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와 부산.
신거제대교를 따라 거제도에 들어섰습니다.
거제도는 앞서 돌산도를 비교하면서 살펴본 것처럼 광역자차단체인 제주도를 제외하면
가장 큰 섬으로 기초단체인 거제시가 있어서 섬 안에 시가 위치한 유일한 섬이기도 합니다.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로 통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연륙교가 두 개의 다리로 연결이 되었네요.
여수와 돌산도, 통영과 미륵도, 그리고 거제도까지....
두개의 교량이 필요할 정도로 교통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연륙교가 필요하였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외도와 해금강의 관광으로 널리 알려진 거제도는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답게
해양관광휴양도시를 지향하고 있으며 두 개의 조선소와 최근 부산과 연결되는
거가대교의 준공으로 산업도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외도와 내도의 비경과 해금강,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 여차-홍포 해안비경,
계룡산,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공곳이를 가리켜 거제팔경이라고 한답니다.
거제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입니다.
한국전쟁의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하여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명 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습니다.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기도 하고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잔존건물 일부만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은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과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과 관광명소로 조성하여 지방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수와 순천에서처럼 남쪽 끝자락의 이곳 거제도에도 우리의 아픈 역사는 숨 쉬고 있습니다.
또한 거제도는 조선해양의 도시라는 표현처럼
대우 현대 삼성의 빅3 조선소 가운데 두 곳이 이곳이 위치합니다.
북쪽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남쪽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거제도를
조선해양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도록 만들었습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입니다.
그리고 2004년 착공하여 2010.12월 개통한 거가대교는 경남 거제시 장목면과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를 연결하는 사장교 2개소 4.5km와 침매터널 3.7km의 총 8.2km 다리입니다.
특히 침매터널은 수심이 48m의 바다 속에 건설하여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기존 2시간 20분 걸리던 거리를 50분으로 단축시킴으로서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아름다운 주변의 경관과 함께 지역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거제도는 단순히 연륙교와 연결된 섬이 아니라 거제대교와
거가대교의 연결로 조선, 물류, 해양, 관광도시의 면모를 모두 갖추게 되었답니다.
예전에 거제도에서 수련회를 개최하면서 외도를 관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숙소를 나서는 우리들에게 배에서 먹을 안주라면서 플라스틱 통을 하나 주셨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갈치를 토막 내서 노릇노릇하게 구워 담아주셨더라고요....
파도에 울렁거리는 뱃전에서 비릿한 갈치 살에 깡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갈치가 흔한 섬이라지만 어찌 구운 갈치를 소주안주로 하라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ㅎ ㅎ
전어철로는 좀 이른 한 여름이었지만 거제시내의 재래시장 좌판에서
잘게 썰어 된장에 찍어 먹었던 전어회의 고소했던 맛과
쌍끌이로 고기를 잡는다고 배 두 척을 그물로 연결하고
한나절을 고생하고도 광어 한 마리도 못 잡고 결국엔
시장에서 회를 떠다가 먹었던 기억이 생생한 거제도입니다.
수산물센타가 있는 장목항에 이렇게 길다란 리무진이 다 있네요
거제도를 반쯤 돌았는데 부산으로 가자고 합니다.
여기서 태종대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거가대교로 건너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하였더니
태종대 들러서 자갈치시장에 가서 꼼장어 먹고 낼 아침에 일찍 올라가자고 합니다.
언제는 추워서 그만 올라가느니 뭐 어쩌고 하더니....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 기술자들 토목기술 하나는 끝내줘요.
파도와 바람이 거센 바다위에 교량을 건설하고 수심이 48m나 되는 바다 속에
자동차가 달리는 해제터널을 만드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합니다.
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거제 부산 간 140km가 60km로 단축이 되고
통행시간도 2시간 20분에서 50분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교통량의 분산과 관광수요의 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크겠지요.
통행료로 1만원을 징수하는데 이용하는 거리에 비하면 비싼 요금이었지만
통영으로 돌아서 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 실익은 충분해 보였습니다.
뒤로 멀리 보이는 두개의 교량은 거제도쪽의 휴계소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입니다.
거가대교를 지나 태종대에 도착하니 오후 세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빠르긴 참 빠르네요.
예전과 같이 다시 통영으로 나가서 마산 창원으로 돌아왔으면 한참은 걸렸을 건데....
