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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들 사이에서 올 상반기 에베레스트 등반은 단연 화제였다. 원정대 수도 많았고, 한국 고산등반계를 대표하는 산악인 둘이 목숨을 잃는 사고로 많은 산악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6월 중순 들어 1주일 내리 좋은 날씨가 지속되면서 무려 300명이 넘는 많은 산악인들이 정상에 올라서면서 다시 한 번 에베레스트에 관심이 쏠렸다.
한국 산악인들도 이번 시즌에 몇 개의 등정기록을 냈다. 티벳쪽에서 2팀에서 11명이, 네팔쪽에서 3팀에서 6명 등 무려 17명이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올라섰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노익장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점이다. 실버원정대 대장 김성봉씨(金聖奉·한국산악회 부회장)가 66세 나이에, 김해팀 송귀화씨(宋貴和·한국여성산악회 회원)는 58세로 남녀 한국 최고령 등정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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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선 김성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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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오전 7시13분 네팔쪽 남동릉 루트로 등정한 김성봉씨는 화제를 모으며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선 실버팀 대장이다. 김 대장은 대원 중 컨디션이 가장 좋은 편이었고, 캠프를 이동할 때도 대부분 앞장서 올랐다. 다른 대원들이 고소증 때문에 힘겨워 각자 텐트에서 나오지 않을 때도 그는 캠프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식당 텐트에 앉아 있는 등, 고소적응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마지막 캠프(C4·약 7,950m)를 오를 때는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정말 기진한 상태였습니다. 이장우 대원보다 2시간 가까이 늦은 저녁 6시에야 올랐으니까요. 그런데도 베이스캠프에서 김종호 부단장이 빨리 밥해먹고 올라가라고 하자 이장우 대원이 도저히 못 올라가겠다고 대답했죠. 저 역시 그 상태로 등반했다간 죽겠다 싶었으니까요. 김 부단장이 안 올라갈 거면 뭐 하러 왔냐고 하더니, 결국 둘 다 못하겠다니까 어쩔 수 없이 이튿날로 등정날짜를 바꾼 거죠.”
지구촌 실버들에게 용기을 주기 위해 최선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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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봉씨는 실버와 젊은이들이 하나되어 나라발전과 자연보호에 힘써야한다고 주장했다. ABC에서 한국도로공사팀과 함께 활짝 웃는 김성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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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17일 김 대장과 이장우 대원은 오후 7시20분부터 셰르파들과 함께 정상을 향했다. 처음에는 이장우 대원이 앞장섰으나 400m쯤 올랐을 때 이 대원이 대변을 보면서 순서가 바뀌었다.
“ABC에서 김상홍 부대장이 전해준 홍삼팩을 이장우 대원과 나누어 마시면서 이게 우리 두 사람이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이 아닐까 싶더군요. 비장한 분위기였죠. 그런데 출발 직후 하도 빨리 걸으니까 너무 이른 시간에 정상에 오르면 추위 속에서 해 뜨기를 기다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김 대장은 왼쪽 장딴지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너무 아파오자 배낭에서 피켈을 꺼내 장딴지를 후려치기도 했다. 그렇게 두 차례 통증이 온 다음 다행스럽게도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다.
“저기만 오르면 쉴 데가 있으려니 하면서 설사면을 오르면 그 뒤로 또 가파른 설사면이 계속 이어져 처음 쉰 곳이 발코니(8,500m)였답니다. 그 다음 한 번 더 쉰 게 힐라리스텝이 빤히 보이는 남봉이었고요. 그것도 물 한 모금 마시면 셰르파들이 어서 가자고 줄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요.”
김성봉 대장은 18일 오전 7시13분, 12시간만에 정상에 올라설 때까지 이렇게 두 차례밖에 쉬지 못했다.
“암빙벽등반은 경험이 많아 설사면을 오를 때는 부담이 없었는데, 힐라리스텝을 보는 순간 겁이 덜컹 나더군요.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날이면 시체도 찾을 수 없는 낭떠러지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없어 고글을 벗고 칼날리지를 넘어서고, 정상에서 1시간쯤 머물 때도 감격에 겨워 고글을 써야한다는 사실을 잊어먹고 있다가 하산길에 설맹증세가 나타나 고생했답니다. 줄이 두 가닥으로 보이고, 10여m를 미끄러지기도 했으니까요.”
김성봉 대장은 베이스캠프에 머물 때는 새벽 2시쯤 일어나 라마제단을 두 바퀴씩 돌면서 신에게 빌었다 한다. ‘에베레스트 신이시여, 작은 나라 대한민국 실버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게 하여 지구촌 실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소서.’
