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0년 02월 02일
☞ 산행거리: 도상거리 18.6km + 알바 약1km / 8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신당삼거리-신당고개-암거-당산굿당-묘지-310.7봉-안부-포덕산성 터-285.4봉
283봉-호곡마을 갈림길-안부-무명봉-266봉-안부-함안제1터널 위-226봉
당골고개-안골고개-266.5봉-315봉-안부-무명봉-안부-311,2봉-갈전마을 갈림길
316.5봉-순흥안공 묘-장내마을 갈림길-346봉-임도삼거리-서나무 고개
자양산 갈림길-자양산-갈림길-307봉-무명봉-당고개-359.6봉-안부-무명봉
자골산-무명봉-NO17송전탑-207봉 갈림길-삼면 경계봉-어령소류지 갈림길
갈림길-함안조씨 가족묘-도둑고개-함안조공 묘-묘지-갈림길-무명봉-안부
183.2봉-외밭등 고개-안국산-닭재-211.6봉-안부-청산정공 묘-구인봉-운동시설
묘지-소사고개-123.6봉-179.8봉-무명봉-안산-무명봉-무명봉-갈림길-무명봉
116.4봉-다시 갈림길-댓질고개
☞ 소 재 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 함안군 산인면, 칠원읍, 칠서면, 대산면
전 세계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촉발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난리다.
지난번 수술이후 가급적이면 외츨을 자제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는 주치의의 권고로
상당히 조심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활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감기가 가장 무섭고 합병증으로 폐렴이 오면 치명적이라고 늘 주치의는
경고를 하는데 그런데도 돌아 다니니 나는 간이 상당히 큰 편이다
어제는 동해냉천공원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작품을 하나 건질까 하고 대포(DSLR)
카메라를 메고 이른 아침에 고속버스로 동해냉천공원에 갔지만 꽃은 피었으나 올 겨울에 이곳의 날씨가
춥지 않아서 잔뜩 기대를 하였던 雪中 복수초는 구경도 못하고 몇 커트 찍고 서울로 왔다.
내일 아침에는 변산지맥 한 구간 남을 걸 하고 노루귀와 변산 바람꽃이 피었나 하고 부안을 가려고
했으나 확신이 서질 않아 그냥 미루고 있는데 김해에 사는 고향의 후배 산꾼이 전화가 온다
‘행님! 김해건설공고에 매화가 만발했습니다’ 하는 말에 솔깃하여 행여 남쪽에는 노루귀나 현호색이
피었나 싶어 지난해 3월에 첫 구간을 하고 미뤄놨던 광려(화개)지맥 2구간을 하기로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식구들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도둑 고양이처럼 몰래 집을 나와
경부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경부발 → 내서행 버스표
서울 경부 터미널에서 06시05분에 출발한 고속버스는 중부내고속도로 선산휴게소에서
20분정도 쉬었다가 내서 I.C를 빠져나와 09시 50분에 내서고속버스 터미널에 나를
내려 주고는 마산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내서고속버스 터미널(09:50)
말이 고속버스 터미널이지 지나가는 간이 버스정류장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내려 터미널 안에가서 시원하게 볼일 보고 나와서 택시를 타는데 50대 중반쯤 보이는
택시기사가 들머리인 신당고개까지 기본 요금정도 밖에 나오는 거리인거 같은데 8,000원을 달라고 한다.
이 양반이 지금 약 먹었나... 지난해 3월에 광산사 계곡에 얼레지와 바람꽃을 촬영하면서
첫 구간을 타고 신당고개에서 내서터미널까지 콜 요금을 포함해서 5,000원 밖에 안 줬는데...
기사양반! 지난해보다 택시요금이 올랐냐고 물으니 작년과 똑같다고 하기에 지난해보다 와 비싸요
하니까 함안군과 창원시 경계라서 비싸다고 한다.
그라먼 함안군 땅으로 안 넘어가면 정상요금 받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지금 가진 돈이 없으니 함안군 경계 100m 전에 내려주소 하니까
진짜 100m전에 내려주는데 미터기에 택시 요금이 3,600원이 찍혔기에 4,000원을 주니까.
잔돈을 줄 생각을 않고, 그냥 가려고 하기에 기사양반! 터미널에 서 있는 택시를 타면
콜비는 안줘도 되는거 아닌가요 하니까...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3,600원인데 4,000원을 다 받냐고 하니까...기분 나쁜투로 400원을 주고 가버린다
너도 기분 나쁘지만 나도 기분이 졸라 나쁘다...독립군(나홀로 산행)이 그냥 폼으로 다니는 줄 아냐.
그 지역의 교통편에다 요금과 찜질방 자료, 산줄기를 달달 외우고 다닌다... 이 넘아.
어설프게 장난치지 말어...그까짓 400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지만 당신같은 사람에게 단돈
1원도 더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오랫만에 고향땅 와서 기분을
잡친다
범여가 택시에서 내린 곳
신당고개(新塘峴:155.2m:10:10)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용담리와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마산에서
함안으로 이어지는 1004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내서쪽으로는 화개산 아래 마산대학교와 마산제일고등학교가
있고, 산인쪽으로는 산인농공공단으로 들어가는 길과 그리멀지 않은 곳에 남해고속도로 산인 J,C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에서 따왔는데 신산리의 산익(山翼) 마을은 조선 시대에
산촌(山村)이라 불리다가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새의 날개처럼 생겨 산익이라 불렀다.
신당 마을과 산촌 마을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신산리라 하였는데 신산리 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신당고개라고 부른다
산행을 시작하다(10:15)
신당고개에서 마산대학교가 있는 내서쪽으로 내려가다가 신호등을 건넌다
사실은 좌측 아랫쪽이 맥길이나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이 맥길을 끊어 버렸다
내서쪽으로 가는 용담버스 정류장도 지난다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속해있는 용담리(龍潭里)는 용담리라는 지명은 용담리의 자연 마을인 못안과 수곡 마을과
상관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수곡 마을의 옛 이름인 무리동이 『여지도서』에서 확인되며 무리동이
무리골로 불리어지다가 한자지명인 수곡(水谷)으로 정착된 것으로 불 수 있다.
