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았던 영화들 중
엔딩 장면이 가장 강렬했던 영화를 꼽으라면
'내일을 향해 쏴라'가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두 주인공은 낯선 나라 볼리비아에서
수 백 명의 군인에게 에워싸인다.
자신들의 최후를 짐작한 그들은 쌍권총을
뽑아들고 뛰쳐나오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우리 다음엔 호주로 가자
왜?
거긴 말이 통하니까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도
이런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면
그건 진짜 레알이다.
악당인데도 매사에 유쾌명랑하면서
순수한 인간미와 허당끼가 있고
함부로 살상하지 않는다는 점때문에
결코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들이라
그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나기를
바라게 되는 관객의 마음.
그러나 다음 순간, 빽빽한 총구 사이로
둘의 모습은 정지화면이 되고
따다다다 울려대는 총소리만 요란한 채
영화는 그대로 끝나버리고 만다.
마지막은 어떤 상황일지
안 봐도 비디오로 관객들에게 맡겨버리고
스톱모션으로 영원히 박제된
최고의 명장면.
끝까지 잃지 않았던 특유의 익살때문에
두 사람의 비극적인 최후가
더욱 슬픈 멍자국을 남긴다.
먹먹함과 아련함과 애틋함은
순전히 나의 몫이런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중학생 시절에
이 영화를 보고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ㅠ ㅋ
두 주인공은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다.
말하자면 '푸줏간 캐시디'와
'석양의 꼬마'라는 뜻인데
두 사람의 이름부터가
일단 우스꽝스럽다.
부치 역은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배우이며
전설과도 같은 대배우 폴 뉴먼이 맡았고,
선댄스는 당시로서는 신인이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았다.
로버트 레드포드를 보면
브래드 피트 아버지인가 싶을 정도로
둘이 너무 닮아서
혹시 잃어버린 가족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유명한 '선댄스 영화제'도
극중 선댄스의 이름에서 따와
설립했다고 하니 이 인물을 향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애정이 어떤지
짐작할 만 하다.
1890년대 미국 중서부 지방을 무대로
은행과 열차를 털며 활약했던
갱단 와일드 번치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으로
한 마디로 2인조 무장강도의
범죄 여정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인데
이 영화는 1969년에 개봉되었으니
경찰에게 쫓기다가 사살된 두 명의 강도가
60여 년만에 '의문의 영웅'이 되어
화려하게 컴백을 한 셈이라고나 할까.
여기에서 부치는 비상한 두뇌와
말재주를 가졌으며
선댄스는 어눌하지만 뛰어난
서부 제일의 총잡이다.
서로 다른 성향인데도
어떤 순간에도 낙천적이라는
둘의 공통점이 있어
음울한 범죄 행각을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분위기가 경쾌하고 때로는
코믹하기까지 하다.
점점 자본주의 물살이 급하게
밀려들어오는 시대의 흐름에서
그들이 말을 타고 호기롭게 내달리던
황야는 이제 예전의 그 황야가 아니었다.
회색빛 건물들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의 삶도 갈 길을 잃은 채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치 야생에서 살아가던 동물이
갑자기 어느날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버린 것처럼.
그들은 순진한 농부가 되어 땅을
일구기에도 너무 먼 길을 달려와버렸다.
결국..
거하게 한 탕 해서 어딘가에
평화롭게 안주하고 싶었던 그들은
그러나 운명이 그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는 끝내 허락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 내지는 동경,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20세기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기존의 서부영화와는 느낌이 색다른데
네 발 달린 말 말고도 뜻밖에
두 발 달린 자전거가 나오기도 한다.
뜬금포로 부치와
선댄스의 연인인 에스타가
둘이서 세상 즐겁게 자전거를 타는데
뭐야, 둘이 서로 사귀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분위기 달달하고
여기에서 그 유명한 주제곡인
Raindrops keep ~이 흘러나온다.
노래는 빗방울이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는 것.
잠시나마 한가로운 때를
보내는 그들의 밝은 웃음에서
지난 시대의 향수 같은
진한 여운과 낭만이 묻어나는
인상 깊은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https://youtu.be/_VyA2f6hGW4?t=22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빗방울이 내 머리위로 떨어지네
But that doesn't mean my eyes will
soon be turning red
그렇다고 내 눈이 빨개지도록
슬퍼하지는 않지
Crying's not for me
운다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아
Cause I'm never gonna stop the rain
by complaining
울고 불평한다고 이 비가
그쳐주는 건 아니거든
Because I'm free Nothing's worrying me
나는 자유로워,
그 무엇도 나를 걱정하게 하진 못해.
