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산 지키기를 위해 소나무 위에 움막을 짓고 기도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윤인중 목사가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나누는 '소나무 일기'를 에큐메니안을 통해 소개한다.[편집자]
지난9일 신년하례회를 마친 인천노회 목사님들이 숲을 찾아 오셨다. 신음하는 이 땅 피조물을 살리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온전히 지켜가기를 기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 소식을 알고 있는 주민들이 길을 막고 목사님들이 솔밭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국 30~40여 분이 지체된 후에야 목사님들이 이곳으로 오셨다. 그 고마움을 이루 말하기가 힘들다. 감사할 뿐이다. 노회장·전희덕 목사님을 비롯한 기장총회 교회와 사회위원회 목사님들, 총회 본부 목사님들까지 함께 와서 예배를 드렸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는다.
공유하고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운동을 하고 싶다
주민들과 어떻게 하면 소통할 수 있을까? 뾰쪽한 대책이 없으니 답답하다. 주민들도 환경을 지키고 계양산 숲을 보존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를 한다. 문제는 주민들의 재산권, 생존권과 함께 그동안의 여러 불편 등이 문제다.
그 분들도 답답하고 그것을 듣는 나도 답답하다. 그러나 어쨌든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안이 나와야 한다. 골프장을 저지하고 시민의 숲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동네 주민들의 문제 역시 우리가 안고 씨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에게 큰 힘이 없다. 우리가 민원해결사도 아니다. 동네 주민들이 소외되고 방치되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주민들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대책, 그런 운동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저지운동에만 매달려 왔던 것 같다. 물론 그 운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자기헌신이 필요한 것인가도 절감한다. 소망이 있다면 이제는 '함께 만드는' 운동을 하고 싶다. 저지하고 규탄하고 타도하는 운동만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며 만들어가는 운동을 하고 싶다.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는 고백 한국교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어려울 뿐 못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새로운 방안을 함께 고민할 친구들이 절실한 밤이다. 역부족을 느낀다. 추위는 문제가 아니다. 높이에 따르는 불안과 공포도 어느 새 잊었다. 문제는 한 때는 너무도 순박했던 농부(주민)들 얼굴이 붉게 일그러져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벌이는, 그것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갖겠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이 휘청거리는 사회 속에서 이제 힘없고 약한 민초들이 겪어 내야하는 경제적, 심리적 고통과 박탈감을 무슨 말로 위로하고 쓰다듬을 것인가? 사회적 양극화,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절망이 더욱 격차를 벌리고 있다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 그런 점에서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다'라는 믿음과 사상, 생활태도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었을까?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감히, 당당히, 있는 그대로 말하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한국교회, 아니 나는 정녕 그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주민들이 손가락질하듯, '폼'잡는 삶을 살기 위해 나무 위에 오른 것은 아닌가? 솔직히 답이 없다. 달도 뜨지 않는 밤이다.
유종반, 김은영, 조강희, 성혁수, 이진권 목사 등 여러분이 봉사를 했다. 소리지기 김유호도 동참했다
윤인중 목사
"목사 윤인중은 고난의 계곡 만들지말고 떠나라" |
[윤인중의 소나무일기 21] 산은 움직이지 낳는다는 경지를 맛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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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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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0일 수요일. 호젓하다. 달인 차를 마시자 입안에 향기가 그윽하다. 오색 딱따구리 한 마리가 뾰로롱 날아오더니, 꾸루룩 울다 나무가지를 쪼아댄다. 그 소리 참으로 청아하게 들린다. '딱딱 따다닥' 리듬을 타듯 연신 쪼아댄다. 이놈 겁도 없다. 가까이 내가 서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만 한다.
숲에 어둠이 스며들고 인적이 끊어질 무렵이면, 이곳은 더 이상 농성장이 아니다. 나는 숲 속에서 야영을 하는 방랑자가 되어 버린다. 저편 농장에서 울려오는 개 짓는 소리도 없는 날이면 깊은 산중에 홀로 앉아있는 수도승이 된 느낌이다.
법정스님의 글 한 토막을 적어본다. 음미하면 할수록 스님의 묵상록에서 연한 솔향이 배어나오는 듯하다.
