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유 영 주 의 무술에 관한 약력
1966년 : 국술원합기도 사범
1968년11월19일(음력)
뫄한뭐루 란 새로운 무술 처음 발표 개관에 참여 (경남 충무시(통영시) 태평동)
1969년 뫄한뭐루 지도
1974년6월14일 : 중국무술 (태극권)연구
시작
1975년 : 뫄한뭐루 총본관
총관장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1976년10월 : 뫄한뭐루 부산본관
개관
1977년10월1일 : 중국무술 체육관
개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1978년4월 : 주한 미군부대 쿵후
지도사범
(평택시 소재:Camp
Humphreys, ASA GYM)
1986년3월30일 :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
회장취임(소속:체육부)
(忠南
天安市 瓦村洞 154番地)
1986년9월10일 ~9월15일 : 세계쿵후대회 참석
1988년3월19일 토요일 :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 사무실, 서울로
이전.
(서울시 江南區 大峙洞962-22)
1988년6월2일 목요일
1990년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 때 한국에는 우슈가 없으니 중국에서 사범을3명(장,남,태,도,검,곤,창)을 보내면
태권도를 훈려시켜서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1, 한국에는 500개의 Kung-Fu 체육관이 있으며 그것이
곧 우슈아니냐?
2, 한국에 중국무술이 들어오게된 동기와 역사를 적고,
3, 만약에 태권도가 훈련하여
우슈대회에 참가 한다면 "중국무술의"자존심에도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것이다,
4, 그래서 여기에 300여 관장들이 체육관별로 서명날인 한것을 보내니 꼭
쿵후인들이 훈련하여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 할수 있도록 협조 바란다,
위의 내용을 일본의 [村岡久平(Kyuhei Muraoka)를 통하여 亞洲武術聯合會(아주무술연합회)
회장(主席) 徐材씨에게보냄,
1988년7원5일 화요일:
중국에서 쿵후협회를 지목하여 國軍體育部隊에서 임용인(태권도 감독)씨와 최근장(훈련과장)님
방문
1988년7월7일 목요일 : 국군체육부대 嚴三鐸 將軍
면담,
[우슈와 태권도의 다른점을 설명,시범과 함께]
1988년8월3일 수요일:국군체육부대 에서 우슈(武術)
시범,
대한체육회 임원 및 기자단 참석
대한체육회장:김종하, 부회장:김상겸,
사무총장:김용모,
훈련원장:김 집,
운영부장:배순학,등등...
체육부대장:엄삼탁
각신문사 기자50명,KBS 기자,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의 임원 및 시범단
쿵후협회장:유영주, 이사겸 충남지부장:박덕수,
경남지부장:진종백
충북지부장:서병구, 부산지부장:구영한,
그외 선수10명,
***시범후 대한체육회 김종하 회장의 발표,
1. 대한체육회 에서는 42번째로 우슈를 가맹 시키겠다,
2. 중국 에서는 대한체육회에 가맹된 단체를 亞洲武術聯合會(아주무술연합회)에 가입시키겠다고 했다,
3. 우슈협회 선수중에서 북경 아시안게임 에서 금메달을 따오면 국민연금이 주어질 것이다.
4.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하여 빨리 가맹하도록 서둘러달라
1988년9월21일 수요일: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 서울지부
결성
지부장:설 영 봉
1988년12월3일 토요일
엄장군 주선으로 각 단체 통폐함 문제로 강남 중국성에서
모임
사단법인에서:유 영 주,김 만 현,김 양 제,
사회단체 에서:오성근,안철균
국장,
임의단체에서:홍문탁,천성신,박응용,강세호,
**사단법인 50% ,사회단체와 임의단체 합해서
50% ,배분하기로 합의.
1988년12월22일 금요일
회장:최순길(동아그룹 최순영회장의 형)-홍문탁
소개,
부회장:김만현(사단법인),오성근(한중쿵후무술협회장)
전무이사:유영주(사단법인 쿵후협회장),
사무국장:안철균(한국쿵후협회
사무국장)
이 사:홍문탁,강세호,
각분과는 사단법인에서 3개하고 나머지는 사회단체와 임의단체에서 인원을 배정하기로 결정.