용담리는 중심을 뜻하는 ‘뫼[포덕산]’ 아래 형성된 마을로 ‘못’으로 불리면서 무리골, 수곡리로
파생된 지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04번 지방도를 따라서 용담 버스정류장을 지나 점집 간판들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윗쪽엔 용담사라는 절이 보이는데 사시불공을 올리는지
아니면 사십구제를 봉행하는지는 몰라도 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암거(10:19)
도로 아래의 암거로 들어서는데 1004번지방도(함마대로)와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을
한방에 통과한다
암거를 빠져나오자마자 좌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시멘트 도로 옆에는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이 지나간다
고속도로 옆을 치고 나가야 하는데 초반부터길이 難解하여 솔직히 우측의 편안한 길로 향한다
당산굿당(10:25)
굿당 옆에는 수령이 410년이 된 느티나무 노거수가 보인다.
굿당 마당으로 들어가 좌측 대밭 뒷쪽으로 들어가려는데 巫女인듯한 예쁘장한 여인이
길이 없다고 가지말라고 난리 부르스이다...하는 수 없이 되돌아 나오는데 이 산에는
뫳돼지가 많으니 가지 말라고 하기에 선왕당님이 굽어살펴주시기에 괜찮치 않을까요
하니까 어이가 없는지 그냥 웃기만 한다
용담리 느티나무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용담리에 있는 수령 약 410년된 보호수로 높이가 약 14m이고 가슴 높이
둘레는 6m이다.
용담리 느티나무는 정자목으로서 창원시에서 1982년 11월 10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무녀의 강력한 태클(?)로 인해 맥길을 포기하고 우측 느티나무쪽으로
올라간다
대나무밭 옆으로 올라서는데 초반부터 너무 급경사라 가슴이 터질듯한 통증이
몰려온다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급경사는 계속되는데 언제쯤 이 통증이 극복될란지...
가야할 맥길이 아직도 5년치 정도 남은 듯 한데...
얼마 안 있어 생강나무는 꽃망울을 터트릴것 느낌이다.
사실 오늘 남쪽지방으로 산행을 잡은 이유는 며칠전에 김해에 사는 후배한테서 받은 전화 때문이다
‘행님! 김해건설공고 교정에 백매화가 만발했습니다’ 하면서 매화 꽃망울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거기다가 어제 동해 냉천공원에 복수초를 카메라에 담으러 갔었는데 강원도 날씨도 너무
따뜻하고 하여서 남쪽에 오면 행여 노루귀나 바람꽃의 소식이나 들을까 했어
말이다
묘지(10:37)
힘들게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등로는 아예 보이도 않고 잡목을 헤치면서 개고생을 하면서 능선으로
오른다
빡세게 올라서니 넓은 공터같은 안부가 나오고...
산으로님의 반가운 흔적을 만난다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의 무덤들이
보인다
310.7봉(11:03)
310.7봉을 지나 무명봉에 준.희 선생의 산패가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08)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능선 좌측 아래로는 나무가지 사이로 산인농공단지가 보인다
포덕산성 터(11:10)
성터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올라서는데 자료에는 포덕산성이라고 나온다
함안군 산인면의 자료를 보면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 있다고 한다
마산에서 진주로 남해고속도로를 가다보면 중리(내서)와 산인을 경계로하는 신당고개를 볼 수 있다.
이 고개의 북쪽산을 포덕산(德山)또는 신당 앞산이라 부르며, 이 산의 계곡을 가메골(釜谷)이라 하고
이 계곡을 가로막는 소류지를 가메(마)골 소류지(釜谷小溜池) 또는신당 소류지(新塘小溜池)라 부른다.
가메(마)골은 조선후기부터 불리어 졌다고 전하는데 포덕산에서 내려오는 능선이 이 골짜기를 가마솥
모양으로 감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지대여서 조그만 가뭄에도 흉년이 들어 일제시대에 마을주민의 힘으로 이곳에 소류지 이름도 가메골
소류지라 하였다고 하며. 소류지에서 70m정도 포덕산을 올라가면 해발 250m고지에 성지(城址)가 있다.
함주지의 산천조(山川條)에 「飽德山: 在郡城一十五里餘南對客山北連漆原懸界爲山翼里主山」이라 하였고,
고적조(古跡條)에는 「飽德山山城: 一在山之東新里上石築周回四百十尺一在山之西門岩上石築周回九百八十尺
古井?沒遺址集陵夷不知何代所築」이라 하여 언제 축성했는지 시대미상이라고 하였다.
토석혼축성(土城混築城)인 것으로 보아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산성은 궁형(弓形)으로 남쪽의
둘레 150m 정도의 토성과 북쪽에 둘레가 300m 정도의 석축성(石築城)으로 나누어 지는데, 남쪽의
토성(土城)은 북쪽 석축보다 높은 봉으로 최정상 남북으로 긴 타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두기의 쌍분이
일제시대에 도굴된 채 남아 있는데 고분은 직경 7m, 높이 50cm정도이며 도굴된 구덩이는 직경 5m
높이 180cm 정도로 토성지(土城址)가 밑에서는 보통산과 같으나 정상부에 와보니 사방이 가파르고
마산 칠원 방면에서 함안으로 넘어가는 길목 요새지의 산성임을 알수 있다.
북쪽 석축성은 토석혼축(土石混築)으로 남쪽 정상부에 둘레가 10m 높이 5m 정도의 석축이 우뚝 솟아 있는데
지방민들은 봉수대(烽燧臺)라고 하며 이 북편 토석 혼축은 동서의 성벽이 급경사로 험준하고, 남북은 비교적
완만하며 무지(門址)가 있다. 정상에서 동으로는 칠원 서로는 함안의 경계이며 정사부평지에 민묘가 있고,
성벽은 칡으로 완전히 덮혀 성벽의 윤곽을 분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조선 초 중기(朝鮮中期)에 이곳은 산익리(면)(山翼里(面))에 속해 속방(屬坊)에 신촌(新村)·당산(堂山)등의
동명(洞名)이 있고, 함주지 고적조에 신리(新里)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산리(新山里) 신당(新塘)을
옛날에는 신리(新里)
신촌(新村), 당산(堂山)등으로 불리워 진 것 같다.
285.4봉(11:13)
산인면의 자료를 보면 포덕산성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으로 이곳 주민들은 포덕산성이라 하지 않고
산성제(山城提(嶺)라 부르는데 칠원읍 달전에서 산인면 신당으로 넘어오는 고개가 산성제(山城提)로서 포덕산의 동산성과 서산성 사이의 재를 말하며 이 동서산성을 포덕산성(飽德山城)이라 한다.
