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차 정기 합평회
(2023.7.6.목)
1. 새들의 사냥법 /엄옥례
2. 황구/ 박희자
3. 주치의(主治醫)의 장미 한 송이/백명철
4. 엄마의 꽃길 / 권춘애
5. 그렇게 해요, 솔로몬 /정경해
수필의 자존심 한국수필문학관부설
한국에세이포럼
1. 새들의 사냥법/엄옥례
1.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강둑을 걷는다. 잠수교를 건너서 물과 풀이 어우러진 습지를 지난다. 호젓해보이는 습지는 새들의 먹이 사냥으로 첨벙거리고, 은빛 물방울이 튀어 오른다. 오리, 물닭, 물까마귀, 왜가리 등 새들의 먹이 질로 시끌벅적하다.
2.부리가 뭉툭한 오리, 목이 짧은 물닭, 작은 몸피의 물까마귀는 쉴 새 없이 자맥질을 하며 고만고만한 물새 떼가 물질하는 통에 물고기가 놀라 도망가면 긴 모가지를 작살 발사하듯 뻗어서 뾰족한 부리로 먹이를 낚아챈다. 새들의 먹이 질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인간들의 세상살이가 오버랩된다.
3.내가 살고 있는 집 앞쪽이 재건축 허가가 났다. 헌 집들을 부수고 철거하느라 날마다 시끄럽고 먼지가 날렸다. 조용한 주택가이다 보니 건설 현장의 공해가 더 크게 느껴져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었다. 이웃들과 뭉쳐 구청으로 , 건설사로 찾아가 항의를 했다. 돌아오는 답은 소음 수치를 넘지 않게, 먼지가 덜 나도록 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4.삼복더위에도 소음과 먼지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방에 누워있으면 굴착기가 땅을 파는 소리로 고막이 탕탕탕 울렸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한두 달 걸리는 것도 아니고 삼 년은 족히 걸린다는데, 그동안 땅 파고 건물 올리면서 동반되는 공해를 감당해야 한다니 고통이 몰려들었다.
5.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공사 현장 대문 앞에 자리를 깔았다. 이웃이 모두 모여서, 또는 팀을 짜서 시위를 벌였다. 며칠 대문이 막혀 공사가 어렵게 되자 건설사 담당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6.참으로 이상한 일이 한 가지가 있었다. 부녀회장이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제법 나이테도 두텁고 보통 사람 두 배는 됨직한 몸집에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 집회에 앞장설 줄 알았다. 초기에 구청과 건설사 사무실에 찾아갈 때 몇 번 동행하더니 바쁘다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장바구니를 끌고 시위 장소를 지나가면서도 흴끗 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7.다음날, 이웃들과 건설사 사무실로 몰려갔다. 부녀회장도 보였다. 담당자가 요구사항을 물었다. 공해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니 공사를 당장 멈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담당자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며 느물거렸다. 그렇다면 피해를 주는 만큼 보상을 하라고 몇몇이 목소리를 높였다.
8.담당자는 뻔한 수순을 기다렸다는 듯 회사가 정해놓은 보상금을 제시했다. 가당찮은 금액이었다. 승인하는 사람은 합의하러 오라는 말을 던졌다. 고급 아파트가 완공되면 주변의 집값이 올라간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담당자와 주민들 사이에 '밀당'이 오가는 그때도 우리의 부녀회장은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9.주민들의 생각이 엇갈렸다. 법적으로 끌고 가자 , 시위를 더 하자,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없으니 그만하자는 것으로 분분했다. 시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만 하자에 표를 던지며 하나,둘 보상금을 받으러 갔다. 꿋꿋이 뜻을 세운 사람들도 힘이 빠지자 결국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살 보상금을 받으러 갔다.
10.보상금 문제가 해결되고 얼마 후였다. 부녀회장이 건설사 로고가 새겨진 잠바를 입고 건설 현장 주변에서 지휘봉을 들고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아하, 바로 그것이었구나! 건설사가 부녀회장을 움직이지 못하게 처방을 해 두었던 것이다. 그제야 연배가 비슷하여 평소에 부녀회장과 잘 어울리던 아주머니들도 뒷목만 잡고 있지 않았다. 건설사 사무실로 찾아가 자기들도 그 일을 시켜주면 잘 할 수 있으니 몇 달씩 돌아가면서 하면 안 되느냐고 머리를 조아렸다.그러나 허사였다.
