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도요토미의 잔당을 모두 말살하고 천하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치 아래,
영주 단위의 행정구역 체제가 성립된 막부말의 무신정권, 에도 시대.
막부의 개라는 오명속에서도 그 각오된 신념 하에 구체제를 신봉하고 지키려는 집단이 존재하였으니,
그 이름하여 신성조라,
‘신’의 높이에서, ‘성’스러운 신념을 받드는 자들이 모여 이룬 최강의 검객집단이었다.
막부라는 거대한 철벽성지를 보호하는 그들은 개혁을 꿈꾸는 유신지사들과의 끊임없는 치열한
사투끝에 그 장절한 최후에 선 막부와 운명을 같이한 비운의 검잡이들.
막부말의 격동 시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끝은 메이지유신으로 막을 내린다….
벚꽃이 지는 밤......*신성조*
一 場 은밀한 어둠
‘誠(정성-성)’ 의 깃발을 펄럭이며 막부의 주요 세력이 밀집해있는 ‘미부’로 돌아오는 긴 행렬.
유신지사파 암살자들을 처리한 신성조의 귀환을 반기는 인파들이 검은 벌집을 이루고 있다.
선봉에는 그 특유의 톱니무늬 하오리를 입은 신성조 간부들이, 그 용미(龍尾)에는 그들을
지지하는 행동파 대원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피투성이에 넝마가 된 무사복을 입고도 그 장엄한 기세는 그칠줄 몰랐으며, 전국 제일의
호남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신성조 1번대부터 10번대까지의 조장들.
긴 전투후의 피로한 몸도 잊은채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해낸 교토수호전의 승리를 만끽하며
들뜬 군중들의 환호에 보답하듯 그들의 상징물인 깃발을 더욱 힘차게 휘두르고 있다.
“아아… 빨리가서 밥이나 실컷 먹었으면.”
“…밥이라.. 그러고보니 전투내내 풀죽만 먹었던건가.”
1번대 조장 후지마와 7번대 조장 료오타의 머리속엔 오로지 김이 모락모락나는 하얀쌀밥에
고소한 냄새 그득한 된장국 뿐.
그에 피식 웃나싶던 4번대 조장 아카기가 이내 슬그머니 군침을 다신다. 그리고,
먹고싶어- 배고파- 등등의 그 허기진 대화를 무시하려 애쓰던 10번대 조장 하나미치는 곧
이마를 불끈거리며 쉰목소리를 내질러 누군가의 등뒤에 열렬한 뒷담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쳇, 전투가 끝난 즉시 요리점으로 뜬다던 작자가 갑자기 미부로 선행지를 바꾸더니만…
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쇼군을 뵈러 가겠다고? 헐. 배불리 먹긴커녕 지루한 입담에
시달리게 된 판국에 밥소리는 그만하라구! ”
“…사쿠라기군. 목소리가 너무 커.”
9번대 조장 아카기 하루꼬가 정색을 하며 말려보지만 이미 꼭지가 반바퀴쯤은 돌아가버린
그의 귀에 들릴성싶으랴.
“하루꼬상은 너무 물러요. 아, 지휘자를 따르고 존경하란 소리는 안해도 아니까-“
입을 열려던 참에 선수를 빼앗겨버린 하루코가 볼을 붉힌다.
“내가 말하는건 저녀석의 성격이에요, 성격. 쌈질 시켜먹을때만 ‘가자, 신성조!
전후의 만찬이 기다린다!’ 따위의 말로 전의를 북돋아놓곤 막상 끝나고나면 늘 이렇잖아요.
또 만찬이래봤자 밥에 국뿐인게 허다하고! 씽”
이 습한 섬나라 기후에도 끄덕않고 늘 송곳처럼 삐죽삐죽 날이 서 있는 머리끝에 눈을 부라리며,
뒤에서 뭐라 떠들어대던 아예 노골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그 남자의 넓은 등 뒤에 대고 주먹을
부르르 떠는 하나미치다.
“…시끄럽다 원숭이. 이걸로 입이나 틀어막아”
그 때,
그 모습이 안되보인건지 아니면 정말 입막음용인지 대각선상에서 걷고 있던 3번대 조장
루카와가 먹음직스레 보이는 사과 한알을 툭 던져준다.
