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노래
무불 장성훈
조막 손 녹이려고
겨울 채비 헛간에 불을 놓던 초 봄날
바람은 왜 그리 자발없이 울었을까
민들레만치 피던 불꽃
석양 나절
뒷산 따라 제 몸을 키우고
어느 집 담을 넘던 소리
불이야 불이야
사랑채 샛잠 겹던 누이는
작은 몸 어디에서 그 힘이 솟았을까
외양간 옆 손톱만한 체구,
봄을 안은 살구꽃마냥
마른 가지 닮은 맥없는 허리로
초가살이 한 해를 건져내던 날
장대 끝에 매달린 오색 끈 풀어내던
윗말 산에 간 만신 할멈 다시 돌아 와
방울 소리 울렸지
할멈은 꽃 같은 누이가
탐이 났을까
그 밤 호롱 불 너머
두런대며 선잠 흔들던 아부지
'아무래도 큰애한테도 내리는가 벼'
끝없이 봉창을 흔들던 엄니의 한숨
내쉬던 숨, 멈추지 못해 눈에서 지워지고
지팡이 하나로 십리 길 다니시던
할아버지 아흔 아홉 고개
열댓 겨우 나던 손주 녀석
장가갈 날 바라시다
고추 발갛게 영글기도 전
내린 자식 하나 둘 앞 세우고
그 길 따라 가시던 날
자식들 먼저 보낸 한은
황톳물로 넘쳤지
너무 오래 살아도 징허지
슬퍼할 이유 없는 호상
그 해 여름비 줄장 울어도
문 열면 눈 닿은 어디라도
장가네 땅이라던
끝없는 풍문은 전설처럼
잊혀져 가고
빈 몸 빈손으로
작은 터 하나씩 일구던 시절
호롱 불 그늘에 낮게 깔리던
아부지의 예감은
복사꽃마냥 흐드러지던 누이의 시절에
알콩 달콩 자식 대신
차건 금칠 부처 앉혀 두고
조밀 조밀한 가계부 대신
한지 누렇게 빛 바랜 불경만 펄럭였지
죽은 만신할멈
누이 몸 빌어 굿판 크게 벌리고
계룡산 한 자락에 발자국을 새기자
그 밤
때아닌 까마귀떼 안개 속에 울었다지
꿈을 꾸었어
벌건 화마에 두툼한 고향집
삭정이로 부서지고
샘 둥지 한 모서리 숨어 우는 꿈을
그 날 이후
누이는 스님따라
바람처럼 떠나고
누구는 부평, 깡통 공장 속으로
하나는 어디라더라,
파출부가 되었다지
옹기 종기 육남매
모여 살던 둥지에는 바람만 남았겠네
날개도 없이 떠나야 했던 아이, 하나.
사기막골 산 길에서
열 일곱 생일을 맞았네
인적 끊겨진 깊은 새벽
눈이 나려라
눈은 나려라
하얀 가등 아래 하얀 눈
세상 온통 하얀 빛
아이가 서 있었네
그 열일곱 생일날 새벽
붉은 빛이 보고싶어
꽃이 보고 싶어
도시로 난 다리 위에
눈 케익을 만들고
나뭇가지였을까? 아마도...
댓개 꽂았지
불, 불, 불
아이의 손에는 깨어진 병 조각
이마에는 깊은 상처
뚜욱 , 뚝
하얀 눈 위에 하얀 가등 아래
붉은 꽃 무더기
처음으로 아이가 눈물을 알던 날
지금도 모르겠어
이마 위에 아픔 때문이었을까?
달려도 달려도
벗어날 수 없는 세상 탓이었을까?
그 지겨운 가난 ,
하얀 눈 위에 하얀 가등 아래
때 아니게 피어난 붉은 꿏 때문이었을까?
그 해 겨울은
붉은 꽃 피고 지는 사이
아이의 이마 위에
눈섭만한 상처를 남기고
떠나갔네
나도 떠나 갔네
겨울을 따라
부평
그리고 깡통 공장
깡통 속에 살던 또 다른 아이
깡통같은 하꼬방에
말린 정어리마냥 비비고 살던 아이
세상은
깡통보다 견고하게 아이를
공장 속에 가두어 두고
짐짓 아무렇지 않게
봄 마저 빼앗고는
쿵 쿠웅
육중한 프레스 기계만 연신 돌았지
그 프레스 금형 사이로
손가락은 쉴 틈 없이 엷은 철판을 넣었다 빼었다
그 아찔한 곡예
누구는 일분에 백개를 만든다더라
누구는 , 누구는...
아이 몸값은 그 절반 밖에 되지 않아 .
아무리 감추어도
아무리 숨어도
뜨겁기만 했던 여름
그 여름 날
아이는 붉은 꽃을 또 보았네
프레스 금형 속으로
손가락이 사라진 뒤
시커먼 면 장갑 속에서
흐드러지던 붉은 꽃
아이는 또 울었네
잃어버린 손가락이 보고팠을까?
끝내 찾아들던 아픔 탓이었을까?
환장하게 흐드러지던
붉은 꽃 때문일까?
처음 깡통 속을 나와
병원으로 달음질치던 아이
아이 곁으로
매앰 매앰
매미 소리는 따라오고
앵앵 앰브런스 소리보다
요란하게 따라오고
고향집 둥지 곁
살구 나무 그늘처럼
쉴 새 없이 울어대고
그 둥지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어느 누가 살아서
꿈을 꾸고 있을까
누이여
우리 이제 고향집으로 가요
거기 돌담 아래 모올래 심어둔
알 하나가 어쩌면
파닥 파닥 피어나
종 종 걸음으로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첫댓글 지난날 가난이 너무도 새로와 모셔왔습니다. _()_
수고하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