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잎이 돋는 춘삼월이다. 여기 춘삼월은 음력이라 양력 기준으론 사월 정도 해당한다. 매년 이맘때 진해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상춘객을 모은다. 부산 사람은 다르다만 진해로 가려면 창원을 거쳐 지나야 한다. 이 무렵 공업단지를 낀 창원에서도 꽃 잔치가 한창이다. 공원이나 아파트단지 화사한 개나리와 목련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거리거리마다 벚꽃이 꽃구름을 이룬다.
창원은 신도시 건설 때 공단지역과 주택지역을 구분했다. 그 사이에 업무와 상업지역을 배치했다. 신도시가 건설된 지 삼십년 가량 지나니 한 세대가 흐른 세월이다. 동네마다 특색 있는 가로수가 있다. 반송동은 여름 느티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봉곡동은 가을 은행나무 단풍이 곱다. 용호동은 겨울 메타스퀘어가 운치 있다. 교육단지와 창원대로 쪽 공단은 봄날 벚꽃이 아름답게 핀다.
지구온난화와 열섬현상으로 도심 가로수에 봄이 빨라졌다. 꽃이 피고 잎이 돋는 시기가 교외 산과 들보다 빨라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거창이나 봉화지역보다 위도가 훨씬 높은 서울의 꽃이나 잎이 먼저 피고 돋는 데서 알 수 있다. 창원지방 기준으로 벚꽃은 식목일 전후하여 만개했는데 이제는 삼월 말이면 활짝 핀다.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라 식물도감 개화시기도 고쳐야할 형편이다.
내가 사는 동네 뒤에 반송공원이 있다. 소나무 말고 졸참나무와 오리나무가 어울린 숲이다. 출근길 남산교회 지나 보도를 걷다보면 공원 언덕에 개나리꽃이 피었다가 지고 있었다. 늘어진 가지마다 노란 꽃이 진 자리 근처 파릇한 잎이 돋아났다. 공원 숲속 졸참나무 잎은 좀 늦게 나온다만 오리나무 새순은 빨리 돋아났다. 연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숲을 바라보면 계절의 변화가 실감되었다.
나는 카풀로 출퇴근하지만 운전을 못해 기사를 거느린 듯한 호사를 누린다. 아침에 집을 나서 십분 남짓 걸어 동료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한다. 동료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앞으로 차를 몰아오려 해도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나는 짧으나마 출근길에 호젓하게 걸어보고 싶어서다. 집을 나서면 두 아들이 다녔던 중학교를 거쳐 교회가 나온다. 교회를 지나면 반송공원 아래 보도로 걸어간다.
내가 걷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편이다. 건너편은 용호동 주택가라 차도에는 자녀를 등교시키거나 출근하는 회사원들의 자동차가 많이 다닌다. 봄날은 개나리꽃 만발한 길가 언덕이 운치 있다. 메타스퀘어길이 도지사공관으로 계속 이어졌다. 메타스퀘어는 연녹색 잎이 싱그럽고 녹음이 우거진다. 갈색 단풍이 물든 가을도 괜찮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도 운치 있다.
차도엔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아침이지만 나는 보도로 느긋하게 걷는다. 걸으면서 그날 하루 할 일의 순서라든가 완급을 생각해본다. 십분 남짓 가다보면 퇴촌삼거리가 나오고 동료와 만나기로 한 창원의 집 맞은편 길가에서 차가 오길 기다린다. 대개 내가 먼저 나가 기다리기에 그곳에서도 오가는 차량들이나 개울가 풍광을 감상할 시간이 난다. 짝 잃은 쇠백로 한 마리는 눈에 익었다.
용추계곡 물과 소목고개 물이 퇴촌삼거리에서 만나 창원천이 굵어진다. 그곳에 퇴촌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가장자리엔 보도가 있다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도엔 시멘트 블록을 깔아 놓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질 않아 여름에는 블록 틈 사이엔 잡초가 나서 자란다. 가뭄에도 질경이나 바랭이풀이 모진 생명으로 살아남았다. 그럴 때면 담당 부서에서 매끈하게 뽑아버렸다.
시내 거리는 벚꽃이 만개한 때였다. 출근길 퇴촌삼거리를 지나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리위 시멘트 틈 사이 신비로운 생명이 싹 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보도블록이 사각이다 보니 사방무늬로 자주색 제비꽃이 망울망울 피었다. 보도블록 사이 비집고 들어간 흙살에 어디선가 날아온 꽃씨가 싹이 터서 자랐다. 나는 가던 길 멈추고 쪼그려 앉아 앙증맞은 꽃에다 눈높이를 맞추었다. 0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