이 포덕산성 중 동사성에 속하는 것은 창원시에 접하고 있는 산성으로서 달전산성(達田山城)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성의 위치상으로 산인면 신산리보다 칠원읍 달전에 많이 속해 있기 때문이며 칠원읍지서(漆原邑誌序)에도
“古跡則武陵山城達田山城固藏山城三國時代防禦遺址也”라 하여 이곳에 달전이란 산성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인데. 임진왜란 당시 해주오씨(海州吳氏) 일족들이 이곳에서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전하며, 칼쓰기,
활쏘기 등 장병들의 무예조련을 이곳에서 실시했는데 자양산에 표적을 세워놓고 산성제에서 활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봉분이 납작한 묘지가 나오고...
한결같이 상석이 흙속에 묻혀 버렸다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283봉?(11:16)
포덕산이라 부르는 285.4봉을
3분정도 지난 봉우리에 준.희 선생의 오래된 산패가 보인다
호곡마을 갈림길(11:17)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고 설치한 체육시설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지 숲에 묻혀 버려고
이정표(←자양산 4.6km, 금동굴 1.6km ↑호곡 2.6km)가 있는데 이곳부터는 광려(화개)지맥 시작부터
같이해 온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작별을 하고 좌측은 함안군 산인면이고 우측은 칠원읍으로
들어선다
맥길은 자양산쪽으로 이어지는데 우측의 칠원읍 오곡리 호곡마을로 이어진다
함안군 칠원읍에 있는 오곡리(梧谷里)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칠원분기점 근처에 있으며 좌측 부곡동과
유원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오리골이라고 하는데 마을의 형태가 오리의 형상을 닮았다는데서 유래하며,
마을 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연못이 오리의 숨구멍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서을 뚦으면 재앙이 따른다하여 주위를 막아 놓았고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마을의 대소(大小)에 따라 큰 오리동, 작은 오리동 두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261.8봉의 모습
안부(11:22)
능선 우측 아랫쪽으로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무명봉(11:27)
우측으로 내려간다
266봉(11:28)
등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30)
함안 제1터널 위(11:32)
이 등로 아래로는 남해고속도로
함안제1터널이 지나가는 곳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감사합니다
산행을 하면서 오늘 처음으로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
이곳 아래 마을에서 왔다고 하는데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이해를 못하는
눈치이다
226봉(11:40)
직진을 하면 금동굴로 이어지는 261.8봉으로 가는 길이나 맥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진다
유순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는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완만한 내리막길
당골고개(11:48)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 안골 마을에서 칠원읍 오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좌측의 안골마을쪽은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우측의 칠원쪽은
등로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 당산이 있었나?
예전에 탄광이 있었는지 수직동굴같은 함몰지대들이 간간히
보인다
무명봉 능선도 지나고...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산행하기가 힘들겠다
안골고개(11:54)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 안골마을에서 칠원읍 유원리 달전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유원리에 있는 달전마을은 형성된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전(田)씨의 성을 가진 자가
제일 먼저 들어와 살면서 이름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초에는 동네 뒷산이 반달같이
생겨 달(月)자를 따고 성씨의 전(田)을 따서 달밭(月田)이라고 불리워졌다가, 강(姜氏)들이
입주한 후부터 동명(洞名)을 놓고 의논 끝에 마을둘레가 산으로 쌓여있고 온 마을의 단결과
성취를 위하여 달전(達田)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안부 고개로 올라서니 잡풀에 묻혀버린 창원황공의 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266.5봉(12:02)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315봉(12:08)
315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무명봉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2:12)
소나무와 바위...참으로 힘들게 사는구나
다시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
무명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20)
대구 청산산악회에서 이곳을 311.2봉이라 하는데 조금 더 가야한다
안부(12:21)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11.2봉 (12:25)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니...
쉼터와 평상이 있는 갈전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갈전마을 갈림길(12:30)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갈전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좌측으로
보인다
모곡리(茅谷里)는 띠가 많았다 하여 띠실이라 부르다가 한문으로 음차하여 모곡(茅谷)이라고 불렀다.
한편 고려 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자 현자(賢者)들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숨어 버릴 때 두문동 72인 중 한 명인 이오(李午)가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다.
은거지 주위에 담장을 쌓아 담장 밖은 신왕조(新王朝) 조선(朝鮮)의 땅일지라도 담 안은 고려(高麗)
유민(遺民)의 거주지임을 명시하는 고려 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標碑)를 세워 고려동이라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장내(墻內) 마을은
담장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
316.5봉(12:35)
kt송신소와 공군부대가 점령해버린 자양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허리를 굽히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목에 힘주지 말고 下心하면서
살라는 얘기다
등로에서 바라본 함안군 칠원읍 장암리(藏岩里)의 모습
장암리(藏岩里)는 주변에 바위가 많아 ‘바위의 보고(寶庫)’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신라 때 칠토현(漆吐縣)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
칠제(漆隄)로 고쳐 의안군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 초에 칠원현에 속하였으며 1018년(현종 9)에 금주에 속하였다가,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1601년(선조 34)에 창원부에 예속되었고, 1617년(광해 9)에 창원도호부로부터 분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되었고, 1906년(고종 43) 함안군에 통합되면서 옛 이름을 이어받아
칠원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함안군 칠원면 장암리가 되었다.
2015년 1월 1일 칠원면이 칠원읍으로 승격하면서 함안군 칠원읍 장암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등로에는 처사순흥안공의 묘지가 있으나 원형 철조망으로 둘러쌓여
있다
處士順興安公之墓(12:37)
산행을 하다가 보면 축문 또는 묘비에 ‘처사(處士) 또는 학생(學生)’이라 쓰여진 묘비들을 만난다.
이는 생전에 ‘ 모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라고 하는 의미로 보면 된다.
