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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채색 위에 그려진 수채화
공인중개사 양정숙님
낙원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전화 064-792-3833
나는 어느새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그들과 이웃이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8월 초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정오쯤이었다. 서울 방배동 사거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약속 장소를 거리로 해놓고 보니, 도착 즈음엔 “어떻게 알아볼까”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다.
정작 그곳에 이르러서 뙤약볕 아래 서있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대략 30여분을 기다렸을 즈음 “중년 아줌마” 한 분이 차를 세워 놓고는 바삐 손짓하고 있었다.
“권 기자님 맞으시죠 ?”
“아, 예. 양 선생님”
“차에 타시죠.”
차도에 차를 세워두었기 때문에 급하게 차에 올랐다. 그리고 방배동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고 출판 취지에 대해 언급하고는 또 다시 바쁘게 헤어졌다.
그리고 대략 보름 뒤쯤 양 대표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상도동 숭실대 앞이었다. 그 때는 허름한 칼국수 집이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취재 온 사람이 허겁지겁 칼국수를 단 번에 비웠더니 “나는 방금 식사를 했는데 이것 좀 더 드시겠느냐”고 해서 다시 그 국수를 다 비워냈다. 빙긋이 미소를 머금는 양 대표에게 나는 “살아온 얘기 좀 해주세요”라고 했다.
사랑과 세상물정의 이율배반
“고생이란 걸 모르고 자랐어요. 꿈 많은 여고시절을 지나 숙녀가 되면서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죠. 지금 저희 남편이어요. 그리고 결혼했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데 더 이상 바랄 게 없더군요.
그렇게 신혼의 단 꿈을 꾸고 있는데 또 하나의 복이 찾아 왔어요. 당시 저희 시아버님께서 연로하셨는데 그 즈음 형제들에게 재산을 분배해 주셨어요. 저희도 전남 광주시 광천동, 지금의 터미널 부근에 배추밭 2,000평을 상속으로 받았어요.“
그 때 양 대표나 남편은 그 상속에 대해 크게 의지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젊은 데다가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착실하게 가꿔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감사의 마음으로 받았었다고 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인근의 복덕방 아저씨가 찾아와 그 땅을 누가 사려고 하니 매매할 생각이 없느냐고 해서 “땅을 팔 만큼 어렵지 않다”고 가볍게 의사를 전했는데 여러 번 찾아와 자꾸 종요하더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 그 땅은 당시엔 배추밭이었어요. 주변에 공장이 띄엄띄엄 있어서 기름이 밭으로 스며들어 배추농사도 잘 되지 않는 밭이었죠. 그런데 복덕방 아저씨가 자꾸 와서 좋은 값에 쳐주겠다는 임자가 있다고 하니 생각이 좀 바뀌게 되더라구요.
농사도 잘 안되고 기름만 들어오는 땅인데 임자 있을 때 차라리 팔아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평당 1만8천원 정도였는데 더 주겠다니 마음이 흔들리더라구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 땅을 팔았어요. 당시에는 큰 돈이었어요.
그렇게 땅을 팔고는 그 돈을 저축해 놓고 있었는데 남편의 사업이 꼬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돈을 조금씩 조금씩 사업에 투자하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나고 남편도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포기를 하게 되면서 졸지에 사업과 땅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최악의 궁지에 처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땅 인근에 남편 형님 땅도 있었어요. 그 땅은 참 농사가 잘 되는 땅이었거든요. 그런데 쓸모 없는 그 땅을 사려고 하는 사람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글쎄, 우리가 그 땅을 파록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이 소위 상업지역으로 발표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곧이어 고속터미널이 그 옆으로 들어온다는 발표가 나는 거예요. 땅값은 천정부지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남편 사업은 문을 닫아 오갈 데 없이 거리로 나 앉아야 할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요? 그 땅값이 평당 2천만원은 족히 될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부부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다.
더욱이 그들은 괴롭힌 건 땅값이 오르고 개발이 뉴스를 통해 매일 보도될 때마다 한동안 신음을 했었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망했다는 얘기를 간혹 듣기는 했었어도 양 대표는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더라구요. 생활이 곧 현실인데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사업실패로 상심해 있는데 나까지 그냥 손놓고 마냥 억울하고 슬퍼할 수 는 없었어요. 그래서 이를 악물었어요. 다시 일어서리라!”
새댁에서 식당 아줌마로
상심하고 있는 이들 가족에게 주변에서 많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지금 식당을 하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이라고 하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고 한다.
“아주 조그마한 식당을 열었어요. 돈도 없고 그나마 겨우 방 딸린 가게 하나를 계약했는데 경험도 없고 해서 걱정이 많았었어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거예요.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남편부터 좋은 집에서 편히 자라온 애들까지 적응이 안 되니까 줄줄이 드러눕는 거예요. 나도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피로까지 겹쳐 얼굴이 거의 누런 종잇장 같았다고 하는 분들이 요즘도 그래요.