끔찍이도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날렵히 받아든 하나미치는, 원숭이라고 깔본대에 험한 말로
반격해주려다간 곧 뇌물아닌 뇌물에 눈이 멀어 그대신에 사과를 한웅큼 베어물었다.
그러자,
“……편애야.”
“……암, 편애고말고”
“……편애다.”
“……편애군요”
조용조용 흘러나오는 불만의 한마디들.
배고픈 입은 널리고 널렸는데 정작 받아먹는 쪽은 최고의 악동인 하나미치란 점에 민감히
반응하는 나머지 조장들이다.
뒷통수로 느껴지는 그 따가운 눈총에 미간을 지푸린 루카와가 살몃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에 훗-하고 가볍게 웃음진 총지휘관 센도가 나란히 걷고 있는 그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대원들 눈을 피해 늘상 하나미치의 식기통에 굵직한 덩어리를 덜어주는, 센도의 그 은밀한 행동을
간파한 루카와의 날카로운 지적에 허를 찔렸을법도 하건만 그는 그저 미소로서 응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늘 못마땅하고 뒤틀리는 루카와.
“내멋대로 하는일이니 신경꺼라. 귀찮은 간섭은 불쾌해”
불만스러운 내색을 거침없이 내비친 그가 센도를 휙 지나쳐 단독선봉으로 나섰다.
그리고 앞쪽의 그 틀어진 기류를 느낀 뒤쪽 배치대가 ‘또 삐그덕이군’-하며 내심 혀를 쯧쯧거린다.
단 한사람, 사과뼈씨까지 통째로 우그적거리며 씹어먹고 있는 하나미치만큼은 앞에서 뭘하든
전혀 관심 밖이었지만.
그런데, 그렇게 그 한알의 사과를 아껴먹고 또 아껴먹던 그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게 있었으니,
갑자기 번쩍- 하고 광채를 발한 하나미치의 눈동자가 뭔가에 압도된 듯 감탄의 빛을 머금는다.
저 멀리에서 웅장한 위엄을 뽐내는 막부의 성지가 그 틀을 드러내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탄성을 흘려내고 마는 풋내기 조장. 여전히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그 엄숙한 분위기에 매번
움츠러들게 되는 하나미치다.
“…볼때마다 괴기스러운 곳이야.
입가에 부스러기진 사과껍질을 핥아낸 그는 손끝을 입술에 대고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쇼군을 뵙기 위해서 이번에도 그 복잡한 알현 절차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미리부터
피로가 몰린다. 하지만 영광스런 입궁이니만큼 그정도쯤은 참아낼 수 있을거라고, 하나미치는
콧숨을 크게 내쉬며 모두의 신념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성으로 그 뿌듯한 시선을 못박았다.
미부의 인파를 벗어나 난공불락의 요새로 한발짝 성큼다가선 신성조와 그 정예부대.
두번째 임무인 히토키리(암살자)부대를 타도하고 중책을 완수한 그들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쇼군의 성대한 치하만이 남아있을 뿐.
제각각의 머리속에 포상의 종류를 물질화시키며 한발 한발 성으로 내닫는 발걸음들이 사뭇 가볍다.
단, 전투 지휘관이자 신성조의 부장인 센도의 표정은 그들과 달리 미묘한 그늘로 어두워져있었다.
*
“후읍-! 이게 몇만년만에 보는 사시미냣! 료오타~ 건배하자 건배!”
의외로 간단화된 알현절차와 노고를 치하하는 쇼군의 전언식마저 허전하다 싶을 정도로 짧게
마무리된 지금, 만찬이 준비된 연회장에 옹기 종기 모여앉아 푸짐하고 근사한 요리를 눈물로
시식중이다.
특히나, 풀죽에 신물이 나버린 하나미치로선 천상의 낙원이요,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지라
가능할때 한껏 보충해두겠다는 불곰심리가 도져 그 양을 초과했음에도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다.
갑작스레 등뒤로 불쑥 불거진 목소리에, 궁시렁대던 료오카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선다.
그러자 손을 가볍게 저어내며 웃어보인 센도가 그 어깨를 부드럽게 눌러 앉혔다.
