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위대한 인간혁명의 삶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날, 젊어서 병으로 부인을 잃은 벗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굳세게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지면 안 됩니다.
도다(戶田) 선생님도 젊은 시절에 사모님과 따님을 잃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은 배우자나 자식을 잃거나, 중병을 앓거나, 빚으로 괴로워하는 등
큰 숙업에 직면해야 비로소 깊은 차원의 인생을, 사명의 인생을 살 수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도 애별리고(愛別離苦)를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순조로운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언젠가는 힘든 일에 직면합니다.
그때 당신은 큰 경애로, 모든 사람을 격려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숙명을 사명으로 바꿔야 합니다. 아내는, 당신을 부처로 만들어주려는 것
입니다. 지금이 바로 부처가 될 때입니다." 장년부의 눈은 어느새
깊은 사명의 빛으로 빛났습니다. 어떤 면에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겠다고 일념을 강하게
전환하면,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됩니다. 아니, 겨울을 그대로 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숙명전환과
인간혁명의 드라마는, 그 사명을 깊이 자각한 순간부터 크게 펼쳐집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인생에는 괴로움이 있다.
괴로움이 없으면, 유락(遊樂)이라는 참된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그 점을 잘 알면 삶 자체가 즐거워진다. 이것이 신심의 진수(眞髓)다."
그리고 (도다)선생님은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어떠한 조직이나 단체도, 커지면 여러 가지 문제나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반드시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 크게 발전
하는 것이, 묘법(妙法)의 힘이자 가치창조(價値創造)다.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어려움을 비약하는 힘으로.
그 원동력이 신심입니다. 학회활동입니다.
힘든 싸움을 이겨낸 만큼, 숙명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더 큰 자신이 됩니다.
'신심한 덕분에 이렇게 건강해졌습니다.' 나는 날마다, 많은 사람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보다 기쁩니다.
도다 선생님은, 병으로 고생하는 동지를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돌에 걸려 땅에 넘어지면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병이라는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어 신심으로 이겨내라."
"인생에 병이 없으면 재미없다. 법화경은, 부처도 병에 걸린다고 설한다.
천태대사의 해석에 따르면, 모든 중생에게는 병이 있다. 왜냐하면 중생을
구하려면, 부처도 병을 앓아봐야 중생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은 '원겸어업의 법리'를 설합니다. 보살이 사람들을 구하고자
서원(誓願)하고, 그 서원을 완수하려고 스스로 원해서 악세에 태어난다는 뜻
입니다. 신심을 관철하며 꿋꿋이 살면, 어떠한 고뇌에 맞닥뜨려도 '숙명'을
'사명'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함께 싸우는 동지가 있습
니다. 격려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생기발랄한 '생명과 생명의 촉발'이,
얼마나 건강하고 장수하는 활력의 원천이 되는지 모릅니다.
학회가 바로, 가장 존귀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안전지대입니다.
<제법실상초>에는 "모두 지용의 보살의 출현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어서 1360쪽)고 씌어 있습니다. 제목을 부를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깊은 숙연(宿緣)인가. 대성인(大聖人)은
"니치렌과 동의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 (어서 1360쪽)라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살고, 제목을 부르는 청년은 모두 가장 존귀한
지용보살입니다. 벗의 행복과 광선유포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부른다,
학회활동을 하고 절복에 도전한다, 이 자체가 '서원'을 이루겠다는 훌륭한
기원이고 '서원'을 이루려는 실천입니다.
지용보살은 법화경 용출품에서, 대지 밑바닥에서 나타나 말법의 광선유포를
서원했습니다. 우리는 서원한 그대로 창가학회원으로 태어나 투쟁하고 있습
니다. 우리는 서원을 이루겠다는 기원으로, 깊고 강한 유대를 맺었습니다.
