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산 헛개나무
십일월 중순 금요일이다. 간밤은 젊은 날 밀양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상남동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여섯 명 가운데 현직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퇴직했더랬다. 밀양과 진주에 사는 이들은 열차를 타고 와 밤늦은 시간까지 청년기 기백을 회상하며 은퇴 후 여가 활용과 건강 관리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새벽녘 잠 깨어 글을 몇 줄 남기고 산행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농어촌버스를 타기 전 병문안을 다녀올 데가 있었다. 문학회 동인으로 지역 도서관 상주 작가로 근무하는 시인이 팔에 골절상을 입어 수술 후 안정을 취하고 있어 잠시 들러봤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우리 곁에 따라올 수 있음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갑갑한 병실일 텐데 성격이 활달해 꿋꿋하게 이겨내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재충전 기회로 삼았다.
병원을 나와 역 광장으로 향하니 공원 관리 부서는 인부들을 동원해 겨울 화초를 심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농업 기술센터 양묘장에서 키웠을 팬지를 역 광장 화단에 가지런히 심고 물을 주고 있었다. 서양 제비꽃인 팬지는 추위에 강해 겨울에도 알록달록한 꽃잎을 펼쳐 삭막한 도시의 미관을 밝게 해주지 싶었다. 노점에는 감을 비롯한 제철 과일과 푸성귀들이 펼쳐져 손님들 맞았다.
이번에 내가 가는 행선지는 서북산 기슭인데 산행이라기보다 채집 활동에 해당하는 걸음이었다. 한 달 전 벗과 함께 가을 야생화 탐방을 나섰다가 감재 언저리 산자락에 자생하는 헛개나무의 가지를 하나 잘라 놓았다. 헛개나무는 열매나 가지를 건재로 달여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본래는 상평이나 의림사에서 부재고개를 넘어가려고 하다가 곧장 서북동으로 가게 되었다.
내가 탄 73번 농어촌버스는 시내를 관통해 댓거리를 지났다. 시내 병원이나 저잣거리를 찾은 시골 할머니들이 다수 타고 내렸다. 진동 환승장에 들렀다가 진북면 소재지에서 덕곡천을 따라 금산과 학동을 거쳐 종점 서북동에는 혼자 내렸다. 서북산으로 오르는 임도에는 예전 ‘가야사’라는 절이 근래 ‘산산사’라고 이름이 바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절도 개명을 하는 모양이었다.
서북동 일대는 노란 산국이 많이 자생하는데 가을이 이슥해지니 꽃잎이 거의 시들어 갔다. 임도 길바닥에는 낙엽이 진 가랑잎이 수북해 발자국을 뗄 때마다 부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달 전 벗과 잘라둔 헛개나무는 감재 고개에서 한참 못 미친 서북산 들머리였다. 헛개나무 가지는 어차피 내가 손수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는 짐이기에 가급적이면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번 잘라둔 헛개나무는 잎은 시들고 가지는 반쯤 말라가고 있었다. 헛개 생나무가 마르면서 가벼워지니 생태의 내장을 꺼내 씻어 말린 코다리와 같아 보였다. 가져간 전지가위로 작은 기지를 먼저 자르고 굵은 가지는 접이식 톱을 펼쳐 잘게 도막을 내니 자루에 넣기가 수월했다. 마르지 않은 생나무와는 부피는 같을지라도 무게는 훨씬 가벼워져 운반에 고생은 덜하게 되었다.
잘게 자른 헛개나무 가지를 자루에 채워 담아 배낭에 넣었더니 부피가 간소화 되어 등짐으로 져도 무거운 줄 몰랐다. 올라왔던 임도를 따라 서북동 종점으로 내려가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하루 몇 차례 운행하는 농어촌버스는 정한 배차 시각에 맞추어 아까 왔던 노선을 되짚어 시내로 들어갔다. 마산 의료원 맞은편에서 집 근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반송시장을 지났다.
아파트단지에 이르러 이웃 동에 사는 꽃대감에게 전화를 넣었다. 친구는 빙상장에 나가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지난번 산수유 열매를 따거나 산국을 꺾었을 때도 같이 나누었듯이 이번 헛개나무도 보낼 생각으로 두 봉지에 나누어 담아 왔더랬다. 친구에게 헛개나무를 넘기니 배낭이 가벼웠다. 내가 약차로 달여 먹는 영지버섯과 산수유 열매에 더 보태질 헛개나무였다. 2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