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의 1주일 후 나는 배를 타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신문에는 여러 업체의 광고가 나와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그냥 끌리는 데로 한곳에 전화를 했고,
그곳에서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람을 만나기로 한곳은 구미 역이었다.
여관에서 사람들과 이별 후 나는 가방을 하나 둘러메고는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직업소개소에서 온다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중절모에 썬그라스, 원색의 정장, 핸드백을 들고있는 투박한 거친 손,
귀에는 핸즈프리를 꽂고 있었다.
" 반갑습니다.
그래 식사는 하셨습니까? "
" 네..아직..
그런데 별로 생각이 없네요."
그 어르신은 나를 한번 훑어보시고는
" 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 손 한번 줘 보이소? "
나의 손은 그리 거칠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노가다 정도는 해봤던 경험이 있지만
배 생활은 처음이었다.
" 아니 그런데 진짜 돈이 한푼도 없습니까? "
" 네 "
" 하기야.. 나한테 왔다간 사람 중에 사업에 실패해서 잘 돼서 간 사람 많다 아닙니꺼 !
저번에도 어떤 젊은 양반이 대구에서 돈 한푼 없다고 해서 제가 직접 모시고 갔다 아닙니꺼. "
" 암튼 내려갑시더. 그리고 이곳 배 생활도 잘만하면 기반 잡는다 아닙니꺼."
그렇게 우린 부산행 기차에 올랐다.
내가 부산행 기차를 타기 전 나는 구미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구미에서 1주일간을 그곳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으며 보냈고
그때 또다시 노인에게 의지한 채 부산행 기차를 탔던 것이다.
노인과 나는 기차에서 별로 말이 없었다.
노인과 내가 도착한 곳은 노인이 운영하는 직업소개소였는데
그곳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직원은 노인이 전부였다.
노인은 전국의 벼룩시장이나 교차로에 광고를 싫어
나와 같은 선원들이 오면 그 대가로 선주들한테 소개비용을 받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배 선원들에 대한 인력채용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다는 것을.........
사무실에서 3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한 아저씨가 사무실로 왔다.
그 아저씨는 나와 같이 한배를 타게 될 분이었다.
그 아저씨가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으로 오기 전 잠시 부두 가에서 노인은 옷 가방 두 개를 샀다.
그것은 이른바 '새코미'라고 하는 배에서의 작업복 등을 담은 옷 가방 세트였다.
우리가 탈 배는 부산이 아니라 군산이었던 것이다.
군산으로 가는 중 나는 그 아저씨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 9시 뉴스에 큰 화재에 대한 뉴스가 있었다.
군산근처의 폐타이어 재생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
헬기가 몇 번을 떴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 화재공장의 대표이사가 바로 그 아저씨였던 것이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말이 참 무색했다.
아저씨의 공장은 도로 가에 있었는데 누군가 달리는 차에서 던져버린
담배꽁초가 그만 그 공장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아저씨는 그 사건으로 부도가 났을 뿐 아니라 지금은 빚쟁이들에 떠밀려
배까지 타러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만났고........
그 아저씨는 한때 자살을 몇 차례 시도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아저씨는 학업을 마치지 못한 자식들 때문에 차마 그리하지는 못하셨다.
우리가 군산에 도착한 때는 저녁이었다.
터미널 옆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선주를 만나기로 했다.
선주는 땅딸한 체구에 전형적인 뱃사람이었다.
" 워낙 도망가는 사람이 많아 나서...
혹시 이분들이 1달 안에 그만두거나 하면 어르신께서 책임지셔야 합니다.
알죠? "
선주와 노인간에는 소개에 따른 계약관계가 있었었다.
우리는 그 날 근처 여관에서 잠을 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곳이 앞으로 나의 숙소가 돼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모텔에서의 그 날 밤 그 아저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시 누워 있다가도 일어나 앉으면 무거운 한숨과 누군가에 대한 원망만을 늘어놓았다.
다음날 우리는 선주가 경영하는 다방에 모였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선주들이 모여 있었다.