창가학회는 '우리는 지용보살'이라는 자각으로, 힘차게 일어선 불칙(佛勅)의
단체입니다. 얼마나 존귀한가. 이러한 '지용보살'의 각오가 없으면,
삼류강적(三類强敵)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또한 악세말법에, 광선유포도
추진할 수 없습니다. 지용보살은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힘든 곳에서
힘차게 일어나 출현합니다. 지금 맞닥뜨린 어려움은, 신심의 눈으로 보면
스스로 원한 사명입니다. 그렇게 확신하고 전진하는 일이 '서원을 이루겠다
는 기원'이라는 증거입니다. 직장 일, 경제고(經濟苦), 인간고, 병고 등
눈앞의 과제를 이겨내려면, 맹렬한 기세로 기원해야 합니다. 단호히 승리
의 실증을 보여주는 일이, 같은 괴로움에 처한 벗을 격려하는 빛이 됩니다.
'숙명을 사명으로 바꾼다' 이것이 '원겸어업'의 기원입니다.
용기를 불러일으켜, 자타 함께 행복해지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거기에 깊은 자비가 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남의 행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자신의 괴로움을 유유히 내려다볼 수 있는 경애가 열립니다. 자신도 괴로움
이 있지만, 그 괴로움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난(難)이 옴을 가지고 안락(安樂)"
(어서 750쪽)이라고 생각하고, 광선유포를 위해 진지하게 기원하고, 학회활동
을 하러 용감히 나섭니다. 광포를 위한 기원은, 불보살(佛菩薩)의 기원
입니다. 커다란 괴로움을 끌어안고 기원을 많이 한 만큼, 경애를 크게 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작은 괴로움은 모두 그 경애에 감싸여 이겨
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극리(極理)
가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과제를 기원하는 일과, 남의 행복을 바라는 광선유포의 기원은
하나입니다. 함께 나아가는 힘입니다. 자신의 승리가, 광선유포의 실증이
됩니다.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창가학회의 발전을 강성히 기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일에도 지지 않는 자신이 됩니다. 반드시 왕자(王者)와 같은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지용보살은 어떠한 때에도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느니라"
(법화경 466쪽)입니다. 늘 '수희(隨喜)의 마음'을 일으켜 춤추듯 투쟁합니다.
지용의 사명을 자각하는 일은, 자기 생명의 근원(根源)을 아는 일입니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그 궁극(窮極)의 의미를 아는 일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사명을 자각하는 일보다 더 큰 환희는 없습니다.
이만한 충실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자랑은 없습니다.
대성인은 유배지 사도에서,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희열(喜悅)은 한량(限量)
없도다" (어서 1360쪽) 하고 선언하셨습니다. 지용의 생명을 나타내는 일은,
인간의 무궁한 내발성(內發性)을 개화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의식을 근저에서 변혁해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게 하고 결합시켜,
평화를 이룩하는 대위업입니다.
질문회가 거의 끝날 무렵, 신이치는 맨 뒷줄에서 몇번인가 손을 들었다 내리
는 부인을 놓치지 않았다. 신이치는 그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얼굴이 몹시
야윈 부인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뭔가 질문이 있군요. 뭐든지 말씀해
주시지요." 부인은 힘없이 일어나 말했다. "저, 제 남편은 병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부인의 가족은 계약노동자로 브라잘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한 집안의 기둥을 잃은 지금, 더는 농사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부인에게는 아직 어린 자녀가 몇명 있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할
무렵, 같은 지역에 사는 학회원한테 불법 이야기를 듣고 1주일 전부터 신심을
시작했다. 그러자 상파울루 시내에 있는 공장에 일자리가 생겼다.
게다가 살 집도 제공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타국 땅에서 살 생각을 하니, 불안해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업이
깊은 여자라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걱정입니다…." 신이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신심을 하는 한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그러기 위한 불법입니다.
게다가 당신이 지금 불행한 처지에 놓여 괴로움을 겪는 이유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존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숙업 같은 것에 얽매여
마음이 비참해지면 일체가 패배입니다."