1989년1월9일 월요일
대한체육회에 가맹하는 수순으로 推進委員會 위원장으로 嚴三鐸(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 으로 하기로 합의 확정.
1989년1월13일 금요일
법인을 해산 하지않으면 체육회 가맹 불가 통보를 받아 社團法人 大韓쿵후協會
해산,
(대의원 총회와 이사회 통과)
1989년1월20일 금요일:大韓우슈(Wu-Shu)협회 創立總會,
장소:대한체육회 대강당
임원선출
회 장:嚴三鐸
부 회
장:金萬顯,吳聖根
전무이사:劉榮珠 ,사무국장:安徹均
이
사:홍문탁,이창구,김명철,윤하두,강세호
**亞洲武術聯合會 副主席:村岡久平(Kyuhei Muraoka)씨도 참석했다.
***통폐합에 참여한 단체와 단체장
社團法人 : 대한쿵후협회(회장:유영주)
社會團體 : 한중쿵후무술협회(회장:오성근),한국쿵후협회(회장: 김명철, 사무국장:안철균)
임의단체 : 중무회(회장:강용일,윤하두),
신무회(회장:강세호)
국제쿵후연맹(회장:박응용,이창구),
중화국술국제연맹총회(부주석:홍문탁), 달마회(이일형)
이날 대한체육회 김종하 회장 이하 임직원들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1989년2월3일 금요일
대한우슈협회 대한체육회에 준가맹.
***대한체육회 이사회의에서 大韓우슈協會 와 Soft Boll 동시
준가맹
오후1시7분에 이사회의 통과되는것을 홍문탁씨와 함께
확인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나 힘들게 정신없이 뛰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슈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각종대회나,세계대회,또는 아시안게임,올림픽등에서
1위나 금메달을 따온다면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음은 물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사람이
될수있는 길은 열어줬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있었고 후배들의 앞날에 좋은일 이라고 생각했다.
우슈계의 앞날은 우리 후배들의 노력에 달려 있을것이다.
1989년6월5일 -6월13일:마카오에서 우슈의 신투로 배워오다
1990년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에 우리 선수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투로가 필요했다.
북경으로부터 마카오에서 장권,남권,태극권,도,검,곤,창,술의 신투로 교육이 있으니 참가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우리 10명이
갔다,
참가인명단
단 장:유영주(본회
전무이사)
안형주(인천)
남윤현(경기)
김00
(강원)
박덕수(충남)
서병구(충북)
정용만(대구)
하병태(경북)
진종백(경남)
구영한(부산)
모두들 고생을 너무나 많이 했었다.
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우슈의 신투로를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 들이다.
처음 우리가 마카오에
도착한것은 저녘이였다.
배에서 내리니 숨이 콱막힌것 같았다,알고보니 절기상으로 그곳은 한여름이란다
도착한 다음날 부터 체육관에서
신투로를 배우는데 우리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동작들이고,
체육관에 에어컨이 없어서 가만히 서있기만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거기에다 모르는 동작을 숙지할랴 알아듯지도 못하는 중국말만 해대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
그래도 일본의 이시하라 가 영어를 잘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혼자서 이시하라와 함께 팀들에게 통역을 해야했기에
태극권을 함께 배운 진종백 남윤현은 그나마 나아겠지만
장권, 남권팀들에게는 통역을 제때에 안해준다는 원망도 많이 들었었다,
다른 또 하나의 어려움은 온도시가 향료냄새에다가 음식에도
향료냄새가 나니
모두들 밥을 먹지 못해서 바나나 같은것이나 다른과일만 먹고 견뎌낼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먹지못하고 훈련을 하니 HOTEL에서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기까지 하면서도
우리들은 모두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큰사고 없이 돌아올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였다.
1989년7월8일- 9일 일요일
제1회 전국우슈대회 및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대한민국의에서 Kung -Fu,十八技,중국무술 이란 이름으로 무술을 연마하고 기대했던 희망이 보이는
첫번째 큰 전국규모의 대회를 올림픽공원내 펜싱경기장에서 선수선발대회를 했다.
선수를 선발하는 "심판규정"은
"亞洲武術聯合會(아주무술연합회)"의 규정으로 대회를 했다.