정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산 직전 ‘영광스런 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하면서 세 차례나 정상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에게는 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컸지만 부담 또한 많은 원정이었다. 특히 출국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아내의 설암 수술로 심적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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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풀코스 맨발달리기에 도전할 터
“대장이자 산악회 부회장인 내가 원정을 접으면 원정대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참가를 강행했지만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병든 아내들 버리고 산으로 내뺀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김성봉 대장은 “최고령 등정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며 “그보다는 이번 원정이 취지대로 노소가 하나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IT산업시대를 맞아 젊은이들이 실버세대를 경시하는 풍조가 팽배해졌습니다. 실버세대는 분명 산업화의 주역이자 역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와서는 사회에 해가 된다는 평까지 들으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뿌리 없이 어떻게 가지가 자랄 수 있겠습니까. 베이스캠프에서 도로공사팀과 남서벽팀 젊은 대원들과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면서 잘 지냈습니다. 이렇게 노소가 하나 되어 나라 발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과 용기도 주었으면 하고요.”
김성봉 대장은 한국산악회 총무이사와 감사를 거쳐 지난해부터 부회장과 등산학교 교장을 맡고 있어 아무래도 다른 대원들에 비해 책임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책임감 하나만으로 세계 최고봉을 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한 체력과 인내심이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와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오른 바 있는 김 대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소 “김성봉씨와 같이 걸을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산행속도가 빠르고 지구력도 대단하다고 스스로 평했다. 지리산 당일종주는 기본이고, 무박으로 설악산 백담사~대청봉~천불동~설악동 코스를 끝내자마자 서울로 돌아가 그 날 오후 관악산 종주산행을 해낼 정도다.
원정 참가 전까지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아홉 차례나 완주했을 정도의 준족으로, 최고 기록은 세계적인 마라톤대회인 보스턴대회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3시간24분이다. 안전산행을 위해 평소에도 자일 한 동과 안전벨트, 암벽화 정도는 지니고 다닌다는 김성봉 대장은 “원정을 앞두고 훈련할 때는 40kg 안팎씩 메고 다녔는데, 그런 훈련이 이번 등반에서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2년 전 퇴사한 법무법인에 근무할 때인 2002년 마운틴티브이(㈜산야)를 창업하기도 한 그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게 우리 산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이었다고 한다.
“히말라야처럼 생물이 못 사는 산은 죽은 산입니다. 반면 우리 산은 살아 있는 산입니다. 산이 근원이 되어 좋은 물을 마시고 살았기에 자원이 없어도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산을 지키고 싶습니다. 자손만대 깨끗한 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마운틴티브이도 그런 생각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만든 거랍니다.”
세계 최고봉 한국 최고령 기록을 세운 김성봉 대장은 “지난해 하프마라톤대회에서 맨발달리기로 완주해낸 이후 훈련 때문에 제대로 달리기를 못했다”며, “내년 봄에는 꼭 풀코스 맨발 완주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 “평소의 속도산행이 가장 큰 도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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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마치고도 1kg밖에 줄지 않은 송귀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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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대륙 최고봉 등정이 목표인 송귀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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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티벳쪽 노스콜 루트로 등정한 오은선씨의 당시 37세 기록을 21년이나 차이 나는 58세로 갈아치운 송귀화씨의 에베레스트 등정은 2001년 7대륙 최고봉을 계획한 지 6년만에 이룩한 것이다. 송씨는 16명의 대인원으로 구성된 김해 초모랑마 원정대(대장 김재수)에 이성인(60·중동고 OB·재미교포), 고미영씨(37) 등과 함께 외인부대로 끼어들었다. 여행사에서 모집하는 상업등반대에 신청해놓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대원 모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대산련 이인정 회장의 추천으로 김해팀에 합류한 것이다.
