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읽은 책에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있었다.
파키스탄의 한 부족인 칼라쉬마을에는 바샬리라는 금남의 집이 있는데
이곳은 이 마을의 여자들이 출산을 하거나 생리기간 중에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남자는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고 오직 여자들만이 드나 드는데
불을 피울 수도 없어서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음식도 밖에서 날라 주고 오직 먹고 쉬고 자는 용도의 장소라고 한다.
여자들에게는 귀찮고 힘든 시기인 생리기간이나 출산후 회복기간에
일도 하지 않고 몸을 편하게 하며 또한 여자들끼리 모이니
여러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참 괜찮은 제도 일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들에게도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생리기간에 예민하고 마음도 불안하고 여러모로 편하지 않은 기간인데
그런 장소가 있어 며칠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어쩔지
마음으로 부러워 하는데 그에 못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임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지난 여름에도 여자들끼리만 모여 그런 시간을 가졌었는데
참 오랫동안 그 시간이 귀하게 생각 되어 졌다.
하지만 날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주중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걸리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걸린다.
무언가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하는데 무엇을 결정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결국 주말로 결정을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주말이라 못 오는 이들이 역시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래저래 모이기로 한 사람은 7-8명이 되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전국에서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라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 고민을 좀 하다가
모임을 제안했던 언니께서 중간쯤인 대전근처에
황토펜션에 방을 두개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모이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는 남편도 아들도 내가 어디를 가는 것에 대해 호응을 잘해 주는 편이라
내가 없는 동안도 불편해 하지 않고 잘 알아서 하는 편이라
홀가분하게 떠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자가 어디를 훌쩍 떠나는 것이
편하고 쉬운일은 아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어 마구 쌓이고 있었다.
하얀 떡가루 같은 찰눈이었다.
봄으로 달려 가던 산과들은 겨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놀러 가는 내 입장에서는 참 마음편한 여행이 되겠다는 예감이다.
남편이 기차역에 데려다 주고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봄눈이 내리는 날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으며 기차를 타고 가는 길
창 밖으로 눈 내리는 마을들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꼭 어디가서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여행
일상을 떠나 갈 수 있다는 그 한가지 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일이다.
올해 들어 나는 여러가지 일로 외출하거나 누구를 만나는 일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즈음에 잘 다니던 여행도 거의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별로 즐겁지 않고 누구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도 귀찮아
예전 같으면 어디로 일을 보러 가면
주위에 사는 분 댁에 들려 인사라도 하고 오는 편인데
그것을 안한지도 꽤 되었다.
어제 아침에 비가 내려 좀 질척거려서
밭일 하기는 좀 그랬다.
남편이 집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오미자 묘목을 사러 간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요즘 늘 쳐져 있는 내게 괜시리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것마냥
신경을 쓰고 마음을 맞추어 주려고 애 쓰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미안해진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을 추스려야지 하고
따라 나섰다.
가는 길에 눈이 펄펄 내렸다.
그런데 차 타고 가면서 이래저래 구경도 하고
기분전환 하라고 데려간 남편의 생각과는 달리
웬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나는 두시간 내동
의자에 얼굴을 쑤셔 박고 잠들어 버렸다.
남편은 그런 내가 안타까워서 계속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구~ 저 새들 좀 봐~>
<저 호수 색깔 좀 봐 완전 에머랄드 빛이네~>
하고 말했지만 그 때만 눈을 떠서 좀 보고 역시나 다시 고개를 타래미고
다 왔다고 차를 새울 때까지 그렇게 자고 말았다.
지인들을 만나 나무를 다 싣는 동안도
차에 그대로 몽환히 앉아 있다가 겨우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는 것이 다였으니
남편은 좀 야속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에 감탄도 안하고 좋은 것을 보고도 사진을
찍을 생각도 않는 낯선 모습의 마누라~
나무를 파는 댁에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도
몇팀 있었다.
사람 사귀기 좋아하는 남편은 그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나 귀찮다고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간 집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귀농하여 살아 가는 이야기를 나누는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두들 귀촌해 살면서 사람에게 입은 상처가 대단했다.
나도 사실은 사람으로 인해 입은 상처기에 이야기가 귀에 들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이야기의 결론은 나와 반대의 생각을 가지거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는 궂이 좋아지려고 마음쓰고 애쓰지 말라는 것
매일 만나야 하는 직장상사나 시부모님 같은 가족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 마음씀과 속썩음 대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러모로 나에게 이득이며 발전된 삶이라는 것......
