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보내고 12월이 시작된다. 지난달 10일간 뉴욕이 있었고, 시월의 마지막 주말에 시작한 9일 동안에는 7번 국도를 다녀왔다, 어쩌면 나에게 모처럼 큰 선물을 안겨준 일이다.
아내와 함께 뉴욕에 다녀왔다. 고속버스를 타고 맨하탄 섬에서 허드슨강을 가로지르는 지하터널 지나 뉴저지 북쪽과 기차로 미동부 해안도시 뉴 헤이븐까지 가기도 했다. 이스트강을 건너 브루클린 쪽으로도 넘어갔지만 주로 맨하턴 섬 미드타운에서 동서남북을 걸어서 다녔다.
중요일정은 한국 떠날 때 준비했으나 세부계획은 전날 밤에 정했다. 시차로 잠이 달아난 상태로 구글에서 많은 답을 찾았다. 전에 왔던 과거는 현재와 닮아있으나 느낌은 달랐다. 그때는 국제면허로 운전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버스는 길게 뻗은 에비뉴와 스트리트의 사거리 신호등에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버스는 움직이는 수단으로는 낙제점이라 포기하고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지도책으로는 찾기 어려운 징소를 구글 지도는 경로까지 알려주는 덕분에 걷기가 가능했다.
방향 찾기가 어려우면 해를 보고 양팔을 벌렸다. 동과 서는 팔을 안 올려도 된다. 빼곡히 쌓인 건물 사이에서 남과 북은 잘못하면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북쪽으로 간다. 해가 오전에는 동쪽 하늘, 오후에는 서쪽에 가 있다. 해가 없는 밤에는 외출을 삼갔다.
뉴욕에 관한 유튜버 영상이나 관련 여행 책자에서 가고 싶은 곳을 정했다. 구글지도에 *표를 찍고 저장했다. 배낭여행은 걸어 다녀야 제격이다. 길에 대한 감각이 무딘 나는 차를 타고 지나간 장소는 후에 복기가 어렵다. 걸어가면서 만난 가게와 건물은 감각이 생생하여 다음에 또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동과 서, 남과 북으로 방향에 따라 일정을 묶었다. 예를 들면 오늘은 남쪽 방향이면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먼 곳까지 경로를 따라 순서를 정했다. 가다가 우연히 관광 명소를 만나면 보너스 받는 기분이 드는 즐거움도 있다. 다시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가 지하철로 되돌아 왔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D.C이지만 세계의 수도는 뉴욕이라 한다. 뉴욕으로 진출한 상품이나 용역은 세계가 인정한다. 뉴욕에서 인정받은 설치 미술가 백남준 작가도 세계가 인정한다. 지금도 소호 근방에 작업실이 남아있다. 세계 최고들이 모인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을 갔다. 하루 건너서 보는 일정으로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했다. QR 코드가 찍인 티켓을 메일로 전송 받았다. 로밍을 한 휴대폰에 있는 QR을 스캔하고 들어갔다. 오전에 관람하고 인근 센츄럴 파크 단풍을 보고 재입장이 가능한지 시도를 했다. 들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파블로 피카소,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많은 화가의 그림을 만났다.
MOMA에서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본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앞에는 사람이 몰려있다. 돈 클린 노래 Starry Starry Night가 문득 떠올랐다.
MET 미술관은 MOMA 와는 다르다. 규모가 엄청나다. 익히 알고 있는 그림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멋진 그림을 보고 있지만 표현을 할 방법이 없다. 빛과 현란한 색채의 그림은 내 상식으로서는 감당이 안될 만큼 대단한 작품들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달팽이처럼 건물 자체가 나선형으로 내려오도록 설계되어있는 특이한 건축물의 하나이다. 아래층에서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나는 5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벽에 걸린 그림을 봤다. 클래식 명화뿐만 아니라 특별전시관에서 1960s -1970s 한국실험예술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 뮤지컬을 봤다. 불우했던 유아 시절의 아역 배우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짧은 삶을 마감한 잭슨을 성인 배우가 일대기를 엮어간다. 노래와 춤 그리고 연극을 한꺼번에 보는 종합예술이다. 춤과 노래에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은 열광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데 원어민은 웃고 떠든다. 근육질의 남자, 몸매가 뛰어난 무희들 춤에 매료된다. 노래에 맞추어 밴드는 왕성한 소리를 끝없이 내고 있다. 나도 따라 흥이 났다.
엘리스섬 이민박물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역사를 봤다. 생존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그들의 여행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소중한 터전을 버리고 대서양을 건너온 초창기 이민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가난과 전쟁으로 다급해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는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사는 사람이 많다. 죽음을 담보로 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생존의 여행이기도 하다.
뉴욕 여행은 오래된 계획이였다. 뉴욕의 10일 간의 나의 모습은 또 어떠했던가. 마지막으로 미국을 떠난지 15년 만이다. 내 생애에 미국은 항시 꼭대기에 있었다. 언어에 대한 갈망은 영어와 더불어 지냈지만 성과는 낮았다. 구글지도를 펼쳐놓고 오늘 갈 곳을 보고 또 보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에서 내 행선지를 찾아 지하구멍에서 올라오기도, 우버택시 앱을 깔고 택시도 불려봤다. 14시간을 타고 가는 비행기도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시아나 항공이어서 더욱 애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항공업계에서 사라지는 아시아나의 퇴출이 나를 닮았다.
기억을 찾아 전에 보았던 실존에 지금 나의 실존을 느낀다. 해보고 싶은 간단한 산술적인 계산에 어린애처럼 좋아했지만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보는 세상은 그저 스잔할 뿐이다. 어디를 다니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에게 남은 것은 겨울의 차가움이 다가온다.
뉴욕은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까. 지금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이쪽 사람들은 오래전에 했다. 현수교 다리와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고층건물은 이미 100년 전에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