해운대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인 태종대유원지는 부산 영도에 위치하며,
등대아래를 남쪽으로 돌아 절벽 비탈길을 내려가면 해안가 쪽에
암석이 비바람에 침식되어 낮아진 반반한 넓은 자리를
태종대(太宗臺)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래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이곳에서 활을 쏘고 말을 달리며 군사를 조련하여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여 생겨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종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 이곳에서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의 절경을 즐기며 한유를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태종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궁인들이 마중을 나와 이곳에서 만나
연회를 베풀었다는 장소로 사용되어 그것이 유래가 되었다고도 구전됩니다.
속전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사후(射侯)의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에 따라서 현재의 태종대라는 호칭이 보편화되었다고 합니다.
태종대는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신라이후에는 동래 지방에
가뭄이 들면 동래부사가 이곳 태종대로 와서 비 오기를 비는 기우제를 직접 올렸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음력 5월 초열흘날에 오는 비를 '태종우'라 하였는데, 그 이유는
조선 3대 임금 태종왕이 가뭄 때 병으로 누워계시다가 비가오기를 바라며
5월초 열흘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예전에는 차량통행을 제한하지 않아 드라이브가 가능했는데 2006부터
무료입장을 하면서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다누비열차를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모자상은 세상을 비관하여 전망대에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진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여 삶의 안식과 희망을 얻어
생각을 바꾸도록 하기 위하여 1976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태종대에 있는 영도등대는 1906년에 처음 설치되어 지난 100여 년 동안
부산항의 길목에서 불빛을 밝혀왔으나 시설 노후로 2004년에 등대시설과
예술작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 3개동으로 구성하여 신축하였으며
백색의 원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높이 35m로 불빛은 40km까지 나아간다고 합니다.
철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등대도 일본에 의해 세워지게 되는데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쇄국주의가 무너지며 제국주의 침략세력은 조선반도의 이권을 먼저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이게 됩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본의 선박 왕래가 빈번해 지면서 한국 연해에 등대나 초표가
설치되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다며 등대건립을 요구하는 압력을 행사하였으며
러시아 영국으로부터도 비슷한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열강의 강권에 못 이겨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그 해 5월부터 팔미도,
소월미도, 북장자등대와 백암(白岩) 등표(燈標) 건설에 착수해 1903년 6월에 이를 각각 완공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등대의 효시로, 결국 우리나라를 넘보던 열강들의 이양선(異樣船)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기 위한 바다의 이정표로 등대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영도등대는 1906년 12월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건립 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선박이 영도 등대를 보고 부산항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모든 등대는 국제적 약속에 따라 각기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영도등대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형상표지 : 등대구조물은 흰색으로서 항해자의 식별이 쉽도록 하였고..
광파표지 : 등대불빛은 프리즘렌즈 등명기를 사용하여 매 18초마다
3번 연속 발사하며 빛을 25마일(42.3KM)까지 보이도록 합니다.
음파표지 : 안개, 비, 눈 등 시야가 흐릴 때 전기혼을 이용하여
매 45초마다 5초 동안 소리를 내어 5마일(9.26KM)까지 들리도록 합니다.
전파표지 : 인공위성에서 GPS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오차를 수정하여 이용자에게
실시간 제공함으로서 정확한 위치를 측정할 수 있도록
DGPS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에 사진은 등대 아래쪽에 태종대의 모습입니다.
뒤로 보이는 작은 섬은 생도입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조그만 돌섬은 해운대방향에서 보면
주전자 같이 생겼다하여 주전자 섬으로도 불리는 생도입니다.
생도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생도에서 불을 취급하거나 용변을 보면
큰 화를 당하며, 남녀가 정을 통하면 급살을 맞는다는 전설이 있어
생도를 찾는 남녀는 없다고 합니다. 또한 생도는
유명 낚시터로 우럭, 감성돔 등의 고급 어종이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태종대를 뒤로 하고 자갈치시장으로 이동하는 해안도로를 달리며
촘촘히 떠있는 선박들 너머로 붉게 바다를 물들이며 떨어지는
일몰의 풍경은 일낙서산(日落西山)이라는 어느 노랫말하고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갈치시장으로 가는 부산대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답게 교통정체도 씩씩해서 자동차들이 꼼짝을 않습니다.
휴일 저녁인데도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거리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가득했고
휴대폰조차도 통화권 이탈이라고 먹통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람이 너무 많이 한곳에 몰려서
일시적으로 통화 장애 현상이 일어난 거라고 합니다.