11.부녀회장은 평소에 나를 동생, 동생하고 불렀다.루는 부르길래 가보니 큰 회사 직원 됐다고, 열 달 동안 일하게 됐다면서 월급 통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건설사 사무실에 청소하는 아줌마를 구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고맙지만 나는 청소도 잘하지 못하고 하는 일이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권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12.두 해 전, 부동산값이 하늘을 찌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곳도 재개발 추진 중이어서 집 한 채를 팔면 다른 동네에서 두 채를 살 수 있었다. 부녀회장은 살던 집을 팔고 다른 동네에 집을 사서 건설사 일을 마치는 즉시 이사 갔다. 지금, 재개발도 흐지부지되고 집값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웃들은 부녀회장의 셈법에 거듭 무릎을 친다.
13.물비늘이 반짝거리는 봄날의 습지. 새들은 여전히 자신의 방식대로 먹이를 잡느라 첨벙거리고 물방울을 튕긴다.
2. 황구/ 박희자
1.오십 대 여성이 개에게 물리는 사건이 있었다. 목덜미를 물린 여성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과다 출혈로 목숨을 거두었다. 안타깝게도 여성은 먹다 남은 음식물을 개에게 주려고 개 밥그릇에 손을 대어 화를 입은 것이다. 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여성에게 먹이를 빼앗기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위해를 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2. 십여 년 전 일이다. 마을에서 떨어진 울도 담도 없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이웃이라고는 절 뿐이었다. 남편이 야근하는 날에는 연로하신 시누이를 모셔와 무서움을 몰아냈다.
3. 불편한 소식을 전해 들은 시숙이 어느 날 강아지를 안고 왔다. 엄마 젖을 뗀 진돗개였다. 우리 부부는 개를 키워 본 경험이 없어, 머뭇거렸더니 “도움이 될 것 같아 데리고 왔다.”며 강아지를 안겨주고는 바삐 돌아갔다.
4. 녀석의 눈을 보니 순해 보였다. 엄마 품을 떠나와 불안했던지, 코를 내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강아지의 포동포동한 감촉이 햇살처럼 포근했다. 나는 녀석에게 곧 빠져들었다. 남편은 누런 옷을 입은 녀석을 황구라고 불렀다.
5. 황구는 먹보였다. 먹는 만큼 훤칠하게 키가 자라 수컷의 근육질이 돋보이는 중견이 되었다. 녀석은 활발하고 민첩했다. 어느 주말 저녁, 나는 황구를 데리고 운동을 나섰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려는데 내 손바닥에 뜨거운 불이 번쩍했다. 잡고 있던 목줄을 떨치고 맞은편 산으로 비호처럼 내달았다. 길고양이를 사냥감으로 두고 공격성을 보인 것이었다. 그때부터라도 진돗개의 특성을 공부했어야 했다.
6. 녀석은 우리 집 주변을 지나는 길손에게는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까칠했으나, 절을 찾는 이웃 어른들께는 친절했다. 특히, 다리가 성치 않은 박 씨 아주머니와 유난한 정을 쌓았다. 박 씨 아주머니는 돌봐왔던 손주들을 제 부모에게 보내고 헛헛했던지, 시시때때로 황구를 챙겼다.
7. 봄이 되었다. 절에는 이웃의 왕래가 잦았다. 나는 마당에 풀을 뽑다가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끌려 절로 갔다. 공양주와 박 씨 아주머니와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 등 뒤를 보던 아주머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돌아보니 황구가 목줄이 풀린 상태로 와 있었다. 녀석이 동네로 뛰어나갈까 두려웠다. 절을 찾는 손님들을 생각하니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8. 아주머니 곁에 놀고 있던 녀석을 두고 집으로 왔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먹이통에 사료를 담아 절 마당에 놓아두었다. 멀리 가지 않도록 녀석을 부탁하고 자리를 떴다.
9. 남편이 보관 중인 예비용 목줄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져 바쁘게 움직이는데 절에서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달려갔더니 아주머니가 마당에 나뒹굴어 허우적거렸고 녀석은 약이 바짝 올라 홱홱 댔다.