새댁이 참 안 됐다고 그러면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염려 했었대요.“
경험과 노하우 없이 식당업을 이끌어 가면서 양 대표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아름답고 행복하게만 살아온 그에게서 어느 날 문득 그 말이 스쳐갈 때 자신도 발견하지 못했던 강한 삶의 끈을 발견했다고 한다.
‘뭐, 그런 말 있잖아요. “죽으면 살리라 !” 죽기로 각오하고 일을 하는데 마음 저 깊숙이 삶에 대한 경외감이 일어 나더라구요.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가는데 눈물이 막 쏟아 지더군요. 그런데 그 눈물이 이전의 분노가 아니고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스스로 위안하는 눈물이었어요.“
그렇게 밤낮없이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즈음 지나 뒤돌아보니 식당에 딸린 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식당 인근에 은행이 있었어요. 그 구내식당에 밥 배달을 하면서 직원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은행 융자를 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모아진 돈을 보태 20평 아파트를 샀어요. 그렇게 식당을 한 2년 여쯤 했나봐요. 부자집에서 추락해 고생해서 조그마한 아파트에 식구들을 들여놓고 처음 아파트에서 잠을 자던 날 저는 스스로 다짐했어요. 처녀시절의 꿈 많았던 양정숙은 죽었다. 이제 엄마로서 아내로서 세상에 당당하게 반드시 우뚝 솟을 것이라고.”
뜻하지 않게 시작한 수험생활
사람들은 쉬운 말로 식당이라도 해서 먹고살겠다고 말하지만 그야말로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식당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식당 일을 온 몸으로 사력을 다했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 했죠. 그런데 그 즈음 공인중개사라는 제도가 생겼어요. 부동산은 그리 고생스럽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는 정도로 생각했던 나는 고생 모르는 남편에게 천직이다 싶어 묻지도 않고 책을 주문해서 저녁에 남편에게 내놓았어요. 그런데 남편은 부동산은 자기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 때 형편에 대단히 비싼 책값을 지불했는데 책값이 아까웠지만 남편이 싫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리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문득 한 맺힌 광천동 배추밭 땅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동안 너무 빠듯한 새오할이라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러고있자니 묘한 오기가 발동했어요.
그래서 “좋다”, 내가 한다“ 그렇게 다짐하고 다음날부터 책을 잡았어요.”
밤 12시에 끝나는 식당일. 그래서 양 대표는 집에서 새벽에 1시간씩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하루도 거리지 않고 1년을 공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용어도 생소하고 내용도 어려웠지만 어느 날부터는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식당 일 하랴 새벽에 공부하랴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 식당에 사람을 한 사람 쓰기로 작정했지요. 여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공부를 하면서 반드시 이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학하면서 나름의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그런데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그래서 시험 4개원 정도 남겨 놓고는 학원을 다녔어요. 처음 모의시험에서 45점을 받았는데 문제풀이 등으로 성적이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이 때가 20평 아파트를 보러 다녔던 시기로 양 대표는 집 구하러 다니랴 학원 다니랴 식당 하랴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했다.
“시험 20여 일 남겨 놓고 결국은 쓰러졌어요. 한약 지어다 먹고 병원 신세도 지고 했지만 몸이 좋아지질 않았어요. 그러나 시험은 봐야 하겠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기도하면서 시험을 치렀어요. 맨 주먹으로 식당일 그리고 정말 힘들게 또 하나를 성취한 순간이었지요!”
나는 멈추지 않는다. 생이 다 할 때까지
“사람 마음 참 변덕스럽죠?”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이 들 때가 있었어요. 위황찬란한 상업 번화가로 변한 광천동을 지날 때면 어느 땐 억울해서 울었고 어느 날엔 부끄러워서 외면했어요. 누가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의 모습을 보면 “이 바보야! 그 금싸라기 땅을 팔아먹었니?”라고 할 것 같아 한동안 다른 길로 다니 적이 있어요. 누가 그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요즈음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세월 속에서 녹아지고 닳아진 상처를 가슴에 대고 문지르다 이제는 고요히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저녁이면 네온사인에 휩싸인 그곳을 보고 참 아름답구나 느껴요. 젊음도 활기차 보이고, 그 곳 사람들이 분주히 자신들이 시간을 즐기는 걸 보면 저도 신혼 시절의 그 설렘으로 살짝 되돌아 가보곤 합니다.”
이제는 여유가 있어서 그렇지 않겠느냐고 슬쩍 물었다.
