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와의 설날 퀴즈 대항
장윤자(한국조폐공사 공모 산문부 최우수상 : 상금 100만 원)
새잎과 새싹은 오늘도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텔레비전 앞에서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깔깔 거리며 웃고 있을 시간이었다. 즉, 평일 오후 5시나 6시쯤 시작하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꽤 차고서는 리모컨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다가 한 곳에 시선을 멈추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시간이다. 새잎과 새싹이 무엇을 하는지 저들 엄마는 최근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공부는 안 하고 무엇을 그리 열심히 들여다보고 찾고 있는지 한바탕 난리를 치고서야 새잎과 새싹의 쌍둥이 딸 엄마는 한 발 물러섰던 것이다.
지금부터 한 달 전 겨울이 한창일 때 저들 외할머니 생신 때인가 보다. 그러니까 쌍둥이 엄마의 친어머니 생신 때 말이다. 대구에서는 제일 유명하다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할머니 밑에서 분가해 간 우리 2남 2녀의 아들딸들이 가족을 이끌고 가벼우면서도 즐거운 저녁 생일 파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서 새잎과 새싹 쌍둥이와 저들 이모부이자 쌍둥이 엄마의 형부 되는 이와 떠들썩한 내기 시합이 있었다. 가벼운 퀴즈 문제 내기였는데 이모부가 옛날에 유행했던 참새 시리즈로 선공을 하면, 새잎과 새싹도 퀴즈를 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새잎과 새싹은 순진하면서도 어린이다운 문제로 인해 매번 내기에서 이모부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오는 3월이면 이제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어린 여학생이라 순진하기 짝이 없던 새잎과 새싹은 쩔쩔매곤 했던 것이다. 저들이 내는 문제로는 평소에도 어린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고, 또한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사람들만 모이면 사회를 보느라 늘 준비된 퀴즈를 갖고 다니던 이모부한텐 이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모부가 문제를 낼 때마다 저들이 맞히면 천 원씩 주고, 못 맞히면 도로 돌려받는다는 약속을 하는 바람에 기를 쓰고 답을 맞혀 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던 것이다. 어쩌다가 문제를 내어 답을 맞혔을 때 돈 천 원을 벌어도 금새 저들이 내는 문제에 대해 이모부가 답을 맞히는 바람에 돈을 도로 빼앗겨 버려서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저들이 내는 문제라고는 전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고 이모부가 내는 문제는 옛날 참새 시리즈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구두쇠는?(무라까와 쓰지마)'이라든가, 혹은 '진짜 문제투성이인 것은?(시험지)' 따위로 이루어져 있으니, 어린 새잎과 새싹한테는 좀처럼 이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외할머니 생일이었던 그 날 새잎과 새싹이는 약이 한참이나 올라서 집에 돌아갔던 것이다. 물론 이모부는 어린이를 엄청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 날 온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도 새잎과 새싹 쌍둥이를 놀려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그 날 쌍둥이 엄마가 봐도 두 딸이 화가 많이 나서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었다.
이모부와 새잎, 새싹 쌍둥이는 늘 이렇게 만날 때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서로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 모임이라고 해 봐야 남들이 다하는 고스톱이나 술판 벌이기는 원래가 안 좋아하는 성격들이라 가족들끼리 즐겁게 깔깔 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집안 최고의 명절 분위기였다. 작년 추석 때에는 이모부가 새잎과 새싹이 쌍둥이한테 보여 줄 거라며 요즘 유행하는 마술을 한 달간이나 연습해 와서는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도 새잎과 새싹 쌍둥이는 사라졌던 카드가 다시 나타나고, 카드 무늬와 숫자가 바뀌어 나타나고, 그리고 갑자기 링이 얽혔다가 벗겨지고 하는 여러 종류의 마술을 보면서 신기했던지 그 비밀을 파헤치려고 눈이 빠져라 쳐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 날 저들 외할머니 생신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오자마자 바로 새잎과 새싹이는 벌써 곧 다가오는 설날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봄에 태어났다고 새잎과 새싹으로 이름이 지어진 쌍둥이는 성격도 비슷하게 닮았다. 먼저 태어난 새잎이는 승부욕이 강하면서도 욕심이 많고 책임감이 강하다. 무엇이든 자기가 먼저이어야 되고, 자기가 최고이어야 되고, 자기가 더 똑똑하단 소리를 들여야 한다. 둘째인 새싹이도 쌍둥이가 아니랄까봐 저거 언니 새잎이한테 지지 않으려고 신경전을 많이 한다. 꼭 저거 언니인 새잎이가 하는 대로 해야 한다. 새잎이가 머릴 땋으면 자기도 땋아야 되고, 화장실 가면 따라 가야 되고, 학용품을 사면 꼭 같은 것을 사야 한다. 그래서 저들 엄마는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으면서도 무엇을 사도 꼭 두 개씩 사야 한다. 인형을 사 줬을 때도 꼭 새잎이가 가지고 놀아야 새싹이도 가지고 놀고, 또 새잎이가 금방 싫증을 내고 다른 것을 하면 새싹이도 금방 싫증을 내며 언니 따라 쪼르르 가 버린다.