“오늘은 성에서 묵는다. 다들 많이 지쳐있고 쇼군께서도 하룻밤정도는 쉬어가길 바라시는 눈치야.”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살며시 비튼 그가 허겁지겁 마시고 질겅거리는 하나미치를 응시한다.
이어 말없이 베어드는 온화한 미소.
“그럼 원하는 만큼 먹고 즐겨라. 이런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거다.”
뭔가 아쉬운듯한 시선을 거둔 센도는 이미 적당하게 배를 채우고 조용히 정좌해있는 루카와에게
긴밀한 손짓을 보냈다.
그리고 함께 사라지는 그 두 사람을 따라잡는 희끄무레한 눈동자.
“…저 녀석.. 먹기나 한거야?”
곁에 있을땐 일부러 무시하는 척 해놓고선 그 모습이 사라지자 걱정스런 표정을 드러내는
하나미치에게 능글한 미소를 날린 후지마가 입을 가리며 쿡쿡거린다.
“후후훗- 10번대조장은 센도부장을 미워하는거 아니었어? 흐음…혹시 모모할 때
짖궃어지는 그런건가?”
“…캬하핫 맞아맞아. 모모할때 괜히 싫은척하는거 그거 맞지?”
후지마의 장단에 덩달아 북까지 쳐대는 료오타.
험악한 인상으로 얼굴을 붉힌 하나미치가 그에 복수를 불태우며 두사람의 사시미 덩어리를
덮썩 집어 와구와구 먹어버린다.
그리고는 곧 꺄악- 울부짖는 2인분의 비명소리를 만족스럽게 감상하는 붉은 머리 소년.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그 분위기에 아카기도 하루꼬도- 모두 유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연회가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그 소란을 틈타 자리를 비운 센도와 루카와는 달빛에 젖어 고요히 아름다운 중앙로의 정자로
발길을 옮겼다. 그동안의 업적에 쇼군이 공개적으로 하사한 신성조의 전용 휴식 공간이었다.
“…용건이 뭐냐.”
정자에 앉기도 전에 다짜고짜 입부터 연 루카와가 어두운 기를 발하는 센도의 눈을 주시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먼곳을 바라보던 센도가 곧 나지막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카게무샤였다. 눈치챘나?”
(카게무샤 : 옛날 전장터에 출전하던 영주들이 암살을 두려워해 자신과 똑 같은 가짜영주를 데리고
나간데서 비롯된, 그림자 무사, 가짜 무사란 뜻, 여기선 쇼군을 대신한 카게무샤라고 보심돼용)
그에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카와.
“…보통이라면 분명 쇼군께서 직접 자리하셨을거다. 카케무샤가 대신이라는건 곧…”
“막부쪽의 감시단이 배반의 기척을 감지한거겠지. …알면서 떠묻지마라. 네 녀석이 그런
낌새를 놓칠리 없잖아”
“아…”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차갑고 경계하는 그의 태도에 가끔 지휘관이자 부장으로서의
존재에 회의감을 느끼곤 하는 센도. 조장으로서의 능력은 가히 절정 수준임에 틀림없으나
인간 관계에 있어 지독하리만치 부정적인 루카와를 상대하기란 꽤나 벅찬 일이었다.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확인하고싶은 마음에 미부행을 택한거지.
…이로써 우리 중 누군가 감시단의 눈에 적발될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확증을 얻긴 했지만..”
“아직 속단하긴 일러. 감시단쪽은 갈수록 커지는 신성조의 세력을 견제하려고 한다.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함정일지도 몰라.”
“그건 아니다.”
되받는 센도의 억양은 단호했다.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막부의 흥과 멸이 우리손에 좌지우지될거란 헛된 오산은 버려라.
……게다가..”
“게다가 뭐냐”
“이중첩자의 전언에 의하면… “
그 대목에서 활처럼 휘어진 루카와의 눈썹이 흐릿하게나마 씰룩거렸다.
“우리쪽의 대원중 한명이 유신지사와의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복면과 분장술에 가려져
그 실체를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굳어진 시선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얼굴로 같은 색의 냉기가 피어오른다.
결국 얻어낸 결론은 내부첩자의 가능성.
완벽하다 믿었던 조직에 헛점이 밝혀진 순간, 그 지휘관과 조장의 심기가 편할리 없었다.