“배추밭 사건이 없었다면 글쎄요, 지금 제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저 평범한 주부로 잘 살고 있을지......... 어찌되었던 그 밭은 금 덩어리가 되었고 나는 그때 당시 죽음 같은 고통 속을 헤쳐 나와 이렇게 건강히 살아 있잖아요. 무엇이 생산적인 사람으로 탈바꿈했고, 요즘 들어서 ”사람에 투자한다“는 말들을 흔히 하잖아요. 절실하게 그 말이 다가와요. 누구든 그 사람 그대로를 보려고 해요. 저 역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해요.
우리 가족 고통의 시작은 결론적으로 땅을 판 우리의 잘못이자만 드러나지 않았던 그 복덕방 아저씨의 끈질긴 유혹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해요. 개발 정보도 중요하지만 뒤돌아보니 매도자와 매수자를 연결하는 중간자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거죠. 자신의 조금 더 나은 수입을 위해 결과적으로 한 가족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잖아요,“
새삼 이 얘기를 하는 건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어서가아니라고 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렇게 크나큰 시련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중개업을 하게 되면서 항상 과거의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고 쌍방의 결과가 더 나은 방향이기를 함께 노력한다고 했다.
“언젠가 그림 전시회에 간 적이 있었어요. 연로하신 고객분이었는데 따님이 전시회를 하니 꼭 오라고 초대장을 주셨어요. 그림회원전이었는데 수채화 그림이었어요. 전 미술을 잘 몰라요. 그런데 그 수채화를 저만치서 보니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보일 듯 말 듯 여백이 있고 그러면서 조화로운 편안함이 있었어요. 제주도로 와서 가끔 저만치 바다를 보면 문득 그때 수채화가 떠올라요.
휜색이든 검은색이든 괜찮아요. 무채색 위에 그려 넣는 내 삶의 수채화! 그 한 점 한 점에 전력하는 나의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나의 전문영역
1. 처음부터 욕심 내지 말아야 !
독학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독학하는 분들께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처음 공부할 때는 많은 분량을 욕심 내지 말고 하루에 3페이지 분량을 세 번 정도 읽어주되 한 번은 대충 읽고 두 번째는 이해를 해 가면서 읽고 세 번째 읽을 때는 완벽히 내 것으로 섭취하도록 합니다.
문제풀이는 몇 개월 공부한 다음에 풀 것이므로 문제풀이 시험지를 답을 적지 말고 눈으로만 이해를 돕는 편이 좋습니다.
몇 개월 공부하다 보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 가타고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가 있는데 이 때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이럴 때는 성공한 중개사들이 조언도 들어보고 성공했을 때를 상상하며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페이지를 늘려가면서 공부를 하면 민법의 경우 3개월, 다른 책들은 한 달이면 어느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풀이를 계속 하도록 하고 반복학습을 위해서 연필로 답을 표시하면 더욱 좋습니다.
2. 소규모 단지지만 업소가 별로 없는 지역이 유리
처음으로 개업하는 분은 사무실이 밀집되어서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지역보다는 소규모 단지지만 부동산이 별로 없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치열한 지역에서 하면 생각보다 안 되는 일이 많으므로 쉽게 실망할 수 있기 때문이죠.
더 좋은 것은 경험 있는 중개사 밑에서 배우고 시작하면 더욱 좋습니다. 예를 들어 중개사가 15년 배웠을 부동산 노하우를 몇 개월만에 터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입지는 아파트와 주택이 공존되어 있으면 좋고, 파트를 아파트와 주택 및 상가 두 파트로 나누어 직원이 있다면 분담을 하여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토지를 취급하고자 한다면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과 동업을 하는 것이 좋은데, 이것은 지목에 따라, 지구에 따라, 그 지역 특성을 따라 용도와 법이 달라 상당한 안목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집기는 새것과 중고 중에서 형편에 맞게 고르면 되는데 새 집기의 반 값이면 중고시장에서 쓸 만한 것을 고를 수 있습니다. 배치 문제도 손님이 부담 없이 들어와 볼 수 있도록 책상을 문의 정면보다는 약간 비켜서 배치하는 것이 좋으며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소파는 안쪽보다는 문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하기를 권해드립니다. 손님이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거나 안쪽까지 들어가야 할 때는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3. 주5일 근무로 제주지역 펜션 재테크 주목
주5일제 근무로 흐름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콘도형 펜션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12우러부터 면세점이 일반 여행객에게 개방되므로 왕복 비행기 요금은 일정 한도 내에서 면세품을 살 경우 해결될 수 있습니다. 또 위탁경영을 맡길 수도 있겠지요.