배 생활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보통 여러 척의 배들은 하나의 선단이라는 것을 구성을 한다.
그리고 그 선단에서 잡은 수확물들은 하나의 상선에 팔린다.
그러니까 그곳에 있던 여러 명의 선주들 역시 모두가 한 선단의 선주들이었다.
그곳에서 나와 아저씨는 각자 우리를 원하는 선주들에 의해 따로 나누어 타게 되었다.
선택권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겐 없었다.
그 아저씨나 나나 가장 큰 목적은 무조건 배를 타는 것이었다.
우리는 선주들의 선택에 따라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의 배에 탔던 것이다.
다방에서 노인과 선주들간의 소개비용에 대한 잔금이 치뤄 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개비용이라는 것이 우리들 급여의 가불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물론 그 아저씨 또한.......
노인과 선주들간의 잔금이 모두 끝난 후
노인은 나에게 담배라도 사 피우라며 만 원 짜리 한 장을 주고는 그곳을 떠났다.
우리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사도중 우리에 대한 소개비용과 출발할 때 사온 옷가지 세트(새코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다.
새코미의 가격은 30만원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옷가지 류와 우비 그리고 장화...
얼핏 보아도 나는 그것이 대략 10만원 안팎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그렇게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구미에서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그 노인한테서 받았던 호의라 할까?
하지만 소개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아저씨는 더욱 놀랐다.
"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우리가 이 나이에 팔려 다니게 생겼어?"
그 노인네 안 되겠구만...... 난 또 처음에 그 양반이 선주라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부산까지 갔었는데......
알고 보니........ 이거 영 사기꾼 아니야! "
그러고는 아저씨는 노인한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당신! 거기 어디야......!
당신 이리 좀 와... 나하고 얘기 좀 해야겠어!
뭐 소개비가 어떻고 새코미 값이 어떻다고........? "
잠시 후 노인은 식당으로 돌아왔다.
" 이 새끼 이거 안되겠네..
사람이 말이지 뭔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이렇다 저렇다 할 것 아니야?
이 새끼야! 내가 이래봐도 부산에서 백 구두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 "
한참을 실랑이를 한 후 사건은 정리가 되었다.
결국 아저씨는 옷 가방을 그분에게 집어던지고 소개비용도 없는 것으로 하고 일단락을 지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선주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보고도 옷 가방을 돌려주라는 눈짓이 오고갔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노인이 돌아간 후 선주들 중 몇 명은 나에게 왜 옷 가방을 돌려주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의 소개비용은 선주들 측과 노인과의 문제로 결론이 났다.
나만이 옷 가방에 대한 가불로써 30만원의 빚이 있었다.
잠깐의 시끄러움이 정리되고 선주들은 출항을 준비했다.
아저씨는 먼저 선주를 따라 출항을 했다.
나도 출항준비를 하려 했는데 내가 타기로 했던 선주는 그 날 개인사정이 있어 출항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날 하루만 처음 우리와 만난 선주의 배를 타기로 했다.
우리가 앞으로 탈 배는 군산에서 좀 떨어진 비응도에 있었다.
그곳은 새만금사업이라 불리는 간척사업이 한창인 그곳의 앞 바다였다.
처음으로 새만금사업공사현장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 곳 사람들의 말로는 새만금의 크기가 여의도의 백 배는 된다고 하였다.
실로 내가 본 그곳은 광활한 사막과도 같아 보였다.
자가용으로 한참을 이동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응도에 도착했다.
비응도의 첫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흔히 내가 아는 어항은 부두가 가 있고 그곳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내 고향 속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곳엔 부두가 없었다.
그리고 배들은 저만치 해안 가에 떨어져 닻을 내리고 정박해있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나는 의아한 생각을 뒤로한 채 그런가보다 이해를 하기로 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때 나는 한번쯤 질문을 했어야 했다.
조그만 뗏목의 줄을 잡아당기니 뗏목이 해안가로 왔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제일 가까이에 있는 배에 올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배는 정박해 있는 선단의 배들에 선주들을 한 명 씩 내려주었다.