일순, 날카롭게 일렁이는 루카와의 눈동자로 격분의 빛이 스쳐갔다.
“잡아내면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못잡을것도 없어.”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우선은 너부터 주의해라. 그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면 좋겠지만
가끔씩 절제하지 못하고 흘려내는 경우도 있다. 이건 명령이야.”
‘명령’이란 단어를 가장 혐오하는 루카와에게 고의성 짙은 충고를 전하는 센도의 눈매로
어렴풋한 미소가 휘감겼다. 그러자 내심 발끈하는 성질을 간신히 참아낸 루카와가
사나운 말투로 반격해온다.
“이 기회에 말해두지만… 절제하지 못하는건 그쪽이란걸 명심해둬.”
뼈있게 툭 던져진 말을 뒤로 주저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는 루카와.
대화의 끝을 곱게 맺는 법이 없는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선에서 그대로의 결과를 되풀이해
빚어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소소한 성격 차이를 문제삼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건…
초점 흐릿한 눈동자가 검게 일렁이고, 뿜어져나온 긴 한숨이 밤하늘로 희뿌옇게 투영되었다.
“내부의 적이라…… 가슴 아픈 일이군….”
*
“으응… 머리…머리가…깨져……”
“으이구, 차라리 그냥 깨져버려라. 그럼 뒷산에다 묻어버리기나하지”
술주정을 받아주느라 짜증이 극에 달한 료오타가 서슴없는 말까지 더럭 해버릴정도면
이미 수습 단계를 벗어난 상황이라는 것.
연회를 전후로, 혼자서 모든 술을 비워버렸다해도 과언이 아닌 하나미치의 상태는
고주망태로 표현하기엔 그 한도를 완전히 넘어선 초과음 수준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어쪄죠? 아카키 오빠도 이미 만취상태여서……”
하나미치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했던 아카기는 이미 기절한듯 잠들어버렸다.
허나, 오히려 잠들어 버리는 편이 한결 수월했다.
적정음주 수위를 껑충 넘어버린대다 이술 저술을 섞어마신 탓에 정수리가 두쪽이 나는
두통과 오열, 한기에 시달리며 주위사람들에게 그 투정을 몽땅 책임 전가시켜버리는
하나미치야 말로 박멸해버려야할 술벌레 같은 존재.
“…아, 지금 난 안돼. 나도 꽤 많이 마셔서 다리가 휘청인다구..”
료오타의 울상에 하루코도 팔자로 휜 눈꼬리를 글썽거린다.
“…냅둬. 워낙 무식하게 건강한 애라 숙취정도는 거뜬히 견뎌낼걸. 후아암-“
그러자 한쪽 구석에 동그랗게 몸을 쪼그리고 앉아 선잠에 빠져있던 후지마가 눈을 감은채로
하품속에 졸린 목소리를 우려냈다. 그 일리있는 말에도 왠지 걱정이 더 앞서는 료오타와
하루코는 불판위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늘어지는 하나미치를 어쩔줄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러던 그 때,
마치 구세주의 것처럼 들려오는 정상인의 발소리가 그들의 귀를 쫑긋 곤두서게 했다.
“아앗! 센도부장! 마침 잘왔어요! 이 술덩어리 어떻게 좀 처리해주세요”
술덩어리-란 말에 풋-하고 웃기부터한 센도가 곤드레만드레 자신을 올려다보는 하나미치를
재미있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뭐 어렵지는 않지만… 내가 손대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텐데.”
“옷- 절대 아닙니다! 그 반대에요. 반대. 그러니까 얼른 치워가세요”
하루꼬와 후지마는 작게 킥킥거리고, 료오타는 정색을 하며 두 손을 휙휙 내젓는다.
뭔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센도가 그럼 할수없지- 하는 얼굴로 뱀처럼 꽈리를 틀며
바닥위로 부비적거리는 하나미치의 몸을 가뿐히 안아들었다. (가..가뿐히라. 센도장사 -_-!)
그러자 그 즉시 이어지는 노골적인 반응.
“…센도.. 센도…”
흐늘적대는 두 팔로 보채듯 목을 끌어안고 그 숨을 예민한 살갗에 부벼대는 통에, 평소 표정에
큰 변화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루카와에 버금가는 센도의 얼굴도 미미하게나마 상기되어간다.
