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향운대와 허공다리골, 칠선계곡과 초암능선...

[山學童子]

[2010년도 제 18차 산행]

1. 일자: 2010. 05. 14 ~ 15

2. 날씨: 맑음

3. 인원: 6명(첫날 4명)

4. 대상: 향운대, 칠선골과 초암릉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소재

5. 코스

1) 첫날 광점동~향운대~영룡봉~광점동 (도상 10㎞, 9시간 25분 소요)

광점동(10:25)~어름터/독가(11:20~12:00)~삼각점(759m)~지계곡~능선복귀(14:15)~향운대(14:40~16:15/늦은점심)~영룡봉(14:55~17:10)~청이당고개/쑥밭재(17:42)~지능선~허공달골~어름터(19:15)~광점동(19:50)

2) 둘쨋날 추성동~칠선계곡~초암능선~추성동 (도상 12㎞, 14시간 소요)

추성동(07:05)~용소~문바위~주등로복귀(08:14)~통제데크(09:25)~청춘홀(09:45~11:32/늦은아침)~칠선폭포(11:52~12:02)~대륙폭포(12:18~12:38)~합수점/좌골초입(13:35)~촛대바위(15:35)~촛대봉(16:15)~1252봉(17:15~17:35)~1055봉(17:55)~지계곡~통제데크(19:00)~용소~추성동(21:05)

6. 후기

나는 원점산행을 주로 한다. 종주나 횡단산행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가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목적한 산에서 원점코스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계곡이 발달한 곳일수록 그런 코스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능선과 이웃한 서로 다른 계곡이 합해지기도 하고, 계곡은 그 능선을 삼키기도 한다. 아흔 아홉 골을 품은 지리산은 훌륭한 대상지다. 추성동만 보더라도 칠선계곡과 국골, 그리고 어름골이 합해지고 상내봉능선, 두류능선, 초암능선, 창암능선이 그 인근에 꼬리를 내린다. 때문에 능선이나 계곡을 엮으면 크고 작은 다양한 원점산행코스가 만들어진다.

이제 얼마 후면 나의 지리산 산행도 덕산지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데 차량운행거리가 길어지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횡단산행. 이것을 두 번 반복하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이 개념을 영남알프스에서 시도한 적이 있는데 지리산에서도 적용하고 싶다. 덕산과 마천이 좋은 예다. 즉, 덕산지구에서 반대편인 마천지구로 넘어가 다시 되넘어오는 것이다.

마침 칠선계곡을 안내해달라는 한 지인의 요청이 있어 이 개념을 적용하여 이번 산행계획을 세웠다. 즉, 초암능선으로 내려가 추성에서 하룻밤 묵고 칠선계곡으로 오르는 것이다. 계곡은 오르는 맛이니까 칠선이 처음인 그에게도 맞을 듯했다. 덕산 방면에선 어디로 오르내리던 상관없다. 그런데 참여자 중 일부 인원이 다음날 합류키로 하면서 지리산에서의 첫 시도는 무산되었다. 해서 이번 산행은 광점동과 추성동 일대를 찾게 되었다. 첫날은 향운대를 찾아 가볍게 몸을 푸는 ‘오픈산행’이었고, 다음날은 칠선과 초암을 연계하는 ‘본산행’으로 마무리했다.

첫날.

오전 6시경 부산을 떠나 솥바위의 전설이 서린 의령 남강 변의 정암루(鼎巖樓)에서 아침을 해먹고 국도와 지방도를 경유하여 광점동(筐店洞)에 도착했다. 산행 후 하룻밤 묵을 곳을 기웃거리다 덕천산장에 여장을 풀었다.

광점동이란 이름은 1500년경, 정심스님이 한 노파와 살면서 싸리를 꺾어 광주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렸다는 데서 광주리점으로 불리던 것이 변했다고 한다. 광점동엔 옛날 석빙고였던 어름터와 왕이 올랐다는 어영골이 있고 어름터 부근에 야생 오미자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낭 재정리 후 산장주인이 내어준 오가피 차 한잔을 마시고 산행에 나섰다. 언덕배기를 넘어 얼마간 임도를 따르자 시멘트다리가 걸려 있는 계곡과 만난다. 어름골이다. 소폭과 무명소 주변으로 수달래가 흐드러졌다. 수달래를 감상하고 있으니 일행이 올라온다.

