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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3- 열대림 백마의 기사 “에덴의 동산이다~경치 한 번 좋다.” Nicky의 집에 가자 뒷산을 바라보며 도착 일성으로 내가 해 준 말이다. 니파핫은 곰팡이와 개미, 그리고 닭의 천국이었으나 배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대자연의 신비를 안고 있는 에덴의 동산이다. 니키도 과거라는 궁전엘 가끔 찾아가 그날의 영광을 회상하고 자랑하며 산다. ‘나도 한 땐 잘 나갔던 사람이다.’ Nicky의 전처는 백인이었다. 미국에서 살았다. 여러해를 같이 살았으나 딸 하나를 낳고 그만 헤어졌다. 그 딸이 지금 코스타리카에서 여관을 하고 있다. 니키는 가끔 딸이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내가 농담으로 ‘그래이트 헌터’ 라고 하고 또 ‘백마의 기사’라고 하자 “ 하긴 뭐 아무나 백마를 탈 수 있는 건 아니죠. 하하..” 하며 무척 좋아했다. 니키는 유머가 많다. 그게 재미 있었다. 니키의 집 감동과 눈물의 추억…. “니키, 당신네 나라는 고마운 나랍니다. 우리 코리안들이 다들 기억하고 있어요. 한국전 참전 연인원 칠천사백여명, 전사 백수십명(7,420명 중 전사 112명, 부상 299명, 실종 16명, 포로 41명)의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공군 1개 대대를 격퇴시켜 큰 전과를 올렸어요!” -나는 40여년전 UN군 전사 편찬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래 UN군의 참전기록을 가끔 감동과 눈물을 머금고 들쳐본다.- “그 때만 해도 필리핀이 아시아의 두번 째 부국이었어요. 뭐 하긴 다들 어려운 때였으니까요.” 필리핀이 신생독립국가가 된지 겨우 4년째였다. 물론 미국의 영향과 유엔의 결의와 권유를 따랐기 때문이지만… 이것이 필리핀과 코리아가 얽히기 시작한 연유가 아닌가? 자연은 신의 품성 산비탈의 니파 핫 니키의 집은 대나무로 지어졌다. 그리고 지붕은 코코낫 잎으로 덮여져있었다. “비만 오면 견디지만, 태풍이 오면 말짱 허삽니다. 다 날라가버려요. TV고 컴퓨타고 다 나갔어요. 그래 비닐 포장을 군데 군데 덮었어요. “ 니키는 집을 돌아보는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Nipa Hut이란 게 뭔지 난 몰랐었다. 이건 미개사회에나 있었던 은신처, 그 원형 같다. 하필이면 산비탈에다 지어놓았다. 넘어졌다 하면 송두리체 굴러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래야 통풍이 잘 되고 비가 많은 곳이라 하긴 빗물이 쉽게 빠질 테다. 주방의 바닥은 대나무로 깐 마루다. 그게 다 썩고 때가 낀 데다 틈 사이로 산비탈의 잡초가 보인다. 걸어가보면 금방 푹 빠질 것만 같다. 화장실엔 달랑 두껑 없는 변기 한 개만 있다. 거기, 아열대의 열풍과 비, 습도가 사람을 괴롭힌다. 산다는 게 고행이다. 고해다. 억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단 한번 지나가는 길- 단 한번 지나가는 길, 다시 오긴 어렵다. 그러니 무언가 도와주고 싶다. 내 맘속에 이런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러나 어떻게 무얼 도와 준단 말인가? 니키의 정원 귀빈용 니키는 바가지를 보이며 그걸로 물을 떠서 손으로 뒷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마닐라를 떠날 때 휴지 한 롤을 사와서 막대기에 걸어놓았다. 그건 코리아에서 온 귀빈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당장 묵을 방이 없었다. 그래 니키는 작은 들마루를 갖다놓고 거기다 어린이용 모기장을 쳤다. 그것도 귀빈실이다. 모기장도 나와 같이 오면서 마닐라에서 준비해온 것이다. 특별한 니키의 배려에 감사할 뿐이었다. 부자촌 꿈을 심어주려… 나는 코리아에서 온 이방인이다. 그러나 니키와 그의 가족은 21세기 문명사회의 이방인이다. 나는 니키와 그 가족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여기다 벽돌로 양옥을 지어놓으면 넓은 창으로 내다 보이는 에덴의 동산이 환상적일 게다. 니키, 건축계획을 해요. 벽돌이나 개울에 흔한 돌을 계속해서 뫃아요. 그러니까 건축자재를 먼저 준비하는 겁니다. “ 니키는 환호를 하며 그럴 계획이라고 말했다. “길가에다 상점을 먼저 만들어 돈을 저축하고 그 다음에 그렇게 하겠어요.” 최근의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인구 4명 중 1명은 하루 1.25달러 이하 수입으로 살아간다. 빈곤이 지나가는 과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가는 소나기라도 좋다. 그런데 빈곤은 거머리 같다. 짝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빈곤은 바이러스다. 암세포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필리핀의 경제력은 1950년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17개국 중 13번째다. 부패와 자연재해, 그리고 열대성 나태가 인프라와 사회간접자본의 공백을 가져다 주었다. 구빈정책은 허울 뿐이다. 집 없는 아이들이 거리를 헤맨다. 그 수가 백만이라 고 한다. 총기사고는 연발한다. 빈부의 차는 심각하다. 대기오염과 환경파괴, 부조리의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전연 보이지 않고 있다. People’s Park 가족은 합작품 그리고 필리핀 여자, 지금의 아내는 세번 째다. 니키의 두번 째 아내도 애기를 데려왔다. 그 딸이 리나다. 정작 리나 자신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아빠가 친아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의 부인이 아들 하나를 데려왔다. 그 아들은 마닐라에 있다. 니키의 여자 친구집에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다. 마닐라에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 니키의 여자친구집엘 들렸다. 꽤재재한 헌집, 좁은 공간에 아무렇게나 만든 벙크벳이랑 계단을 타고 오밀조밀,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놓았다. 통로는 그야말로 비좁은 틈새다. 더우니까 방마다 낡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거기 귀여운 자녀들이 방에 누워있다. 어디나 너무 덥다. 