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독이 약간 풀리는듯 합니다. 회원님들의 올리신 글에 대한 답레(리플)도
뒤로 한체 좋은 글이 잇기에 퍼왔습니다.
읽으신후 절대로 리플은 안달으셔도 됩니다.그냥 참고 자료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라톤 선수중 활약등. 그예..
김완기,정봉수,황영조,이봉주,엄효석,
모두가 중,고등학교때부터 운동을 했다고 나오네요...
이리저리 찾느라 힘들었네요.. 제가 알고있는 마라톤홈페이지 여기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선수들를 소개하죠.....
코오롱 선수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바로 김완기다. 전북 정읍시 칠보군 백암리가 고향인 김완기는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걸핏하면 얻어맞은 약골이지만 달리기 하나만은 잘했던 녀석. 85년 중학교 졸업후 정읍농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1학년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86년 육상의 명문인 남원상고에 1학년으로 재입학했다. 그해 제2회 전국남녀고교 구간마라톤대회 우승 주역이었지만 전학이 아니고 1학년 재입학 사실이 드러나자 부정선수로 낙인이 찍혔다.
김완기는 그 충격에 팀을 이탈하고 가출까지 결행했다. 화가난 교장은 그를 퇴학처분했다. 그 무렵 나는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겨 교장선생을 찾아가 퇴학 결정을 번복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87년 여름 내내 나는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경기도 과천 누이집 근처의 한 신발공장에서 일하던 완기를 찾아냈다. 여러번 설득한 끝에 그를 경산의 경진실업고교에 입학하게 한 후 마라톤팀에 합류시켰다. 장거리 주자로서 좋은 신체조건을 지닌 완기에게 본격적인 훈련을 시켰다. 혹독한 훈련이지만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주었다. 그 결과 88년 67회 전국체전 1만‘에 출전하여 30분05초로 3위 입상, 그리고 그해 11월 열린 경부역전 마라톤대회에 전북 대표로 출전해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코오롱 마라톤팀의 화려한 시대를 여는 전주곡이었다.
정봉수감독 초등학교때 달리기의 1인자
중학교때 마찬가지로 달리기의 일인자..
고등학교 다닐때부터 도대표선수
전쟁중 ‘육군 대표선수’로
서울 무교동의 코오롱빌딩에서 아주 단출한 창단식을 가졌다. 창단식 이후 곧바로 경진실업고교를 다니던 김완기, 경북 예천고교를 졸업한 이창우, 춘천농고 출신인 박재효,경북체고를 졸업한 신재포, 경북 안동 경산고 출신의 오익희 등을 입단시켰다
<<<황영조>>>
고교 2학년때 육상 장거리주자로서의 소질이 드러났다. 3학년때는 고교 육상계에서 5,000‘와 10㎞ 도로 단축마라톤에서 그를 앞지를 만한 선수가 없었다.
89년 12월 일본 호후시에서 벌어진 10㎞ 단축마라톤에 출전한 황영조는 일본 고교 장거리계 1인자 와타나베를 손쉽게 물리치고 우승했다.
정감독(말) -나는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연습에서의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평소의 독한 연습만이 좋은 기록과 성적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맹신한다. 선수들의 연습과 건강, 심지어는 사생활까지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마라톤은 1주일만 연습을 하지 않으면 끝나는 운동이다. 강인한 정신력 없이는 완주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라톤을 철저한 「관리형 스포츠」라고 말한다.
그러나 황영조는 그런 나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그의 빠른 은퇴 이유도 여기에 있다. 96년 동아마라톤을 끝으로 황영조는 조기은퇴했다. 아끼는 제자, 좋은 선수를 한명 잃는다는 허탈감에 건강도 무척 나빠졌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의 지도자론은 더 확고하게 정립되었다. 즉 「지도자는 선수에게 끌려다녀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
<<<이봉주>>>-(출생 : 1970년 10월 11일
신체 : 키: 167cm, 체중: 56kg
가족사항 : 2남 2녀 중 막내, 2002년 4월 김미순과 결혼
학력 : 광천고등학교 - 서울시립대학교
수상경력 : 1998,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 외 다수)
1970년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삽교고등학교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하였다. 1990년 서울시청에 입단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1991년 말 정봉수 감독의 권유로 코오롱에 입단해 황영조·김완기 등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이듬해 1992년 1월 도쿄국제하프마라톤대회에서 1시간 1분 4초의 한국 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이후 1992년 자신의 첫 풀코스인 올림픽경기대회 대표선발전에 출전하여 경기 중반까지 황영조 등과 선두 그룹에 속해 달리다가 넘어져 올림픽행이 좌절되기도 하였으나, 1993년 10월 광주에서 열린 제7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2시간 10분 27초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해 12월 호놀룰루마라톤에 출전하여 케냐의 코스마스 엔데티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94년 세계적인 마라톤 경주대회인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 9분 59초의 기록으로 마침내 10분 벽을 돌파하였다.
