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김용~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체포됐습니다. 이재명 측근 유동규한테서 수억원을 뒷돈을 받아섭니다. (유동규가 감옥안에서 나 혼자 못죽는다고 신나게 불고 있나봐요ㅋㅋ)
이재명이 이번 만큼은 '김용? 누구시더라~~' 이런 말 못하겠어요. '내 측근이라면 정진상이나 김용(!)정도는 되야된다.'고 딱 못박았으니까요.
그런데 김용~ 어쩐지 낯이 익지 않나요? '어디서 봤더라?'했더니 김부선씨가 말한 문제의 '이재명의 거기 점'에 대해 브리핑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그때 그 사람~" 김용!
아주대병원 앞에서 '이재명은 점지사 아니라구요~'했던! 그 김용이예요. 그렇다면 김용은 정진상 제껴버리는 '최최측근'이 분명합니다. '은밀한 점'브리핑까지 한 김용이면 뭐~말해 뭐하겠어요? ㅎㅎ [출처] "그때 그 사람"김용~ |작성자 꿀단지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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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주먹 토종 한국인 '정주영'의 세계적 성공신화!
金鎭炫 회고록을 읽고: 한 경계인의 ‘대한민국 현대사 紀行’③
趙甲濟
논쟁적 한국인 鄭周永
김진현 선생은 경제부 기자로 출발,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경제연구원 대표이사,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경제신문》 회장, 《문화일보》 회장,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집행위원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특히 재벌 내부 사정에 밝은 분으로 알려져 있다. 회고록에도 재벌 회장들 이야기가 더러 나오는데 그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鄭周永)을 가장 논쟁적 인물로 꼽았다. “현대그룹은 삼성, LG·GS, SK, 한화그룹과 더불어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기업그룹-선진국에도 일본에도 없고 인도, 타일랜드, 필리핀 등에서만 일부 아직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이들과도 다른 독특한 가족기업 복합그룹”이라고 정의한다.
‘그룹’이라기보다 영어의 스피어(Sphere, 天球, 또는 세계)라고 했다. 경제·금융산업을 넘어 사회 모든 부문, 정치·외교·교육·예술·법조·의료·복지·스포츠·언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독립왕국의 한 전형이란 것이다. 정주영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이 점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20세기 근대화 혁명의 큰 줄기의 하나이고 산업화 담당 초(超) 거물, 한국 산업혁명의 상징 기업인이라는 점, 특히 ‘맨주먹 소박한 한인(韓人)’의 세계적 성공 신화, 단군 이래 ‘원형(原型) 한인’의 ‘세계적 기업 성공신화’의 창조자라는 점에서 같은 세대의 성공 기업인들과 도전의 질(質)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삼성, LG·GS, 효성, 쌍용 등 영남 부자(富者) 상인 출신들의 성공신화와도, 동양화학(이희림), 대한선박해운(이정림) 등 개성 출신 재벌들과도 차별성이 분명하다. 가장 ‘원초적인 한인’으로서 ‘최초의 세계 기업인’이 된 점, 이게 정주영의 역사적 위상이란 것이다. 그는 기업인이면서도 정권에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때로는 정권에 도전을 서슴지 않았으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그를 ‘가장 철저한 한인, 보편인, 세계인, 전면인(Totalman) 정주영’이라고 요약했다.
“한국적 기준으로는 가장 동물적인 보편성, 그러나 그 시대 인물 대부분이 그러하듯 ‘권력-국가’ 의식은 강하나 본질적 의미의 사회공동체, 보편적 사회 시민의식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인격”이라고 보았다. 나는 1992년 가을 대통령 후보로 나선 77세의 정주영을 인터뷰했는데 그렇게 신나 보일 수가 없었다. 기업인으로 맨날 정치인, 특히 대통령 눈치를 보다가 선거운동 기간에 욕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대선 직후 김영삼 당선자를 만나보니 낙선한 김대중 후보보다 보수표를 잠식, 자신이 낙선할 뻔했다고 정주영을 벼르고 있었다. 정 회장은 김영삼 5년 동안 비자금 관련 수사로 검찰에 불려 다니고, 현대그룹은 정권 눈 밖에 나 고생했다. 건강도 악화되었다.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못 당한다는 원리를 재확인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니 기를 펴게 된 정주영은 소떼를 몰고 방북, 김대중-김정일 평양회담의 길을 닦았지만, 아들 정몽헌은 그 회담과 관련된 대북(對北)송금 사건 수사를 받다가 자살했다. ////////////////////////////////////////////////////////////////////
아산 정주영과 거북선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이 청와대에서 만났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총수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그거 하나 못하겠다고 여기서 체념하고 포기를 해요? 어떻게 하든 해내야지 ..!! 임자는 하면된다는 불굴의 투사 아니오?” 런던에 도착하여 일주일 만에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그러나 롱바톰 회장은 비관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배를 사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고 또 현대건설의 상환능력과 잠재력도 믿음직스럽지 않아 힘들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도 안 됩니까?" 그러자 그는 "한국정부도 그 많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지요.
이때 궁하면 통한다는 정주영식 기지(奇智)가 발동했습니다. 정주영은 문득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났지요. 지폐 그림은 바로 거북선 이었습니다.
정주영은 주머니에서 거북선 그림의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펴놓으며, "회장님!! 이걸 잘 보시오!! 이 지폐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역사를 그려낸 지폐인데, 이 그림은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이지요.
당신네 영국의 조선역사는 1800년대부터이지만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본의 함선을 괴멸시킨 역사적인 철선입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다시 한번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주영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어요. 롱바톰 회장은 잠시 생각한 뒤 지폐를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조상을 두었소. 당신은 당신네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롱바톰 회장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거북선도 대단하지만 당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당신이 정말 좋은 배를 만들기를 응원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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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故) 정주영 명언,어록 살펴보자..
길을 모르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닦으면 된다
무슨 일이든 확신 90%와
자신감 10%로 밀고 나가는거다
운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운이 나빠지는 거지..
나는 젊었을때부터 새벽에 일어났어
더 많이 일하려고...
위대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야
노동자를 무시하면 안 돼.
사업은 망해도 괜찮아 신용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야
내 이름으로 일하면 책임 전가를 못하지.
잘먹고 잘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좋은일을 해야지...
성패는 일하는 사람의 자세에 달린 거야.
더 바쁠수록 더 일할수록 더 힘이 나는것은..
신이 내린 축복인가봐
불가능하다구?
해보기나 했어?
열심히 아끼고 모으면 큰부자는 몰라도
작은 부자는 될수있어
시련이지 실패가 아니야.
고정관념이 멍청이를 만드는 거야.
아무라도 신념에 노력을 더하면
뭐든지 해낼수 있는 거야.
해보기나 했어? 도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