'목사 윤인중은 떠나라'... 이 일 아니면 누가 내게 이런 말 하겠나
‘진정한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하나의 영혼이란 말이 있다’ <친구> ‘참된 앎이란 타인에게서 빌려온 지식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몸소 부딪쳐 체험한 것이어야 한다’<참된 앎>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는 귀절이 있다. 그렇다. 지금 ‘시민운동의 위기’는 어쩌면 ‘시민운동 귄위의 위기’라 볼 수 있다. (시민)운동이 이제껏 지녀왔던 권위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는 것...
운동의 권위는 도덕성, 자기 헌신, 정직한 비판정신, 약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깊은 연대의식'등이 겹겹이 쌓여 이룬 것 일게다. 엄혹했던 군부독재시절 운동의 힘은, 운동의 권위는 역으로 커나갔던 것이다.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권위도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신뢰의 붕괴가 귄위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는가? 한국교회의 설교는 귄위가 있는가? 되물어 볼 때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인천일보를 읽고 나서 안 일이지만 ‘목사 윤인중은 이 지역을 고난의 계곡으로 만들지말고 즉시 떠나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나보다. 깊이 새겨들으려 한다. 이번 일 아니면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겠는가?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경지를 맛보고 싶다
<카케무샤>라는 일본 영화가 기억난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그린 영화인데 병법의 대가라는 다케다 신겐에게 참모가 하는 말을 늘 떠올린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산이 움직일 때는 경천동지할 만큼 크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을 담은 대사다.
기억은 정확치 않을 것이나 의미는 대강 그럴 것이다. 늘 쉽게 움직이는 나에게 솔깃한 대사였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경지를 맛보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 그 말씀과 가르침에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권위’가 있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그 권위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쉽게 생각한다. ‘언행일치'의 삶이 아니었을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사람’, ‘교회’, ‘시민단체’가 아니라 ‘말과 행위’가 하나로 드러나는 그분의 삶 전체가 ‘권위’를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말씀을 하시되 그 말씀이 당신의 온 삶을 던져 깨친 진수의 말씀을 하시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먼 길이지만 그래도 그 길 한번 가보려는 마음은 아직 남아 있다.
이진권 목사, 오창영, 박양인, 이희례. 백영민 목사, 김은영, 박태균, 정철호, 배동환 그리고 오현정, 그의 아이와 친구들이 함께 한 하루였다.
윤인중 "나무 속에 내가 있다" |
[윤인중 목사의 소나무일기 22] 운동은 함께 있고 함께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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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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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목요일. 나무 아래 텐트에 가스 등불이 켜지면 그 불빛이 따스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소나무 숲에 어둠이 내리고, 그 자체로 고요한데 옅은 노란 빛이 배어나오는 것이 참 아름답다. 은은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도란거리는 이야기조차 듣기 좋다. 사람 살아가는 게 다 그런가 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을 좋아한다. 나의 하느님은 ‘늘 말없이 따스한 눈빛으로 옆에 계신 분’이라 고백한다.
언젠가 나나무스꾸리가 부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의 호소력 있는 소리에 감동했는지, 그 노랫말에 감격했는지 모르겠지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내가 노래할 때, 함께 노래하며, 내가 울 때, 슬픔으로 함께 울어주고, 내가 고통당할 때 함께 고통당하리라. 약속하신 Hebrew의 하나님”을 노래한 것이다.
‘함께 있음’이다. 운동은 함께 있는 것이고,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 갇힌 사람들, 그들과 함께 있고,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나그네, 고아, 과부’와 함께 하는 신앙공동체를 강조했다.
예언서를 쭉 읽어 가는데, 강조에 강조를 더하는 것이, ‘우상 숭배 금지’와 ‘정의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나무와 함께 있다. 나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고통당하며 함께 노래하는 삶이기를 기도한다.
(김지태목사, 조정현목사부부, 박성호준목과 학생, 김석중, 조병화, 박태균이 함께 했다.)
윤인중 "아침햇살이 이리도 고마운지" |
[윤인중 목사 소나무일기 23] 겨울이 점점 깊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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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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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끓이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날씨가 추우니 가스연료가 분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가스통을 침낭 속에 넣거나, 장갑 낀 손으로 꼭 껴안거나 해서 쓰니 자연스레 물 끓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앉고 일어서고, 텐트 밖으로 나가는 일, 들어오는 일 모두가 그야말로 일이다. 밥상 차리고, 먹고, 정리하고 밑으로 내려주는 것 등 모든 일을 ‘천천히’해야 한다. 서두를수록 더 더디게 된다.