지난해 말 대학산악연맹 원정에 참가해 아마다블람을 등반하고, 초모랑마 베이스캠프에 들어서기에 앞서 대원들과 얄라피크(5,600m)를 오른 송씨는 고소증세로 고생한 적은 거의 없고, 해발 7,700m의 C2에서부터 산소를 사용면서 오히려 보행이 더욱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C1(7,000m·노스콜) 출발 이후 C2(7,700m)에서 따뜻한 차 몇 잔에 과자 몇 조각을 먹고, C3(8,350m)에서 파워겔 한 봉 먹은 게 전부였는데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앞에 간 외국 사람이 워낙 천천히 걸어 절로 컨디션 조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날씨가 좋더군요. 발아래 히말라야가 파노라마로 펼쳐졌으니까요. 꼭 해내고 싶었는데 날씨가 도와주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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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스캠프에서 김주진대원과 함께 한 송귀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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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 오전 10시경 티벳쪽 북릉~북동릉 루트로 세계 최고봉에 오른 송귀화씨는 “어둠 속에서 정상을 향할 때는 앞사람만 좇느라 어디가 어딘지 몰랐는데, 하산길 세컨드스텝을 내려설 때는 추락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며, “먹은 게 없어 너무 배가 고팠지만 참고 참으며 노스콜까지 내려섰다”고 했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 10시간, 표고차 1,850m 아래 C1까지 하산하는 데 8시간 등 총 18시간이 넘는 산행을 해냈는데도, 귀국 후 저울에 올라섰을 때 송씨는 몸무게가 1kg밖에 줄지 않았다고 한다.
150cm가 조금 넘는 단신에 몸무게도 가벼운 축에 속하는 송귀화씨가 이렇게 험한 산행을 큰 힘 들이지 않고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차례의 고산등반으로 다져진 경험과 체력,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해온 훈련 덕분이랄 수 있다. 양주시청 보건소에 근무해온 송씨는 90년경 양주시청산악회 회원들과 산행해오다 공무원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이듬해인 96년 유럽 최고봉인 엘브루즈 원정에 나섰다. 그 등반에서 그녀는 너무나도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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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송귀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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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적응을 하는데 네 살이나 더 많은 현영우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데 나는 엄청 힘들지 뭐예요. 이튿날 날씨가 워낙 나빠 정상 공격이 무산되었지만 만약 강행했더라도 저만 못 올라갔을 거예요.”
귀국 후 그녀는 현영우씨(62)에게 비결을 물었다. 해답은 그 다음주 도봉산 산행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현씨 일행은 그녀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걸었다. 1년 동안 현씨 일행과 함께 매주 산행했다. 그리곤 이듬해 8월 다시 엘브루즈에 도전했다.
“너무 쉽지 뭐예요. 정상에 올라서니까 훈련 결과에 기쁨도 느껴지고, 고산등반의 매력도 느껴지더군요. 훈련만 잘 해내면 고산등반을 계속해도 되겠다 싶어졌고요.”
그 해 2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를 오른 그녀에게 이듬해 98년에는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07m)도 올랐다. 이후 일본과 중국 산을 오르곤 하던 송씨는 2000년 김해 매킨리 원정에 참가했다. 이 등반은 당시 대장인 김재수씨가 98년 엘브루즈를 등반하던 송씨의 모습을 보고 흔쾌히 동참을 응낙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시 근무하던 양주보건소에서 24일이란 긴 휴가를 허락해주지 않아 22년간의 공직 생활을 접어야했다.
“나이 많다고 짐도 덜 메게 해준 데다 날씨가 좋아 수월하게 올랐다”는 송씨는 그 등반에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꿈꾸게 되었다.
7대륙 최고봉 완등이 최종 목표
2001년 1월 초 박영석팀에 합류해 아콩카구아를 등정한 송귀화씨는 그 해 봄 박영석씨 로체 원정대에 참가, 아이스폴과 웨스턴쿰 빙하를 경험한다. 이후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기까지 6년이 걸렸지만, 그 사이 엘브루즈를 두 차례 더 등반하고, 아콩카구아를 한 차례 더 등반하는 등 고산등반에 대한 리듬을 계속 이어왔다.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은 결코 운이 좋아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닌 것이다. 10년 넘게 꾸준히 운동해왔고, 비록 대부분 여행사나 타 원정대에 끼어서 등반해왔지만 김재수씨 등 여러 차례의 고산등반을 통해 호흡을 맞춰온 산악인들과 동행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송귀화씨는 “요즘도 매주 한 차례 도봉산을 오르고, 주말에는 서울시청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정맥산행을 하고 있다”며, “빨리 걷는 것만큼 고산등반에 도움을 주는 운동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송귀화씨의 목표는 남은 2개봉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퇴직 후 나오는 연금을 차곡차곡 모아 원정을 다닌다는 그녀는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와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4,884m)는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 걱정”이라며, “그래서 돈이 마련될 때까지 서둘지 않으려 하는데 올 겨울 인천대산악회에서 나간다 하여 갈등 중”이라 말했다.
/ 한필석 차장대우
- ★월간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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