여기서 어름터 부근 임대봉씨 독가까진 쉬엄쉬엄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무명의 폭과 소와 담이 잇달아 나타나는 완만한 골짝은 오월의 신록과 햇빛이 어우러져 눈부시다. 독가에 다다라 계곡을 벗어날 무렵 뒤따르던 일행이 뱀과 마주친 모양이다. 뱀은 상상만 해도 몸이 움찔해진다. 특히 아침나절 계곡 변의 바위를 손으로 잡고 오를 때 조심해야 한다. 몇 년 전 거림에서 도장골을 오를 때 바위 턱을 잡고 올라서는 순간 일광욕을 즐기는 독사 세 마리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없는 독가를 둘러보고 계곡을 건너 배낭을 내렸다. 광점동을 떠난 지 한 시간만이었다. 이 주변에 어름터가 있는 모양인데 옛날 석빙고가 있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었다. 학꽁치와 문어에 소주와 막걸리를 곁들이다 보니 40분이 금세 가버린다.

이제부터 왼쪽 계곡을 버리고 오른쪽 능선으로 오른다. 삼각점이 박힌 봉우리와 839봉을 지나자 능선은 개활지처럼 펼쳐진다. 이런 데서 능선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내림 길에선 본 능선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도 오름길이라 덜한 편. 여기서 향운대로 가는 길은 두 가지. 계속 이 능선을 잇든지 아니면 오른쪽 지류를 거슬러 이 능선 안부로 올라서든지 해야 한다. 어차피 몸푸는 오픈산행이지 않은가. 능선을 버리고 지류를 거슬러 오른다. 산길은 물줄기 주변으로 나 있었다. 족두리풀 아래 꽃이 숨어 있는 것을 일행이 알려준다. 처음 보았다. 다음날 칠선골 선녀탕에서도 보게 된다. 물줄기가 끝나는 곳에서 길 흔적이 희미하여 산죽과 너덜을 따라 안부로 치고 올랐다.

능선 안부에서 잠시 쉬었다. 두류능선 영리봉(1479)에서 북쪽 어름터로 뻗은 능선이다. 왼쪽 산죽 사이로 나 있는 사면 길을 따라 두어 구비를 감아 돌자 향운대다. 바위틈 속 움막은 기거하지 않은지 오래된 듯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지리산에는 공부자가 많다고 한다.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하산할 때는 원상태로 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그 옛날 암자가 있었을 법한 공간 뒤로 집채만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렀고, 그 앞으로는 탁 트였는데 독바위와 새봉, 그리고 웅석봉이 바라보였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오후 4시 15분 향운대를 나섰다. 이제 이 길로 올라 만나는 두류능선 상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향운대는 두 번 만에 찾은 셈인데, 작년 6월 두류능선으로 올라 국골로 하산하기로 하고 영룡봉 못 미친 안부에서 일행을 두고 혼자 내려갔다가 찾지 못하고 되돌아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못 가서 그때 되돌아섰던 지점에 닿는다. 무엇이든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또 한번 느낀다. 그땐 한참 내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안부에 올라 배낭을 내렸다.

이곳에서 영룡봉까진 10여분이면 족하다. 밧줄이 달려 있는 한 봉우리를 넘어 안부로 살짝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되는 것이다. 4시 55분 영룡봉에 올라서자 못 보던 비석이 서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함양군에서 세워놓았는데 영룡봉이라 새겨져 있다. 영룡봉이란 이름도 처음이다. 그 전엔 하봉의 소년대와 달리 이곳이 말봉이나 영랑대로 알고 있었다.

지리산의 주능선을 비롯해 서북능선과 동부능선이 죄다 조망된다. 서봉과 어깨를 맞댄 남덕유산이 아스라하다. 다만 중봉이 보이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 국골사거리와 얼레지가 군데군데 군락을 짓고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 쑥밭재인 청이당고개에 도착하니 두어 개의 표지기가 달려 있다. 지난 3월 이곳에 왔을 때는 없던 것들이다. 오른쪽에 조개골의 한 지류가 1~2분 거리에 있고 바로 아래에 청이당 터가 있다. 이 곳이 태극능선 종주자들에게 식수 보충지이자 유평과 광점동을 잇는 고갯마루다.

이제 왼쪽 지능선을 따라 허공달골로 내려서야 한다. 본 능선으로 직진하면 독바위와 새봉으로 이어진다. 허공달,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허씨 성을 가진 사람이나 달과 연관이 있을 듯.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가끔 산죽이 나타나는 산길은 유순하기 그지없다. 독가 맞은편에서 오전에 올랐던 길과 합류하고 광점동까진 편안한 길을 따랐다. 부담 없이 행한 오픈산행이었다.

다음날.