10. 옷이 여기저기 찢어져 피가 낭자했고, 얼굴에 할퀸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많은 곳을 공격했는지 도무지 이해 불가였다. 절 식구들 도움을 받아 녀석을 가둬두고 아주머니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11. 응급실로 가면서 아주머니 신음보다 내가 절망하는 것은 황구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마추지 않은 일이었다. 급한 치료를 받고 피검사도 했다.
12. 쥐구멍을 찾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황구를 우리 집으로 유인하기 위해 먹고 있는 먹이통을 들었단다. 그때까지는 물끄러미 쳐다볼 뿐 문제가 없었다. 제 밥그릇을 보면 따라올 것으로 믿고, 뒷짐을 하고 앞서가며 녀석을 부르는 순간 공격해 왔단다.
13. 비단 여성을 헤친 개나, 은인을 공격한 황구만이 그럴 것인가! 인간 사회도 그럴 것이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자신이 소유한 것을 빼앗거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잊고 살아간다.
14. 다음 날부터 황구를 둘러싼 소문으로 마을이 소란했다. 황구가 무서워서 절에 사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번 피 맛을 본 개는 살려두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불안한 눈빛을 모르는 체할 수 없었다.
15. 개장수를 불렀다. 녀석은 생이별을 감지했던지 떠나던 날,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길고양이를 쫓던 날 녀석의 본성을 공부하지 않은 민망함과 안타까움으로 차마 녀석의 눈망울을 볼 수 없었다. 박 씨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어 녀석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
3. 주치의(主治醫)의 장미 한 송이/백명철
1. 5월에 들어서자 가물었던 대지에 촉촉한 비가 내렸다. 밤사이 비가 그친 다음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가로수도 사람들도 모두 생동하는 봄기운에 들떠 있었다. 시골 고향의 커피점 테라스에는 붉은 장미꽃이 듬성듬성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안부 통화를 한 친척 누나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2. 우리는 제각기 다른 곳에서 오랜 객지 생활을 했기에 지난 수십 년 동안 만난 적은 대여섯 번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주로 집안의 대사 때 잠시 스쳐 가는 만남이었고 이번처럼 단둘이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헐렁한 봄 코트 속의 누나는 옛날보다 넉넉해진 몸집에 적조했던 지난 세월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꼿꼿한 자세와 생기 넘치는 표정은 여전했다.
3. 수인사를 끝낸 그녀는 장미꽃을 보자 ‘아, 올해도.’라는 탄성과 함께 입과 코를 꽃잎에 비비대었다. ‘10대 소녀도 아니고…, 칠순을 훌쩍 넘긴 여인의 어디에 저런 감성이 있을까.’ 둥그렇게 눈뜬 나의 모습에 다소 머쓱해진 누나는 꽃에 얽힌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4. 누나의 남편은 공직에서 퇴임할 때 60대 초반이었다. 미뤄 왔던 목디스크 수술을 위해 서울의 유명 병원을 찾았다. 여러 가지 예비 검사 중 예상하지 못했던 심장병 요인이 발견됐다. 세 줄기 관상 동맥이 모두 70% 정도 좁아진 상태여서 언제라도 심근경색이 발생할 수 있는 상태였다. 주치의는 비교적 간단한 목 수술을 먼저 하고, 회복 상태를 봐 가면서 관상동맥 우회술을 하자고 했다. 결국 그는 한 달여를 입원하며 두 가지 수술을 모두 받았다. 예후를 걱정하는 가족에게 주치의는 ‘관리를 잘하면’ 9~10년 정도 살 수 있을 것으로 예단했다.
5.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며 조심스런 일상을 5년 정도 이어갔을 무렵, 그에게 덜컥 전립선암이 찾아왔다. 심장이 약한 상태라 가장 안전한 수술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당시 국내 한 대밖에 없는 고가의 로봇 장비가 국립암센터에 있었다. 수술 부위를 육안보다 서너 배 이상 확대한 후 로봇 메스가 세밀히 수술하므로 안전은 물론 후유증을 거의 없게 하는 장비였다. 일반 외과술보다 수술비가 배 이상 비쌌기에 환자가 만류했지만 누나는 한사코 로봇 수술을 주장했다.
