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지금껏 제가 보여드린 여러 불가사의 들은 모두 다 7대 불가사의는 아닙니다.
어느것은 고대 7대불가사의가 있구요, 어느것은 현대 7대 불가사의기도 합니다.
또 어느것은 7대불가사의 말고 또다른 신기한 불가사의 인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제가 신기하다거나 알아두는게 좋다거나 혹은 상식이 될만한 것들만 골라와봤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원래의 7대 불가사의를 알려드리려구요.
지구 상에서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7가지 사물(事物)을 총칭하는 말로써, BC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인 여행자들에게 관광 대상이 된 7가지 건축물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다음 7가지를 말합니다.
1. 이집트의 피라미드
2. 로마의 원형극장(콜로세움)
3. 영국의 거석기념물(巨石紀念物, 스톤헨지)
4. 이탈리아의 피사 사탑(斜塔)
5. 이스탄불의 성(聖)소피아 성당
6. 중국의 만리장성
7.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7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7대불가사의는 아니지만 불가사의라고 불리우는 미스테리들이 있습니다.
① 크레타섬의 미노스 궁전
② 테베·네크로폴리스(묘지)
③ 왕가(王家)의 계곡 (파라오[투탕카멘]의 저주)
④ 시리아의 팔미라 고도(古都)
⑤ 바위의 돔
⑥ 클라크 데 슈발리에(시리아의 십자군 성채)
⑦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그 밖에 자연현상과 관계되는 7대 불가사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Pyramid)
BC 2550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7대 불가사의 가운데 가장 크며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피라미드란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국왕,왕비,왕족 무덤의 한 형식으로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pyramis)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 불렀다. 현재 80기(基)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 km인 나일강 서안 사막 연변에 점재해 있다. 그러나 와력(瓦礫)의 산으로 변한 것과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옛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의외로 적다.
피라미드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기록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BC 5세기)의 <역사> 권2에 있다. 그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쿠푸는 카이로 남서쪽 15 km에 위치한 기자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이것은 대피라미드 또는 제1피라미드라 일컬어지며, 높이 146.5 m(현재 137 m), 저변 230 m, 사면각도는 51 °52 '이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의 것이라도 5 °30 '에 지나지 않은 만큼 극히 정교한 것으로, 피트리에 의하면 평균 2.5 t의 돌을 230만개나 쌓아올렸다. 진정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서 그 장대한 규모와 간결한 미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다. 내부구조는 복잡해서 독일의 보르하르트에 의하면 계획이 2번 변경되었다고 한다. 북측의 지면에서 약간 위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그대로 하강하면 암반 밑에 설치된 방에 도달한다. 이곳이 제1차 계획의 매장실이고, 그 위에 있는 통칭‘왕비의 방’이 제2차 계획의 매장실이다. 그리고 제3차 계획에 의해 피라미드는 완성되었다.
제1피라미드 남서쪽에 카프라왕의 제2피라미드가 있다. 높이 136 m, 밑변 216 m, 동쪽에 있는 장제신전에 450 m의 참배로가 뻗어 하곡신전에 이른다. 유명한 스핑크스는 하곡신전에 가까운 참배로 북쪽에 엎드려 있다. 기자에는 그 밖에 멘카우레왕의 제3피라미드와 왕족들의 소(小)피라미드 6기가 있다.
[건조법]
피라미드를 건조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무거운 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는 점이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건설 사업은 돌을 케내어 뗏목으로 운반하고 공사를 하기 위한 도로를 만들고 피라미드의 지하공사를 하는데만 적어도 10만명의 노예가 석 달씩 교대로 해서 10년이 걸렸고 돌을 높게 쌓아 올리는데도 20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피라미드 건설당시 이집트인은 수레나 말을 이용한 운반법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지레나 굴림대를 제외하면 오로지 인력에만 의지하여 작업이 이루어 졌다. 즉 수백명의 사람이 채석장에서 운반해온 무거운 석재를 땟목에 올려 강을 건넜고 역시 강기슭에 도착한 석재를 건설현장 까지 운반하였다. 그래서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는 썰매로 운반하였다. 일정한 높이마다 핵재(核材),내장재,전재(塡材),외장재의 순으로 쌓아놓고, 피라미드가 높아짐에 따라 경사로도 높아졌다. 이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는 일정해야 하므로 길이는 점차 길어진다. 정상까지 다 쌓고나면 위에서부터 외장을 완공시켜가면서 서서히 경사로를 낮게 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외장은 정성들여 시공되고, 석재는 종이 한 장 끼워지지 않은 정도로 정밀하게 쌓아졌다. 완성에 걸린 연대에 대하여 헤로도투스는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20년이라 적었으나, 실제로는 더 짧은 기간으로 생각된다.
이상이 전통적인 학계의 의견이다.
그러나 위 학설에 대한 많은 부정과 비판이 있다.
예를 들어 위의 건조법으로 피라미드 건설을 설명할 때 다른 피라미드는 대개 설명이 가능하나 그레이트 피라미드(쿠푸왕)의 경우에는 도저히 불가하다. 그레이엄 햄콕은 그의 저서 '신의 지문'에서 위의 전통적 학설에 이의를 가하며 많은 부분을 부정한다.
