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이 내게 임하사 <행 11:1-18>
우리는 매일 매일 오늘이라는 시간을 보냅니다. - 그런데 ‘오늘’은 – 우리에게는
오늘 그 자체이지만 - 어제 죽은 사람에게는 -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이 -내일까지 살고 싶었는데 살지를 못했습니다. - 그 죽은 사람이 원했던 내일이 -오늘이 되었습니다. - 이것은 한 달도 - 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9월 달은 – 8월 달에 죽은 사람들이 –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다음 달입니다.
어제, 혹은 지난 8월달에 – 또는 작년에 죽었던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지만 끝내 살지 못했던 -내일과 9월과 2023년이 – 살아있는 우리에게 오늘로 –이번달로 - 그리고 금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기 원했던 내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내일이 오늘이라는 시간으로 –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이라는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 그 어떤 금은보화가 –오늘이라는 이 시간보다 - 더 귀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아무리 높은 벼슬에 올랐다 할지라도 –어제 죽었다면 그것들은 아무소용 없습니다.
만약 오늘 밤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 날이라면 - 여러분은 – 여러분 자신의 삶에 대해 – 또한 여러분의 신앙에 대해 -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만약 오늘이 그 날이라면 -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 이 세상을 떠나시겠습니까?
오늘이 마지막 그 날이라면 - 여러분은 어떤 심정으로 사람들과 헤어지시겠습니까?
그 날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날입니다. - 하고 싶은 말을 -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입니다. -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입니다. - 그 날은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무엇보다도 그 날은 -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입니다. - 하나님의 심판은 -
하나님의 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형벌입니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 하나님의 상주심을 위한 하나님의”셈하심“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은 - 평등의 하나님이 아니라 - 공평의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 이 땅에서 우리가 얼마나 바르고도 정직하게 살았는지를 -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 내 상식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남들이 뭐라 할지라도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 내 지식으로 알고 난 뒤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 믿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순교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겁니다.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일행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풂으로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 교회가 공식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물꼬를 텄던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본거지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 교인들의 환대나 환영이 아니라 - 소위 할례파라고 불리는 -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혹독한 비평과 비난이었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가 - 이방인과의 교제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 - 유대인의 관례와
관습을 깨고 – 유대인이 인간취급하지 않던 이방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 짐승처럼 여기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잤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만약 이때 -어제의 베드로였다면 – 화를 낼 판이었지만 - 베드로는 더 이상 어제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베드로는 자신을 혹독하게 비난하는 그 할례자들을 향해서 –모든 경위를 -처음부터 차례대로 -성심성의 것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체류하던 베드로가 –
어느날- 낮 12시에 - 그집 옥상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큰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는데 – 그 속에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간주하는 - 온갖 짐승들과 새들이 들어있었습니다. - 그것들이 부정한 것들이라고
베드로는 간주했기에 – 그것을 잡아 먹으라는 음성에 대해 – 베드로는 간단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 ‘저는 저 더러운 것들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천하다고 – 더럽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 그일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었습니다. - 환상 속에서
유대인들이 간주한 - 부정한 짐승과 새들은 – 바로 이방인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환상의 의미는 –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내셨듯이 –
이방인들의 죄도 깨끗하게 해주심으로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 그래서 똑같은 환상과 음성이 - 세 번씩이나 반복된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때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 유대인의 전유물로만 그릇 인식하던 베드로의 편견을 – 하나님께서 교정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전해주고 있는 사도행전 10장 17절에 의하면 –
베드로는 그 환상과 음성의 의미를 알지 못해 – 의심하면서 의아해 했습니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우리말 ‘의아해 하다. 의심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아포레오 διαπορέω’는 -
‘당황하다. 당혹스러워 하다.’의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환상을 보고, 음성까지 듣기는 했는데 – 그 정확한 의미를 알지를 못해 –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바로 그때 있었던 일을 - 본문 사도행전 11장 11절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마침 그때 가이사랴에 사는 이방인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체류하던 집앞에 당도했습니다. -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 사도행전 11장 12절입니다.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성령님께서는 – 베드로가 결코 오해할 수 없는 분명한 말씀으로 –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을 아무 의심하지 말고 따라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 베드로는 그 성령님의 명령을 좇아서 –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베드로를 맞이하게 된 고넬료는 –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 사도행전 11장 13절로 14절의 내용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고넬료는 – 자신이 사람을 보내어 - 일면식도 없던 베드로를 청한 까닭은 – 자신이 기도하던 중에 – 천사가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 아무 거리낌 없이 고넬료 일행에게 –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 사도행전 11장 15절입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 마치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듯이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 성령님께서 친히 임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베드로는 – 주저없이 이방인인 고넬료 일행에게 – 세례까지
베풀었습니다. - 이상과 같은 베드로의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 그 모든 일은 – 성령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기도하는 이방인 고넬료로 하여금 – 가이사랴에서 무려 50km나
떨어져 있는 욥바에 있는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베드로를 청하신 분도
성령님이셨고 – 용바에서 기도하던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아무 의심말고 따라가도록 명령하신 분도 성령님이셨고 –
베드로가 유대인의 관습과 관례를 깨트리고 –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찾아가서 –
공개적으로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복음은 전하신 분도 성령님이셨고 – 베드로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 친히 임하신 분도 성령님이셨고 – 그 광경을 본 베드로로 하여금 –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거리낌없이 – 세례를 베풀게 하셨던 분도 성령님이셨습니다.