1989년9월12일 -24일:우슈 국제 심판교육
북경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국제심판교육을 홍콩에서 했다(11명 참가)
참가인명단
단 장:유영주(본회
전무이사)
김광호(서울)
김진권(인천)
남윤현(경기)
최관규(강원)
박덕수(충남)
서병구(충북)
정용만(대구)
하병태(경북)
진종백,박재홍(경남)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아주무술연합회"에서 받은 심판규정으로 대회를 했었지만
실제로는 국제적인 감각도 없었고, 국제적인 무술대회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심판 및 국제적인 정보를 알기 위해서 "홍콩"으로 갔다,
도착해보니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엄격하게 할거라는 집행부의 설명에
우리들은 긴장 했었다,
필기시험은 중국어나 영어로만 본다고, 그래서 하루에 4시간정도 밖에 잠을 자지못하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결과 필기시험, 실기시험, 심판보는 방법시험등을 모두 통과하였다,
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우슈계의 최초의
국제심판들이며
이들이 초석이 되어 오늘날까지 우슈가 여기까지 왔다.
1990년6월 우슈협회 사무실을 "올림픽공원"으로 이전
1990년9월22일 -10월7일 북경아시안게임에 선수들파견
감독 : 박덕수(朴 德 洙)
장권 : 이종갑, 남권 : 유재형(남) , 박정숙(여)
**위의 3명의 선수를 파견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었다.
우슈는 중국,일본,홍콩,등의 선수들과 기량을
비교해보니 메달을 따올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
국고만 낭비되니 이번 북경아시안게임에는 선수를 파견할수 없다하여 "체육부 경기국장"을 만나서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처녀출전한 종목중에서 메달을 따온 종목이 어느것이냐? 있으면
말해달라,
어떤 종목이던지 처음에 국제대회에 참가하는것은 경험을 쌓기 위한것이지, 메달을 어떻게 기대할수
있겠는가? ,
왜 우슈는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6명 출전 하기로 했던것이 3명으로 줄었다.
**감독이하 선수들은 짧은 훈련기간, 불투명한 출전여부등의 여러가지 어려움속에서 너무나 고생들을 많이 했었다.
본디 앞선 사람들이 고생을 하도록 되어있다던가!!!
후진들의 노력과 화합으로 우슈계가 번창할 수 있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
현)국민생활체육전국우슈(武術)연합회 부회장
선생님처럼 우슈를 사랑하고 지켜주셔서 저두 우슈라는 운동을 사랑하고 할수있었나 봐요..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사랑해주셔서...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우슈를 즐기고 사랑할수있도록 노력해주세요..파이팅!!!!
함께 수련하고 노력하도록 합시다...^^.
후배들을 위하여 발판을 만들어 주시는라 누구보다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항상 건강 하세여
무례하지만 태극전사님 1989년1월13일 금요일 법인을 해산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답글이 어려우시다면 쪽지로 알려주십시요.
아~질문 고맙습니다^^,
1989년 1월13일에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를 전국대위원 총회와 이사회에서 단체해산 회의에서 단체해산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대한체육회"가 사단법인 이였습니다,
그래서 "체육부"와 대힌체육회에서 같은 사단법인이 사단법인을 경기가맹단체로 "대한체육회"에 가맹시킬수 없다고하여 어쩔수 없이 단체해산을 했었답니다,
만약 그당시에 대한체육회에 경기가맹단체로 가맹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도 쿵후했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우슈선수라는 이름으로 아시안게임이나 또한 제도권 안에서 활동을 못하고 있겠지요,
그래도 지금은 국가대표나 시,도 대표선수라는 이름으로 국가로부터 지급한 급여를 받고 열심히 활동하고있는 선수들이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때 참 잘했었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다음에 더 질문있으면 언제라도 좋습니다, 늘건강하시고 수련 열심히 하세요...^(^.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현재 대한쿵후협회는 없는 건가요? 대한우슈협회가 우슈에 대한 모든것을 총괄하는 법인단체인가요?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는 해산하고 지금은 "대한우슈협회"에서는 국가대표 그러니까 엘리트체육만 관장하고,
"생활체육협회전국우슈연합회"에서는 생활체육을 관장하고 있답니다^^,
많은 일를 하셨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형의권을 수련하였습니다. 중국에서 5년정도 생활를 하다 최근에 귀국을 했습니다.
