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애월읍 고성리 493번지, 495번지, 1203번지, 1208번지, 1209번지 外
고성리 웃가름이 자리잡은 곳은 동쪽에 고성천, 서쪽에 항파두리, 남쪽에는 안오름으로 둘러싸여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4·3 당시 20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호주는 강도문, 강명규, 강상익, 강상홍, 문갑선, 문관희, 문달평, 문유생, 문재구, 문재국, 문재기, 문재반, 문재방, 문재화, 변영찬 등이다.
마을 주민들은 1949년 11월 19일 고성리가 소개(疏開)될 때 함께 소개했다가 1950년 초에 복구했다. 그러나 웃가름은 고성리를 둘러쌓은 마을성담의 밖에 위치했기 때문에 마을을 복구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사람이 살지 않는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되었다.(개정증보판 제주4·3유적Ⅰ)
길가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웃가름 동네의 형성은 1910년 전후하여 본동에 살던 문씨, 변씨 집안이 번성하면서 웃가름으로 이주하여 20여 세대가 살았는데 문씨가 주를 이루었다. 1938년 4·3사건으로 소개령이 내려지고 동네가 전소되었다. 1949년 제1차 재건이 자종동(고성3리)에서 실시되었고, 1950년 제2차 재건이 고성리에서 이루어지면서 본동을 중심으로 4·3성을 쌓아 집단이주하여 살았다. 이 때 4·3성 외곽에 있는 웃가름은 재건이 이루어지지 못해 현재와 같은 주거지와 올레길 흔적만 남게 되었다. 굴왓 : 성동산 동쪽 기슭에 형성된 동네.(굴과 같이 동산 아래에 형성되어 굴왓이라 부름) 신당(神堂)오름 : 종내미와 굴왓 사이에 심방(巫堂)이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 종내미 : 명칭에 여러 설이 있으나 종(終)과 남(南)이 합쳐진 어원으로 볼 때 안오름 기슭이 남쪽으로 가려져 안 보여 남쪽의 끝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 해석함. 장털왓 : 안오름 남쪽 기슭에 들어간 지역. 장대 모양의 지형이라 장태왓이란 말이 와음(訛音)된 것으로 보임, 김통정 장군이 호수를 만들어 배를 띄워 망중한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짐. 상듸촐왓 : 고성천 쪽으로 비탈진 발으로 내(川)에 속해 있어 지름길로 이용함. 동리 사람(상듸)이 동원되어 물을 누르고 촐왓(촐밭)을 만든 데서 명명.(자료 : 고성리지, 1993)〉라고 새겨져 있다.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집터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모두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옛날의 긴 올레도 여러 곳에 남아 있고, 일부 올레(고성리 495번지 북쪽)에서는 항아리 파편들이 발견된다.
(2024.05.21. 답사)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