입지를 구할 때는 그 부근의 경치가 바다나 산을 끼고 있는 지, 관광차가 얼마나 밀집되어 있는지 지금은 한가하지만 앞으로 땅 값 상승의 메리트가 있는 지역인지, 또 행정적인 제한이 무엇 무엇인지 꼭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펜션의 가장 큰 장점은 전원주택형 모텔이기 때문에 여러 층의 손님들과 가족처럼 대화하면서 지낼 수 있어 노후가 외롭지 않고 그 손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단, 방은 10실 이내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텃밭을 가꾸는 일이 있어서 무료하지 않고 이웃 펜션들 또한 실버들이기 때문에 사업에 대한 대화도 통하고 쉽게 친해질 수 있으니, 이런 특징들을 잘 파악해 두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문 1답
몇 회 합격자인가? : 1회
1일 근무시간은? : 오전9시30분 - 오후8시
창업년도 : 1986년
비즈니스 3계명 : 성실, 최서느이 서비스로 신뢰를 얻자, 빠른 정보로 손님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자, 같은 업을 하는 동료들과 관계를 원만히 하며 상도덕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정보를 얻는 경로 : 동료 공인중개사들과 정보교환, 신문
업무중 장애 혹은 가장 꺼리는 일 :
업자들끼리 경쟁 자체는 좋은 데 방해 공작을 해서 물건값을 올려놓거나 조금 기다리면 더 받아줄 테니 지금 팔지 말라고 해서 일이 안될 때가 있습니다. 세무조사시 선량한 중개업자들이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업소 홍보 및 중개전략 :
주로 카탈로그와 명함, 인터넷을 이용해서 물건을 올리는 것 등입니다. 가능하면 이웃부동산에 협조를 구해 빨리빨리 소화시키는 방법으로 하고 있죠.
월수입 : 고급 공무원 이상
업무중 기억에 남는 부분 : 하루는 시골 노인 한 분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셨어요. 여러 곳을 들렸는지 명함이 손에 가득했죠. 여러 부동산에 들렸으나 건성건성 대답만 하고 친절한 부동산이 없어서 나와버렸다고 했습니다. 물론 영감님의 성격도 꽤나 까다로운 분이셨어요. 상담을 정성껏 해 주었더니 가격을 물어보셨는데, 몇 개의 물건을 제시했더니 가격차이는 거기서 거기라고 하시며 계약하셨습니다. 한 달 후 그분은 이사를 오시더니 큰사위네, 작은 딸네, 아들을 모두 나에게 소개해서 그분 자녀들 집까지 사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항상 친절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만의 중개실무 노하우 : 고객관리를 철저히 해서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며 부동산 정보를 제시해 줍니다. 사모님들의 경우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므로 매우 반가워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또 다른 구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분들이 주위 분들을 소개해 주시기도 합니다.
리츠 등 부동산금융시대를 보는 견해 : 우리 중개사들에게는 별로 이득이 되질 않는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개사가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며, 몇 년 후에나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츠가 하는 부분이 있고 중개사가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죠.
만약 부동산 정책 입안자라면 개선하고 싶은 부분 :
토지시장은 환금성이 약하고 제약은 강해 위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약 가운데 토지를 취득하기가 가장 어려운 규정은 현지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해야만 전답을 취할 수 있는 규정입니다. 고향에다 땅을 사고자 하거나 땅을 생산적인 곳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과감하게 풀어주는 정책을 펴 지방도 활성화시키고 서울과 지방이 균형적으로 부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서울 인근지역의 땅값이 계속 오르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투자하고 있는 일 : 일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컴류터를 좀 더 배워보고 싶고 운동도 할 계획입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부분 : 앞으로 노인복지를 위해 실버산업 일을 할 계획입니다.
여성공인중개사의 비전 : 사회적으로 여성의 기여도가 상당히 높은 분야로서, 여성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중개사로서 희소성을 얻고 싶다. 해마다 너무 많은 중개사 배출로 업자의 질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무시 즐겨입는 의상 스타일과 색상 : 사무실에서는 주로 반 정장을 입습니다. 정장을 하면 활동이 불편해서 절충형으로 입고있죠. 색상은 조금 밝은 색을 입는 편입니다.
인상이 밝아 보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밝은 색을 즐겨 입지만, 그렇다고 튀게 입지는 않습니다.
노후를 보내고 싶은 주거형태의 지역 : 수익성과 더불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펜션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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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거 워드 치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위의 글은 부산 서면의 부전도서관에서 책 "끼있는 여자들의 수다"라는 제목의 21세기 여자의 성공키워드 15인 공인중개사님들의 글을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 점을 아시고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엊저녁부터 아침 새벽까지 수고를 좀 했지요.
수고하셨습니다..덕분에 잘 읽고갑니다
가슴에 와닿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 처럼 정성스럽게 옮겨주신 박만호님 화이팅!
잘읽었습니다. 오늘은 잘 쉬었으니까 낼부터 또 열심히 머니를 벌어야지요^^* 추천해주신 책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잘 읽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