암튼 얼마나 복잡한지 숙소 잡는 데까지 2시간은 족히 걸렸고
자동차를 팽개쳐 버리고 걸어서 움직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자동차의 단점 중에 하나가 그런 거 같아요.
사람처럼 휙~ 하니 뒤돌아 갈수 없다는 거..ㅋ ㅋ
배는 고프고 차는 도로에 서있고 짜증도 훅~ 올라오고 여행 잘 끝내고
마지막 날에 다 망치게 생긴 기분으로 어찌어찌 주차하고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자갈치시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수산시장이며
부산 지하철 1호선선이 자갈치역과 남포역으로 연결됩니다.
자갈치시장이란 이름의 유래는 1876년 부산항의 개항당시 이곳의 충무동쪽 보수천 하구일대로
주먹만 한 옥돌로 된 자갈해안을 이루고 있었기에 자갈밭과 곳(장소)을 나타내는 처(處)가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게 되어 치가 되어 자갈치가 되었다는 설과 활어만을 취급한다고 하여
활어로서만이 거래되는 자갈치란 어종의 명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해방 이후 이 지역은 연안 여객선이 정박하는 내항의 기능과
연근해 어선들의 수산물 집산지로서의 어항기능,
노점상들의 활어판매 등의 시장기능이 혼재하면서 현재와 같은
지리적 구체성을 지닌 시장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인근의 공동어시장, 국제시장과 함께 부산지역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장으로 외지로부터 관광객의 이용이 많은 가장 부산다운
시민의 생활의 터전이자 부산의 자랑과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갈치시장에는 남자들보다 대부분 여자들이 시장을 벌이고 있고
노점상 같은 경우는 예외 없이 거의 다 여성분들이 장사를 합니다.
그러다보니“자갈치아지매”또는“자갈치 아줌마”라고 하면
억척스러운 생활력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움은 없으나 거친 듯 하면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자갈치아지매”들은 부산 사람의 특유한 기질을 상징하는 가장 부산다운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겨우 태종대와 자갈치시장을 둘러보며 부산을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구요
부산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부산여행을 마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부산과 울산 경주 쪽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짚불구이 꼼장어(먹장어)와 미역을 빼 놓을 수 없지요.
부산에서 동북쪽으로 기장이라는 바닷가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기장의 미역은 조류의 소통이 빠른 동해안의 특성에 따라 줄기가 넓고 엽체는 좁은 미역으로
국을 끓였을 때 미역이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쫄깃한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특징이 있어
경북과 강원 경계에 고포미역과 함께 최상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장의 짚불구이 꼼장어는 그 이름처럼 독특한 요리방법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꼼장어는 원래 부산의 해안가에서 지천으로 잡혔던 잡어에 불과했고 개체수가 많아
그물에 걸리면 징그럽고 맛없다고 버렸던 생선이었답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나는 바람에 어부들이 잡아내는 생선들은
높은 값을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생선 먹기가 힘들어 지자 어부들이
짚불에 던져놓은 꼼장어를 먹기 시작한 게 그 유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낙동강에서 잡은 재첩으로 만든 담백하고
시원한 재첩국이 있고 동래파전과 산성막걸리가 있고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낙동강을 경계로 후퇴하게 되었을 때 보급물자로 밀가루가 공급이 되었는데
그 당시 메밀을 구할 수 없어 밀가루로 냉면으로 만들어 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밀면과
부추를 넣어 먹는 뽀얀 국물에 깔끔한 맛으로 소문난 돼지국밥, 그리고 낙지와 해산물을
얼큰하고 매콤하게 볶아내어 요리하는 조방낙지볶음도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가차를 타고 내려가면 여유 있게 구석구석 살펴보고
재미도 있었는데 사람들도 많고 어두워지니까 복잡하기만 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몇 십 년 된 원조 꼼장어집 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꼼장어에 한 잔 하고 밥도 볶아서 먹고 그렇게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길 건너 남포동의 번화가도 한번 둘러보려고 하는데
추운데 어딜 돌아다니느냐고 한사코 말리네요..ㅎ ㅎ
이젠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지만 강원도 원통에서 군대 생활할 때
남포동부르스라는 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르던 한 달 위의 고참병이 생각났습니다.
