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농구 최초의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1부 리그 출신 최진수(22, 전 메릴랜드대)가 31일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리는
2011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를 앞두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올해 드래프트는 ‘오세근 드래프트’로 불린다. 오세근(24, 중앙대)을 포함해 상위 로터리 지명 순위 후보에 최진수와 김선형(23,
중앙대)이 이름을 올려놨다. 하지만 최진수는 오세근과 김선형에 밀려 3순위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언론은 최진수를 지도했던 감독 및
스카우터를 대상으로 가장 불안한 요소를 지닌 선수란 평가를 받았다. 로터리 지명 후보군 가운데서도 가장 뒤로 밀렸다.
국내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던 최진수는 프로농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내 전격 복귀, 잇단 대표팀 탈락과 함께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한국농구 적응 불안’이라는 이상 기운이 그의 가능성을 좀 먹고 있다.
도대체 ‘한국농구’가 뭐기에 KBL에서 미국형 농구선수는 저평가를 감수해야만 할까? 이 물음에서부터 최진수를 둘러싼 의문부호를 풀어보자.
25일 수원 한 커피숍에서 최진수를 만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최진수의 부모가 속상해 한다는 얘기를 들렸다. 최근 언론매체에서 쏟아진 최진수 평가에 대한 안타까운 부모의
마음이었다. 최진수는 불안한 요소를 많이 가진 선수였고, 이유는 미국에서 농구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또 상처를 입고 있는
최진수를 만났다.(사진=서민교) |
궁금증 #1 왜 국내 적응이
힘든가?
로터리 우선 지명권을 갖고 있는 4개 구단 감독들의 0순위 후보는 국내에서 검증받은 선수, 오세근이다. 중앙대 52연승을 이끌며 대학농구를
평정한 주역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즉시 전력감이란 얘기다. 김선형도 국내에서 꾸준히 기량을 인정받았다.
역시 오세근과 함께 중앙대를 이끌었다.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 예비엔트리에 들면서 최종 경합을 벌이다 아쉽게 탈락했지만, 이름값을 톡톡히
올렸다. 하지만 최진수는 현역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유재학(모비스) 감독의 눈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유는 “아직 농구를 잘 모르고 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선수”라는 평가였다.
문제는 오랜 공백 기간과 부족했던 실전 경기 감각이다. 매산초등학교 시절 농구공을 잡아 삼일중을 마친 뒤 미국 농구명문 사우스켄트고에
입학했다. 미국농구의 시작이었다. 이후 메릴랜드대에서 국내 최초로 NCAA 1부 리그 유니폼을 입었지만, 2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국내로
급선회하며 ‘떠돌이 신세’로 1년이 훌쩍 넘었다. 만 17세에 역대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며 성인대표팀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번번이
탈락해 결국 본 무대는 밟지 못했다.
최진수에 대한 불안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1대1에 의존한 개인농구와 조직농구에 대한 무지, 수비에 대한 불안이다. 최진수는 인정할 건
인정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했다.
“공격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것은 맞다. 자기 프라이드와 긍지가 없는 선수는 선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비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포지션상 10cm나 작은 선수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기적인 선수라는
것은 이해를 못하겠다. 팀의 에이스는 누구나 이기적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장훈이나 김주성, 방성윤, 김승현 같은 선수들도 개인성향이 강한
선수들이다. 조직 농구가 중요한 것도 안다. 공백에 대한 걱정도 없다. 프로에 입단하면 시즌 개막까지 9개월의 시간이 있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 연습경기와 실제경기 감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궁금증 #2 미국에서 농구를 배운 것이 문제인가?
최진수는 고교시절부터 미국 아마농구 최정상 무대에서 농구를 했다.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최진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의 꼬리표에는 항상 ‘미국형’ 농구가 따라다닌다.
최진수가 가장 억울해 하는 부분이다.
“미국 갔다 온 게 죄인가? 미국에서 농구를 한 것이 마이너스가 되니까 속상한 부분도 있다. 외국선수도 미국에서
데려오는데…. 사실 한 두 번도 아니고 매번 듣는 얘기기 때문에 마음을 비웠다.”
걱정도 됐다. NCAA 1호 선수를 바라보는 어린 농구꿈나무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느낄 수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꿈을 꿀까.
그에게 미국서 배운 농구가 득이 됐는지 실이 됐는지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잃은 것은 없다”였다.
“잃은 것은 전혀 없다. 단지 경기 경험을 조금 덜 쌓았을 뿐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한 가지 포지션으로 쭉 자랐겠지만,
미국에서는 많은 포지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 내 또래 나만큼 많은 선수와 많은 스타일을 경험한 선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선수를 만나도 전혀 위축이 되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서도 미국서 농구를 배운 선수들이 각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고 있다. 김효범(SK)을 비롯해 귀화혼혈선수제도 도입 후
전태풍(KCC) 이승준(삼성) 문태영(LG) 문태종(전자랜드)이 침체된 한국농구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진수가 느끼는 감정의 교차점도 여기서
생긴다.