내가 탄 배는 그 선단의 배들 중에서도 제일 작았다.
쉽게 말하면 통통배라 표현하면 맞을 것이다.
그곳의 선원은 나와 선장, 그리고 형님 한 분 이렇게 세 명이 전부였다.
다른 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날 우리는 출항을 하지는 않았다.
모두들 그물작업만을 한 채 출항은 하지 않기로 선주들간에 합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녁 6시쯤이 됐을 까?
선주들이 한배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선주들을 실은 배는 선주들을 해안 가에 내려놓고는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선주들이 잠시 일이 있어 나갔다 오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밤 선주들은 오지 않았다.
그 배에서의 하루의 배 생활 동안
나는 진짜 깜짝 놀랐다.
내가 타고 있던 배는 길이가 20미터채도 안 되는 작은 배였다.
바람에 파도가 밀려오면 배는 심하게 요동을 쳤다.
아니 쪼그만 더 세게 바람이 분다면 배는 파도에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
선주들이 가고 난 후 형님과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배가 작다보니 그곳엔 다른 배들처럼 식수 통이 따로 없었다
조그만 말 통 몇 개에 식수를 의존하고있었다.
형님이 저녁을 준비를 하셨다.
세수 대야에 형님이 식수를 부었다.
한 두 바가지 정도의 물을.......
그리고 그 물에 채소를 씻으셨다.
감자, 양파, 파 등을 한번에 몰아놓고는.....
그리고는 그것들을 도마에 올려놓고는 자르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냄비에 그냥 담았다.
그리고는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저녁 찌게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형님은 아까 야채를 씻던 그 물을 버리지 않았다.
나중에 또 쓸 때가 있다고 했다.
반찬을 하는 동안 형님은 내가 본 횟수로만
소주를 4잔이나 마시고 있었다.
형님이 쌀을 앉히었다.
두레박으로 바닷물을 퍼 올렸다.
그리고 그 물로 쌀을 씻었다.
그리고 마지막....
민물을 부어 쌀을 앉혔다.
그것이 저녁밥을 짓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 날 저녁, 밥을 먹지 않았다.
형님의 식사가 끝난 후 형님이 설거지를 했다.
아까 반찬을 씻던 세수 대야에 남은 물로 형님은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바닷물을 퍼다 설거지 그릇들을 헹구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설거지는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나는 속이 매스꺼워 옴을 느꼈다.
나는 속이 안 좋다는 핑계로 밥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자려 했다.
자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배에서 잠을 잘 곳이라곤 한군데밖에 있지 않았다.
선장실 안쪽의 침실!
침실이라 표현하고 싶다.
높이 - 1m도 채 안 되는
폭 - 두 사람이 누우면 비좁은
길이 - 1m70도 채 안 되는
그곳이 유일한 침실이었다.
그곳에 눈을 감고 나는 잠을 청했다.
오늘 이곳에서의 하루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잠이 드려는 나에게 형님은 술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마시지 않았다.
나는 배에서의 생활동안 딱 한잔의 술만을 마셨다.
그날밤 바람은 많이 불었다.
우리의 배는 심하게 요동을 쳤다.
웬지 모를 공포가 나를 감싸안았다.
우리 배는 옆의 좀더 큰배에 모야 줄을 감고 정박을 하고있었다.
그 모야 줄에 우리는 생명의 끈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자다 나는 잠이 깨고 말았다.
소변을 선상에 선 채 보았다.
요동치는 배에 중심을 잡기란 어려웠다.
그 날 밤 별들은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다음 날 나는 옆 배에 올랐다.
그 배에서 아저씨는 잠을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
그 배는 우리 배보다도 훨씬 큰배라 파도에 그리 많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배 멀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아니 이거 이래서 생활하겠어? "
" 그러게요......"
" 우리가 말이지! 생각을 잘 해야 될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들인데..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건! 진짜 인생 막짱 인 사람들이나 할 짓이지
난 못해.......... "
" ............. "
" 먹고 자고 싸는 것까지도 배에서 모두 해야한다니!