오전 7시 5분 추성동을 나섰다. 계획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출발이다. 지난밤 2차로 합류한 일행과 더불어 꽤 마신 탓이다. 산과 사람과 술이 좋았던 하룻밤이었다. 칠선교 위에서 칠선골의 지류인 국골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키고 좌측 용소 쪽으로 길을 잡는다. 오른쪽은 장구목을 넘어 두지터로 이어지는 질선계곡 본 등산로다.

옛날 식량창고였던 두지터는 하산 때 시간이 되면 들러볼 것이다. 칠선골이 처음인 일행이 두 명이라 용소와 두지터를 배려하고 싶었다. 결국 두지터는 못 가보고 하산했지만. 용소의 시퍼런 물은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기세다. 문바위를 지나는데 독사가 있다고 뒤따르던 일행이 야단이다. 지리산 일대에 뱀이 많은 모양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뱀을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뱀이 살 수 있는 높이의 한계는 얼마쯤 될까. 언젠가 천 고지 이상에서는 못산다고 들었는데, 그 설은 덕유산에서 깨지고 말았다.

무덤을 지나 칠선계곡 본 등산로에 들어섰다. 추성동 주차장에서 1시간 10분이 걸렸으니 두지터를 경유하는 것보다 시간 절약은 된 셈. 선녀탕까진 오른쪽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만 들으며 진행한다. 옛 칠성동 마을터를 지나 한 구비 돌아서니 키 낮은 산죽 사이로 안오리마을 터로 가는 샛길이 보인다. 10여분 후 선녀탕 앞 목교를 건너 배낭을 내렸다. 어제 보았던 족두리풀이 여기도 있다. 목욕하는 선녀들을 상상하며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칠선계곡은 곰과 일곱 선녀의 전설이 서린 골짝으로 곰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1964년 등산로 개척 당시 개척단 대장 고 김경열 옹이 주민의 말을 빌려 그 당시에도 많은 곰이 잡혔다고 한다. 선녀와 얽힌 전설은 이렇다.

곰의 세상인 칠선골에는 일곱 선녀가 곧잘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 어느 날 늙은 곰이 선녀들에게 연정을 품고 졸개를 시켜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틈 나뭇가지에 감춰버렸다. 실은 나뭇가지가 아닌 사향노루 귀에 잘못 걸어둔 것이다. 사향노루는 선녀들이 알몸으로 옷을 찾아 헤맬 때 귀에 걸린 옷을 가져다 주었다. 선녀들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 은혜로 만복대에 집단 서식하던 사향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옮겨와 왕국을 차리게 했고, 곰은 국골과 한신골로 쫓아내 버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최화수씨가 쓴 <지리산 365일> 제 1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전 4권으로 1990년 5월 발행되었는데 그 전에 ‘지리산 르포’ 형태로 국제신문에 연재된 것이다. 나는 1989년경 이 연재물을 스크랩까지 하며 즐독했으며, 책이 발행되자마자 구입하여 지금껏 소장하고 있다. 전공관련 책은 버린 지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 내가 가진 지리산 책이라곤 고 김경렬 옹의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1, 2>권 정도였고 그 이후 이종길의 <지리산> 등이 있다. 이 책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지리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선녀탕에서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하늘로 오른다는 비선담 출렁다리를 건너 목재계단을 올라서서 왼쪽으로 안오리마을 터에서 나오는 샛길을 확인하고 통제데크를 넘었다. 이미 시장기가 돌았지만 그래도 아침은 청춘홀에서 먹기로 했다. 10여분 후 왼쪽으로 패인 지류 조금 못 미친 곳에서 계곡을 건너 다시 10여분쯤 올라가자 청춘홀이다. 구조목 09-10지점에서 왼편 계곡 쪽에 있다.

청춘홀의 유래는 목기를 만들며 청춘을 다 받쳤다는 설과 일면식 없는 청춘 남녀가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이 홀에 들어섰다가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해장 술로 시작한 아침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칠선교를 건넌 후부터 용소, 선녀탕, 비선담 그리고 청춘홀 닿기 전 계곡을 건넜으니 네 번 건넌 셈. 바로 직전, 즉 네 번째 건넜던 지점은 조금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다. 창암능선 자락에 붙어 칠선폭포를 향해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패인 지류를 건너 8분쯤 오르자 칠선폭포가 눈 앞에 나타난다.

계곡으로 내려서서 색시처럼 다소곳하면서도 한 곳으로 끌어 모아 내뿜는 물줄기를 보니 부드러움이 강인한을 누른다는 말이 실감난다. 혹자는 칠선골의 대표를 대륙폭포라 하지만 나는 이 칠선폭포가 아닌가 싶다.