제가 중국무술를 좋아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랫었군요...^^,
반갑습니다,형의권도 좋은 무술이지요,
우리 둘째는 북경중의대를 졸업하고 ,
지금은 맹촌으로 다니면서 "팔극권"을 수련하고 있답니다...^^.
아직도 대한쿵후협는 존재하고 대한우슈협회와 별개로 조직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는데 그럼 대한쿵후협회는 불법단체 인가요?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군요,
언제 시간 있으면 서울나들이를 한번 하시지요^^,
지금은 사단법인을 허가 받기가 쉽지만,
노태우 대통령시절까지만해도 같은 종목에는 "사단법인"을 딱 하나만 정부가 허가를 해주었었답니다,
그러나 김영삼정권때부터는 같은 종목이라도 법인의 명칭이 다르면 "사단법인"허가를 해주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김영삼정권 시절쯤이나 그후에 "사단법인 쿵후협회"의 허가를 得했을것 입니다,
1989년1월13일 금요일 에 해산한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와 지금의 쿵후협회는 분명히 다르답니다,
아~그렇지만 지금의 쿵후협회는 불법단체는 아닙니다...^^.
답변감사드립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서울나들이 꼭 해야 겠네욤.^^
시간이 있으면 미리 연락주시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가 각종행사가 자주 있어서 그렇습니다,
전화:010-7712-1313번 입니다...^^.
마한머루라고 들어보고 제 제자들도 배운 애들이 있지요
종교 단체 등록했지요 오래전에 한걸로 알지요
마한머루가 아니고 "뫄한뭐루"랍니다,
원래는 종교단체로 부터 시작한것이 아니고
무술로서 출발했는데 하정효씨 께서 종교화 시키기위해서 많은노력으로
저가 떠난 한참후에 종교단체로 등록한것으로 소식을 들었었답니다...^^.
아 그런가요
서울 자양동이구나 거기 지하서 하는거 봤는대 애들은 많았던거 같았서요 월회비가 2만원정도에 배우는대 어려운 실정이었던거로 알지요
모든 무술이나 運動은 기초를 바탕으로
잘지도하면 어려울것이 없는데
뫄한뭐루도 지도자를 잘만하면 어려울것이 없답니다,
다만 본인이 얼마난큼이나 열심히 수련하느냐에 따라서 실력차이가 날수도 있지요,
물론 자질도 있어야 겠지요...^^.
반갑게도,김 진권 사범님 이름도 보이네요. 현 캄보디아 우슈협회 총재이시면서 저의 사범님이십니다.^.^*
아~~~
그렇군요,연락처를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만...^^.
안녕하세요? 이카페에서 좋은글과 많은 자료를 보게되었습니다.무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반갑습니다.
저는 67년 국술원 합기도 미아리도장 사범
71년 장교로 군에서 태권 교관(故 엄삼탁 장군 5년 후배 )
73년 종로 2가 합기도 국술관 총본관 관장 (카나다 김우탁관장 후임) 그리고 공직생활 35년
퇴임후 손자를 데리고 중국으로 왔습니다.중국어와 영어를 배우며..1년전부터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도바람니다
반갑습니다,
국술원에서 합기도 사범을 하셨다고 하니,더욱 반갑습니다,
저는 1963도 부터 부산에서 서인혁 국사님의 체육관에서 국술원 합기도를 시작 하였었답니다,
1945년 생 이구요,
지금은 "국민생활체육전국우슈연합회"의 부회장직을 맏고 있답니다,
언제라도 귀국 하시면 연락 주세요,
저의 전화는 010-7712-1313번 입니다...^^.
선배님이시군요(저는 48년생으로 중학생때인 61년 마포 유도관에서 유도를 배우다가 64년 서울 서대문 충정로
국술원 합기도장(이한철.허일웅.김우탁 사범)에 입문 하였습니다) 부산의 서인혁 관장님을 심사때 여러번 뵈었고
단증도 서국사님의 단증을 받았었지요.