그렇다고 한 달에 몇 백, 몇 천을 버는 것도 아니고...... "
이봐! 자넨 어떻게 할 텐가? "
아저씨도 그 날 내가 느꼈던 것들을 느꼈던 것이다.
"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배 생활이란 게 이런 건 줄은 몰랐어요.
저는 숙식제공을 한다기에 낮에는 고기잡고
밤에는 숙소 들어 와서 다음날 출항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고향에서도 그렇게 하길래. 저도 그런데 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여기 배에서 모든 생활을 하는 거라고 하더라 구요. 형님이...
그런 줄 알았으면 이렇게 오지는 않았죠........... 저 두........ "
고대고리배!
그 배의 생활은 이러했다. 선원들은 바다위 배에서 줄곧 생활을 하고
선주들만 이따금 육지로 왕래하면서 필요한 물품들을 실어 나르곤 했다.
물론 선원이 원할 때는 바깥에 볼일을 보러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이곳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향이 고향이다 보니
그냥 배에서 생활을 많이 들 하곤 했다.
나와 아저씨는 이런 생활을 참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주와 통화를 했다.
" 선주 님! 접니다...
제가 처음 타기로 했던 그 선주 님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
" 선주 전화번호는 왜? "
" 아니 다름이 아니라 제가 어제만 하루 선주 님 배를 타기로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연락도 없으시고 말씀도 없으셔서.. "
" 어! 너 그냥 우리배 타면 돼...... 알았지?"
"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제가 타기로 한 배가 이 배가 아니니 일단 그분한테 이야기 좀 듣고요.. "
" 그리고 물어볼 말도 있구 요 "
" 무슨 말! 뭔데? "
" 아니 제가 이곳에서 하루 생활을 해보니까 배에서 이렇게 생활을 하는 거라고 하더라 구요 "
" 그럼 배 생활이 다 그렇지. 그것도 모르고 왔어? "
" 네. 저는 몰랐거든요. 그 선주 님도 자기 집에서 먹고 자고 하자고 말씀하시길 래.
출퇴근하는 줄 알았습니다. "
" 이 놈아! 대한민국천지 어디 가서 물어봐라 배 놈이 출퇴근 하냐고? "
" 하여튼 선주 님! 일단 그럼 배에서 내릴 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 이놈아! 지금 배가 어떻게 떠! 바람이 부는데.....
이런 씨발놈들이 장난을 치나.. 배타겠다고 올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린다고? "
" 선주님!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내려서 하시고요 우리가 지금 내렸으면 하는데
오늘 오실 수 있습니까? "
" 야! 임마... 그럼 잠깐 있어봐......."
우리는 선주에게 우리가 내려야 함을 말했다.
하지만 선주에게선 전화가 금방 오지를 않았다.
정작 전화가 온건
" 총각이가? 내다. "
" 아! 어르신! "
" 너 내린다고 선주한테 전화 했나! "
" 내 어르신! 어휴. 전 배 생활이 이렇게 배에서 생활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내릴려구요.. "
" 봐라! 총각! 내 뭐라고 하 더나... 조금만 참고 견디면은 기반 잡을 수 있다고 하지 않 더나...
좀 있어 보면 괘않다. 일단은 한달 정도만 그곳에 있다가 정 못하겠으면 나한테 연락해라.
꽃게 잡이가 됐던 간에 내가 다른데 소개시켜 줄 그만..
그리고 그 자슥이랑 지금 같이 있나? "
" 네."
" 내가 머라 카 데. 그 자슥 이랑 같이 있지 말라고 안 카 더나. 그 놈아는 영 아이다.
옆에서 머 라고 하던 간에 너는 그곳에 있어라.. 정 힘들면 1달만 그곳에 있어라..
알았나.. 그리고 그 선주들 배에서 내린다고 때려죽이니 마니 난리다 아이가...... "
" 어르신 말씀은 무슨 말씀인지는 알았는데 일단 내릴게요. "
그렇게 노인과의 전화가 끝난 후 나는 선주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 선주 님! 접니다. 어떻게 오실 건가요? "
" 임마 가더라도 내일이나 가야지 오늘 배가 어떻게 떠!