멀뚱거리고 쳐다보는 두개의 시선을 벗어나 성큼 밖으로 향한 그는 야외의 뜰로 이어진
수각로를 걸어가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도데체 얼마나 마신거야. …평소의 너라면 결코 이런 짓을 할리 없잖아, 사쿠라기…”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에게 얘기해봤자 부질없지만 자제심을 잃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평범한 분위기를 유지해야만 했다.
허나.
고양이처럼 가릉가릉거리는 웃음을 목구멍으로 뱉어내며 술기운으로 뜨거워진 피부를
꾹 눌러와 그간의 긴 전투로 그외의 본능을 잊고 살았던 센도의 욕구를 한층 자극하는
하나미치.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새벽빛이 가장 잘드는 쪽의 시원한 침소를 골라낸 그는
조심스럽지만 바쁜 동작으로 반뿐인 의식의 붉은 머리를 이부자리에 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어진 말캉한 육탄 공격.
“센도…”
탄력을 잃고 말랑말랑해진 몸뚱이가 센도의 상체에 바짝 달라붙어 미미한 힘으로 물고 늘어진다.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는 중력이었지만 눈앞을 물들이는 석류빛의 자극적인 색이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이성마저 앗아가려했다.
팽팽한 긴장감을 떨쳐내듯이 부드러운 손길로 하나미치의 두 팔을 거둬낸 센도가 반쯤 드러난
맨가슴위로 이불을 덮어준다.
아마도 마지막 남은 한가닥의 이성에 의지한 고통의 순간이었으리라.
“바보 녀석…… 멍청이……”
이제는 울먹이기까지하는 하나미치의 칭얼거림이 흐느끼듯 이어졌다.
그에 작게 한숨진 센도가 식은땀으로 촉촉한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대고 쉰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술기운에 당해버렸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원하게 될 때…
그 때…너를 갖겠다, 사쿠라기….”
따뜻하게 애타는 음성이 귓전에서 잦아들고 늘 마음 뒷편으로만 갈망했던 체온이
깊숙하게 스며들자, 이내 그안에서 포근함을 찾아낸 하나미치가 서서히 눈을 감는다.
과실주의 독한 향을 숨으로 새근새근 불어내며 미간을 살며시 구긴채로 잠에 빠져드는
그를 한참 지켜보던 센도는,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달아오른 그 체온에서 떨어져나간 순간 뭔가 아련한 통증이 뱃속 깊숙한 안쪽으로
밀려들었고, 진한 한숨으로 그 안타까운 열기를 가까스로 떨쳐낸 그가 곧바로 침소를 나선다.
그리고 그 때,
“…칼을 뽑으려던 참이었다”
침소문 밖에 그 그림자를 감춘채 조용히 서 있는 루카와가 센도를 맞이했다.
그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곧게 응시한 센도는 그에 대적하는 예리한 시선으로 살기를 맞받았다.
“염탐해도 좋다는 명령은 내린적 없다. …기본적인 예의는 스스로 갖춰라.”
늘 내뱉기전 반드시 그 감정을 여과하는 센도였으나, 이번만큼은 노여움의 기색이 매우 짙었다.
그에 결코 꼬리를 내리고말 인물이 아닌 루카와도 내심 동요하고 만듯 다문 입을 열지 못한다.
그늘에 묻혀 검게 보이는 그를 날카롭게 지나쳐 자신의 침소로 직행하는 센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있었다.
그리고,
…잠자는 용의 불을 뿜게하는자… 반드시 재앙속에 화를 입으리라.
일순, 어디선가 들어본 수수께끼의 문구를 떠올린 루카와는 작아지는 그 뒷모습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뭔가 두려운 기억이 되살아날 것 만 같은 어지러운 순간이었다….
++++++
하핫, 이번엔 센하나시대물로 인사드리네요.
오늘 하루 비엔비전에 못간걸 두고두고 후회하며 열심히 울분을 쏟아부었답니다.
사실 이 센하나물은 이미 구상해둔거라… 쓰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단지 도입부분인 경우 시대적 배경이나 여타 그런것들을 부각시켜야 했기 때문에
그게 좀 힘들었어요.