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이치를 바라보았다. 부인은 소개자인
학회원한테, 남편과 사별해야 하는 이유가 과거세에 죄를 저질러 나쁜 숙업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확실히 불교에서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남에게 나쁜 행동을 하여 나쁜 과보(果報)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설한다. 그러나 그뿐이라면 인간은 과거세의 죄를 모르기 때문에
막연히 불안에 떨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또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 되어,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은 이러한 표면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틀을 부수고 근본의 인과를
밝히고, 구원원초(久遠元初)의 본디 갖춘 청정한 생명으로 되돌아 가는
방도를 교시하셨다. 그 방도가, 지용보살의 사명을 자각하고
광선유포를 위해 사는 일이다.
신이치는 말했다.
"불법은 원겸어업을 설합니다. 이것은 불도수행을 한 공덕으로 행복한 환경
에 태어날 수 있는데도, 스스로 원하여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 태어나 묘법을
홍통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원래 여왕처럼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생활하던 사람이, 신심을 해서 행복해지면 아무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들고 가난하여 주위에서 깔보던 사람이, 신심을 한 결과 행복해지고 사회의
리더가 되면 불법의 위대함을 훌륭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모두 신심을
하고 싶어 하겠지요. 가난하여 몹시 고생하던 사람이 그것을 이겨내면, 생활
고로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또 병으로 괴로워
하던 사람이 힘을 되찾아 건강해지면, 병을 앓는 벗에게 용기의 등불을 밝힐
수 있습니다. 또 가정불화로 울기만 하던 사람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가족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과
사별하고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 땅에서 당신이 행복해지고 훌륭하게
아이들을 키워 내면, 남편을 잃은 모든 부인에게 귀감이 됩니다. 신심을
하지 않는 사람도 당신을 따르고, 당신에게 지도를 받으러 올 것입니다.
즉 고뇌가 크고 깊을수록, 불법의 공력(功力)을 훌륭하게 증명할 수 있습
니다. 숙업은, 사명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가난한 김양식업자의 아들입니다. 몸이 병약하여 폐병을 앓으면서,
도다 선생님과 함께 사업이 도산하는 괴로움도 맛보았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기 때문에, 민중의 리더로서 이렇게 광선유포를 지휘할 수
있는 겁니다."
신이치는 더한층 힘주어 말했다.
"여러분은 저마다 사정이 있어 '우연히' 브라질에 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용보살로서 브라질 광선유포를 위해 이 나라 사람
들을 행복하게 하고, 이곳에 영원한 낙토를 구축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니, 니치렌대성인이 보내신 분들입니다. 이 위대한 지용보살의 사명을 자각
하고 광선유포를 위해 살 때, 흉중에 있는 구원의 태양이 빛나 과거의 죄장
(罪障)은 이슬처럼 사라지고, 환희 넘치고 행복 가득한 인생을 유유히 열 수
있습니다. 당신의 괴로움도 불법의 깊은 눈으로 보면, 본디 유복한 여배우가
무대에서 비극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생극장이라는
무대에서도 해피엔드로 끝나는 스토리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내가 단언하겠습니다. 훌륭한 여배우가 비극의
여주인공을 즐기며 연기하듯, 당신도 당당하게 그 슬픔의 수렁에서 일어서는
인간혁명의 위대한 드라마를 연기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은, 인생이라는
광야를 나아가는 개척자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일구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심이라는 괭이로 열심히 땅을 일구고 행복의 씨앗을 뿌려,
끈질기게 노력해야 합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흘린 땀은 주옥과 같은 복운이
되어, 당신을 영원히 장엄하게 장식합니다. 아무쪼록 브라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자신이 받고 있는 대난이, 실은 중생을 구제하겠다
는 소원을 위해 굳이 고뇌를 떠안는 보살의 원겸어업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리고 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대신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듯, 대성인도
지금 대난이라는 고통을 받고 있지만 악도(惡道)에서 벗어날 미래를 생각하니
기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겸어업이 기쁨이라는 말씀은, 이 어서 맨 마지막
부분에서 내린 결론과 일치합니다. "니치렌의 유죄(流罪)는 금생의 소고
(小苦)이므로 한탄스럽지 않노라. 후생(後生)에는 대락(大樂)을 받게 될
것이니 크게 기쁘구나" (어서 237쪽) 원겸어업은 불법에서 보면 숙명전환의
결론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삶의 자세'입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은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또 그 의미를 찾아내고 발견