그리고 니 놈들 소개비 그거 어떻게 할거야."
" 압니다. 제 새코미값 말이죠? "
일단 그건 그거고 우선 내린 다음에 얘기를 해도 늦지는 않지 않습니까? "
" 이것들이 장난을 하나. 소개비를 먼저 보내던가 한 다음에 내리던가 해 알았어.?
병신들이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
그렇게 선주는 입장이 확고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내리는 것이 급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해경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해경에서의 처음답변은 참으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해경이죠? "
" 네 "
" 저기 다름이 아니라 민원 좀 드릴게 있어서 전화 좀 했는데요 "
" 네 말씀하세요 "
"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비응도 앞 바다의 배에 타고 있는데,
해경의 도움 좀 받아 내리려고 합니다만.. "
"무슨 일이시죠? "
" 아! 저희가 이곳 배에 어제 선원으로 처음 배에 탔는데 이곳생활이 맞지 않아
배에서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선주는 지금 육지에 있습니다.
선주하고도 통화는 했는데 무슨 소개비용인지 때문에 지금 내려 줄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생각으로는 그건 차후 문제고 일단 우리가 내리고 나서 해결해도 되지 않나 싶은데요.
더욱이 지금 바람도 많이 불고 파도도 치는데 선주말로는 내일이나 돼서 온다고 합니다.
지금 좀 불안해서 이렇게 전화를 했습니다.
만에 하나 오늘 이렇게 배에서 또 시간을 보내다 혹여 무슨 일이나 생기지 않을까 싶어..
그래서 이렇게 해경한테 도움 좀 청하는 겁니다. "
"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우리가 어떻게 해드릴 수는 없네요."
" 네? "
" 다름아니라 그 문제는 민사문제라.. "
" 아니 지금 이게 민사문제라고 했습니까?
지금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은 민원이지 않습니까? "
" 그쪽 심정은 충분히 알겠는데요.. 이런 일들이 한 두 번 있는 것도 아니구..
만에 하나 그쪽 분들이 내려서 그냥 가버리고 나면
나중에 우리가 선주들한테 난리가 납니다.
골치 아픕니다. 잘하면 제 옷이 벗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이 수심이 얕아서 경비정이 뜰 수도 없어요.
한번 선주와 다시 한번 이야기 해보십시오 "
순간 나는 뭐라 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지금 내리고 안 내리고 보다는 국민의 지팡이라 자칭하는 해경의 태도에 나는 화가 났다.
그렇다면 무엇이 민원이란 말인가?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 아니 경위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
" 아니! 누가 그쪽 분 들 보고 그 배에 타라고 했습니까?
어린 양반들도 아니고 어느 정도 나이도 있으신 분들이
잘 알아보고 타야지..
그 쪽 분들이 광고보고 필요에 의해서 그곳에 간 것 아닙니까?
지금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쪽 선주하고도 통화를 한번 해 볼 테니까 좀 기다리세요.
내일 되면 파도도 괜찮으니까....... "
" 그럼 만일 선주와 이야기를 하셨는데도 선주가 오늘 못 오겠다면
우린 내일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 "
" 그렇죠.. 오늘 배가 못 뜬 다니까요..? "
" 암튼 한번 기다려보세요.? "
참 깝깝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정이라는 말인가.........
우리는 해양경찰청으로 전화를 하기로 했다.
해양경찰청의 태도는 어떨까 궁금했다.
당직 수사형사는 담당 경찰서에 조치를 취하겠다며 우리에게 기다리기룰 권유했다.
얼마 후 좀 시끄러운 전화를 받고 나서야 선주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선주들의 차량이 해안 가에 옴과 동시에 우리 배의 기관사(선주친구였음)는
우리를 그곳에 내려주었다.
선주들은 화가 머리까지 올라있었다.
당연히 선주들의 입에선 거친 육두 문자가 쏟아졌다.
