 것이 부족하였지만 그러나 성도를 섬기는 연보에 대해서는 너무나 풍성했습니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넘치도록 하는 마게도냐 교회를 언급하면서 너희들도 이 일에 동참하였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물론 성도들을 섬기는 연보에 대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감사에 적용해도 하등 잘못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마게도냐 교회가 어떻게 연보를 하고 어떻게 감사를 하였기에 모범적인 교회로 선정이 되었을까요?
먼저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하는 말이 나오는데요,
마게도냐 교회의 감사는 환난의 많은 시련가운데서 행해진 감사였습니다.
2절을 공동번역에서는 “그들은 환난을 만나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쁨에 넘쳤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많은 희사를 했습니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들의 풍성한 연보와 감사는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는 가운데서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풍성한 축복을 주셔야 감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극심한 가난에 쪼들릴 때 어떻게 감사를 할 수 있느냐?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범사에’, 크신 축복을 받았을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에도 감사하며 기도했던 것이 다니엘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감사’ 하였습니다.
감사의 대표적인 신앙인 중에 하나인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어버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 가능하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고난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러한 감사신앙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마게도냐 교회와 같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감사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고 그런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처녀가 귀한 반지를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고 불평을 합니다.
그녀는 반지 한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행복과 자존심과 생활까지 다 잃은 듯 끊임없이 원망을 쏟아놓았습니다.
이런 딸을 본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얘야, 손가락을 안 잃어버린 것을 감사해라. 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
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살 수 있겠니?”
그렇습니다. 귀한 반지를 잃어버리는 것은 불평거리요 원망거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요,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드리는 감사요, 고난 속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둘째는,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리는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나오는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다는 말은 마게도냐 교회의 감사가 적당한 감사나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형식적인 감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치는 감사, 더 드리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감사였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에 백성들에게 필요한 예물을 가져오도록 합니다.
그때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예물을 가져왔는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성막과 그 기구들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는데 오히려 지장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모세는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합니다.(출36장)
극심한 가난과 고난 속에서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드리는 성도들을 보면서,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풍성하게 예물을 드리는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릴 수 있었다는 것은 기쁨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감사였습니다.
기쁨이 있기에 즐거움이 있기에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드렸다고 하면 이런 연보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7절) 말씀합니다.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정할 때는 인색하거나 억지로 정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정해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중국사기에 돈제일주(豚蹄一酒)라는 말이 나오는데 돼지 발굽과 술 한 잔이란 뜻입니다.
제나라 위왕이 초나라의 공격을 받고 조나라에 원병을 요청합니다.
위왕이 예물을 줘 조나라에 사람을 보낼 때 사절단인 순우곤이 왕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소신이 오면서 풍작을 비는 사람을 보았는데, 겨우 돼지 발굽 하나와 술 한 잔을 놓고 들과 밭에 오곡이 차고 넘치기를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을 바치면서 원하는 것은 너무도 커서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위왕은 크게 깨닫고 예물의 양을 엄청나게 늘렸습니다.
제나라가 순우곤의 지혜로 정병 10만과 가죽수레 천대를 지원받게 되자,
초나라는 싸우지 않고 물러났다는 데서 돈제일주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작은 물건이나 정성을 가지고 큰 것을 구한다는 이 비유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큰 것을 구합니까? 큰 것을 구하면서 하나님께는 아주 적은 것을 드릴 때가 없지 않아 많습니다.
어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세상의 사람들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것, 부족한 것을 드리며 감사하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도움을 위해서는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지만 하나님께는 적당하게 형식만 보이며 힘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뀌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힘을 다하는 감사, 힘에 지나도록 하는 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에 합당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즐겁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마게도냐 교회의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했습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요, 하나는, 마게도냐 교회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기도 하고,
또 한 가지는 이렇게 넘치도록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사실은 한 가지, 같은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신 것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욥이 크나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분도 여호와시오’
말하자면 이 모든 축복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요 내가 노력하고 애써서 벌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은 지난 반년을 지켜주신 은혜를 깨닫는 절기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임을 깨닫는 절기입니다.
풍성하게 먹고 마시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절기입니다.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 이 땅에서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절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감사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드리는 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리는 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감사의 씨’를 심어서 엄청난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을 거두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4.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