겨울이 점점 깊어진다. 소한과 대한 사이가 가장 춥다고 하더니 제법 날씨가 차갑다.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동산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춰오기 시작하면 숲속이 환해지고 텐트 안도 환해진다. 슬슬 ‘해바리기’를 시작할 때다. 아침햇살을 이리도 고맙게 여기며 받은 적도 없다. 여기에서 햇살과 햇볕의 고마움을 비로소 깨닫는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평소 무심코 지나쳤거나, 잊고 살았던 작고 소소한 일들이 여기에서는 하나하나 새롭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해 질 무렵, 낮이 밤으로 변화하는 ‘그 사이’를 무심코 앉아서 지켜보는 일, 청솔모가 이 나무 저 나무를 타고 노는 일, 솔씨가 팽그르르 낙하하는 모습, 달빛이 솔잎에 닿으면 마치 흰 눈에 내린 듯 솔밭은 은회색으로 물결친다.
‘무명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러라는 김민기의 ‘그 사이’라는 노랫말과 울림이 절로 나온다.
인천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 79년도였다. 서울역 부근 성남교회 옆 시외 버스터미널이 있었는데, 운이 좋은 날이면 인천으로 오는 내내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정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노을빛처럼 서로 물들어가며 어우러지고, 그래서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나누어주는 우리네 삶이기를 희망했다. 공장 굴뚝에 검은 연기가 피어나고 그 위로 노을이 지는 것조차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기장총회 여신도회 유근숙 목사, 인금란 목사, 인권위원장이 오셔서 계양산 숲과 생태계가 온전히 보전되기를 기도하셨다. 노동자 문화패 ‘더늠’의 김영택, 박찬영, 김창길 인천 참여자치연대 유진수, 이종일, 박춘성, 박은희, 이상권 교수님, 소리지기 김유호가 함께 왔다.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윤인중 "나섬교회만 생각하면 짜증이..." |
[윤인중 목사의 소나무일기 24] 나무는 꾸밈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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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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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3일 토요일. 기억나는 기도가 하나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수만 번 들어온 기도 가운데 유일하게 기억나는 기도라 해도 무방하다. 몇 해 전에는 기억도 나지 않는 꽤 오래된 사건이다. 나섬교회 신앙 사경회에서 전마리아 권사님이 한 기도이다. 기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님 나섬교회만 생각하면 저는 짜증이 납니다.”
순간 깜짝 놀랐다.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두고두고 기억할수록 이 기도는 소위 ‘민중교회’라 불리는 교회 운동에 대한 가장 통쾌하고 솔직 담백한 기도로 생각한다. 아들이 목회자로 섬기는 교회 신앙 사경회에서 어머니 권사님이 던진, 아니 속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이라고 여긴다.
전마리아 권사님을 어머니처럼 여기는 나로서는 이 기도를 늘 마음 속에 품고 다닌다. 기억할수록 그때 그 장면이 생각나 웃음이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기도는 솔직해야 한다. 꾸밈이 없어야 한다. 꾸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도 마찬가지라 여긴다.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운동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겉치장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럴 때 당당할 수 있다. 내 안에 꾸밈이 없고 사심이 들어 있지 않을 때 나오는 소리는, 몸짓은, 그 자체로 당당하다.
나무를 보고 앉아 있노라면 그 놈들 참 꾸밈이 없다. 꾸밈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기 좋다. 큰 놈은 큰 놈대로,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똑바로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굽어지고 작은 나무는 또 그대로, 그 모습이 어우러져 숲을 이룬다. 서로 다투지 않고 겨루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는다. 나무의 솔직함, 꾸밈이 없음, 당당함을 내가 배워 갈 수 있을런지…
기독여민회의 김옥연 목사님이 또 오셨다. 백 목사와 나란히 선 모습이 꼭 오누이 같다. ‘내 이름은 없대’라고 웃음 띠며 말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김 목사님을 쏙 빼놓고 있었다. 올 때마다 매번 과일, 과자, 용돈(?)까지 준비해 오시는 분인데, 그저 고마울 뿐이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나무에 올라 온지 25일째가 된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 분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그 믿음이 내 안에 있다.
날씨가 풀린다는 소식이다. ‘사흘 추우면 나흘 풀리는’ 우리의 겨울이 너무 좋다. 계양산 자락에서 올 겨울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기가 막힌 하느님의 작품이 아닐까? 고개를 끄덕인다.