틈만 나면 ‘노래일발 장전’ 하고 시켜 대는데 그래도 싫은 내색도 없이 자동으로
스프링처럼 팍팍 일어나 부르던....
아마 같은 노래를 한 300번도 더 부르고 전역했을 거라는..ㅋ
요즘엔 극성 엄마들이 부대장에게 전화해서 우리 애는 약골이라서 힘든 훈련도 안 되고 어쩌고....
거기다 뭐 신병교육대에서는 자대배치 받는 것도 부모가 추첨하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
요즘 같았으면 탈영을 해도 몇 번은 했었겠지요..
자갈치시장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섯째 날입니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 깨었습니다.
오전에 9시쯤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다시 눈을 붙이기도 그렇고
대충 눈곱만 떼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직 컴컴한 5시 40분쯤인데 식당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밤을 새워 영업하는 식당들인가 봅니다.
그냥 평범하게 대구와 대전을 거쳐 올라 가려다가
혹시나 해서 휴대폰속의 목소리 예쁜 그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목적지를 송추IC로 하였더니 김해 창원방향으로 안내하며 5시간이 소요된다면서
마산에서 여주까지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도록 안내를 합니다.
여수에 내려오는 길에서 그 정확성을 검증했던지라
망설임 없이 그녀의 말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어두운 새벽 시간에 출발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물체들의 희미한 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여명의 시간을 지나고 점차 밝아지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멀리 시커먼 공지선의 경계를 점점 빨갛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까만 하늘에서 해가 보이기 전까지 날이 밝아지는 속도를 따라
다가오는 시간을 느낄 수 있어 새벽운전이 주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아침 일찍 움직여서인지 날이 새면서 시장기가 돌았습니다.
정신없이 잠이 들은 사람은 그냥 놔두고 혼자서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곳은 남성주휴게소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치고는 찬도 몇 가지 나오고 음식이 먹을 만 했습니다.
11시에 사무실에 도착하였으니 밥 먹은 시간을 빼면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셈입니다.
21일 저녁에 출발하여 26일 오전에 도착하였으니 가까운 동남아로 패키지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들의 표현대로 하면 4박6일간의 여행이 된 셈입니다.
겨울여행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낮아지면
자동차에서 내려서 느긋하게 걷고 살펴보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계절과 비교하여 낮 시간이 짧아지니까
실외에서의 일정을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여행은 미리 생각하여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겨울여행은 혹한과 기상의 악천후로 인해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거나
일몰시간이 빨라져서 야외활동이 어려워지는 17~19시 정도에
실내에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일정을 생각해 두면 좋습니다.
박물관이나 전시관, 체험관 같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그 무엇 ....
다른 하나는 겨울 여행은 낮 시간이 짧다는 것을 생각해서
그날의 행선지들을 가장 단거리로 배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순천지역을 여행하면서 선암사, 송광사, 낙안읍성, 순천만,
고인돌마을을 둘러보려는 계획은 세웠는데 이것들의 위치와 연결도로를
잘 모르다 보면 지그재그로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행하고자 하는 지역의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인근지역 관광안내 지도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안내지도에는 해당 지자체 관광 지도과의 안내번호부터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 입장료와 선박이나 차량시간표까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를 이용하여 목적지들의 최단거리를 연결하면
보통 3일 여행에서 하루 정도는 절약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전쟁같은 일상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지루하고 글 같지도 않은
부족한 여행기에 함께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첫댓글 즐거운 여행 이셨나 봅니다
좋은 정보도 주시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늘 사람을 설레게 하지요~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님처럼 함께 식구(?) 데리고 가고 싶군요. ㅎㅎ 저도 전에 함께 갈 땐 아웅다웅 잘 싸우면서 여행했답니다. 삐져서 혼자 올라간다고 난리 피는 거 마음 바꿔먹게 하느라 진땀 뺀 적도 있고...
지금은 식구는 친구끼리 가는 경우가 많고 저는 혼자 나돌아 다닙니다. 그래도 몸이 전 같지 않아 장거리 가진 못합니다. 기껏해야 동해안(속초 강릉)이나 충청도의 서해안 정도랍니다.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그래도 혼자하는 여행이 최고인 거 같아요.....
신경 않써도 되고 차 하고 한 몸도 되고........ㅎㅎ
혼자 다니고 싶은데 꼭 따라다니려고 하네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아요......차 안에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늘~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