왼쪽으로 지류인 대륙폭포골이 갈라지는 곳에서 본류를 건넜다. 왼쪽은 대륙폭포 가는 길이고 본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나 있다. 대륙폭포는 칠선폭포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칠선폭포가 각선미를 자랑하는 여성이라면 대륙폭포는 근육미를 내세운 남성이랄까. 어쨌든 웅장하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다산의 <유세검정기>에 나오는 말이다. 즉, 후득이는 빗방울에 옷자락을 적실 각오 없이는 세검정의 진면목을 구경할 수가 없다. 정말 좋은 것은 싫은 일을 감내한 뒤라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 2006년 10호 태풍 ‘우쿵’이 오는 날 장대비 속에서 산을 넘고 계곡을 몇 번이나 건너서 영남알프스 학소대폭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 앞에 서자 굉음을 울리며 나를 덮칠 듯한 기세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 때 많은 것을 느꼈다. 이 대륙폭포의 진면목도 그런 상황에서만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다.

20여분 폭포를 감상하고 폭포 오른쪽 벼랑으로 올라 상단에 잠시 머물렀다가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이 골짝은 초행길이다. 골짝은 별 특징 없이 합수점까지 이어진다. 합수점에서 왼쪽 지류로 방향을 잡았다. 촛대봉 지능선을 친구삼다가 초암능선 자락으로 붙어 하봉 쪽으로 이어져 있는 지류다. 대륙폭포골 본류는 중봉으로 이어지는데 고도 1300 부근에서 하봉 방면으로 한 지류가 나 있다.

합수점부터 이끼폭포, 가느다란 협곡 등 원시적 비경이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 길 잇기는 어렵지 않다. 계곡을 따르다 여의치 않으면 왼편으로 고집하면 되고 간간이 표지기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 정도 오르자 촛대바위 옆에 섰다. 초암능선 상에 선 것이다. 이 능선은 하봉 소년대에서 북쪽으로 뻗어 촛대봉을 일으키고 국골이 칠선골에 합해지는 곳에서 꼬리를 내린다.

언젠가 주능선 종주를 하면서 이 초암능선을 들머리로 잡고 오른 적이 있다. 그 때는 배낭도 무거웠거니와 날이 더워 직등으로 오르지 않고 주로 우회했다. 해서 이번에는 직등으로 내려갈 참이다. 그래도 그땐 촛대바위엔 올라봤으나 이번에는 술기운도 있고 해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오후 4시 18분 마침내 이번 산행의 최곳점인 촛대봉에 올라섰다. 촛대바위와 주능선, 그리고 소년대를 비롯 그 아래 바위지대를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피로가 풀어지는 기분이다.

이제부터 하산이다. 1252봉에서 두류능선을 바라보는 것 말곤 그냥 날등을 타고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두류능선 조망까지는 참 좋았다. 그리고 계속 능선을 따르다 얼마나 갔는지도 모르고 갈림길이 나왔을 때 왼쪽으로 들어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아니 생각은 있었다. 아마 나를 제어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이곳이 염소막과 용소 위 무덤으로 갈리는 지점이라고 선입견으로 판단해버린 것이다. 나는 이 같은 버릇이 오름길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는 반면 하산시 어쩌다 나타나곤 한다. 그때마다 내려올 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런대도 또 발생한 것이다.

불과 얼마 안 내려가서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갈림목이나 조금 이상한 곳이라면 반드시 지형도나 컴퍼스 등의 준비한 자료나 도구로 현 지형을 확인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고도 잘못되었다면 더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보다 더 못한 사람이라며 자괴하면서 되돌아 올라가지 않고 그냥 지계곡을 치고 내려갔다. 단지 어디에 떨어지는 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잘못을 하고도 되돌아가지 않았고 지형도도 꺼내보지 않았던 것이다.

한 시간 남짓 내려오자 계곡이 열리는데 뜻밖에도 통제데크 바로 코 앞이었다. 통제데크엔 아무도 없었으나 그래도 국공원이 지키는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지금이 오후 7시니까 국공원의 퇴근시간은 6시. 한 시간이 지났는데 있겠나 싶어 살금살금 통제데크로 갔다. 얼마 후 일행이 합류한다. 나는 이 실수를 이번엔 가슴에 각인시켰다. 다음 산행이 기대된다. 끝.

☞ 사진(첫날)

☞ 사진(다음날)

▼ 걸어간 길

[김정희*22기]

그 많은 능선과 골짜기 이름을 우째 다 알고 계시는지...존경스럽니다..^^

[山學童子]

누구나 아는 것을 조금 추가한 것 뿐입니다. ㅎㅎ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