이런 쌍둥이가 최근에는 컴퓨터 앞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다. 아직 설날이 되려면 보름 이상이나 남았는데도 컴퓨터 앞에서 퀴즈 문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요즘은 방학 중이라 학원 다녀오고 나서는 딱히 할 일도 없이 시간이 많이 남는데도 새잎과 새싹은 십 년 전에 산 20권짜리 백과사전이나, 작년에 구입한 CD로 된 백과사전은 물론이고, 집 앞에 있는 마을 도서관에서 빌린 퀴즈문제집까지 섭렵하고 있다.
이 날도 새잎과 새싹은 그 동안 컴퓨터 앞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모조리 받아 적어 놓았다가 방문을 열며 가까이 다가오는 저들 엄마를 보고는 쪼르르 달려와서는 잽싸게 묻는다.
"엄마, 엄마! 이 문제 내면 이모부가 모르겠지요?"
"뭔데?"
"'10년 동안 목욕 안 한 사람을 일컫는 말은?' 이 퀴즈 문제 말이에요."
저들 엄마는 새잎과 새싹이가 들고 오는 공책을 보더니 기가 찰 노릇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각각 들고 있는 공책에는 연필로 적은 것뿐만 아니라 볼펜, 사인펜으로 빼곡히 적어 넣은 문제들이 몇 페이지에나 걸쳐 적혀 있었다. 저들끼리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히고 해 봤는지 색연필로 지운 것도 있고, 볼펜으로 곱표를 해 놓은 것도 있고, 그리고 형광펜으로 노랗고 빨갛게 칠해 놓은 것들도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연습을 했던지 철심이 박혀 있고 표지가 두꺼우면서 고급스런 종이로 되어 있는 공책인데도 불구하고 속은 너덜너덜해 있었다.
"응? 글쎄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뭔데?"
"엄마가 먼저 한 번 맞혀 봐요!"
새잎과 새싹이 엄마는 이구동성으로 하는 갑작스런 제의에 당황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잠시 망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새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새잎과 새싹이는 또 말을 걸어온다.
"와, 엄마가 못 맞히는 것을 보니 이 문제는 괜찮겠다. 분명 이모부도 못 맞힐 거야. 그렇죠?"
"그런데 답이 뭔데? 난 모르겠다."
"이 문제 답? 답은 '더러운 사람'이예요."
"아이구, 참, 그런 것도 문제라고? 그런데, 그 문제들은 다 어디서 뽑았지?"
"네~!, 네이버에 들어가면 쫙 나와 있어요. 백과사전 같은 곳에는 문제가 없어서 퀴즈를 만들기가 힘들어서요. 네이버에 퀴즈라고 검색했더니 엄청 많이 나와 있었어요."
"그럼, 이모부도 그것 다 보았겠다."
"네에? 이모부가요?"
동시에 새잎과 새싹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너희들이 보는 것은 이모부도 다 보고 계신다고 생각해야지. 너들 이모부가 인터넷 얼마나 잘 하시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새잎과 새싹이는 낭패한 느낌이 들었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이번 설에는 세뱃돈도 받고 퀴즈 내기에 꼭 이겨서 상금도 받아야 된다는 다짐이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닥쳐왔던 것이다.
"나도 모르겠다. 아빠 퇴근해 오시면 한 번 같이 연구해 봐라."
이런 제안에 새잎과 새싹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또 문제를 찾느라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저들 엄마 생각에는 새잎과 새싹이가 평소 공부를 저 정도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들이라 섣부른 기대는 안 하기로 했다.
새잎과 새싹이는 그 이 후로 낮에는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그리고 종합 학원에 다녀오자마자 각종 퀴즈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서는 퀴즈가 될 만한 문제를 공책에 적어두곤 했다. 저녁이 되면 아빠가 퇴근하고 저녁 식사도 하기 전에 벌써 새잎과 새싹이는 동시에 아빠한테 매달려서는 자기가 낸 문제가 아빠가 맞히는지 못 맞히는지, 혹은 이모부가 맞힐지 못 맞힐지를 검토 받고 하는 과정을 계속 했다. 새잎과 새싹이 아빠는 이러는 쌍둥이 딸이 귀엽고 사랑스럽기 한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어떨 때는 퇴근하면서 직원들한테서 들은 퀴즈 문제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는 새잎과 새싹이한테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새잎과 새싹이는 이럴수록 이번 설에는 반드시 이모부를 이겨서 돈을 많이 벌겠다고 확신에 찬 다짐을 하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설날이 일주일이 남고, 삼일이 남고, 하루가 남더니 어느덧 바야흐로 설날이 되었다. 새잎과 새싹이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친할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고, 모인 친척 어른들께 일일이 세배도 드렸다. 세뱃돈도 푸짐하게 받았다. 설날이라고 엄마, 아빠가 새로 사 주신 때때옷 한복을 예쁘게 입고, 받은 세뱃돈으로 복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우고는 아침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제 차례상을 물린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왜 빨리 외할머니 댁에 안 가냐고 아빠, 엄마를 재촉하고 있었다.
