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淨本然極玲瓏 청정한 근본은 극히 영롱하거니
山河大地絶点空 산하대지가 일점의 허공이로다
毘盧一體從何起 '비로일체'가 무엇을 따라 일어났던고
海印能仁三昧通 해인과 능인이 삼매로 통할 뿐이다
@대구 목골마을에서 태어난 고봉스님은
18살에 결혼하고 1년 뒤 방랑길에 나섰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란 자부심과 애국심이 강했던
청년 유생 고봉은 출가를 위해 경남 양산 통도사에 가서도
양반 행세를 했다는 여러 일화가 있다.
고봉선사는 용수사에서 5년을 수행하던 어느 날 밤,
도반이 몸부림치다가 목침을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히 가슴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는 지은 오도송이 있다.
如泗州見大聖(여사주견대성)
사주(泗州)의 대성인(大聖人) 친견한 듯하고
遠客還故鄕(원객환고향)
먼 길 갔던 객이 고향에 돌아온 것 같네
元來只是舊時人(원래지시구시인)
다만 원래 그때의 사람일 뿐일 뿐
不改舊時行履處 (불개구시행이처)
옛날 그때 밟고 다니던 자리를 떠난 적이 없도다
@고봉스님은 견성 뒤 당대의 선지식 만공선사를 찾아 덕숭산으로 갔다.
고봉스님은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온몸에 먹을 가득 묻히고선 백지 위에 엎드렸다.
백지엔 그의 남근이 도드라지게 찍혔다.
고봉이 조실 방에 가 종이를 내놓으니 만공스님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법(진리)을 묻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장난을 하는 것이냐?”
말이 없자 만공스님이 고봉스님의 종아리를 내리쳤다.
모진 매질에도 고봉스님의 얼굴은 그 표정이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런 매질에도 끄달리지 않는 고봉스님을 보고
만공스님은 드디어 인가하면서 이런 법어를 내렸다.
‘법은 꾸밈이 없는 것, 조작된 마음을 갖지 마라.’
고봉스님은 열반 때
‘다만 알지 못할 것인 줄 알면 그것이 곧 견성’이라는 말을 남겼다.
2004년 11월 30일에 열반한 그의 제자 숭산 선사는
이를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로 바꿔 세계에 선을 알렸다.
선사들의 오도송 모음 (제2부)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