육지에 내리는 그 순간 육지의 그 감촉이 그렇게 따뜻하고 편안했는지 모른다.
아저씨는 다방으로 가는 차안에서 계속 멀미를 하였다.
다방에 도착한 후 우리는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했다.
" 긴 얘기 필요 없고, 당신들 소개비하고 여관비해서 45만원이니까 그거나 얼른 주고 꺼저? "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우리 둘 다 주머니엔 그만한 돈이 없었다.
나에게 있는 돈이라고는 단돈 8000원이 전부였다.
그것도 노인이 주고 간 만원에서 남은 돈, 그것이 전부였다.
한참의 고민 후 나는 선주에게 말을 꺼냈다.
" 사장님! 암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니 아저씨는 그만 가시라고 하십시오 "
아저씨가 간 후 나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사장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지금 가진 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누구에게 전화를 해서 돈을 보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제 신분증이라도 맡기고, 제가 이곳 근처에서 노가다라도 뛰던가 해서....."
나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선주의 주먹이 나에게 날라 왔다.
" 이 새끼야! 지금 장난치는 줄 알아! 이런 상놈의 새끼! 뭐 이런 게 다 있어? "
" 형님! 왜 이래요! 말로 좀 해요! "
주위의 선주가 말렸다.
젊은 그 선주가 잠시 그 선주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나는 젊은 선주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그래 하던 얘기 마주 해봐 "
순간 눈물이 나오려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 제가 지금 입장이 좀 그렇습니다. 집에다 연락하기도 그렇구........... "
" 너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너를 언제 봤다고 그렇게 할 수는 없구..
그렇다고 우리도 빚 얻어서 그 돈 소개소에 줬는데...
우리도 그렇게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못되어서...
그 방법은 안되겠다. "
" ............. "
나는 잠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 박 사장님! 접니다. "
" 아이고! 김 사장님! 어디 에요 거기? "
" 아!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말한 것 아직 유효합니까? "
" 뭐요? "
" 대전에서 한번 같이 일 하자는 것....... "
" 아! 그럼요. 오게요? "
" 박 사장님! 그럼 다름이 아니라..
부탁하나 합시다. "
" 뭔데요.. 말해보세요? "
" 아니 다름이 아니라 내가 지금 돈이 필요해서
한 80만원정도면 되겠는데......... "
" 야! 이거 난감한데...
종환씨! 그건 좀 곤란할 것 같네...
내가 단돈 일 이 십만원 이라면 그냥 주겠는데...
나, 사업하면서 친구들한테도 돈 관계 안 하는 거 알잖아요..
차라리 내가 내려가서 해결 될 일이라면 내가 지금 갈게요..
거기 어디 에요? 무슨 일인데요?
"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죠. "
박 사장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형으로서의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좀더 가까운 친구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박 사장과 나는 사회에서 만났고 내가 내려오기 전 까지도 우리는 같은 업종에 있었다.
내가 처음 보안회사를 시작했을 때 그때 나는 영업사원이었고 박 사장은 출동팀 팀장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줄곧 가깝게 지냈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를 정리를 안 했다면 박 사장과 나는 한배를 탔을 것이다.
우리의 독립지사로 사업을 하기로 어느 정도 의견조율이 있었었다.
그리고 내가 지방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있을 때 박 사장은 나와 대전에서 신설법인을
같이 하기를 희망했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박 사장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다이얼을 눌렀다.
" 정아! 나다. "
" 너? 어디야? "
" 어디 긴 임마! 지방이지...... "
" 야! 돈 좀 있냐? "
" 임마! 갑자기 무슨 소리야?
돈은 왜? "
" 아니.. 일이 좀 생겨서 한 40만원 정도.....
다름이 아니라 배 타러 왔는데 일이 좀 꼬였다. "
" 미친 놈 배 타러 갔었냐?
근데 내 사정 뻔히 알잖아..............
야! 큰누나한테 전화한번 해봐? "
" 됐어! 임마!
신경 쓰지 마라.. 장난한번 쳐봤다. "
" 야! 진짜 아니야! "
" 됐어 임마! 신경 쓰지마.