사실, '그레이트 피라미드가 쿠푸왕의 무덤이 맞는가?'라는 의문부터 시작한다.
즉, 그레이트 피라미드에서는 그 누구의 미이라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어느 문헌에도 쿠푸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없다.
증축 및 보수에 관한 기록이 있으나 연대적으로 볼 때 다른 피라미드는 그레이트 피라미드의 모방작에 불과하다는 설 또한 있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미이라의 저주나 계단의 수가 세계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는 식의 많은 이야기들은 결코 간과할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 속에서 피라미드는 영화의 가장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 개봉작 '머미'나 '스타게이트'등은 이러한 심사를 많이 반영하는 것이다.
어쨌든 역사상 최고의 미스테리, 미스테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는 사실은 부정할수 없을 것이다.
그 크기, 설계의 치밀함, 주변환경과 조화되어 있고 천문학적 지식을 집대성하고 있는 피라미드는 심오한 우주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되어졌고,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개나 250만개 쌓아올린 엄청난 무게를 4,800년의 기간동안 견디며 장엄함을 드러내며 우뚝 서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대해서 .... 많은 것을 알아봤는데요
피라미드 하면 그저 어마어마 한것밖에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 -_- 하지만 역시 지금도 어마어마하다는 생각밖엔 안드는군요...
이번엔 다양한 피라미드의 모습들을 볼까요?
가장 아름답다는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외벽이 붕괴된 피라미드
그 밖의 피라미드에 대한 기사입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아니지만)
■미이라 전시실 흥미
이집트 여행은 눈과 귀, 입, 마음 등 온몸으로 하게 된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건설한 이집트 사람들의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집념. 하지만 그러 한 집념이 있었기에 오늘날 그토록 많은 여행자들이 이집트의 매력에 사로잡혀 그 땅을 여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집트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고대 이집트가 남긴 유물은 5,000여 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에 남아있는 피라미드를 비롯한 각종 유물들은 인 류의 역사를 연구하고 당시의 사회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카이로에 가면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주로 피라미드에 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전시품의 양이 방대하고 내용도 수준 급이다. 전시품이 워낙 많아서 공간이 부족할 정도. 피라미드의 발굴이 시작될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 등 강대국들이 숱한 유물을 가져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유물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전시 내용에 따라 전시실을 구분해 두고 있는데 가장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미이라 전시실이다. 이집트를 지배했던 고대 왕들의 미이라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문화 모자이크의 현장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독특한 느낌을 가진 도시다.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 문 명과 중동을 거쳐 온 동양 문명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고유의 문화 등 세 가지 가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시가지는 시끄럽고, 혼잡스러우며 낯선 여행자 들에게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요란하다. 이런 시끌벅적함이 카이로의 첫인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유유히 흘러가는 나일강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집트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해온 나일은 시간대에 따라 각기 다른 표정으로 여행자들 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카이로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이 이슬람 지구다. 이곳에 많은 명소들이 집 합해 있어 여행자라면 여행기간 내내 몇 번이나 찾게되는 곳이다. 먼저 시가지 전망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시타델 요새로 올라가자.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요 새는 십자군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요새 내에는 군사박물관과 무하마드 알 리 모스크가 있다.
■신비로운 피라미드
이밖에도 이슬람지구에는 아즈하르 모스크를 비롯해 여러 개의 모스크와 박물 관, 14세기부터 장이 서기 시작했다는 재래시장 칸 카릴리 바자르 등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이집트의 상징 피라미드. 카이로 시내에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기자지구는 가장 인기 있는 피라미드 지구 중 하나다. 기자지구에 들어서면 멀리 우뚝 솟 은 3구의 피라미드의 자태가 나타나는데 피라미드에 다가갈수록 숨막히는 경이 로움을 느끼게 된다.
3개의 피라미드가 시야에 들어오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행자들은 사막언덕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언덕 옆에는 낙타들이 줄지어 있는데 1달러 만 주면 낙타를 타볼 수도 있다. 낙타를 타볼 기회가 없는 우리들에겐 특별한 경험이다. 낙타 등에 올라타고 보면 보기보다 높아서 아찔해진다.
피라미드에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와 위용에 압도당한다. 수 천년 전, 특별한 기계나 장비도 없이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
기자지구에 있는 3개의 피라미드는 쿠푸왕, 멘카우라왕, 카프라왕의 무덤이다.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면 밖에서 놀란 것 이상으로 놀라게 된다. 돌무더기 속 에 너른 공간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그 내부를 화려하고 정교하게 꾸몄다 는 사실도 놀랍다. 3개 가운데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여행자들이 제일 많이 몰 린다. 규모가 작은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는 인적이 드물어 으스스할 정도다.
■피라미드의 수호자
스핑크스 또한 피라미드 못지 않게 신비롭다. 수 천년동안 사막의 모래에 묻혀 있다가 세상에 나온 스핑크스를 본 사람들은 신적인 존재로 느낄 수밖에 없었 을 것이다. 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는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이 생생하다.
얼굴은 인간들에게 무언가 전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스핑크스는 아랍 어로 '공포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코가 깎여 나가고 수염이 없어진 스핑크스는 안쓰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