그럼 설명 들어갑니다! (지나가듯 배운 일본 역사에서 써나가다보니 머리가…-_-)
-우선 신성조 : 원래는 신선조(신센구미)라는 이름의, 일본 에도시대, 즉 막부말에 실제로 존재했던
검객집단으로 구체체를 신봉하고 막부의 독재를 도왔다는 이유로 일본 역사에서는 지탄의
대상이기도한 존재랍니다. 하지만, 전 솔직히 이 신선조를 신념을 위한 집단이라기보다 신념을
구하기 위했던 조직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싸웠던 이들이나, 개혁과 왕정복고를 위해 싸웠던 유신지사나…
그리 다를바없다고 생각해요. 신념의 차이라기 보단 시대적 흐름을 받아드리는 자세가 달랐다고
저 홀로 믿고 있습니다. 하핫 -_-;
아무튼, 신선조는 1~10번대로 나뉘는 각번대의 조장과 국장과 부장(센도역)의 고위간부 둘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신선조라는 이름을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에… 살짝 한자를 바꾸고 그 의미를
완전히 제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
음…실제의 인물들의 특징도 약간씩 섞어넣을계획이구요, 물론 센도, 루카와…등등의 원작 성격은
그대로 유지할겁니다. 에고…대충 이정도네요
흐어억…-_-
패러렐하나 쓰면서 진짜 거창하게 늘어놓는듯한….(앗 민망-_-;)
그래도 혹시나 의문을 품게될 분들을 위해서 이번만큼은 긴꼬릿말 감수합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시구요~ 의견이나 감상 부탁드릴게요^^*
*쇼군 – 무신정권의 우두머리, 대장 이런뜻으로 막부의 주재자를 의미하는 최고 권력자를 부르는 말.
*미부 - 신선조의 세력이 형성된 곳. 사무라이디퍼쿄우에도 미부일족이 그 주된
스토리 전개로 쓰이고 있죠^^;
첫댓글 뭔가 강하면서도 은은한 센하나군요.좋습니다!!한창 루하나만 읽다가 센하나읽으니 머리가 다 맑아지는군요.루하나의 마력에 정신을 잃을뻔한 기억이....<-사실 밤새 읽느라 못자서 정신이 없는 거였지만...
와와~! 센하나 시대물 이군요 다음편 빨리 보고 싶네요 하하
아아 - // , 다음편 빨리 보고 싶네요오 - // ,,
우왓 멋집니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대지만..그래도 센도와 루카군은 역시나 멋지군요..ㅜ ㅜ 담편 기다리겠습니다~
시대물로 센하나는 생소하다는 느낌마저 드네요^-^ 시대물은 루하나밖에 보지 못한것 같아요.후훗- 궁금해요오~
순간적으로 [어? 신선조를 잘못 쓴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였으나,이런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군요.
일본 시대는 개인적으로 혼자 독학하였기에(<<중학교이므로 자세히도 못배움).. 그리고 앞으로의 내용 정말 기대가 됩니다!!>ㅁ<
확실히 편애로군요-_-아~~센하나 좋아요..내부의 적이 제발 셋 중엔 없었으면 좋겠어요.
편애편애! 뒷사람들의 궁시렁거림이 좋아요. 쿡-
역시 거슬리는 시대상황이오나 그나마 가장 잘아는축에 속하는때라 막부로 결정했네요^^; 후훗 생소한 시대물이지만 전 이런 류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담편 열심히 써서 올릴께요, 감사드려용^^*)
재밌어요!!! 이런 무사가 나오는 시대물을 보고싶었어요~~~ 하나미치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갈등!! 두둥~~
저도 센하나루 좋아합니다.후후후후.질투에 눈먼 두남자들!!!!두둥!T^T
아앗~ 기대하겠습니다 *.*
아앗 시대물...///./// 멋져라 신선조!!(아, 신성조였던가 ;;) 이렇게 글을 잘 쓰시다니..웃흥흥흥...+ㅇ+ 잡아먹고 싶어라 나이트카페님!! +ㅇ+
그저 운다..
센하나 좋아요 시대물이라서 약간 생소하네요
와아 센도 굉장한 여유네. 그리고 하나를 향한 편애. 그건 뭐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니까요^^;
오.....ㅋㅋ 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