처사(處士)라 함은 학식이 깊고 덕망이 높은 사회에서 사표(師表)적인 인물, 또는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란 뜻이고, 학생(學生)이라 함은 평생 배움의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않은
일반인에 대한 사후(死後) 존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각 문중에 따라서는 처사나 학생을 사용함에 있어서 갑론을박하고 있으나(예: 영남 남인들은
처사로, 서인들은 학생을 주장),조상을 섬기는 마음에서 어느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제사를 지내면서 일반적으로 지방(紙榜)을 쓸 때, 조상께서 얻은 관직이 있을 때는 그 품계(品階)와
관직(官職)을 쓰고, 벼슬을 나가지 않은
조상에는 ‘처사’나 ‘학생’으로 썼다
묘비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좌측으로 산인장내로 내려가는 길에 이정표가
있다
장내마을 갈림길(12:40)
이정표(←산인장내
0.89km,↓산인갈전 0,92km,↑자양산 2km)가 서 있는데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장내동(墻內洞)은 산인면사무소에서 북동쪽으로 1km 내에 있는 고려동(高麗洞)을 말한다 .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건국하자 현자(賢者)들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숨어 버릴 때 두문동 72인의 일인(一人)인 이오(李午)선생도 망복수의(罔僕守義)를 결심하고 남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定着)하여 복지은거(卜地隱居)를 하였다.
은거지 주위에 담장을 쌓아 담장 밖은 신왕조(新王朝) 조선(朝鮮)의 땅일지라도 담 안은 고려유민(高麗遺民)의
거주지(居住地)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란 표비(標碑)를 세워 고려동이라 하였다.
지금은 장내(牆內) 또는 담안이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담장의 암"이란 뜻이며,
이곳 고려동유적지(高麗洞遺跡地)를 경남기념물 제 56호로 지정하여 보호(保護)하고 있다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NO가 돌아선
송전탑이 나온다
전선이 지나가는 저 멀리에 칠원공단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작대산과
낙남정맥길의 천주산과이 아련히 보인다
346봉(12:45)
고속도로처럼 넓은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통나무 계단으로 내려서니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임도 삼거리(12:48)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장내(담안)마을과 칠원읍 장암리 동암마을로 이어지는 곳에 삼거리가 있고,
이정표(←산인갈전 1.40km, ↘칠원장암 2.00km ↗자양산 1.57km)와
임도이용 안내판이 있다
임도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모곡리쪽에 서 있는 임도 안내판
좌측 능선이 지맥길이나 그냥 시멘트 임도를 따라서 간다
도로를 한참동안 걸어서 가니 넓은 공터에 쉼터의자와 팔각정이 있는 서나무고개에
도착한다
서나무고개(12:55)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와 칠원읍 장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넓은 공터에 쉼터용 의자와 팔각정이 있고
좌측에는 모곡리 한내실 마을에서 자양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이고 , 팔각정 우측엔 장암으로 가는 임도가 있다.
서어나무가 많아서 서나무 고개라 부르나?... 그런데 정작 임도옆 가로수는
서어나무가 아닌 산수유나무이다
이른 아침에 선산휴게소에서 시간이 맞지않아 아침으로 찐빵 한팩(4개)에다 두유 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이곳까지 걸어 왔더니만 배도 고프고. 간간히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날씨는 생각보다 춥다.
이곳 팔각정옆 양지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앉았는데 베낭을 열어보니 점심때 먹을려고 사논 빵을
집에 두고왔네.
참으로 난감하다...내가 요즘 왜 이러지, 갖고있는 식량(?)이라곤 곶감 5개, 두유 2개, 초콜렛 2개 밖에 없다
곶감 3개와, 두유 하나, 초콜렛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일어서는데 자전거 라이더족들이 자양산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는데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다
15분간 휴식을 겸한 점심(?)을 해결하고 자양산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다시 길을 나선다
셀카놀이
자양산 오르는 길에 회산황씨 좌윤공파 14세손 묘지 표지판이 보인다
우측 능선으로 가야 하는데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능선으로 올라갈 걸...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니 다리가
아프다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산수유도 얼머 안 있으면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뚜렸이 보여야 할 화개산이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남쪽 지역도 이 지경인데 중부지방은 엄청 심할 것 같다
자양산 갈림길(13:25)
도로가에 데크목 전망대가 있고 실제 자양산은 직진으로 가야하나 송신소와 공군부대가 있어
꿩 대신 닭이라고 우측에 있는 가짜 자양산으로 향한다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공군부대의 경고판을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건너편에 kt송신소와 공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진짜 자양산(401.6m)이
보이는데 아쉽지만 이곳을 자양산이라 생각하고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자양산(紫陽山:400.6m:13:30)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와 부봉리, 운곡리 칠원읍 장암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원래 자양산은 건너편 kt송신소가 자리를 잡고있고, 지도상의 400.6봉이 자양산 형세를 하고 있다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무인감시 카메라, 산불감시초소와 묘지1기가 있는데 감시요원이 매의
눈으로 정상에 오르는 범여를 째려보고 있다.
자양산은 산인면에 더 많이 속해 있고, 산 정상에 오르면 함안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지명을
처음으로 기재하고 있는 것은 『한국지명총람』(함안)인데, 이칭으로 '자구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지도와 지리지에서는 '자양산'이라는 지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여지도서』 함안에 "자구산(紫丘山)은 군의 동북쪽 15리에 포덕산에 이어 있다."라고 수록하고
있고, 『함주지』에서도 지명을 수록하고 있으며, "자구산이 마을의 주산"이라고 추기하고 있다.
『해동지도』 이후부터 『1872년지방지도』에 이르기까지 지명을 기재하고 있다.
'자구산'이 '자양산'이라고 지명이 바뀐 것은 1872년 이후의 어느 때인 것으로 보인다.
예전의 자고(구)산(紫皐山)은 현재 자양산(紫陽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자(紫)란 자줏빛의 의미도 있지만,
천자(天子)나 신선(神仙)이 거처하는 집의 빛깔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중국 북경의 자금성(紫禁城)과 중국 고대
천문학에서 북두칠성 북쪽에 자미궁(紫微宮)은 천제(天帝)가 거처하는 곳이라고 하는 용례가
그것이다.
