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함을 느끼며, 흥에 취하다.
라는 '납량만흥'은
녹음이 우거진 어느 여름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깊은 산속 계곡에서 세 양반이 악공과 기생을 초빙하여 악공의 연주에 맞춰 나이든 양반은 기생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돗자리 위에 앉아 있는 젊은 두 사람은 나이든 사람의 눈치를 보며 풍성한 치마를 입고 늘씬한 허리를 흔들며 요염하게 춤을 추는 기생을 바라보고 있다.
한사람은 갓끈을 풀고 바라보고 있고, 다른 사람은 갓을 비스듬히 쓰고 잘 보이지 않는지 허리를 약간 비틀어 보고있는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하였다.
♡♡♡♡♡♡♡♡♡♡
초시에도 매번 떨어져 이제 공부는 접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우둔한 선비가 다행스럽게도 부모한테서 재산을 넉넉하게 물려받아 한량들과 기방 출입을 하다가 얼굴이 반반한 기생에게 기와집을 사 주고 머리를 얹어 줬다.
친구들과 매사냥 나가서 장끼 몇마리를 잡아 주막에서 그걸 안주로 술을 마시고 초저녁부터 기생의 집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기생을 쓰러뜨리고 치마를 걷어 올리는데, 기방의 사동이 대문을 두드리며
“사또가 베푸는 관아 주연에 가야 하니 빨리 나오라”
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기생이 선비를 밀치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경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자 선비가 못마땅한 듯 씩씩거리던 숨을 가다듬었다.
“너는 좋겠네.
오늘 또 새서방을 만날테니….”
그 말에 기생첩이 홱 돌아앉아 눈을 흘겼다.
“관아에 들어갈 때마다 새서방을 만난다면 이 세상 남자는 모두가 내 서방이 되겠네.”
다시 돌아앉아 화장을 하던 기생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나서 경대 서랍을 열고 피 묻은 개짐(월경대)을 꺼냈다.
그리고는 치마를 올리고 고쟁이를 내리더니 개짐을 찼다.
“서방님~
제발 쓸데없는 걱정이랑 북풍에 날려 버리세요.
이렇게 하면 월경 중인데 누가 감히 나를 탐하겠어!”
기생은 선비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누워 있던 선비가 벌떡 일어나 어둠 속으로 살금살금 기생첩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엉덩짝을 흔들며 골목길을 돌아가던 기생이 관아 뒷담장을 따라가다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선비는 잽싸게 몸을 숨겼다.
그녀는 담장 모퉁이에서 치마 밑으로 손을 넣더니 개짐을 꺼내 담장 기와 밑에 끼워 넣고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해 관아로 들어갔다.
선비는 기와 밑에 끼워 둔 개짐을 꺼내 들고 이를 갈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년 들어오기만 해 봐라.
결판을 내리라.”
밤은 깊어 삼경일 제~
기생이 살며시 집으로 들어와 방문을 빠끔히 열자 어리석은 선비는 벽에 기대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낮에 온종일 꿩을 쫓느라 들판을 쏘다녔고 초저녁부터 술을 퍼 마셨으니 이 시간까지 잠들지 않을 장사가 있겠는가!
기생이 선비 손에 들린 개짐을 살짝 빼서 옥문에 차고 그 손아귀에 목도리를 쥐여 줬다.
“서방님~
소첩을 안아 주지도 않고 그냥 주무시기에요?”
기생이 흔들어 깨우자 부스스 눈을 뜬 선비가 목도리를 흔들며
“내, 오늘 네년과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
뭐라고?
이 개짐을 차고 가서… 이건 뭐야?”
“서방님이 초저녁부터 약주가 과하셨나 봐.
이것 보세요.”
기생이 고쟁이를 벗어 개짐을 보여 주며 우둔한 선비 품에 안겨 탱탱한 젖무덤으로 입을 막아 버렸다.
갈고닦은 기교로 선비를 녹여 버리니 긴 숨을 내뱉은 선비 왈,
“내가 꿈속에서 헛것을 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