“한국에서 전혀 선수생활을 하지 않은 선수들도 국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시즌 초반 적응을 못하다가도 곧 바로
한국무대를 평정했다. 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까지 한국에서 농구를 착실히 배웠다. 고등학교와 대학 2년을 미국에서 했을 뿐이다. 한국과 미국
농구, 둘 다 할 줄 안다. 나를 평가한 분들의 얘기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다 스타일이 다르니까. 하지만 나를 본 것은 대표팀 훈련
2주 정도가 전부다.”
지난해 11월 KBL 신인 드래프트 일반인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최진수는 빛났다. 당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은 쉬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신들린 3점슛을 터트리며 슛감을 뽐냈다. 트라이아웃 전날 밤 남몰래 슈팅연습을 하고 나온 결과였다.
화려한 이름 뒤에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다.(사진=KBL) |
궁금증 #3 도대체 어떤 농구를
하나?
대표팀 훈련 2주.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도 최진수가 과연 어떤 농구를 하는 선수인가다. 최진수는 실제로 보여준 것이 거의 없다.
메릴랜드대 시절에는 출장 시간이 적었고, 국내 유턴 뒤 정식경기에 나선 경험이 없다. 지난 2009년 대만 윌리엄 존스컵에서 보여준 화려한
덩크의 추억만 있을 뿐이다.
최진수의 키는 201.8cm다. 몸무게는 94kg. 약간 마른 체형에 100m를 12초대에 뛰는 스피드와 자유자재로 덩크가 가능한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고 있다. 포지션도 3~4번(스몰포워드와 파워포워드)을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 그의 플레이를 평가할 순 없다.
같은 포지션 비교대상으로 최근 주가 상종가를 치고 있는 문태종, 문태영, 윤호영 세 선수를 골랐다. 과연 어떤 선수와 가장 비슷할까.
“정확히 누구와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윤호영과 가장 비슷한 것 같다. 문태종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공격 스타일이다.
문태영은 수비능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공격 성향이 강하다. 몸을 쓰는 농구도 한다. 나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한 점이 있다. 몸싸움 하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고 공격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팀의 조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개인능력이 뒷받침돼야 조직력도 따라갈 수 있다고 본다.
플레이 스타일만 본다면 내·외곽이 모두 가능한 윤호영과 가장 비슷하다.”
최진수가 어떤 농구를 할지는 물음표로 남겨두기로 했다. 직접 코트에서 보여주면 된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농구는 아직 미지의 세계에
불과하다. 올해 만 22세가 된 유망주다. 농구 스타일이 완성되지도 않았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 어떤 팀에서 농구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확실한 것은 가능성이 그 어떤 선수보다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궁금증 #4 드래프트 순위, 어떤 의미가 있나?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이번 만남의 계기도 드래프트 때문이었다. 큰 무대에서 뛰고 온 당찬 청년답게 긴장감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최진수에게는 드래프트 순위 경쟁보다 더 큰 또 다른 의미가 존재했다.
“긴장감이나 부담감은 없다. 몇 번째 순위로 뽑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순위는 상관없다. 요즘 프로농구를 보면
1라운드는 물론 2라운드에서 뽑힌 선수들도 잘한다. 드래프트 현장보다 시즌에 코트에서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신 두려운 것이
있다.”
두려움. 처음 나온 얘기였다. 예민한 가정사를 들출 때나 오리온스 얘기를 꺼낼 때도 “프로는 프로다. 그런 것 신경쓰고 생각할 거면 차라리
운동을 그만 두는 게 낫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던 최진수에게 나온 첫 단어였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혼자 버텨야 했던 외로움과 고독함을 모른다. 누구는 나한테
드래프트를 이벤트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동안 농구를 하고 싶어도 못했던 나에게 드래프트는 농구를 할
수 있는 기회다. 나를 다시 코트로 이끄는 계기일 뿐이다. 1년 넘게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마인드가 많아진 것이
두렵다. 준비를 잘해서 다음 시즌 보여주고 싶다. 나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믿고 하는 것이다.”
최진수는 올해 대구과학대학 스포츠레저학과에 입학했다. 미국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졸 신분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더 이상
연기가 어려워 군 입대를 해야 한다. 그는 프로생활 틈틈이 대학생활도 병행할 계획이다. 2년 뒤에는 편입도 할 생각이다.
이제 드래프트까지는 5일 남았다. 운명의 시간이다. 드래프트 순위보다 어떤 팀으로 가게 될지 더 관심을 모은다. 최진수는 KBL 올스타전도
오지 않겠다고 했다. 드래프트 당일 치러지는 트라이아웃을 위해 몸을 만들겠다고 했다.
최진수는 31일 진짜 도전장을 던진다. 그의 평가는 지금이 아닌 1년 뒤 내려도 충분하다. 아니 10년 뒤 내리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최진수는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상처도 많다. 아직 어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농구를 통해 겪고 있는 성장통은 가혹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이슈를 만들기만 좋아한다. 그래서 속상한 것도 사실이다. 프로에서도 국가대표에서 그냥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