인증샷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바라보면 내 고향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이 한 눈에 보일것만
같은데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흔적조차 보이지도 않아 아쉽기만
하다
자양산 정상에는 나 말고 마산에서 온 등산객 한 명이
있었다
자양산 정상 3등 삼각점(△남지319)
자양산 정상에서 5분정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제도권 등로를 벗어나서 그런지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갈림길(13:40)
조금전 서나무고개에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오다가 우측으로 올라서면 만나는 길이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대구담님의 시그널을 많이 만난다
307봉(13:43)
등로에는 간간히 잣나무도 보인다
무명봉(13:45)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이나 길은 생각보다 뚜렸하다
안부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내려서니 희미한 고개가 나온다
당고개(13:52)
좌측으로는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 골안마을을 지나 운곡제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칠원읍 장암리 윗장동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나 등로가 거의 없다
함안군 산인면과 대산면의 경계에 있는 운곡리(雲谷里) 지역은 대산면으로 가는 길 우측
자구산(현재 자양산) 북쪽 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일교차가 심하여, 일 년 중 1/3 정도는 구름처럼 보이는 안개가 끼여 있다.
때문에 구름이 항상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구름실 또는 줄여서 굼실이라고 하다가,
한문으로 음차하여
운곡(雲谷)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고개로 올라서니 낙엽에 묻혀버린 묘지가 보인다
앙증맞은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자양산이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고 마스크를 썼지만 숨쉬기가 힘이
든다
편안하게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깨끗한 행실도 닦지 못하고
젊어서 재물을 쌓아두지 못하면
고기없는 빈 못을 속절없이 지키는
늙은 따오기처럼 쓸쓸히 죽어간다
또한 못쓰는 화살처럼 쓰러져 누워
옛 일을 생각한들 무순 수가 있겠는가
「법구경」中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음악에 취해서 걷다가 보니 지도상의 359.6봉에
도착한다
359.6봉(14:10)
359.6봉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편안한 능선을 내려서는데...
김해 백두산악회 홍길동 아우님의 낡은 표지기가 보이는데 무척 반갑다.
금남정맥 계룡산 구간 天壇 정상에서 봤으니 10여년 정도 되었나 보다.
들리는 소문에 김해를 떠나 창녕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는데 잘살고
있겠지...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러운데 최대한 우측으로 붙어서 내려간다
잡목의 가시에 얼굴을 할키면서 내려서는데 내가 나를 생각해도 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내려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안부(14:20)
등로는 아예 사라져 버렸지만 대구담님의 시그널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무명봉(14:26)
등로가 상당히 거칠어진다
등로 우측으로는 편백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여름 산행시에는 개고생은 따논 당상인 듯 싶다
잡풀과 고사목 사이를 피해서 올라가니 자골산의 산패가
걸려있다
자골산(317.3m:14:35)
함안군 칠원읍 유동리와 산인면 운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전체가 잡풀에 묻혀있다.
이곳에서 조금지나 우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아라가야 시대의 칠원산성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지명은 범여의 고향인 의령의 진산 자굴산과 비슷하나 지명유래는 찾을길이
없다
자골산 정상에서 만난 산으로님 흔적...162지맥 끝내놓고 요즘은 뭔 재미로 사는
지?
맥길은 좌측으로 내려가고 ...
가야할 안국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소나무 2그루를 지나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잡풀이 무성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43)
무명봉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가야할 안국산과 귀인봉의 모습
밋밋한 봉우리를 만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안부를 지나니...
NO17번 송전탑이 나온다
NO17번 송전탑(14:50)
207봉 갈림길(14:51)
좌측으로 올라가면 207봉 봉우리가 있지만 맥길은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고 감각적으로 걸어간다
삼면 경계봉(175m:14:55)
함안군 산인면과 칠원읍, 대산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이다
이곳부터는 좌측 능선을 쭈~욱 같이 해온 산인면과 작별을 하고 대산면으로 바뀌지만
우측은 아직까지 칠원읍과 같이 가는 셈이다
가느다란 소나무 숲 사이로 맥길은 이어진다
뫳돼지 목욕탕(?)도 지난다
다시 등로가 뚜렸해지기 시작한다
어령소류지 갈림길(15:00)
어령소류지로 이어지는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등로로
향한다
등로가 또 사라지고 없다
갈림길(15:02)
편안한 길을 가다가 보니...
잡풀이 무성한 묘지도 만난다
이곳에서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나 선답자들은 우측으로 내려갔다...나도 그리로
간다
우측으로 내려가니...
봉분이 없는 묘지가 나온다
등로가 없는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송백산악회 황대장의 흔적인 듯한 빨간 노끈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그 아래로 어령소류지가
보인다
함안조씨 가족묘(15:10)
함안조씨 가족묘지 아래는 어령소류지가 보인다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칠원산성(漆原山城:경남 문화재 자료 제202호))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으로 1998년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이루어진
시굴 조사 결과 칠원산성(漆原山城)은 6세기 전반경에 아라가야가 축조한 산성임이 밝혀졌으나 문헌 기록이
소략한 편이며 창원과 칠원 시가지에서 함안 지역으로 진입하는 적을 통제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와 조선 시대 문헌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라가야에 의해 축성된 이후 단기간
사용되다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칠원읍 유원리에서 장암로 향하는 장암교에서 서북쪽 구릉의 정상 부위에 형성된 테뫼식 석축산성
(石築山城)으로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사용한 성으로 전해진다.
이 산성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1917년 일제가 실시한 ‘조선고적조사보고’에 따른 것으로, ‘유원리산성
(柳原里山城)은 칠원읍 유원리와, 칠서면(漆西面) 신산리(新山里)에 있는 석축성으로서 성내 면적은
1정(丁) 2반(反) 7무(畝)’라고 되어 있으며 성의 전체길이는 450m이고 동서의 길이 180m, 남북의 길이는
57m이며 능선의 길이 방향에 따른 장타원형 모양으로 축성되어진 산정식(山頂式) 산성이다.
성벽의 축조는 산의 경사면에 의지한 내탁과 협축을 혼용하였으나 주로 내탁식의 편축위주이며 석재는
주변 야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활석으로 현재 문지(門址)와 건물지(建物址) 등이 잔존하며 성벽 일부가
허물어진 상태이며, 성이 입지한 곳은 자양산(해발 401.8m)이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정상부이며 해발 250m
이상인 곳으로 북쪽으로 어령, 도둑고개를 사이에 두고 안곡산성과 대치해 있다. 이는 안곡산성과의 호응관계를
시사하며 성의 방위 목적이 어령, 도둑고개의 차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할 안국산의 모습
도둑고개(74m:15:15)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와 칠서면 회산리, 대산면 대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새로
확.포장된 1041번 지방도 지나는데 함안군 칠원읍에서 대산면을 거쳐 송도교가 있는
남강을 건너 지정면과 내 고향 의령군 부림면 신반으로 이어지는 도로다.