6. 그의 발병 이후, 누나에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처방약 외에 혈행을 좋게 하는 음식, 이를테면 양파와 아로니아, 견과류 등을 재료로 한 야채즙을 하루도 빠짐없이 마련했다. 진료 일정을 챙기고 항상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했다. 언젠가 근황을 물었을 때,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며 어린 자식 키울 때보다 훨씬 더 마음졸인다고 푸념했다.
7. 누나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그는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주치의도 정기검진 때마다 ‘피가 잘 돌고 있다’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취미생활로 ‘서예’를 시작했고 매일 학원에 다니는 등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갖게 되었다. 매사 조심스러웠으나 안정된 나날이었다.
8. 어느 날, 잠시 시장에 다녀온 누나에게 갑자기 현관문의 열림 번호를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항상 몸에 챙기던 휴대폰을 급히 찾았지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옆집 아주머니의 전화를 빌려 타지의 딸에게 번호를 물어서 겨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멍하니 앉은 그녀에게 혹시 치매의 시작이 아닌가 하는 쇼크가 밀려왔다. 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그에게 자기의 상태를 얘기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빨리 밥이나 달라고 재촉했더란다. 너무나 기대에 어긋난 응대였다. 누나는 당혹한 허탈감에 빠졌다. 식사하는 동안 마음을 달랜 누나가 차분한 어조로 사리를 따지자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가 ‘미처 그리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남자들은 왜 그리 철이 없는지 몰라. 동생도 그렇지?”
빤히 쳐다보며 농담처럼 던지는 질문을 나는 어설픈 웃음으로 받았다.
9. 남편의 수술 후 10년 차 첫 정기검진 때였다. 뜻밖에도 주치의는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보호자인 누나에게 내밀었다. 이어서 환자가 예상 수명을 넘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된 바탕에는 누나의 헌신이 절대적이었다고 치하했다. 심장은 잘 돌고 있으니 지금처럼 관리를 잘하면 구십을 넘도록 장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부부는 감격했다.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진료실을 나설 때 그는 마누라의 손을 꼭 잡았다.
10. 다음 해 봄 장미꽃이 피었을 때, 누나는 ‘관리를 잘하라’는 주치의의 당부가 새롭게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주치의의 숨은 의도라고 짐작했다. 심장병처럼 평생 고질병 환자와 보호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처음의 긴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주기적인 마음 다짐이 필요한데 이에 가장 적합한 자극은 매년 같은 시기에 피는 꽃 선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11. 누나의 얘기처럼 과연 의사의 의도가 그러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주치의는 다른 많은 환자에게도 계절에 따른 꽃을 선물했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지천인 꽃 한 송이를 별다른 감흥이나 느낌 없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나는 달랐다. 장미꽃에서 ‘관리를 잘하면’이라는 조건의 경구(警句)를 읽어 내고 허물어지려는 마음을 매년 장미꽃 피는 계절에 다시 다잡았던 것이다.
12. 얘기를 마친 누나에게 남편의 연세를 물었다. 80대 초반이었다. 심장 수술 후 예상 수명의 2배를 넘는 긴 세월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약을 챙기고, 건강즙을 해드리는 등 뒷바라지하는 것에 싫증 난 적은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소를 띤 누나는 초창기에 그런 적이 한두 번 있었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후회가 되더라고 토로했다.
13. 찻잔이 바닥을 보일 무렵 누나는 남편이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라며 일어섰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한 후 인근 강변에서 산책하는 것은 두 사람의 중요한 일과였다.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것 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누나는 환히 미소지었다. 거친 풍랑을 잘 헤쳐나온 여인의 황홀한 미소였다. 하느님께서 천생연분이자 일편단심의 두 분 사랑에 맞춤한 은혜를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엄마의 꽃길 / 권춘애
1. 퇴원 절차를 끝내고 병원문을 나서는 엄마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일 년 중 반년 넘는 시간을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갇힌 삶을 살았다. 얼마나 징글징글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차에 오를까.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엄마의 절박했던 마음이 아프게 느껴졌다.
2. 엄마는 생명의 끈 하나를 모질게 움켜잡고 차가운 겨울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 그토록 그리던 집을 향해 가는 길목은 겨울의 끝을 지나 봄날이 와 있었다. 톡톡 터질 듯 꽃망울을 매단 나무들을 보며 엄마는 중얼거렸다. 꽃은 조금 더 있어야 피겠구나.