하는 것이 불법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의미가 없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숙명도 반드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마음의 자세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일념을 바꾸면, 세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불법의
방정식입니다. 숙명도 사명으로 바꾸는 강한 일념은, 현실세계를 크게 바꿉
니다. 그 일념의 변혁에 따라, 어떤 고난도 자신의 생명을 연마하고 향상시키
는 기쁨의 원천으로 바뀝니다. 비애(悲哀)도 창조의 원천으로 바꾸는 것이
불법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그런 삶의 진수를 '법화경 행자'
의 행동으로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투쟁하는 마음'이 즉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투쟁하는 가운데 비로소 생명이 연마되고, 참된 창조적인
생명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난이 닥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정법(正法)을 끝까지 믿어야, 삼세(三世) 영원히 행복의 궤도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일생성불은, 그 궤도를 금세의 자기 인생에서 확립하는 일입니다.
'부단히 투쟁하는 정법의 실천자'가, 대성인이 법화경에서 가르치시는 궁극의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지에 서면, 난(難)이 곧 인간을 형성
하는 참된 기반이 됩니다. "마(魔)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 (어서 1087쪽) 하는 각오로 난을 견디는 정법의 실천자는,
반드시 묘법의 체현자(體現者)가 됩니다. 그리고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이라
고 알아야 하느니라" (어서 750쪽)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
하느니라" (어서 1448쪽)는 큰 경애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철을 달구는데 심(甚)히 불리지 않으면 흠이 숨어서
보이지 않으나 여러번 달구면 흠이 나타나는 것이며, 삼씨로 기름을 짜는데
강하게 짜지 않으면 기름이 적은 것과 같다" (어서 233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어서에서는 "숙업은 헤아리기 어렵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으로 되고 현성(賢聖)은 매리(罵詈)함으로써 시험되느니라" (어서 958쪽)
즉 "숙업은 헤아릴 수 없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이 된다.
현인과 성인은 매리당하면서 시험받는다." "각자는 힘껏 법화경을 믿어
왔으므로, 과거의 중죄(重罪)를 책하여 끄집어 냈느니라. 비유컨대 철을 공들여
달구어 치면 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어서 1083쪽) 즉 "당신들은 법화경
을 열심히 믿었기에 과거세(過去世)의 중죄를 책하여 끌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철을 충분히 달구어 치면 내부의 흠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호법(護法)을 실천하여 단련된 생명은, 방법(謗法)이라는
악업의 불순물을 두들겨 내기에 삼세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시(無始) 이래 생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이 일생에서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만나 방법을 책하고, 자신의 생명을 단련하여 숙명전환을 이루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불계의 경애를 흉중에 확립하는 일이 '일생성불'입니다.
이 니치렌불법의 투철한 실천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난의 의미를
완전히 바꿉니다. 고난은, 더는 피해야 할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성불을 돕는 적극적인 요소가 됩니다. 물론 고난에 처한
사람이 고난과 싸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비록 현실에서 고난에 처했다 해도 크게 바꾸는 비법을 알고 '악과
싸웠기에 지금 내가 고난에 처했다'고 이해하여 '이 고난을 이겨내면 위대한
성불의 경애를 열 수 있가'고 확신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강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궁극적인 불법의 진실을 생명 깊이 체득한 사람들이,
우리 창가학회의 동지라고 믿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동지는, 고난에 부딪혔
을 때 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밝습니다. 왜냐하면 숙명전환이라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선(善)의 리듬을 이미 체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렇게 체험한 동지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숙명과 투쟁하고 광선유포의 신심이 확고한 사람은, 그 모습
에서 이미 원겸어업이라는 불법 궁극의 진실이 나타납니다.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도 한탄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맞선다,
이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하여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고 위대한 인간혁명의
승리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 우리 구원의 동지가 간직한 위대한 경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법자에게 패배는, 고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과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고난은 정말 숙명이 되고 맙니다.