그리고 – 그 이후에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 몇일씩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자게 하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고 있던 장막을 깨뜨리신 분도 성령님이셨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였던들 – 그 모든 일들 가운데에 – 그 어느 것 하나도 이루어
질 수는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마지막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베드론들 –왜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쫓아 살겠다고 결단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땅끝이 - 이방인을 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 베드로의 결단만으로는 – 베드로는 결코 -진정한 땅끝의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속에서 – 진정한 땅끝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만약 베드로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지 않았더라면 –
베드로는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 베드로를 –절대로 탈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서 4장 6절)
예루살렘 멸망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 본토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제일 먼저 시도했던 것은–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 50년 동안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던 이방민족들 -혼혈집단들 – 그리고
예루살렘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인근 주위 국가들은 -귀향한 예루살렘 유대인
들이 -예루살렘의 지배권을 되찾아가지 못하도록 - 예루살렘 성전을 그들이 짓는
것을, -군대와 권력을 동원해서 집요하게 방해 했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은 -겨우 예루살렘의 성전의 기초만 닦고, -더 이상 공사를 진척할
수가 없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꿈에 부풀어있던 모든 유대인들은 실의에
빠져버렸습니다. - 그리고 그 실의에 찬 세월이 무려 - 16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이때 실의에 빠져있는 유대인들 가운데에 – 예루살렘성전이 재건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스가야에게 임했습니다.
“인간의 힘이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도 –인간의 군대나 –인간의 권력으로는
불가능해도 – 하나님의 영 – 성령님은 반드시 하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주전 516년 -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예루살렘 성전은-
마침내 재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2,530여 년 전 예루살렘에 재건된 그 성전은 – 단지 돌과 나무로 지어진 당시의
건축물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르심을 받은 – 우리 자신을 일컫습니다.
우리의 결단만으로는 –모든 일이 작심삼일로 끝날 수밖에 없지만 – 성령님께서는 - 우리가 결단한대로 살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실 수 있고 – 또 우리를 바로 세우실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성전은 – 우리를 통해 바로 세워져야 할 - 우리의 가정과 일터요
– 이 땅의 교회와 이 나라입니다.