지금이야 교통이 좋아 마산에서 내 고향까지 가려면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어렸을 때
고향에서 마산을 가려면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비포장 도로에 버스를 타고 송도교가 있는 송도나루에서
배에다가 차와 사람을 싣고 남강을 건너 다시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갔는데 그 당시 기억으론 하루종일
걸린 것 같다...50여년만에 와 보는 이 길...참으로 감회가 깊다...산줄기를 따라서 이곳에 올 줄이야...
이곳부터 남쪽으론 행정구역이 함안군 칠원읍에서 칠서면으로 면계가 바뀐다
옛날에는 산적이 많이 출몰했던 곳이라 도둑고개라 붙여진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으로는 활빈당골,
도덕골, 대통골이라고도 부르며 활빈당이란 의적이 있었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며, 일제시대 때
애국지사가 활동하던 곳이란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도덕고개란 이 고개를 넘을 때 서로 도와주며
넘는다
해서 도덕고개라 했고, 대통골이란
대나무 통처럼 골짜기가 좁고 길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걸었던 길과 원 지맥길의 궤적
4차선으로 시원스레 뚫린 도로이나 생각보다 교통량이 적어 무단횡단하여 도로를
건넌다
도로옆에는 ‘주식회사 성지’라는 뭘 하는지
모르는 공장이 있건만 식당이나 구멍가계 같은곳은 안 보인다
도로 우측의 능선 입구에 있는 함안조공 묘지쪽으로 오른다
함안조공 묘(15:17~27)
이곳에서 여기서 산행을 멈출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한다
멈추면 현재의 내 몸뚱아리로는 마지막 구간이 애매하고, 가자니 늦을 것 같다.
일단 먹을게 없고 배가 너무 고프다...마지막 남은 곶감 2개와, 초콜렛, 두유 하나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가는데까지 가 보기로 한다.
너무 늦으면 마산과 창원에 사는 지인이나 친척들에게 갑질(SOS)을 하기로
하고...
10분간 함안조공 망자의 밥상을 빌려 허기를 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묘지를 이장했는지 봉분이 없는 묘터같은 곳을 지난다
묘지(15:45)
묘지를 지나고...
갈림길(15:48)
우측은 안국산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사면길이 있다
직진 능선으로 올라서니 관리가 안되어 있는 묘지가 보인다
무명봉(15:51)
우측으로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안부(15:54)
183.2봉(15:58)
우측으로 내려간다
외밭등 고개(16:00)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와 칠서면 회산리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지도상의 명칭은 있으나
좌측 대사리쪽은 탱자나무로 막혀있고, 우측 회산리쪽은 등로 자체 보이지 않는다.
우측 아래에 있는 칠서면 회산리(會山里)는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서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로 가는 첫째 마을로 약 400년 전 상주 주씨(尙州周氏)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 뒤쪽에 문동재[問童嶺]가 있으며, 이곳에서 한 도사가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본 결과 동쪽에는 작대산(爵隊山)이 마주보이고 마을 앞에는 광려천이 유유히 흘러 앞으로 문인(文人)이나
선비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회문이라고 지었다고
전한다.
회산리의 신산동(新山洞)은 회문동과 어령동(於領洞) 사이의 신반선 바로 옆에 위치하는 마을로
국권 피탈(國權被奪) 이전까지만 해도 창인(昌仁)이라 불렀는데 이 마을은 칠원현(漆原縣) 당시
역촌(驛村)으로 교통의 요로였으며, 한양과 칠원 간을 왕래하는 관리들의 접목(接牧)[말고삐를 받아
매고 말 먹이를 주던 곳]이라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또한 이곳에는 동학 함안군 지부(東學咸安郡支部)인
종리원(綜理院)이 있었는데 6·25 전쟁 때에 소실되었다. 따라서 회문동의 회 자와
신산동의 산 자를 따서
회산리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국산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오르막길...등로는 보이질 않고 잡목의 저항은 엄청나게
심하다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나는데 수술 부위의 가슴 통증이
시작된다
몇번을 선 채로 휴식을 취하면서 섰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면서 안국산 정상으로
오른다
안국산(安國山:344.3m:16:35)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와 칠서면 외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3등 삼각점, 봉화터의 흔적인 커다란 웅덩이가 있는데 주위에는 칡넝쿨이 엄청나게 많다.
안국산 지명은 안곡산(安谷山)으로 지리지와 고지도인『세종실록지리지』(칠원)에 지명을
수록하고 있는데, "봉화 1곳이 현의 서쪽 안곡산에 있다."라고 기재하였고, 주기에는
"남쪽으로 창원 성황당에 응하고, 북쪽으로 영산현 소산(所山)에 응한다."라고 하여 안곡산의
위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칠원읍지』에도 "안곡산 서쪽 십 리, 함안계"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지도에는 『해동지도』
(함안)
이후부터 『1872년지방지도』(함안)까지 '안곡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안국산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데, 구전에 임진왜란 때 안곡산에 주둔하던
조선군이 각지에 봉화통신을 주도하면서 왜군을 무찔러 퇴각하게하자 그때부터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의미에서 지방민들이 '안곡산'을 '안국산'이라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정에 산성과 봉수대가
있다.
안국산 정상의 봉화터의 흔적
안국산의 옛 지명은 안곡산(安谷山)이었는데 정상에 있는 안곡산성(安谷山城)은 칠원산성
(漆原山城)과 연계하여 창원, 마산 방면에서 가야읍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라가야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보이는데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성이지만
동 시기에 축조되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함안군 칠원읍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7㎞ 지점에 자리한 안국산[343m] 정선부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산성의 서쪽에 있는 정상부에는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으며, 남서쪽
맞은편에는 칠원산성이
위치한다.
산성에서는
동쪽으로 약 2.7㎞ 지점에 무릉산성(武陵山城)과 멀리 무릉산 및 청룡산[작대산]이,
북동쪽으로 성주봉 산성[직선거리 5.1㎞]이, 북쪽으로 함안군 칠서면 지역과 낙동강 너머 창녕군
남지읍과 영산, 화왕산이 조망되며 북서쪽은 고종산성(鼓鍾山城)[직선거리 3㎞]과 멀리 함안군 법수면과
의령군 의령읍이, 남서쪽은 가야읍과 봉산산성(蓬山山城)[직선거리 10㎞], 방어산성(防禦山城)[직선거리
19㎞]이, 남쪽에서 동쪽 구간으로는
내서에서 칠원읍 지역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해당하는 예곡리와 칠원 읍내가 조망되는 요해지(要害地)이다.