숨을 나직이 들어 마시며 ‘나사렛 예수시여’ 숨을 고르게 내쉬며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하는 밤이다.
녹색연합의 송미선 님, 한승우 사무처장 부부와 보미, 전교조 인천지부 사립동부 지회장 심재철 선생님이 함께 했다.
윤인중 "숲속의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
[윤인중 목사의 소나무일기 25] 박종철 열사의 20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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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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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4일 일요일.
서남동 교수님이 설파하셨던 ‘사건으로서의 교회’가 된 것인가?
의도한 바는 전혀 없었다. 나무 위 시위를 결단하고 제일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 ‘주일예배를 어디서, 어떻게 드리는갗였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교우들에게 말했다. “조인영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교우들이 “아니, 목사님이 나무위로 올라 가면 우리도 그리가서 예배드려야지요”한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작된 솔밭 주일예배다. 이곳에서 예배 드린지도 4주일째다. 한겨울을 여기서 예배드리는 것이 나에게는 넘치는 기쁨이고 영광이지만 갓난 하연이까지 포대기에 싸서 와야 하는 식구들을 생각하면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 그 말씀이 현재화 되는 솔밭 예배이기를 기도한다. 언제, 어디서, 이런 예배 드리겠는가? 주일 아침이면 추위가 누그러지기를 기도한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곧 ‘최도은과 함께하는 숲속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작은 몸짓이기를. 휴일이어서 계양산을 찾아온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그냥 지나치시는 분도 있고 가던 길 멈추고 동참하는 분들도 있다. 도은을 아끼는 친구들이 강화와 김포에서 먼 길을 오셨다.
30~4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참으로 소박하고 잔잔한 잔치마당이 열렸다.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도은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마음에 담아 두리라. 애초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하자고 했는데, 도은이는 상당한 준비를 해왔다. 선물 보따리가 꽤 큰 것이다.풍부하고 호소력있는 도은의 소리를 듣는 것이 행복하다.
오늘은 박종철의 꽃다운 희생이 있었던 날로 꼭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귀한 아들 먼저 보내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던 한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눈시울이 젖는다. 도은이 ‘민주’라는 노래를 부를때, ‘햇살’이었고 ‘바람’이었고 ‘불꽃’이었던 참 착하게 생긴 대학생의 얼굴을 기억한다.
계양산 숲을 살리는 일에 힘주고자 여러분이 먼 길을 찾아오셨다. 성남에서 이은우 목사님,친구 유근숙 목사, 박인숙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이민우 선배, 최동식 의장, 김종렬님, 대우자동차 투쟁에 선봉이었던 김일섭․김성갑 동지의 가족들, 인천희망 21의 임한철, 잘생긴 아들 원길식, 정형숙과 아들 유병희 가족, 이승희 등이 왔다. 참여자치연대 박인규와 향순씨,아들이 왔고 친구 이남희가 부부동반해서 왔다. 올려준 보리차로 추운 몸을 녹인다.
박종렬 목사님이 공부하라고 책을 올려주셨다. 종렬형은 공부 안하는 나를 이번 기회에 바꿀 요량인지, 올 때 마다 책 한권을 올려 보낸다. 특별히 도은과 함께 온 이름 모르는 친구들께 감사하다. 음악회를 위하여 무료봉사한 스텝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완순, 박재성, 이춘상과 대우자동차 영상패가 봉사했다.
박경란,송숙자,김미형,임병구,이인숙,지혜가 함께 예배드렸다. 참으로 분주하게 보낸 하루가 저문다. 감사합니다. 은총이네요. 원길식이 가면서 그런다. “목사님, 참 복이 많으시네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과 이 땅의 민주재단에 꽃다운 생명을 내어놓은 청년을 위해 기도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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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양극화, 조금만 바뀌면 될 것 같은데" |
[윤인중 목사의 소나무일기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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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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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꼬리만큼 길어졌다’고 하는데 노루 꼬리가 꽤 긴 모양이다. 해 뜨는 시각이 일러지고, 해지는 시각이 점차 늦어지는 느낌이다. 낮이 길어진다니 다행이다. 움직이기도 한결 편해졌다. 소한 추위가 걷혔는지, 한낮엔 텐트를 걷어놓아도 될 정도다. 작은 차이인데도 큰 차이를 맛본다. 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조그만 온기가 느껴져도 움츠러들던 몸이 펴진다. 조금이다. 조금만 바뀌면 되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 몇 번이나 거듭되어야 ‘사회적 양극화’가 해결될 것인가? 70년도 이래 내내 듣는 소리가 ‘파이를 좀 더 키워야 한다’는 논리다. 변함없이, 아주 견고하게 울려 퍼지는 경제 논리다. 동의할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나누지 못하는데, 언젠가 좋은 미래에 나눌 것이라는 말은 지나가는 소가 흥하고 웃을 소리다. ‘커져야 나눈다’는 말처럼 허황된 것은 없다. 그것은 안 나누겠다는 이야기를 포장하는 것이다.