선배님께서 중국 길림성 장춘시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요즘은 선후배의 개념이 전과 같지 않으나
국술원 초기의 선배님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고 싶네요.
이한철 사범님은 저가 부산에서 운동할때 만났었고,허일웅(명지대교수,지금은 정년),선배는 서울에서 만났었답니다,
저는 지금 "팔극권"을 지도 하고 있답니다,
일년에 한번정도 하북성 창주 맹촌(팔극권무술학교)에는 간답니다,
귀국하시면 연락 주세요,
저가 식사대접을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태극권 배우고있는 초보입니다 옛날에 국술원에 계셨었군요 저도 국술합기도 서울 답십리에서 조금 배웠습니다 , 합기도 관장님들 보면 중국무술 쪽으로 많이 바꾸더군요 태극권이나 타무술을 보더라도 한국무술 보다는 중국무술이 역사가 있고 깊이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 무술은 몇가지 정도로 알고 있고요 그래서 중국 무술쪽으로 많이 바꾸나 봅니다 합기도 창시하신 최용술님 으로부터 합기도는 시작 되었고 ㅡ 중국처럼 역사가 긴 무술이 없다는것이 아쉬울 뿐이구요 태극권이 좋아서 배우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날 되십시요 ,,,
반갑습니다 ^^,
최용술님은 합기도를 창시하신것이 아니고
12세인가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이키도 집안에 있으면서 아이키도를 배워서 ,歸國 하여 대구에서 "合氣道(일본명:아이키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무술에대한열정과심도깊은토론에이미폐인이되버린지리산자락의늪꼴다시몸이뜨거워짐으느끼오이다태사랑의오든권속들새해에도복많이받으시고행복하소서 특히우리/유영주 관장님 호쾌한나날보내시오소서 최ㅡ
아~~~
최관장님 공기좋고 환경좋은곳에 계시군요,
건강 하시지요?...^^.
우와 대단하시네요^^
대단하신 태극 전사님 존경합니다.^^
감사 합니다,^^.
오래전의 활동 모습이시군요,
저는 2015년 11월에 제6회 문화관광부장관배 대회에 출전하여
유영주 회장님께서 주신 상장과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양식 16식태권권과 양식 18식 태극검 18식 두 종목 모두...
영광입니다.
아~
그런일이 있으셨군요
반갑습니다
지금도 태극권 수련하고 계신가요? ^^.
안녕하세요.경력이며 약력이 화려하시군요.
저는 1976년부터 대한합기도를 하였고 1978년 부터 킥복싱 격투기를 21년 하였고 어느날 노동일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여기저기서 치료를 받다가 엉뚱한데만 치료하고 진짜로 허리가
아픈데 흉추만 치료하는데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그래서 북대구 기공활력도에서 기공을 배우려 하다가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서울 머슬테라피에 가서 치료받고 허리가 강화 되었는데
나중에 X~Ray판독을 알고 나니까 요추전방전위증이라고 해서 방사선과(지금은 영상의학과)에서 목수술하라고 하고 허리 수술하라고 권유를 했는데 가까운데에서 태극권을 접하고 태극권 강사님께 우리 스승님 만나서
기공및 기치유등...
배워서 나름대로 전북에서는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우리 스승님께 주로 기공을 배우고 지금은 태극권을 배워 부드러뭄이 강함을 이기는 이유재강인가요?
하여튼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그런유의 기공을 좋아하고 또 알리고 싶어서 건방을 떨었습니다.
삼가 조심하겠으니 너그러이 용서 바랍니다.
그리고 글 쓰시느데 활자좀 크게 하시던가 하세요. 글을 읽으려면 너무 활자가 작아서 제 카페 가서 만들어서 글 읽습니다.
삼가 조언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 동영상 귀엽게 보아주세요.꾸벅1배-()-
안녕 하세요?
저가 도원님의 글을 너무나 늦게 읽었습니다
미안 합니다
지금은 도원님의 건강은 완전 회복 되셨나요?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
우슈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분이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은
저가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장을 맡아서 부터
대한우슈협회를 대한체육회에 가맹킨 과정을 책으로 쓰고 있는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