안국산 정상 삼각점(△남지 320 / 72,10
재설)
동남쪽으로는 칠원읍내 너머로 작대산과 천주산이 미세먼지 탓에 희미하기만 하다
함안(咸安)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최초로 함안이라 불렸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함주로
개칭되었다가 현종 9년(1018)에 다시 함안으로 고쳐졌다.
우리나라는 보통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은 까닭으로 도읍을 세우고 고을을 설치함에 있어서 모두
남쪽으로 향하고 북을 등지는 지세인데, 함안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물이 역류하는 특이한 지세이다.
‘함안’이란 다 함께 화합하여 안가태평(安家太平)을 기원하는 뜻에서 다 함(咸)과 편안할 안(安)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회문동은 칠원면 유원에서 대산으로 가는 첫째 마을로 회문이란 이름은 한 도사가
풍수지리를 본 결과 동쪽에는 작대산이 마주 보이고 마을 앞에는 광려천이 유유히 흘러 앞으로 문인이나
선비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북동쪽으로 보이는 칠서공단과 낙동강 너머의 남지읍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산의 진산이라는 무학산도 안 보이고...언제쯤 미세 먼지에서 벗어 날란지...
노산((鷺山)이은상(李殷相) 선생이 글을 쓰고 김동진(金東振) 선생이 작곡한
마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노래한 ‘가고파’ 란 가곡도 저 어디쯤이었을 터인데
이런 미세 먼지탓에 쪽빛바다의 맑은물은 잿빛 바닷물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3월에 걸었던 광려산과 화개산도 잘 보이질 않다.
날씨가 청정한 날이면 전망이 끝내주는 곳일듯 싶다.
낙남정맥 능선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안국산은 대순진리회와 관련이 있는 곳으로 이 산 아래에 칠서면 회산리 회문동이
대순진리회 도주인 정산 조철제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대순진리회는 우리나라 7대 종단의
하나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소속 교단이다.
우리나라에서 태동해 성장한 신종교인 대순진리회는 구한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
(1871~1909)의 사상을 따르는데 대순진리회에서는 그를 일명 ‘강성상제(강증산)’로 칭하며,
현 종단의 체제와 기틀을 세운 사람은 바로 우당 박한경(1917~1996) 도전이다.
1895년 경남 함안군에서 태어난 정산 조철제가 ‘무극도’를 창도하고, 이어 1948년 종단 이름을
‘태극도’로 변경했으며 이것을 박한경 도전이 조정산의 종통을 계승해 창건한 종단이 ‘대순진리회’라고
보면 맞다... 이에 대순진리회는 강증산을 ‘강성상제’, 조정산을 ‘도주’로, 박한경을 ‘도전’으로 존칭하며
박한경 도전이 종단의 종통을 이어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신도 수는 전국적으로 약 250만 명이며 대표 도장(道場)으로는 여주본부도장과 중곡도장,
포천수도장, 금강산토성수련도장, 제주수련도장 등 5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 지역마다
120여 개의 회실(도인들의 소규모 집회 장소)과 2000여 개의 포덕소(방면 도인들의 연락장소)가
대순진리회 수도인의 수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안국산을 지키는 산불감시요원 어른신도 퇴근 준비를 한다
팔순 가까이 되신 어르신이 정정한 모습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계단이 있어 시간이 더 지체되는
느낌이다
묘지를 지나...
더 내려가니...
밭이 나온다
철조망을 넘어서 좌측으로 향한다
밭 아랫쪽의 모습
가야할 귀인봉의 모습
닭재(鷄峴:201m:16:43)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서 칠서면 회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밭 가운데 있다
지명의 유래를 보면 안곡(국)산 너머의 칠서면 관할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이 절에 지네가 너무
많아서 절이 폐사가 될 지경에 놓여 있을 때, 대산면에서 닭을 가지고 가서 지네를 없앴다고 한다.
이때 닭을 가지고 넘어간 고개가 닭재이다
밭 가운데로 올라간다
밭 가운데 오름길에서 바라본 칠원읍 뒷쪽 작대산(爵隊山:647m)의
모습
작대산(爵大山)이라는 이름은 구전에
청룡산무기리(無沂里) 산정동(山亭洞)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지골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하며, 또한 천지가 개벽할 때 온 천지가 물에 잠겼는데 이 산은 작대기만큼
남았던 것에서 유래한다고도 한다.
원래 지명은 작대산이 아닌 청룡산(靑龍山) 또는 천주산(天柱山)이라고 불렀다.
청룡산이란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지골에 연유해서 불리었고, 천주산은 칠원의 주산(主山)으로
하늘을 받치는 기둥 같다 하여 불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211.6봉(16:45)
넓은 임도에
있는 211.6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
암릉구간을 지나고...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뫳돼지 목욕탕도
보인다
안부(16:50)
봉화산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직진으로 올라간다
청산정공 묘(16:53)
급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구인봉(九人峰:258.1m:17:03)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와 칠서면 천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만산동호회 귀인봉’ 과 준.희선생의
산패가 보이는데, 함안 지역의 자료를 보면 ‘귀인봉’이 아닌 ‘구인봉’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함안군의 자료를 보면 천계산(天界山)은 칠서면 천계리(天界里)에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계명산 혹은
구인봉이라 부르며, 계명산(鷄鳴山)은 옛날 민가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이 산을 넘어 들려왔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 하였고, 구인봉(九人峰)이란 이 산의 정기를 받고 장차 아홉 인재가 배출될 것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아울러 귀인봉이 아닌 구인봉이 맞는 듯
싶다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해가 기울기 시작하니 맘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맥산꾼들 사이에 전설적인 존재인 竹泉님의 흔적을 만난다.