살아 있는 한 싸운다, 살고 끝까지 살아 꿋꿋이 싸운다, 이 인생의 진수를 가르
치신 대성인의 숙명전환이라는 철학은, 지금까지 종교가 답습한 고난에 대한
사고방식을 뒤집은 위대한 종교혁명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숙명전환할 수
있다' '괴로울 때일수록 인간혁명할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반드시
마지막에는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사는 것이 니치렌불법의 신심입니다.
그리고 니치렌대성인에게 직결하여 현실에서 숙명전환의 길을 걸으며,
전 세계에 종교혁명의 대도를 여는 단체가 우리 창가학회입니다.
이러한 자부심으로 더욱더 환희 넘치게 전진합시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감인(堪忍)'의 세계라고 합니다.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 늘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어떠한 슬픔도,
어떠한 괴로움도, 어떠한 숙명도 전부 유유히 이겨내 가장 행복한 경애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이자 창가학회의 '신심'입니다.
자신이나 가족의 병 또는 죽음,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등 살아 있는 한 도전해야 할 과제와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신심'과 '제목'은, 그러한 것을 모두 변독위약하는 힘입니다.
괴로움이라는 독을, 행복이라는 약으로 바꿉니다. 번뇌즉보리로, 괴로움이
깨달음으로 바뀌고 행복으로 바뀝니다. 괴로움이나 슬픔이 클수록, 더 큰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목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묘법을
부르는 사람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나무도 아직 작을 때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립니다. 거목이 되면
어떠한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간도 생명력이 약하면, 작은 괴로
움이라는 바람에 분동하고 맙니다. 사바세계인 이상, 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거목이 되면, 어떠한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습니다. 오히려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인생,
생명으로 인간혁명하기 위한 신앙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는
날마다 자랍니다. 우리가 부르는 제목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날마다 자신
을 복운 가득한 거목으로 성장시킵니다. 10년, 20년 학회에서 신심을 관철
하면 이윽고 거목으로 성장한 복운이 명확히 보입니다. 묘법은 우주 최고의
보물입니다. 제목을 부르는 일은, 날마다 자기 생명에 보물을 계속 쌓는 일
입니다. 한편 생명에 내재된 과거의 죄업(罪業)은, 청정한 물이 고인 물을
밀어내듯 씻겨 내려갑니다. 그래서 완전히 청정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에는 조금 고인 물, 즉 자신의 숙업과 벌이는 싸움도 있습니
다. 그러나 그것도 제목의 힘으로 가볍게 받습니다. 그러므로 '지속'해야
합니다. 이윽고 생명이 완전히 청정해지면 모든 것이 점점 좋아집니다.
반드시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 복운 가득한 '절대적 행복경애'가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즐겁습니다. 명성이나 재산이 없어도 (웃음) 만족합니다.
순간순간이 최고로 충실합니다.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
니다. 어떤 것을 봐도 금새 정사(正邪)를 구별하고 본질을 압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생각할 줄 압니다. 그러한 자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으로 가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어쨌든 광포의 세계에서
끝까지 제목을 부른 사람이 마지막에는 승리합니다. 반드시 '절대적 행복
경애' 즉 '부처의 경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근본은 제목입니다.
이것만 기억하면, 인생은 영원히 반석과 같습니다.
석존 같은 부처가, 왜 이유 없는 비방을 받아야 했는가.
