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흥 우도 김남석氏 -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하던 방송일을 멈추고 쏟아지는 빗길을 뚫고 고흥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나이에는 자녀들의 결혼식과 부모님 세대의 부고가 한창올라오는 시기입니다.
이제 한세대가 저물어가고 우리역시 그 뒤를 잇는다는 뜻이겠죠.
기쁨의 시간보다는 위로의 시간은 가급적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위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때는 위로란 상대를 일으켜 주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보니 위로는 일어설 힘조차 없는 사람에게 일어설 방법을 전해주거나, 울고 싶은 사람에게 울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만이 진정한 위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내일의 행복을 얘기하기보다 현재를 견뎌내고, 오늘을 온전히 살아낼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 세대가 쓸쓸히 물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몰려옵니다.
조문을 마치고 남은 업무를 위해 새벽길에 상경해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고향 친구들이 건네는 다정하고 따뜻한 환대에 그만 하루 더 고향에 머무르기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읍내 모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눈을 붙이려나 싶었는데 여기저기서 전화와 SNS가 빗발치기 시작합니다.
"아야 아침에 우리집에 들려서 꼭 봉심이가 맹글어준 밥 한끼는 묵고가라 잉~"
"언제 오끄냐 집앞 남새밭하고 마늘밭에 상추하고 마늘쫑이 많은디 한 봉다리 가져가야제"
"내래왔으믄 연락을 하재 밥묵을 시간이 없으믄 차라도 한잔하고 가야재 앙그란가? "
누군가를 위로하는 시간이여야했지만
그로 인해 결국 내가 위로받는 시간이 됩니다.
새벽 여섯시.
지난 밤에 내리쳤던 빗방울이 멈추고 아침을 맞는 새들의 지저귐이 잠을 깨웁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부모님을 찾아뵙기위해 납골당으로 향했습니다.
늘 불효만 저질렀던 아들이지만 갈 때마다 두팔벌려 안아주는 것 처럼 푸근한 마음이 드는 곳입니다.
인사를 드리고 먼지묻은 비석을 닦었습니다.
묘지 비석에는 주로 망자의 업적이나 집안의 누구누구가 어느 시대에 명망을 떨쳤다는 공치사가 써있는 게 다반사지만 우리 한氏 집안 비석에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선을 쌓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삶의 표상으로 삼을 수 있는 글이 또렷이 각인되어있는 비문은 나로 하여금 가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합니다.
고흥읍내로 돌아가는 길에 방사마을 친구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유자꽃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는 길을 가로질러 도착한 친구집은 작은 정원이 단정하고 예쁘게 꾸며져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이곳에서 곱디고운 친구 어머님께 믹스커피 한잔을 대접받았습니다.
방사와 냉정마을을 거쳐 친구들을 차에 태우고 먹곡재를 넘어 고흥 농어촌공사쯤 다다랐을 때 건너편 정비소 건물 벽면에 예쁜 장미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놓아 오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등암마을 친구집에 들렀더니 기다리고있던 친구가 차 트렁크에 채 싣지도 못할만큼 많은 농작물을 실어줍니다.
이 넉넉한 마음에 감동합니다.
읍내에서 친구들과 합류해 그냥 서울로 상경하기보다 남양면 우도에 레인보우 연륙 인도교가 설치되어있으니
그곳을 방문하자고 제안했더니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무지개 다리 레인보우교는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우도에 상시로 관광객과 우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1.3km 길이의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 인도교로 국내 최장입니다.
행운과 희망을 불러오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색깔 무지개가 떠있는 듯한 바닷길에는 뒤늦은 유채꽃과 푸릇한 새싹을 밀어올리는 갈대들 그리고 그 사이로 자유로이 노니는 짱뚱어와 게들이 몽글몽글 봄을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득량만을 가로지르는 레인보우교에서 보는 풍광은 가히 비경입니다.
해무로 가려진 고흥과 보성을 잇는 태백산맥 줄기는 먹 하나로 농담을 그려 흑과백의 색의 원천을 그려내고 옅은 푸른색이 가미되니 그 풍경은 진경산수화 한폭이 그대로 펼쳐진듯 합니다.
레인보우교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못해 황홀경을 선물합니다.
꼬막을 뒤집어놓은 듯한 작은 바위 섬인 행계섬은 거친 파도와 맞서며 수 천년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나 자신의 의미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맡기고 내 삶의 가치를 다른 사람으 판단에서 얻으려했던 시간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우도가 거느린 섬들이 있습니다.
모양새가 마치 용이 바다에서 꿈틀되는 것 같다하여 하구룡도,중구룡도,상구룡도라 불립니다.
올망졸망한 다도해의 진수를 보여주는 풍경을 이룹니다.
제 눈에는 고래들이 바다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듯한 모습인데 옛 선조들은 용처럼 보였나봅니다.
레인보우교 아래로는 물때에 따라 하루 두번 드러나는 노둣길이 보입니다.
바닷바람이 얼마나 상쾌하고 시원한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폐부깊숙히 들여마셔봅니다.