운동시설(17:06)
사람들이 운동하러 올라오질 않는지 시설물에 때가 잔뜩
끼어있다
운동시설 아랫쪽에 있는 묘지쪽으로 내려간다
묘지(17:07)
산 속이라 조금씩 어두워지니 똑닥이 카메라의 빛이 부족하여 그림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소사고개(17:16)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소사마을에서 칠서면 천계리로 넘어가는 비포장 임도이다
소사마을 위에 있는 고개라 부르는 모양인데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소사고개에서 천계리로 넘어가는 비포장 임도의 모습
등로에서 바라본 칠서면 태곡리 강태마을의 모습
강태(康泰)마을은 약 240년 전 안동 김씨(安東金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강태 마을은 풍수지리학상 배설[舟說]이라 하여 마을 어디든지 땅을 파면 물이 솟아 집집마다
우물이 없는 집이 없었으나 우물을 파는 것은 배[舟] 바닥에 구멍을 내는 것이 되어 좋지 못하다 하여
지금은 거의 메워 버렸는데 마을 앞에는 안곡산(安谷山)이 가로막아 배가 풍랑이나 파도에 휩쓸려
침몰될 우려가 없고 산 너머로 낙동강(洛東江)이 굽이쳐 흐르며 들녘이 훤히 트여 있어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가뭄이 들지 않고 풍파 없이 세세손손(世世孫孫) 태평성대(太平聖代)하여 잘 살 수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태마을이라하였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123.6봉(17:18)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상당히 거칠고 길은 보이질 않는다
179.8봉(17:24)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7:31)
안부에서 안산으로 오르는데 해는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안산(安山:157.4m:17:36)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와 평림리, 칠서면 태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지맥꾼들의 시그널만 잔뜩 걸려있고, 주위는 나무로 막혀있는 그저 밋밋한 산이다
안산은 취무동(吹舞洞) 앞에
있는 산으로 그 모양이 달팽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는데...
산으로님의 흔적이 범여를 반갑게
맞아준다
내리막의 등로는 의외로
뚜렸하다
빨간 비닐 리본이 등로를
안내한다
무명봉(17:42)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내리막 능선을
내려선 다음...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능선으로
향한다
무명봉(17:47)
묘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
다음에...
안부를 지나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7:49)
이곳에서 기어코 늦은 시간에 대형 사고(알바)를 치는 오류를 범한다
댓질고개로 이어지는 맥길은 묘지 좌측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묘지 뒷쪽의 뚜렸한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는 오류를 범한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는 관리가 안된 묘지의 봉분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고
어느 산꾼의 시그널이 보이길래 트랙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올라간다
우측으로 사면길이 보이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8:07)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다시 봉우리로
올라선다
116.4봉(18:09)
날머리가 거의 가까워진 것 같은데 도로가 보이질 않아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트랙을 확인하니
500m 이상을 알바를 한 게 아닌가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데 맘이 급하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파서 내리막길인데
산행속도를 낼 수 가 없었다
갑자기 날은 어두워지기에 베낭에서 헤드렌턴을 꺼내서
착용한다
다시 갈림길(18:14)
늦은 시간에 약 1km정도(25분)를 알바하고 다시 되돌아 왔다
사면길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서
댓질고개로 향한다
어둠속에 과수원밭을 지나 댓질고개를 내려서면서 칠원택시를 호출한다.
택시기사에게 댓질고개를 와 달라고 하니 댓질고개가 어딘지 모른다고 하여
주소로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578-1번지라고 불러주니 알았다고 한다
댓질고개(42m:18:30)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와 칠서면 태곡리 윗배골 마을위에 있는 고개로 어둠속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대사리쪽 좌측 아래에는 댓질저수지가 있고, 우측의 태곡리에는 윗배골 마을이 있는데 대산 사람들은
댓질고개, 태곡리 사람들은 독골고개라 부르는 모양이라 지도상에 그렇게 표현되어 있는 모양이나
정작 이 지역 사람들은 댓질고개를 잘 모른다.
다만 대사리에는 신라 시대와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있고, 가야시대의 고분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댓질고개 지명은 도자기와 관련되지 않았나 생각은 들지만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
어둠속에 택시가 오는 동안에 수통에 남은 물로 몸을 딱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알바를
하면서 늦은 시간을 보충하려고 뛰다보니 베낭 옆 주머니에 있던 수통이 없어져 버렸다.
에~~~공 아까운거! 10년 넘게 동고동락을 했는데 이렇게 이별을 하다니...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2가지의 가르침을 배우고 간다
“有備無患과 바쁠수록 돌아
가라는 명언을...”
10분정도 지난 즈음 택시가 고개 아래에서 헤매기에 헤드렌턴으로 신호를 보내 택시를 만나고
곧이어 택시를 타고 내서터미널로 향하는데 택시 기사 양반은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랬다고 한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둠속에서 등산객을 태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내서 터미널로 향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나와 같은 경주김씨에다 같은 항렬이다
이 분은 나와 같은 경주김씨 상촌공파 28대손인데 항렬은 나는 ‘煥’ 자 돌림이고 이 분은 ‘列’돌림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내서 터미널에 도착하고, 요금이 22,000에다 콜비 1,000원인데
20,000원만 받는다...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택시에서 내린다
내서고속버스 터미널(19:10)
택시를 타고 내서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하는데 19시 30분 차란다
이 시간은 마산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간이라 이곳에서는 19시 40분 차이다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빵이라도 하나 사먹으려고 하니
이곳 매점에는 빵같은 것은 없고, 음료수와 생수밖에 없다
하는 수 없이 물 한통사서 한방에 다
먹고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내서고속버스 터미널 버스
시간표
내서발 →서울경부행 버스표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은 19시 45분경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선산휴게소에 들려서
급하게 우동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면한다...서울에 도착하여 집에 오니 자정이 다 된
시간이다
첫댓글 형님
화이팅 입니다.
정신 좀 차렸냐?...독립군 하려니 개고생이네...짝꿍 찍대장은 희말리야 갔다오더니
맥길이 시시한 지 코빼기도 안 보여주네...산은 낮은 산이 아름다운데.
이번주에 큰바위 대장따라서 성법령에서 시작되는 비학지맥 첫 구간 가려다가
새벽 2시반에 출발한다케서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대타로 내가 가장사랑하는 동네
부안쪽으로 가서 변산지맥 마지막 구간 끝내고 노루귀와 변산 바람꽃, 복수초를 카메라에 담고
내소사에 들려 지인스님에게 이 불경기에 밥이나 얻어
먹고 올라캤는데 비가 온다네...어디로 튈까 목하 고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