그 때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번쩍하고
새힘과 희망의 빛이 스쳐갔다.
나는 몇달동안 그런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속썩고 있었던 것.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들에게서 원인모를 가라앉음의 실마리를 풀고
오늘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있다.
대전역에서 1차 만남을 가졌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좋은 사람들~
대전역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은 오늘도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여기서 서울, 경기와 김해, 포항에서 오는 이들을 만나고 지하철을 타고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했다.
대전을 여러번 왔지만 지하철을 타기는 처음이다.
대전은 지하철이 한 노선 밖에 없어서 헷갈리지는 않았지만
지하철이라는 말 대신 도시철도 라고 써 있어서 헷갈렸다.
현충원역에서 대전에 사는 경미씨내외의 마중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검은콩으로 하는 칼국수와 수제비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림이 있는 식당은 카페 같았다.
위에 걸려 있는 꽃은 조화가 아닌데 저렇게 예쁜색을 입었는지 궁금 했는데
물어 보지 못하고 와서 아직도 궁금해 하는 중이다.
핸드폰을 좀 싼것으로 바꾸었는데 사진이 영 마음에 안든다.
밝은 상태가 아니면 영 아닌 카메라 다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경미씨내외분이 수고를 해 주어 택시도 잘 들어 가지 않는다는 산골에 있는
펜션에 도착했다.
황토로 벽을 한 작은집 한채씩이 우리가 오늘 묵을 방이다.
방안을 따끈따끈하게 불을 때 놓아 우리는 들어 가자마자
이불속에 발을 넣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참 할 이야기도 많고 좋은 이야기도 많다.
시간을 정하지 않고 아무 계획도 정하지 않고 편안한 만남이 있는
오늘의 시간들~
나이도 필요 없고 잘 살고 못 사는 경제적 차별도 필요 없이
그냥 사람이 좋아 만나는 이 시간
우리중에 나는 막내이고 가장 큰 언니는 나와 열 아홉살이 차이 나지만
나이를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의 힘듬을 이야기하여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보물창고를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만나자마자 미뤄 두었던 이야기 한마당을 펼친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마누라로
살아가는 이야기 그러나 여자로 산 날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겨우 이틀이지만
여자로 살아 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다.
이번에는 특별히 무엇을 해 먹을 생각없이
그냥 집에 있는 반찬 한가지씩을 가져 오기로 했는데
포항에서 오신 정토님은 금방 낚시해서 잡은 도다리와
햇쑥을 가져 오셔서 도다리 쑥국을 끓였다.
향긋한 쑥향이 방안 가득 퍼진다.
거의 맏언니격인 흰민들레님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가는 구절판을 해 오셨다.
평소에도 나눔하기를 좋아하시지만 누군가를 주기 위해 이리 손이 많이 가는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희생의 마음이 없으면 어려울 것이다.
내 친구 올리비아는 황태강정을 해왔다.
서울에서 온 홍대언니는 황태졸임을 해 오고 누군가는 땅콩강정도 졸임도 해 왔다.
먹으면서 각자 잘 하는 음식에 대해 강의도 한다.
같은 음식재료라도 각자 잘 하는 것이 있으니 새롭게 배우기도 하는 것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모인 것으로 저녁을 차렸더니 신문지 상이 가득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저녁을 다 먹을 무렵 직장 때문에 모이기를 포기했던
장성에 가을바람님과 군포의 산목련님이 밤이 늦어 달려 왔다.
남이 해 주는 음식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좋은 기분이 된다.
저녁먹고 설겆이를 끝내고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대추차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정토님이 나에게 대추를 샀다.
그래서 서로간에 택배비를 아끼겠다고 만나면서 주려고 가지고 갔는데
모두들 그 대추를 보더니 대추차를 해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두가 좋다니 아낌없이 내 놓는 정토님
그래서 즉석에서 대추차를 끓였는데 황토방과 대추차 끓는 냄새가
아주 좋았다.
종이컵 하나에다 이름을 써서 1박2일을 쓰느라고 종이컵 모양이 말이 아니다.
무엇을 해도 아깝지 않은 마음 이 종이컵의 대추차에 다 들어 있다.
잠자리는 방이 두개라서 복불복 사다리게임을 해서 정했다.