레인보우교 초입에서 산, 뻥튀기를 꺼내 햇빛을 가리기도 하고 부채처럼 바람을 일이키기도 하며 친구들과 낄낄대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인도교를 건넜습니다.
우도에 들어서니 작은 가판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주민들이 산낙지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봄철 쇠해진 기력을 되찾기에는 고흥낙지만한 게 없다죠.
몸에 좋다기에 한 점 먹으려고 했지만 살아있는 것들을 난도질해 접시위에서 꿈틀대며 고통스러워하는 산낙지를 먹기에는 차마 젓가락이 쉽게 가지를 않았습니다.
몰려오는 관광객을 맞는 주인장에게 삶은 낙지는 없냐고 여쭈어봤더니 이곳에서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술을 팔 수 없는 지역이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쯤
자신의 집으로 가서 낙지를 삶아주겠다는 주인장의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우도 중턱에 있다는 주인장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작약꽃이 만발했다.
객지에서 생활하다 약 5년 전 쯤에 고향으로 귀촌했다는 그에 집 마당에는 온갖 유실수와 꽃들이 심어져있었다.
수돗가 딸기밭에 열린 딸기를 보고있노라니 얼마든지 따먹어도 좋다고 했다.
낙지를 삶아내면서 자신이 마시려고 했던 소주 한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저렇게 통성명을 하고 사는 얘기를 늘어놓다보니 우리 친구들을 보면서 무심한 듯 한마디를 툭뱉어놓는다.
"살아봉께 사람이 질로 소중합디다.
상처도 사람에게 받지만 그 상처도 사람헌티서 치료받제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삔 추억도 많이 맹글어가십시오"
그리고 화초에 눈길을 주던 친구에게 화초를 파서 건네준다.
가을밤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 마치 붉은색 전등 수십개가 켜진 듯 하다는 그, 우도 사람 김남석씨는 그렇게 남도사람 특유의 정을 보여주었다.
행운을 불러온다는 레인보우교보다 큰 감동은 우리에게 김남석님을 통해 행복을 선물받은 작은 여행길이었다.
곧 추억이 될 시간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여행길에서 함께해준 친구들 모습과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들에 울컥했고 그 소소함이 너무나 아름다워 더욱 울컥했던 우도여행이었다.
*고흥의 보물 우도 레인보우교가 개선해야할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꼭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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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흥 우도는 임진왜란 발발 3년 전에 일본 사신 종의지가 공작새를 선조에게 선물로 드렸는데 진금기수(珍禽奇獸)에 빠지면 백성의 삶을 내팽개칠 수 있다는 주나라 무왕의 고사(故事) 를 신봉했기에 화려하고 진귀한 공작새를 궁궐에서 키우지 못하고 제주도로 유배시키려다 너무 멀어서 이곳 남양면 우도에 보내졌다는 내용을 역사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우아하게 날개를 펼친 공작새를 살아있는 봉황새로 칭송했습니다.
우도의 중심이 되는 산 이름이 봉황 봉(鳳)자인'봉들산'인걸 보면 역사적 사실로 보입니다.
여수와 보성 그리고 고흥이 공유하는 여자만이 있는데 그곳 장도 섬에는 조선시대때 코끼리가 유배되기도 했지요.
군주의 사치를 배제하고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진금기수 정신은 공직자의 청렴을 상징하기도 하니 공작새 전설을 관광객에게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임진왜란때는 우도 주민들이 시누대로 만든 화살을 이순신 장군에게 제공했을만큼 의기로운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우도의 명물가운데 하나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샘물입니다.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샘물로 주민들의 식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관리가 재대로 이뤄지지않아 갯벌에 묻힐판입니다.
우도 레인보우교를 걸으면서 아쉬운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1.3km의 다리를 지나오면서 그 어디에도 쉬어갈 곳이 없습니다.
고흥군에서는 우도를 가족의 섬을 표방하고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지팡이를 짚고 오신 어르신들이 햇빛을 피하거나 잠시 앉아갈 의자가 없어 중간에서 다시 돌아가는 가족들을 목격했습니다.
공공건축물은 그 어느 곳보다 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입장에서 시설이 설치되어야 합니다.
난간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한다면 지나가는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지않을 뿐더러 필요없으면 다시 접어두면 됩니다.
또 하나는 레인보우고 그 어디에도 안전을 위한 구명조끼나 튜브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재난구조전화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연육교가 개통되면서 수많은 공직자들이 사진도 찍고 축하도 하면서 걸었을텐데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았을까요?
안전불감증이 심한 것 같습니다.
1.3km 거리에 우도에 내려오는 역사와 내력들 대한 설명이 전혀없었고 우도를 둘러싼 섬들과 육지의 지명 안내판이 없습니다.
그냥 감으로 저곳이 팔영산이고 저쯤이 천등산이겠거니 유추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관광객들에 대한 서비스정신이 부족해보입니다.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공직자로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막대한 국가예산이 들어간 레인보우교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개선해야 할 것들이 너무많습니다.
제발 이러지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