지금 나눌 것이 없는 인생에게 결코 나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 예수를 떠올린다. 가진 것이 없는 가운데 나눔의 삶을 실현하신 분이다. 그 나눔도 적당한 나눔이 아니다. 온몸과 마음, 지닌 모든 것을 철저하게 통째로 나눈 분이다. 도대체 ‘자기 것’ ‘자기 몫’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런 셈을 모르시는 분이다. 초대교회는 그 전통을 나름대로 이어받았다. 이런 점에서 복음서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초대교회 공동체의 나눔과 친교 속에서 늘 재현되어진 사건으로 이해한다.
기실 ‘사회의 양극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양극화는 이미 정도를 넘고 있다. 더 나아가 그 현상은 대물림 되고 있다. 그토록 한국교회가 비판하던 ‘세습문제’는 이제 대형교회의 상징으로 까지 된 모양이다.
조금만 바뀌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어려운 일인가? ‘故 김영원’장로님에 대한 이철수님의 추모 글을 신문을 통하여 읽었다. ‘마음씨 좋은 농부’의 얼굴을 하셨던 장로님이셨는데 평생 농사를 지으시면서, ‘콩 하나는 새들을 위하여 심고, 다른 콩 하나는 땅속 벌레를 위하여 심고, 그리고 남은 콩 하나를 사람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사시다 홀연히 가셨다고 한다. 참으로 마음이 넓고 삶의 부피가 큰 분이신 것을 새삼 느끼게 한 글이었다.
그 마음씨, 그 행위가 어쩌면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목청 높이는 정치인이 많은 지금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극심하게 심화되는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작은 변화가 소나무 숲 생활을 통하여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민주개혁 시민연대 이미영과 김은성, 성혁수가 함께했다
윤인중 "나무 위에서 스승들을 기억한다" |
[윤인중 목사 소나무 일기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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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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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8일 목요일.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본다. 특별히 나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을 떠올린다. 그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황성규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나의 생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내 삶의 등뼈가 세워진 ‘한신’으로 이끌어 주신 분이 황 교수님이다.
게으른 탓으로 인사도 못 드리고 살고 있다. 정이 깊으신 분이다. 선생님을 만난 것은 놀라운 은총이다. 축복받은 것이다.
황 교수님이 비록 변변치는 않지만 내 나름의 신앙과 신학을 갖게 했다면, 서투른 목회이지만 목회자로서의 사명과 자세를 일깨워 주신 분은 서도섭 목사님이시다. 장인어른은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었지만, ‘생활 그 자체’로 목회자의 자세와 사명의식을 고취시켜 주셨다. 사랑은 늘 내리 사랑이라고 받기만 하고 살아왔다.
김상근 목사님을 통하여 나는 현실(사회, 교회) 속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현실에 물들지 않는 면모를 배운다면, 이현주 목사님을 통하여 현실에 일정 거리를 두는 것 같지만, 너무도 현실에 대한 따뜻하고 깊이 있는 영성을 배운다.
안병무, 서남동, 문익환, 문동환, 박형규, 김용복, 조화순, 박봉랑, 김경재 등등 너무도 훌륭하고 깊이 있는 선생님들 속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 분들이 내 삶의 뼈대를 이루게 했고, 골수를 채워주었으며, 살을 붙여 주신 것을 곰곰이 생각한다. 감사할 뿐이다. 도리를 못하고 사는 삶이 부끄러울 뿐이다.