"얘들아, 외할머니 댁에는 우리 집에서 점심 먹고 나서 이따가 저녁 먹으러 갈 거다. 그 때 되어야 이모부도 이모부 댁에서 차례를 지낸 후 외할머니께 세배 드리러 오시거든."
"아이, 그래도 일찍 가요. 우리가 먼저 가서 퀴즈 문제 연습하고 있어야 된단 말이에요."
새잎과 새싹이가 하도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쌍둥이 엄마, 아빠는 그만 못 이긴 척하고 점심을 먹자마자 평소보다 일찍 외할머니 댁으로 출발하고 말았다. 외할머니 댁에 온 새잎과 새싹이는 외할머니와 외삼촌 부부께 세배를 드리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퀴즈가 빽빽이 적여 있는 공책을 들고 방 한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외삼촌 가족들은 저들이 오늘 따라 왜 저러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신기해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외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갖은 귀염을 떨면서 외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릴 텐데 오늘 따라 멀찌감치 떨어져 저들끼리 키득키득 거리며 놀고 있는 것을 보니 그 또한 귀여운 모양이었다. 둘이서 딱 붙어서는 한참 동안이나 궁리하다가 저들 엄마 곁으로 와서 자주 묻곤 했다.
"엄마, 아직 이모부 안 오셔요? 연락 없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아마 출발하셨을 거다. 아까 이모한테서 연락이 왔다. 저녁 먹으로 출발했다고."
몇 번이나 질문한 끝에 출발했다는 소식에 긴장이 되는지 건넌방으로 후다닥 들어가더니 문을 꽝 하고 닫아 버린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퀴즈 대항에서 이겨서 복수를 하리란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았다. 매번 퀴즈 대항할 때마다 졌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서 약이 바짝 오를 대로 올라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초반에는 이모부가 지는 척하면서 돈을 주다가 나중에는 꼭 다시 빼앗아 가는 이모부 때문에 약이 오른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새잎과 새싹이가 각자 준비한 공책을 들고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초인종이 드디어 울렸다.
"딩동~! 딩동 딩동~!"
"새잎아! 새싹아! 이모부 오셨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마자 이 기쁜 소식을 어린 딸들에게 빨리 알려 주고자 쌍둥이 엄마는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화들짝 건넌방 문이 열리고 새잎과 새싹이가 부리나케 뛰어나와서는 막 열리고 있는 현관문 앞에서 죽 늘어섰다. 그리고는 설날이라고 선물꾸러미를 현관문으로 들이밀면서 들어오는 이모와 4촌 오빠들한테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묻는다.
"이모부는요? 주차하고 계세요? 빨리 퀴즈 대항해야 되는데······."
"아니, 이모부 오늘 못 오신다. 회사에 급한 일 생겨서 외국에 일주일간 출장 가셨거든······."
"예, 뭐라고요? 외국 출장요?????!!!!!"
새잎과 새싹이는 그 자리에서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이 노랗게 변하고, 머리끝이 텅 비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새잎과 새싹이는 둘 다 현관입구 거실바닥에서 그대로 드러누워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 달간이나 기다리며 준비한 퀴즈 대항인데 이럴 수는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어떻게 준비한 설날 퀴즈 문제인데 하는 원망으로 가득차서 말이다. 외할머니 가족은 무슨 영문인지 자세히 몰라 멍하니 서 있었지만 그간의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새잎과 새싹이의 엄마, 아빠의 눈과 가슴에는 새잎과 새싹이가 좌절해 울며 나자빠져 있는 가련한 모습으로 인해 눈물로 뒤범벅이 되고 있었다. 끝.
* 이 글은 지난 설에 있었던 우리 집안의 실제 사건을 약간 각색한 내용입니다.
첫댓글 이 글의 주인공 이모부는 멋진욱이고 쌍둥이는 처제 딸들입니다. 히히.
우와~ 진짜 재미있는 글이네요. ^^ 쌍둥이친구들의 기를 쓰고 벼르는 모습이 눈 앞에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마지막 반전이 기막힌데요~ ㅋ 상받으실 만 하십니다. ^^b
하하!! 정말 재밌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인자 대장님 마이 밀리겠네~~
내가 진짜 미친다니께요. 이 글 재미없다고 내지말라 했는데 상까지 받아뿌고.. 이 영광을 어째야쓰겠습니까? 다 카페 덕입니다. 그리 생각합니다요. 축하인사하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추~카 추~카
짜짜자---짠 부부문인 탄생 축하. 아마추어(?) 다운 진솔한 글이 감동을 주네요. 흠--흠. 테크닉 보다는 역시 진솔함이 돋보여야....ㅋㅋㅋ---역시 아마추어의 문예비평이었습니다
안밖으로 멋진분이셔!!!!!!축하 합니다.
아기 자기 하게 글도 맛 깔라게 재미있게 자알 적었네요...일상사 애기를 참 재미나게 표현을 자알 했음니다...부부가 글쓰는데는 일가견이 있오....
와우! 대단해용! 축하 이따~~~~만큼 해요. 재밌게 사는 멋진 욱 대장님의 모습이 여기에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군요. 그리고 멋진 윤도 말할 것도 없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