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 문도산으로
십일월 첫째 금요일은 지난 팔월 말에 퇴직한 벗과 함께 산행을 나서기로 했다. 벗은 장차 지내게 될 의령 처가 동네에다 새로운 집을 짓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벗의 장모님이 오랜 세월 살던 낡은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설계도에 따라 경량 철골 방식의 단독 주택이 착공되었다. 앞으로 서너 달 뒤에 집이 완공되면 귀촌해 시골과 도시를 오가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지 싶다.
우리는 진전 야산을 누비기 위해 이른 아침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만났다. 당항포 들머리 정곡까지 가는 77번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올가을에 이미 진전으로 두 차례 산행을 다녀오면서 제피 열매와 으름을 따 온 적 있고 단풍마도 제법 캐 왔더랬다. 이번엔 지난번 못다 캐고 남겨둔 단풍마를 마저 캐고 남은 시간은 적석산 인근 산등선을 따라 일암으로 갈 참이다.
마산역 광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갔다. 창원 근교 북동쪽 김해나 삼칠 방면은 공장이 많이 들어서서 생태 환경이 삭막했으나 남서쪽 삼진 산골이나 구산 바닷가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되어 자연의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다수 승객이 오르내린 버스는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을 둘러 진북과 진전 면 소재지를 거쳐 탑동으로 향했다.
탑동은 진전면에서 유력 성씨의 하나인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진전은 해방 전후 카프 문학 중심인물 권환 시인의 고향으로 매년 가을 그를 기리는 행사가 면 소재지 오서에서 열리는데 이번 주말이다. 오서에도 권씨들이 모여 살아 모두 같은 집안 아저씨와 조카 사이이다. 이런 관계로 웬만한 면 소재지는 시골 다방이 두세 군데 있기 마련인데 오서엔 그런 휴게시설이 필요 없었다.
탑동마을 안길에서 팁곡산 방향으로 드니 외딴집이 한 채 나왔는데 무료함을 잊으려는 백구 두 녀석이 경계 근무에 충실했다. 목줄이 묶여 있었으나 워낙 사나운 기세로 쩌렁쩌렁 짖어대 움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주인장이 마당에 서성여서 인사를 나누었더니 견공의 성질이 누그러져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외딴집을 지나 소나무가 청청한 산비탈로 올라 방말재를 넘어갔다.
통영과 고성을 거쳐온 14호 국도는 수년 전 고성 회화 삼덕에서 창원 진전 오서 사이는 터널이 뚫려 예전 고갯길은 차량이나 사람의 통행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고갯마루 차도를 벗어나 임도를 따라 걸었다.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 가면서 지난번 남겨둔 단풍마 넝쿨의 줄기를 찾아 놓고 길바닥에 퍼질러 않아 벗이 가져온 담금주를 두어 잔 비우고 꽃삽과 호미로 단풍마 뿌리를 캐냈다.
단풍마의 넝쿨은 세력이 좋게 뻗어 자랐으나 뿌리는 기대만큼 들지 않아 다른 넝쿨에서 한 덩이의 뿌리를 더 캤다. 이후 우리는 계속되는 임도를 걸어 산등선에 이르러 오솔길을 찾아내 적석산이 아닌 문도산으로 나아갔다. 산등선을 따라 문도산 정상에 서니 진전 일대 산세와 마을이 훤히 드러났다. 멀리 여항산에서 서북산을 거쳐온 산세는 인성산에서 광암 앞 바다로 뻗어 나갔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앉아 준비한 김밥과 남겨둔 담금주를 비우니 단독 산행을 나선 한 아낙이 적석산에서 내려왔다. 아낙은 그곳의 지리에 익숙한 듯 점박이 견공을 호위 무사로 대동하고 우리를 앞서 내려갔다. 점심을 먹은 바위에서 일어나려니 이번엔 한 사내가 아래서 올라와 적석산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그는 주말에 모임 일행들과 오를 적석산을 사전 답사하는 길이라고 했다.
산비탈을 내려가니 바위 낭떠러지에 산불감시 초소가 있었다. 아까 점심을 먹으며 쉬었던 바위만큼이나 전망이 탁 트여 건너편 산세와 발아래로 양촌과 대정 일대 마을과 논밭들이 굽어 보였다. 초면인 산불감시원과 인사를 나누었더니 그는 하산길 경사가 가파르고 자갈이 많으니 조심해 내려가십사고 했다. 일암마을에 닿으니 초계 변씨 재실 성구사가 나왔고 양촌마을이 가까웠다. 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