선생님들을 통해 배운 내용은 ‘역사적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사건’이었고, 이 땅 민중의 삶의 현실이었다. 세상 속에 있돼, 세상을 넘어서는 길을 열어주셨다. 신학교 졸업이후 감옥과 노동현장, 민중교회, 인천지역사회운동으로 이어지는 나의 삶과 행동이 내세울만한 것은 없으며, 어쩌면 게으름과 서투름이 늘 베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리스도 예수를 초점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들의 영향일 것이다. 스승들을 통하여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로 고백한다. 스승들의 그림자조차 밟기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분발하는 삶이기를 기도한다.
인천민중교회운동연합 김지태 목사, 곽재호 목사, 문장영 목사, 조정현 목사, 박성호 준목이 함께했다. 청소년 ‘내일’의 중·고등학생들이 왔다. 초롱초롱하다. 또, 열린우리당 인천지부 윤관석 사무처장과 이재병이 왔다.
윤인중, '홀로'와 '함께'를 구별할 줄 알았겠지... |
[윤인중의 소나무 일기 28] 숲 속 깊은 밤에 인디언 성인과정을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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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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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0일 토요일. 아쉬움이 있다면 ‘해넘이’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욕심이 끝없다. 노을이 붉게 물든 서해를 보았던 기억을 되짚어본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삶이기를 기도한다. 그게 말이 쉽지,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게다. ‘그리스도 예수’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삶이지 않은가!
졸망졸망한 아이들이 숲길로 들어선다. 멀리 보이는데 그 소리가 경쾌하다. ‘부개동 좋은 엄마, 아빠 모임’이 주최한 어린이 생태학교를 마치고 수료식을 하는데, 소나무 숲에서 개최했다. 최종락의 열성과 배려,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엿본다. 거의 백여 명은 되겠다. 아이들과 어머니,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사진도 찍고, 유종안 위원장이 나누어주는 수료증을 받아들기도 한다. 시끌벅적하다.
밤이 깊은 시각, 습기가 높아지는 듯 숲의 기운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숲 속에 정령 또는 요정이 살았다고 생각했나보다. 묘하고 깊은 기운이 숲 속에 있다. 인디언들은 성인이 되는 소년을 숲으로 보낸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에게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먼저 몰려왔다.
곰곰이 생각하면 대단하고 심오한 ‘어른 교육 과정’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뜻 일 게다. 과연 그런가, 나이만 들었지. 성숙한 모습을 찾기 힘든 것은 아닌가? 숲속에서 소년은 두려움·무서움·외로움·배고픔·그리움 등 어린이와 성숙한 인간이 겪어야할 감정들을 소화해 냈을 것이고, 숲에서 만나는 어둠·밝음·나무와 꽃·새·동물·해와 달·구름·바람·별 그리고 자기가 떠나온 가족·집·공동체를 떠올렸을 것이다.
스스로 먹거리도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하여 나름의 터득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결국 ‘홀로 있음’을 깨달았겠지. ‘홀로 있음’과‘함께 있음’을 구별할 줄도 알고, 둘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립’과 ‘연대’를 묵상했을 게다.
내가 이 숲에 앉아 있는 연유도 그런 ‘어른이 되는 과정’,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을 결여한 탓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를 되새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주께서 마련하신 성장 체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축복이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스런 일이다.
계양산 숲을 지키려는 계양구 대책위의 회장님, 부회장님을 비롯해 조강희 사무처장, 이한구 사무처장, 조효제, 이진권 목사, 이세영 선생님, 남동시민모임의 박춘성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이 방문했다. 골프장 예정 부지를 실사하겠다고 한다.
이미영이 자동차 면허 기능검사에 붙었다고 말한다. 나도 그 때가 있었다. 미영에게 또 이러저러한 부탁을 한다. 우리 집 막내 이름도 미영이다. 성만 다르지. 민주노동당 이용규 사무처장, 김응호 님, 한상욱 위원장, 전현준, 이광호, 박병규, 홍춘호, 홍성준님이 함께 했다. 고맙기 그지없다.
글을 마치려는데 바람이 살랑 분다. 차고 신선하다. 겨울나무가 바람 따라 휘파람을 불고 있다. 내일은 주일이다. 생명평화기독연대 식구들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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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실한 걸음으로 마음 한 가운데를 향해 가시는 아름다운 사람을 봅니다. 정진을 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중이를 참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진실에 가슴이 떨립니다. 골프장을 만들어야 산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미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맙시다. 윤 목사님, 높은 데 올라갔으니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당신은 다리가 없고 나는 다리가 있으니, 가까운 시일 안에 찾아뵙겠습니다.
윤인중 목사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