이후 1995년 제67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뒤, 춘천마라톤에서도 4위를 차지하였고, 199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26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아쉬운 준우승에 그쳤다. 1998년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시간 7분 44초를 기록하여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의 한국 최고기록인 2시간 8분 9초를 깨고 2위에 올랐고, 1998년 타이의 방콕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한국의 마라톤 3연패를 달성하였다. 황영조 이후 한국의 대표 마라토너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그는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열린 제27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냈으나, 2001년 4월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함으로써 남승룡 이후 51년 만에 우승컵을 한국으로 되찾아왔다.
갑신년 새해 벽두 제주도 한라수목원 오솔길. 한국 마라톤의 ‘지존’과 ‘미래’가 만났다.
‘봉달이’ 이봉주(34·삼성전자)와 ‘마라톤 사관학교’ 건국대의 엄효석(20). 14세 차이인 이 마라톤 선후배는 3월 14일 열리는 서울국제마라톤을 앞두고 동계훈련 중.
“효석아, 난 아테네올림픽에 내 마라톤 인생을 걸 테니 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맡아라.”(이봉주)
“고맙습니다. 이렇게 형과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마라톤에만 매진해 꼭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습니다.”(엄효석)
이들은 각각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마라톤의 간판과 최고 유망주. 이봉주는 90년부터 지난해까지 풀코스에 31회 도전해 30회 완주한 철각.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보스턴마라톤 우승, 아시아경기 2연패 등을 달성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다.
엄효석도 아직은 꿈나무에 불과하지만 자질은 이봉주 못지않다. 2002년 고교 9개 대회 중장거리를 휩쓸었고 5000m, 1만m는 물론 각종 구간마라톤에서 1위를 달렸다. 무엇보다 1500m를 3분51초 만에 주파할 정도로 스피드가 좋아 속도 경쟁의 현대 마라톤 추세에 딱 맞는 자질을 갖췄다.
육상에서도 중장거리는 대표적인 3D종목. 이런 가운데 혜성처럼 나타난 엄효석은 이봉주에게 ‘너무 고맙고 예쁜 후배’다. 후계자를 골라 보라는 말에 이봉주는 주저 없이 엄효석을 지목했다.
엄효석은 대학 새내기였던 지난해 전국체전 50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대학 무대 돌풍의 주인공. 지난해 3월 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선 30km지점까지 우승자 거트 타이스(남아공)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여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요즘 그는 왼쪽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다. 고교 시절 너무 훈련을 많이 한 탓이라고.
“마라톤 선수에게 몸은 생명이야. 이상이 있으면 훈련을 중단하고 병원에 가야 해. 참고 운동하는 것도 일종의 오버페이스야.”(이봉주)
“고맙습니다. 언제나 노력하는 봉주형을 좋아했어요. 꼭 봉주형 같은 마라토너가 되겠습니다.”(엄효석)
한국 마라톤의 ‘오늘과 내일’은 다시 나무 냄새 상큼한 오솔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봉주 편지▼
효석아. 선배로서 몇 마디 띄운다.
마라톤을 하기 위해선 많은 희생이 따른단다. 사생활을 모두 누리면서 마라톤도 하려고 하면 성공할 수 없다. 내가 직접 느낀 것이다. 하루 24시간 매달려도 단 1초를 단축하기 어려운 게 마라톤이지만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르는 게 또 마라톤이란다.
넌 아직 어리니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스피드가 없으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게 마라톤임을 너도 잘 알겠지. 너는 국내 대학생 중 최고의 스피드를 갖고 있으니 그 장점을 살려 스피드 훈련에 더욱 집중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체력을 키운 뒤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한 가지 더. 넌 키가 큰 편이니 체력 소모를 줄이는 주법을 개발하는 것도 잊지 말아라. 2008년 올림픽에서 네가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기대하겠다. 봉주가.
<<<글을 읽다가 보면 이상함을 느낄것입니다.글이 맞지 않아서 군데군데 잘라 버렸습니다.
이해 하시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좋은 정보 잘 읽어 습니다
아픔을 참고 계속 운동하는것도 오버페이스란 말이 가슴에 와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