3. 드디어 엄마가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집안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성한 몸이 아니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했었다. 자식들조차 요양병원에서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자식들은 엄마가 없는 빈집을 부동산에 내놓자는 의논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런 집에 걷는 것이 힘들고 생활하기 어렵다 해도 엄마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했다.
4. 마루 귀퉁이에 병원에서 가져온 물건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았다. 팬티 기저귀 몇 봉지와 욕창방지 매트 등 치료용 물품이다. 당장에라도 잊고 싶은 병원 흔적이지만 얼마간은 필요한 물품들이라 엄마가 찾기 수월하게 정리를 했다. 처방받은 약은 찾기 수월하게 약봉지에 아침, 점심, 저녁이라 표시하고 분리했다.
5. 엄마는 급하게 병원 생활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입원 전에 매일 다니던 목욕탕을 찾았다.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했다. 며칠 사이에 병원에 있었다는 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변신을 했다.
6. 변신의 결과는 감기몸살로 이어졌다. 면역성이 떨어져 있는 몸으로 무리했으니 상태가 심해 근처 병원에 갔다. 당장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 말에 엄마는 입원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식들은 며칠이라도 입원을 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병원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러실까 하고 이해가 되어 통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호흡기 내과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서 진료를 받고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감기가 오래 낫지 않아 일주일마다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감기는 차도가 없고 점점 심해졌다.
7. 엄마는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기침을 심하게 해서 그럴 것이라 했지만 오랜 병원 생활 탓에 병에 대해 두려움이 생겼는지 엑스레이를 찍고 확인하고 싶어했다. 결국,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한동안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았다.
8. 병원을 오가는 사이 길가에 꽃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삼월 말도 되기 전에 벚꽃과 개나리가 엄마의 쾌유를 기원하기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피었다. 온 세상이 꽃들로 꽉 채워졌다. 엄마는 차장 너머로 보이는 고운 꽃들에게 눈길을 떼지 못했다.
9. 엄마의 엑스레이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다. 마음 졸이며 병원에 간다.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단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엄마의 갈비뼈가 언제 아팠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나은 듯하다. 감기도 많이 나아 일주일 복용할 처방전을 끝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밀에 날아갈 듯이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
10. 지난 일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날마다 가시밭길을 걷듯이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던 시간이다. 자식들은 죄인처럼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사는 동안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래오래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가시는 그날까지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11. 엄마를 모시고 꽃구경을 간다. 엄마는 자식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꽃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 따라 난분분 흩날리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엄마 모습이 행복하게 보인다. 꽃들을 올려다보며 연신 중얼거린다. 예쁘다! 정말 예쁘다!
12. 아름다운 봄날이다. 엄마는 칙칙하고 어둡기만 했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꽃길 위에 서서 손을 흔든다.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엄마 어깨 위에 꽃잎 하나가 슬쩍 자리 잡는다. 엄마가 꽃그늘 아래서 환하게 웃는다. 엄마가 꽃처럼 아름답다. 먼 훗날 봄을 맞을 때마다 두고두고 오늘의 이 봄날을 그리워할 것 같다.
5. 그렇게 해요, 솔로몬 -14 매 /정경해 20230620
지난 금요일, 전북 고창에서 ‘수필의 날’ 행사가 있었다. 두어 달 전, 서울에 사는 J 수필가가 같이 가보자고 연락을 줬지만 거리가 멀고 운전을 하지 못하는 탓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차에 이곳 상주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수필을 쓰는 K 수필가가 연락을 줬다. 기사를 쓰기 위해 행사에 가려는데 시간되면 같이 가자는 말에 덜컥 가겠다고 약속했다.
수필의 날 행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입전마을에 있는‘책이 있는 풍경’에서 열렸다. 그곳 촌장은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박영진 문학평론가다. 그는 입전마을에 터를 잡아 11 년 동안 책방을 꾸려왔다. 너른 터에 덩그러니 컨테이너 하나로 시작했지만 점점 몸피를 키우고 책으로 가득 채웠다 . 하나씩 늘어난 건물은 어느새 대여섯 동이나 된다.
