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아들
손자 정조와 더불어 조선중후반기의 중흥을 이끌었던 성군있었던
영조(英祖)는 잘 아시다시피 숙종(肅宗)에 의해 하루밤의 성은을
얻은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아들입니다.
무수리는 궁중에서 일하는 궁녀이기는 하지만 대전이나 편전
침전 등에서 일하는 수많은 궁녀들 가운데 가장 천한 일을 하는
궁녀로 주로 청소나 물긷기, 불때기 등의 일을 하던 여자 종을
말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궁녀에 속했지만 궁궐내에서는
궁녀로 보지 않았다 합니다.
이 무수리는 조선초기에는 민간의 아낙네들 중에서 발탁했는데
주로 기혼녀로 내인의 소개로 궁(宮) 출입을 하곤 했으나 후기에는
처녀들로 선발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도 이 바뀐 제도로 인해 궁궐에 들어와
일하는 동안 숙종의 눈에 띄어 왕자를 생산하게 되자 무수리에서
숙빈으로 영전이라는 말이 부족한 엄청난 신분상승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기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이라는 것을 평생의 수치로 알고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이 콤플렉스가 조선 후기 중흥조라는 멋진
칭호를 받고 있는 영조에게 자기 아들 사도제자를 한 여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동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14년간 대리청정을 했던 똑똑한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를 경우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노론세력이
영조의 이 콤플렉스를 이용하여 그 열등감을 부추긴 점이 있지만...
첫댓글 세력이 억울한 한 인생을~
끔직한 역사지요.
마음 비우기 글이 비처럼 쏟아지지만...
항상 마음을 비우며 살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