이 점에 관해 석존은 불전(佛典)에서 "그것은 전부 미래의 불도수행자를
위함"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불도수행을 하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박해를 당합니다. 그것이 싫어서 신심을 그만두려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그럴 때 '부처조차도 그렇게 이유 없는 비방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격려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굳이 방편으로서 지금 이러한 난을
일으킨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심에 힘쓰는 사람이 미래영겁에 걸쳐 퇴전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도록 부처가 스스로 난을 받는다, 이것이 부처의 자비
입니다. 우리가 현재 맞닥뜨린 여러 가지 난이나 고생도, 어느 면에서 보면
모두 말법만년(末法萬年)에 걸친 광선유포를 위해서라고 해도 좋습니다.
기나긴 미래를 위해 하나의 '원점'을 제시해, 광포의 '도식(圖式)'과 '모범'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구나, 그때도 그랬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난의 구도다. 그러므로 지면 안 된다. 전부 신심
으로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싸우자' 이렇게 후세의 벗이, 거기서 한없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격려를 퍼 올리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신심하면서 수많은 고난과 벌이는 싸움은, 짧은 이 일생이라는 극장
에서 장대한 광포와 인생의 영원한 승리로 이어지는 드라마와, 일대 서사시를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넓게 말하면, 간부도 당연
히 병에 걸리거나 가족에게 불행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사고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나도
지지 말고 힘내자'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여하튼 성훈에 비추어, 난과 싸우고 묘법 유포를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용자
를 부처가 엄연히 가호합니다. '광포를 위해 힘쓰는 불자(佛子)를 반드시
지킨다' 이것이 석존의 마음이고, 대성인의 대자대비입니다.
그 강성한 기원이 전 우주의 '불계의 역용(力用)'을 움직이고, 게다가 모든
보살, 이승(二乘), 제천(諸天)의 작용과 공명(共鳴)하면서, 소원만족하고
승리한 인생을 연다는 점을 여러분은 확신하기 바랍니다.
전 세계의 곳곳에서 존귀한 광포의 어머니는, 강하게 또 굳세게 단호히
꿋꿋이 살아갑니다. 그 중 미국SGI 부인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인은
일본에서 국제결혼을 한 뒤 1966년에 어린 장남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군인인 남편이 베트남으로 종군하자 부인은 서툰 영어로, 노동일
을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남편이 돌아온 뒤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계속
되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장애인 시설에 맡기라고 했지만, 부인
은 자기 손으로 키워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양복, 전통의복, 냄비….
값나가는 물건은 모두 팔았지만 그래도 식비가 부족했습니다.
왜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는지, 숙명의 파도는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있을 때 지구 간부까지 지낸 부인은 절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광포의 최일선에서 죽을힘을 다해 꿋꿋이 달렸습니다.
어느 날 저녁, 부인은 늘 그랬듯 불단 앞에 앉았습니다. 밤늦게까지 낭랑하게
기원하자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명예로운 학회원이다.