그렇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서로 농담을 나누며
탄환 속으로 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첫댓글 분명히 본영환데 기억이 가물가물~~
상기시켜줘서 고맙데이 ㅎ
그니까
몇 번을 봤던 영화인디
엔딩장면이 생각이 안나넹
향비칭구 멋찌당~
가물거리기라도 하는 게 어디야~
아예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잖아^^
@딸기향기(인천) 앗~
엔딩 장면이 생각나야 하는데 ㅋ
나는
가물가물한 기억도
없는거 보니 안봤다고
주장할란다
잠시 헐리웃 키드 였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되네 ㅡ주말의 명화로 밤을 꼬박 새우고 학교가서 졸음과 싸우느라 애쓰고 헐리웃 여배우들의 영화포스터로 벽을 도배하다시피 했었는데ㅡ그립다 그때가
와우~ 주말의 명화
얼마나 눈을 반짝거리며 시청했는지..
같은 추억을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반가워^^
오~~
민사랑이도. 남자였군 ㅎ
자꾸 상상이되네
벽에 여배우 사진 풑여 놓은 칭구의 방
누구나. 무언가에 빠져있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주말의 명화중에
낙원의 천사가 가장
감명깊은 명화로 기억에 남는다
@서해바다(서초) 혹시 녹원의 천사 아냐?
리즈 테일러 주연
승마 스토리...
그 영화 나도 정말 감명 깊게 봤는데
@향비(일산) 맞어
정정
녹원의 천사
리즈테일러
@서해바다(서초) 나두~
그 영화에 나오는 시대의 감성이
넘 좋았어
인간미 넘치고 리즈 테일러 동생으로
나오는 주근깨 가득 꼬마 아이와 반려견의 귀여움까지...
따스한 유머 코드가 마음에 딱 맞았었지
@향비(일산) 십대 초반의 리즈 테일러는
떡잎부터 달랐지
전인류 영화배우 역사상
리즈를 뛰어넘은 배우는
전무후무 하겠지?
@서해바다(서초)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특히 바이올렛 빛깔의 눈동자는
오직 리즈 테일러에게만 있는 거였어
세월은 가고, 그 아름답던 배우들도 갔다는
사실이 때로 믿기지가 않아
주말의 명화 시작음악만
들어도 가슴뛰던 때~~
마자마자~^^
그립다 그 시절...
닥터 지바고
해바라기
이런 영화들이 떠오르네
대단한 명작들이지~
초원의 빛도 있어
OK 목장의 결투
주옥같은 영화들...
@향비(일산) 초원의빛..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 마음이 절절햇엇던 시절이 잇엇네
@봄날 (파주 운정.144) 다시 봐도 먹먹하던데~
@향비(일산) 넷플릭스에 고전 영화들이 잇나?
@봄날 (파주 운정.144) 넷플릭스에 본 건 아니고~~
@향비(일산) 고전영화 상영관이 잇을텐데~~
@봄날 (파주 운정.144) 그래?
고전영화들이 좋아
내용의 깊이도 있고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명작들...
@향비(일산) 책도 점점 고전이 좋아지더라 ㅎ
깊이가 잇지
@봄날 (파주 운정.144) 나두~
흑백영화들의 대사들은
정말 곱씹을 만한 깊이가 있어
좋더라
봤어?
권총 쏘는 거 좋아하는 군~~!
난,,,,기관총 쏘는거 좋아하는데~~~~!
전쟁영화 좋아해?
고전은 다 아련한
그리움과 애뜻함이
그 속에 낭만까지도~~
문학작품이나 영화나
나도 잼나게 봤다
어릴 때는 서부영화
완전 광팬 ㅎㅎ
'쉐인'이라는 영화도 봤어?
난 그 영화를 너무 슬프게 봤는데
지금은 그런 감성이 없을 듯 해~
@향비(일산)
많은 영화를 봤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이..ㅜㅜ
넘 먼 고전은 전혀~~
요새 고전문학작품을
영화작품으로 많이
나와서 홀로 행복한
시간들 보내지 ㅎㅎ
빨강머리앤
작은아씨들
안나 카레니나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부활 등등등...
@성이(마포) 하나같이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ㅋ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등
나를 살찌웠던 고전명작들이고
얼마나 설레이며 책을 읽고
영화를 봤었는지~
보석 같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