그냥 타향 내려오니까 목소리 듣고 싶어서 장난한번 쳐봤다.
잘 지내고 있어 또 전화할게 "
또다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나는 고민을 했다.
" 누나! 나여! "
" 살아있었냐? 너 엄마 제사 때 왜 안 왔어? "
" 엄마 제사였었냐? 몰랐다............ "
" 다음주 우리 시골 내려가니까 시골로 와 알았지? "
" 알았다....
큰누나........... "
" 왜? 무슨 할 말 있어? "
" 아니..... 할 말은 무슨...... "
" 야! 할말 없으면 끊어. 그리고 시골 꼭 오고 "
" 큰누나........."
나는 도저히 말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큰형수와 막내 누나한테 전화를 했지만
역시 나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를 지켜보던 젊은 선주가 나에게 왔다.
" 동생! 내가 쭉 보니까 옛날 내생각도 나고 내 동생생각도 나서 하는 말인데
객지 나와서까지 집에다 또 손벌리지 말구
잘 생각해봐..
우리 배는 좀더 크고 하니까 생활하는데는 좀 나을 꺼야.
그리고 한 일주일 정도 일해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내리고....................
뭐 하러 공돈 날리고 집에다 걱정 끼치려 그래.....
잘 생각해봐. 배 생활도 적응되면 탈만하다고......... "
형님이 주는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곤 잠시 나는 고민을 했다.
" 형님! 그렇게 하죠. 형님 말대로 일단 1주일 정도만 타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동안 고대고리 배에서의 선원생활을 잠깐이나마 하게 되었다.
그 날 나는 형님과 함께 찜질 방에서 하루 밤을 보내며 어느 정도 정을 쌓았다.
다시 나는 배에 올랐다.
예전에 처음 내가 탔던 배에 비하면 형님의 배는 호텔수준이었다.
식수 통이 따로 있어 민물은 그곳에서 받아쓰면 되었다.
잠 또한 배의 아래편에 있는 (옛날보다는 좀더 넓은) 숙소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숙소는 곰팡이와 축축한 냄새로 불결했다.
그래도 처음 내가 탔던 배에 비하면 A급이었다.
그 배 역시 선장형님과 기관을 맡은 기관장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가 선원의 전부였다.
배에서 나의 보직은 화장이었다. 화장은 다름이 아닌 선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자리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의무였다는 것을 몰랐다.
처음 배에 올라서 나는 형님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 제가 막내고 또 밖에서 음식 좀 많이 해봤으니까 밥과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형님들에게는 당연한 말이었다.
나는 남자들끼리 있으니 서로 밥하고 설거지하고 하려면 아무래도 귀찮을 듯 싶어
되도록 내가 하겠다는 의미였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배는 마치 작은 왕국이었다.
선장은 그 배의 왕이었다.
대부분의 선장들은 오로지 배의 키만을 잡았다.
나머지 그물작업과 어획물에 대한 선별작업은 선원들의 몫이었다.
배에서 선장이 직접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일 들은 나 같은 화장들의 몫이었다.
다행히 내가 탄 배의 선장형님은 많은 것들을 우리와 함께 했다.
그물을 풀 때도 그랬고 잡은 고기들의 선별작업을 할 때도 그랬고, 그물작업을 할 때도 그랬다.
튼튼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 전형적인 뱃사람의 표본이었다.
더욱이 우리선장형님은 어릴 적 태평양에서 원양어선을 몇 년 동안 탔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배에 있어 모르는 것이 없는 만능이었다.
우리의 배는 허가가 없는 배였다.
물론 선원에 대한 4대 보험 역시 없었다.
그것이 나는 좀 불안했다.
더욱이 파도가 높이 치는 새벽에 그물을 작업을 할 때는 더욱 그랬다.
배에는 아무런 구명장비가 없었다.
형님 말대로 목숨을 담보로 배를 타는 것이었다.
아마 인근의 대부분의 배들이 그랬을 것이다.