내게는 어본존이 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절대 행복해지지 않을 리가
없다." "환희 중의 대환희" (어서 788쪽)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금 여기서 생활과 싸우고 인생과 싸우고 광선유포를 위해 싸운다,
그 생명에 행복의 아침 해가 혁혁히 떠오릅니다. 대성인이 여성 문하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들은 부처임에 의심(疑心)이 없노라고 생각하면 무슨
한탄이 있겠느뇨." (어서 976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법화경은 '원겸어업'이라는 투철한 법리를 설합니다. 보살은 고뇌하는 사람
들과 동고(同苦)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서원하고 스스로 원해서
악세에 태어납니다. 어떠한 고뇌가 있어도, 어떠한 경우라도, 그 사람이 아니
면 완수할 수 없는 존귀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깊이 자각하면 모든 것
이 바뀝니다. 구원의 '대원(大願)'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곳에 태어
났습니다. 숙명은 즉 사명이 되어, 승리의 역전드라마를 장엄하게 장식하는
무대가 됩니다. 아무리 현실에 어려움이 많아도, 이곳을 떠나서 행복의 대지
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꿋꿋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
큰아들은, 명문 예일대학교를 멋지게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젊고 총명한
경제학자인 큰아들은 이윽고 미국소카대학교(SUA)의 초대 학생부장으로
취임해, 새로운 세계시민 육성에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8월, SUA
오렌지군캠퍼스 제1회 입학식에서, 부인과 남편의 웃는 얼굴이 환하게 빛났
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하던 작은아들은, 이제 달릴 수도
있고 회합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올 1월 일흔아홉살이 된 부인은 의연히
말합니다. "전혀 나이 먹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한평생 광포를 위해,
창가의 정의와 진실을 외치겠습니다!" 어머니는 승리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이런 어머니가 있기에 광포 있도다' 하고 아무리 상찬해도
지나치지 않은, 위대한 어머니들의 대행진곡이 날이면 날마다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광포를 위해 싸우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한없이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날마다 진지하게 열심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창가의 태양인 어머니들이여! '용기'와 '정의' 그리고 '승리'의 환성을 더욱
울려 퍼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굳세고 유쾌하고 현명한 목소리를 더한층
명랑하게 공명시키면서 나아가기를, 나는 한평생 기원할 결심입니다.
도다 선생님도 자주 "원래부터 너무 훌륭하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불법을 넓히기 위해 일부러 가난하고 병든 모습으로 태어났다"
"인생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나 도다는
아내를 잃고 딸까지 먼저 보냈다. 사업도 실패했다. 그런 고뇌를 알기에
창가학회 회장이 되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고생도 하지 않고 괴로움도
없다면, 민중의 마음을 알 리 없습니다. 인생의 쓰라림을 맛본 사람만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업(業)'으로만 받아들이면
소극적이 됩니다. 그것을 '사명을 위해 떠안은 괴로움' '나는 이 괴로움을
신심으로 극복하겠다고 서원했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겸어업은 이 '일념의 전환'을 가르칩니다. 숙명을 사명으로 바꿉니다.
자신이 세운 서원 때문에 나오는 괴로움이라면, 이겨내지 못할 리 없습니다.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고 싶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받는 모멸을 함께 나누며,
불가촉천민들을 괴로운 경애에서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원겸어업'에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비입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태어납니다.
부처는,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불법은,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있습니다.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바랍니다. 행복왕이 되기 바랍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배인 미래부와 어머니들을 격려하는 이케다 SGI회장.
(1996년 6월, 코스타리카)
첫댓글 이케다 선생님은 준비의 중요성에 대해 저희들의 생명에 새기듯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와카야마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 성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기시와다성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케다 선생님은 "누가 살았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잘 몰라서
그 다음 만나 뵐 때 대답을 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그 뒤 이케다 선생님과 함께 나라(奈良)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사전에 철저한 조사를 하여
이케다 선생님의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러한 투쟁을 반복하시면서,
싸움에서 철저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 청년부의 대표와 함께 간사이 본부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할 때의 일이다.
벚나무의 새싹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케다 SGI 회장은, 함께한 청년부에게 "봄이 되면
왜 벚꽃이 피는지 압니까?"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청년부는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라는 말에 "그렇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것은 자연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직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이라는 이케다 SGI 회장의 말에 청년부는 '벚꽃과 조직이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케다 SGI 회장은 말한다.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 때문에 벚꽃은 싹을 틔우려고 해도 틔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서운 추위에 새싹도 꽃도 피지
못하듯이, 중심자가 차가우면 인재도 배출되지 않습니다. 따뜻한 포용력이 있는 중심자 주위에는
새싹도 나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이번에는 시들어 가는 벚나무를 보고 이케다 SGI 회장은
"구도심을 잃은 모습과 같습니다. 성장하려는 생명을 잃은 모습입니다. 구도심이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과 같습니다."라고. ('한계의 벽을 부숴라!' 119, 12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