이상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모조리 친절하고 웃음이 많다. 정을 표현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여주인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니키와는 울타리 없는 농담으로 흠뻑 땀과 미소를 안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여자가 니키의 친구라면 도대체 어떤 사이란 말인가? “같이 가고 싶어요. 강에 가 수영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 그 말은 허사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니키는 결혼을 세번쯤 했다. 어쩜 그 보다 더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부인은 사십대 중반이다. 니키가 육십대라는 걸 생각하면 나이차가 너무 많다. 니키는 그걸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몸에서 두 남매가 테어났다. 여하튼 지금 자녀가 모두 6명이다. 내가 음식맛을 칭찬했을 때였다. 지금의 아내를 버리지 않는 건 요리 솜씨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농담으로 부인 앞에서 한 말이다. 한적한 계곡 천연 스위밍 풀 계곡의 개울은 아주 상쾌한 스위밍 풀이다. 나는 도착하는 날 리나의 안내를 받아 경치 좋은 뒷산엘 등반했다. 니키가 수영복 한벌과 신을 빌려주었다. 그 맞은 편 산허리는 아주 풍경이 좋았다. 거기가 코리아타운 예정지였다는 것이다. 코리아 타운에 관해. 니키가 불발탄이 되어버려 무척 아쉽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흐르는 땀을 씻기 위해 계곡의 개울속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내눈에는 분명 개울이었으나 현지인들은 강이라고 불렀다. 강의 상류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깊은 곳은 키를 넘는다. 수영을 못하면 익사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리나는 수영엔 아주 익숙했다. 날쎈 물개 같이 빨랐다. 커단 바위위에서 첨벙 뛰어내린다. 잠수도 하고 수영도 했다. 리나는 너무 순수하다. 물론 도수가 맞지 않은 안경으로 순수성을 투시하긴 어렵다. 물속에서 가끔 나를 안아준다. 기분이 별로 나쁘진 않았으나 안고 있으면 헤엄을 칠 수가 없다. 살기 위해 상대를 밀어내고 떨어져야 한다. 하하… 암튼 더위란 놈이 잠간이라도 휴가를 가서 좋다. 시원한 물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아마 리나도 나도 영화의 장면을 모방하고 있었다고 기억된다. 등반했던 산 산상의 이중창 리나와 산에 올라갔을 때 나는 리나와 바위위에 앉아 맞은 편의 멋진 경치를 바라보았다. 좋은 자연조건, 풍부한 농업자원을 가지고도 쌀을 미국에서 수입한다는 뉴스가 오늘의 신문을 장식했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바위에 나란히 앉아 난 리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열 아홉살의 리나는 아직 영어를 잘 못 한다. “살아남기 위해 영어와 사랑에 빠져야 해” 리나가 성공적인 생애를 살아가기를 빌어주고 싶었다. Twinkle twinkle little star-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You’re my sunshine- Five little ducks- 그리고 Row row row your boat를 하나 하나 따라 부르게 했다. 그 중에 ‘유아 마이 선샤인’은 알고있다고 했다. 리나는 유쾌한 음성으로 즐겁게 배웠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도 그야말로 즐거운 산상의 이중창이었다. 한 번에 당장 외우진 못하겠지만 그러나 즐거운 추억의 단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리나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나를 말해주었다. 리나는 열심히 경청해주었다. 산속 언덕바지의 오후는 느린 걸음으로 저물어갔다. 니키의 친척들 아시아의 혼혈아들 리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난 미국이 남긴 Amerisian 50,000명의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100,000명이 넘는 Japino와 10,000명의 Kopino를 생각의 문턱으로 불러들였다. 리나도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가끔 리나는 가이드를 했다고 했다. 그랬다면 이미 외국 남자들의 별나고 냄새 풍기는 기호와 야성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게다. 난 물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짐작했다. 바로 묻기가 미안해 이렇게 물어보았다. 가이드를 하면 코리안들이 하루에 얼마을 주었어?” “500페소” 약 1만 5천원이다. 철빈한 가정의 부모가 있으나 천륜이 아닌 가족으로 살아온 묘령의 아가씨, 리나! 제발 행복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 리나를 위해 기도했다. 리나가 그걸 알 이가 없다.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리나와 나는 ‘피플스 팍’과 ‘타알’의 ‘The smallest volcano’를 보러가기로 약속했다. 리나에게 자피노와 코피노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까? 아마 소화를 잘 한다면 보약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놀랐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비디오가 있습니다. 누르면 여러가지 비디오를 보실 수 있어요. 노변의 원예실 횡재를 노리는 사람들 현대차 한식당 한국식당에서 만난 한인들 호주 커플 새로운 정착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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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히도 적어주시고 사진설명도 너무너무 잘보고 감니다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여행을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