내가 탔던 고대고리 배들은 늘 해안 가에 닻을 내리고 정박을 했다.
여러 대의 같은 선단소속의 배들이 서로 모야 줄을 묶어 둔 채.........
우리는 저녁이 되면 출항을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해안가로 회항했다.
저녁 5시쯤 출항준비를 해서 저녁 8시쯤 되면 우리는 첫 그물작업을 했다.
그리고 새벽 4시에서 5시까지 그물작업은 계속됐다.
하루에 보통 3회에서 4회의 그물작업을 했다.
보통 그물을 한번 뿌리면 우리는 2시간 가량을 고기가 들기를 기다린다.
바로 이렇게 첫 그물을 뿌려 놓고 난 후 나와 기관장형님은 배 밑 숙소에서 잠깐의 눈을 붙였다.
그리고 아침 9시 잡은 고기를 실어갈 상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그물작업과 고기선별작업을 했다.
상선이 고기를 가지고 가면 나는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와서 내리기 전까지 한끼라도 매운탕을 안 끌이면 안됐다.
그 날 잡은 고기 중에서 아무거나 한 마리 손을 본 후...............
하지만 나는 이렇게 끓인 매운탕을 먹지는 않았다.
흔히 매운탕 집에서 고기를 깨끗이 씻고 난 후에 끓인 매운탕이었으면 나는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 사람들의 음식습관은 도저히 내가 적응하기 어려웠다.
바닷물에 대충 헹궈서 민물을 받아 끓이는.......
회 역시 바닷물로 대충 헹궈서 먹는.....
선상에서의 생활동안 나는 거의 바다음식에 손을 대지를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손을 댄 것은 라면과 김치...
그러다 라면마저 없으면 고추장이나 간장, 아니면 맹물에 김치 한 조각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튼 우리가 아침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매일같이 망가진 그물에 대한 수선을 해야했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나면 보통 2시에서 3시가 되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잘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배 생활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선원들에게 있어서는........
물먹은 로프를 잡아당기고, 물에 젖은 그물을 끌어올리고, 다시 그 그물을 바다에 던지고
온갖 어패류와 진흙, 모래가 섞여있는 수확물을 어종별로 하나하나 분류해 담고,
상선이 오면 그 상선에 잡은 수산물들을 넘기고, 상선에서 얼음을 퍼다가 우리 배에 싣고
그리고 밥을 준비를 하고. 또 그물작업을 하고 그러다 잠깐의 눈을 붙이고
그리고 나면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그 모든 작업 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새우를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진흙과 모래에 뒤엉켜 있는 온갖 부류에서
우리는 먼저 광어나, 꽃게, 쭈꾸미 등 회 집에 팔 수 있는
활어들만을 골라냈다.
그리고 각종 소라를 골라낸 후
마지막으로 새우를 골라냈다.
일일이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그 많은 새우들을 골라내는 선별작업을 매일매일 해야했다.
나는 참 아무것도 몰랐다.
배에서 이렇게 선별작업들까지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루에 많이 새우를 골라내면 나무상자로 18상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겨울철이 되면 보통 한 배당 100상자 정도를 수확한다고 하니.........
더욱이 몇 시간을 쭈그리고 앉아 새우를 고를라치면 허리가 끊어짐을 느꼈다.
나는 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먹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고된 일과, 공포, 지루함, 무료함 ,고독...............
하지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의 체력이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여서 그랬는지 나는 보통 1차 그물작업이 끝나고 나면 체력이 바닥났었다.
아침 회항을 준비중 일 때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곤 했다.
결국 나는 형님에게 배에서 내리겠음을 이야기하고 다음날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갑판에 누웠다.
빨간 노을이 물들은 석양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노을에 나는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21살 때부터 지금 27까지의 고집스러웠던 시간들을....................
형님 배에서 나는 5일을 일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올 때 형님에게 일한 급여를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형님은 다시는 배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만 여행을 접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형님은 조언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돈 30만원을 잃고 왔다.
큰 누님에게 또 한번 손을 벌려 새코미값을 지불을 하고 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