여럿이 모여 무엇을 하든 게임을 하나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아침해가 똥구녕을 후빌 때까지 늦잠을 잤다.
먼저 일어난 이들은 아침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역시나 이야기 한마당이 벌어지고
건넌방 식구들이 과일과 차를 날라다 줄 때까지 그렇게 아무 걱정 않고
아침을 맞았다.
아침은 경미씨가 팥국물을 내오고 찹쌀 옹심이를 만들어 내 주어서
옹심이 든 팥죽을 먹었다.
팥물위에 동동 뜬 옹심이 새알만큼이나 크고 작고 다른 우리들이지만
언제나 마음은 같은 색이다.
아침 먹고 차를 마시며 오늘은 돌아갈 궁리를 했다.
짧은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고 추억에 남을 일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였다.
본래는 근처 온천을 가기로 했었는데 온천은 언제나 갈 수 있는 일이고
더 남을 만한 무언가를 궁리하다가니 경미씨가 무주로 귀촌한 선배언니네로
일을 보러 가야해서 같이 온천을 못 간다고 하는데 그 언니댁은 나도 아는 댁이었다.
주변 경관이 좋고 집도 멋지게 지어서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아
그곳을 따라 가도 되겠냐고 졸랐더니 함께 오라고 했다.
결정~
유명관광지는 언제 가도 갈 수 있지만
개인이 사는 집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가기가 쉽지 않다.
이 언니는 작년에 귀촌을 했는데 나 보다 더 깊은 산골에 자리를 잡았다.
댕댕이덩굴로 공예품을 만들며 산골생활을 즐기는데
갑자기 갔는데도 집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밥상 가득 음식을 차리셨다.
황태고추장졸임, 도라지무침, 시레기장국, 동치미,고사리볶음,명이나물
톳두부무침은 올리비아가 가지고 온 것을 무쳤다.
음식맛도 좋았지만 멀리 첩첩의 산을 바라보며 먹는 자리도 좋아
음식맛을 더하게 해 주었다.
언니의 남편분은 여자들이 하도 많으니 쑥스러움을 좀 타셨는데
열명이나 되는 이쁜 여자들하고 언제 또 밥을 먹어 보겠냐고 내가 너스레를 떨어서
같이 드시느라 진땀 좀 빼셨다.
점심을 먹고는 언니가 만들어 놓은 댕댕이덩굴공예품을 구경했다.
이제 배운지가 1년이 좀 넘으셨는데 다양하게 응용도 하고 솜씨가 많이 느셨다.
특히 댕댕이를 삶을 때 시간을 달리해서 색을 다양하게 한 것과
바구니의 손잡이를 뜨개바늘로 떠서 만든 것은
이 언니만의 노하우이며 개발품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기존에 하던 일을 놓았을 때
취미로 할 수 있는 자기일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댕댕이 공예도 쉬운 일은 물론 아니다
산과 들에서 댕댕이를 채취해서 껍질을 까고 물에 숙성을 시키고
하는 일들이 분명 힘들지만 공예품으로 만들어져서
귀하게 쓰임 받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체의 자존감
그런 것이 좋아 보인다.
모두들 구경도 하고 한 두개씩 사기도 했다.
나는 귀 달린 다용도 삼태미를 하나 샀다.
해발 700m 산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아직도 개울에 얼음이 그대로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 한켠에 이미 도착해 있는 봄바람을
이길 힘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함께 한 좋은 사람들과의 1박2일 수다 여행
마음에 한껏 훈훈한 봄바람과 정을 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먼저 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고 메시지를 넣어 주었다.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컴플렉스가 있었는데
어디가서 놀다가 저녁에 집에 오면 혼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었다.
남편과 같이 갔다가 오면 괜찮은데 혼자 갔다 오면 그랬는데
그 일을 알게 된 남편의 배려로 내가 집에 오기 전에
남편이 먼저 마중을 나오고 반가이 맞아 주고 하고 부터는
그 증상이 없어지고 편하게 되었다.
플랫포옴을 막 빠져 나오니 남편이 기다렸다가 짐을 받아 준다.
여행에서 돌아 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여자라는 그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다.
첫댓글 부러워요~~여자들의수다~~~
참 아름다운 삶이예요~^^*
그렇지님의 글은 항상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참 좋은 시간을 보내셨네요. 멋진 여인들 . . . *^^*
참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