맡을수록 코를 들이밀고 싶은 책의 향내가 그득한 공간들. 그 속에서 3 박 4 일쯤 묵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트롯가수 이솔로몬의 친필 사인이 건물 유리창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책이 있는 풍경의 무한한 발전을 응원합니다 . -이솔로몬 -”. 시인 이솔로몬이 150 여명을 이끌고 와서 행사를 했고, 지금까지 하루 매상 중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고. 그가 최근 출간한 산문집『엄마, 그러지 말고』도 왕창 주고 갔으니 필요한 사람은 꼭 가져가라고 당부했다.
1 부 행사가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촌장에게 달려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솔로몬의 산문집을 받아들었다. 책은 양장본으로 두 손에 쏙 들어왔다. 얼핏 바라본 표지가 작가를 닮아 참 단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근거려서 내용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가방 속에 고이 모셔놓았다.‘그러지 말고’라니. 그것도 ‘엄마, 그러지 말고’라니.‘그러지 말고’라는 말에서 묘한 매력이 풍긴다. ‘그러지 마’도 ‘그러지 말자’도 아닌 ‘그러지 말고’ 라니. 애매한 그 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정이 담뿍 묻어난다. 부드러우면서도 사랑스럽게 명령하고 있는 그 말이 나를 끌어당긴다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띠고,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유독 그에게 눈길이 갔다.
말할 때마다 찡긋찡긋하는 미소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적당히 작고 둥근 얼굴과 검은 눈동자가 또렷한 커다란 눈은 귀염성 있으면서도 우수를 자아냈다. 보호본능을 불러일으켰다. 중심에서 살짝 오른쪽에 가르마를 타고, 단발에 가까운 긴 머리를 애교머리만 남기고 양쪽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럼에도 웨이브 진 앞머리는 흘러내려 눈을 살짝 가렸다.
살짝 가려진 눈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답답했다.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서 내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순정만화책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그 모습에 반했다. 그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꿰뚫고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가 화면에 나올 때 설거지라도 하고 있으면 남편은 얼른 오라고 소리쳤다.
그는 텔레비전 방송 트롯 오디션에 나온 사람이다. 그가 첫 번째 경연에서 부른 노래는 오래전 이치현과 벗님들이 불렀던 <짚시여인 >이다. 노래를 잘 불렀던가 .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그저 감성적으로 애절하게 불렀다는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취한 행동이며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고, 다섯 손가락을 모은 손은 심사위원인 마스터들을 향했다. 그 손길은 하트를 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애절했다. 중간 중간 눈을 찡긋하며 시청자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소를 따라붙던 볼우물은 덤이다. 사회자인 김성주는 그의 이름이 이솔로몬이며 시로 등단하여 시집까지 출간한 시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시인이라는 말에 그렇게 마음이 간 것일까. 곰곰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다. 시인이라는 호칭에다 노래를 부를 때 그가 보여준 약간 허스키하며 중저음에 가까운 굵직한 목소리, 애교 있는 표정, 애절한 눈빛과 손짓이 있었다. 과하지 않은 말투도 한몫했다.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심사위원들과 주고받는 말에서 그의 매력은 한층 더 빛이 연령대가 다양한 네 명의 남자가 며칠 동안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그가 나왔다. 그의 등장에 박수를 쳤다. 평소 궁금했던 그의 일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일행 중 막둥이로 참여했다. 그럼에도 일행을 리드했다. 침착한 운전 실력으로 안전운행을 하며 곳곳을 찾아다녔고, 몸에 밴 배려로 일행들을 감동시켰다. 그런가하면 손수 내린 커피를 가져와 이른 아침의 정취를 더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일행들 못지 그와 함께 별을 헤는 기쁨이 컸다 . 트롯을 부를 때와는 달리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 풋풋한 그의 모습은 순수했다. 실제로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자작나무가 즐비한 숲길을 그와 한 발짝 떨어져 거닐면서 이야기 나누는 꿈을 꾸었다.
이솔로몬 산문집 『엄마, 그러지 말고』 겉표지를 지그시 바라본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이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 아파트는 창문마다 불이 꺼져있다. 유일하게 불이 켜진 창문 하나. 그 안에는 이솔로몬이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 .
약간 허스키하며 굵직한 중저음, 다정한 이솔로몬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온다. 그 말소리를 들으며 무장해제가 된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솔로몬 !”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