2022년 5월 정권이 새로이 바뀐지 1년 5개월이 다가도록 – 국민을 위한 여야간의 진정한 대화 없이 – 서로의 이념과 주장만을 이루기 위해 - 국민의 이름으로 싸움박질만 하고 있습니다. - 그만큼 정치혼란과 – 경제의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리 삶의 근간을 흔든다 할지라도 –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가정과 – 우리의 일터를 반드시 세우시고, 지키실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했다 해도 – 성령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교회를 재건하실 수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아무리 한심해도 -성령님께서는 이 나라를 반드시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시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깨어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님께서 - 가이사랴에서 기도하던 이방인인 고넬료로 하여금 –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 가이사랴에서부터 50여km 떨어져 있는 욥바에서 기도하던 베드로로
하여금 환상을 보게 하시고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을 의심하지 말고 –따라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나오는 -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친히 임해주셨습니다. - 이처럼 우리가 성령님 앞에 깨어있는 – 성령의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인 정현종 선생의 시 가운데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전문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바람의 특징은 – 모든 것을 쓰다듬고, 어루 만진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단지 길을 걸어갈 뿐이지만 – 바람은 – 우리가 걷는 길을 – 그리고 그 길 위에 있는 풀과
돌멩이와 행인을 – 그 길 옆에 있는 논과 밭과 집들을 – 그 길 건너편의 강과 –
그 건너편의 산 속의 나무와 숲을 – 모두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지나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는
것과 동시에 –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내가 만나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쓰담아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바람이라면 – 때로는 상처받고 – 때로는 눈물로 얼룩지고 – 때로는 돌처럼
굳어진 그의 모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바람이라면 – 그의 상처투성이인 과거와 – 고통스러운 현재를 품어주는 바람이라면 – 그와 나와의 만남을 통해 – 그와 나의 미래가 동시에 – 함께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 후∼ 하고 숨을 내쉬면서 – 성령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헬라어로 ‘영’을 ‘프뉴마’(πνεῦμα)라고 합니다. - 그 의미는
바람, 입김, 숨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헤벨도 마찬가지입니다. - 바람. 숨- 이런 의미에서 - 성령이라는 말의
본뜻이 – 하나님의 숨결 – 하나님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할 때 –
하나님의 바람인 성령님은 – 상처투성이인 우리의 마음을 –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 고스란히 쓰다담아주시고 – 아루만져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할 때 – 하나님의 숨결이신 성령님은 – 하나님의 생명의
숨결로 -돌처럼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의 숨결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숨결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하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바람이십니다. -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바람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으로
하여금 – 영이신 하나님을 쓰다듬고, 어루만질 수 있고 – 속속들이 알 수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는 – 고린도전서
2장 10절 말씀처럼 – 성령님은 하나님의 바람이요, 하나님의 숨결이시기에 –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중 까지도 –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과 기도 속에서 – 성령님 앞에서 깨어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날로 새로워지고 – 날로 굳건해지게 되는 겁니다.
개역성경은 신구약 모두 합쳐 총 1,754pag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 역시 – 같은 page입니다.
올 한해동안 – 우리 모두 성경page를 따라서 – 하루에 다섯 page씩 –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십시다. -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는 올 한해동안 - 성경을 1독하게
될 것입니다. - 그와 동시에 올 1년 동안 – 우리 모두 기도의 삶으로 살아가십시다.
단 우리가 기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 하나님의 바람과 하나님의 숨결을 내가
느끼고 – 성령님의 빛 속에서 –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함임을 잊지 마십시다.
기도는 한탄의 시간이 아니라 –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를 이루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도 -듣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면 하물며 하나님과의 대화에서야 두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시간에 묵상하듯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은 –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입니다. - 올해는 작년에 죽은 사람들이 – 그토록 맞이하기를 소망했던 내년입니다.
이 귀한 오늘을 더 이상 무의하게 내던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다. - 우리 모두 기도와 말씀 속에서 – 성령님 앞에서 깨어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십시다.
비록 우리 자신에게는 –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울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을지라도 –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오늘은 – 반드시 새날로 엮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위기가 아무리 우리를 흔들어도 –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
우리의 가정과 일터 – 이 땅의 교회와 나라를 반드시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
그 성령님께서 – 지금 – 우리 가운데에 임해계십니다.
* 2446 - 심령이 가난한 자는 ...
===========================기도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을 –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로 주셨습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오늘을 잊지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말씀과 기도 속에서 – 오직 성령의 사람을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 말씀과
기도 속에서 – 눈물로 얼룩지고, - 돌처럼 굳어진 우리의 심령을 소생시켜주시는 –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 속에서 – 상처투성이인 나의 과거와 현재를 쓰다담아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 하나님의 사랑의 바람결을 온 영혼으로 느끼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 속에서 – 하나님의 깊은곳 까지도 통달하시는 –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 우리의 영혼이 - 하나님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 속속들이 알아가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날마다 진리 위에 우뚝서게 도와 주옵소서. 이 세상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 우리의 가정과 일터 – 이 땅의 교회와 이 나라가 – 날로 새로워지게 해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 1년 열두 달 365일 내내 – 새날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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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보혜사 성령님의 감화감동 충만한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매일매일 살아가는 참다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과 비전교회 위에 -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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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람을 낚는 어부들 [순복음 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