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세법은 중국 모원의가 만든 <무비지>에 나오는 검법으로서<자료1>, 현재 해동검도와 대한검도회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조선세법을 정리한 사람은 대한검도회 김재일氏 입니다<자료2>. 자료에는 김재일氏가 조선세법을 창시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본식 검법과 중국식 검법이 혼재된 조선세법의 원본내용에서 독자적으로 추출해서 개발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습니다. 이른바 김재일식(式) 조선세법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김재일식 조선세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고 조선세법이라는 명칭을 독점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중국 모원의가 조선세법이라고 양심적으로 검법의 출처를 밝혀준 것은 저작권을 인정해준 것으로서 매우 고마운 것이지만 그 조선세법을 잃었던 중국의 검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최근의 중국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서 역시 중국인은 아전인수에 강한 꼴통국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국검법, 한국검법, 일본검법은 모두 다르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가장 잘 배운 국가이기는 하지만 역사 속의 한국은 항상 중국에 대해 주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므로 중국검법과 같다고 보지 않습니다. 원래의 중국검법을 조선이 거짓으로 조선세법으로 둔갑시킨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조선세법을 중국이 거짓으로 중국검법으로 둔갑시킨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누군가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중국검법이 조선으로 유입되어 그 영향으로 조선세법이 만들어졌으나 그 조선세법이 중국검법을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검법도 한국에서 유입되어 영향을 받았겠으나 한국검법과 똑같다고 보지 않죠.
앞으로 조선세법의 원본내용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또 그에 따라 김재일식 조선세법, 000식 조선세법 등등 여러 종류의 조선세법 유파들이 등장하면 그 여러 종류의 조선세법 가운데 좋은 부분만 뽑아 만든 제정(制定)조선세법도 기대해볼만 하고 체계적인 수련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이런 제정조선세법을 결정하는데 한국인들이 정치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태권도도 정치적인 문제가 들어가니까 돈문제가 들어가고 결국 조직이 부패하여 태권도의 위상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한국인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죠.
그런데 자료를 보다가 궁금증이 생겼는데 <자료1>을 보면 조선세법과 일본 거합도와는 서로 관련이 있다는데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아시는 분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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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조선세법(朝鮮稅法)
<조선세법>이라는 검법(劍法)이 처음 소개된 책은 중국의 모원의(茅元儀)가 쓴 <무비지(武備志)>이다. <무비지>란 중국 역대의 모든 병법서(兵法書)를 참고하여 명(明)나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분량이 240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그 중 84권부터 92권까지가 바로 교예편(敎藝篇)으로 여기에 검법(劍法)은 단 하나만 들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세법>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근자에 호사자(好事者)가 조선에서 검법을 얻었는데 그 법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에서 잃은 것을 사예(四藝)에서 찾은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의 역대 병법서 2천여 권을 뒤져보아도 제대로 갖추어진 검법이 없었는데 잃었던 중국의 검법을 조선에서 찾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원의 스스로 검법의 이름을 <조선세법>이라 했으니 잃었던 중국의 검법이라는 말이 억지 주장이기는 하나 여하튼 고마운 일이다. 모원의가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는 <조선세법>을 영영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 검도의 역사에 가장 큰 봉우리가 모원의에 의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 <조선세법>이 어떤 경로를 거쳐- 모원의에게 전해졌는지는 그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 검법이 검술(劍術)의 격자지법(擊刺之法)을 거의 완전하게 체계화한 최초의 것으로 검도의 고전적 교과서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 검법의 재현을 위해 근 10년간 연구해왔으나 세법(勢法)의 형태와 용어의 해석간에 난해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다만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윤곽이 잡혀가고 있기 때문에 그 일부라도 검도인들을 위하여 이 기회에 발표하고 후일 별도의 논문으로 이를 밝히고자 한다.
1.역사적배경
모원의(茅元義)는 15년간의 각고 끝에 1621년 <무비지>를 간하였다. 고금의 병서(兵書) 2천여권을 연구, 검토, 정리한 소산이라 한다. 이 속에 우리의 <조선세법>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원의는 임진왜란(1592년)후에 이를 조선에서 얻은 것이 분명하다. 그간에 수만의 중국인들이 전쟁을 빌미로 우리 나라에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때서야 무기고를 열어보니 칼은 녹이 슬어 칼집에 붙어 뽑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당시 우리의 현실이었다. 간신히 <기효신서(杞效新書>를 얻어 군사훈련시켰는데 이를 정리한 것이 바로 한교(韓嶠)의 <무예제보(武藝諸譜)(1598년)이다. 이책은 육기(六伎)로 구성되었는데 <기효신서>를 따른 것이 사기(四技)이고 검보와 당파는 다른 서적이나 중국 병사들의 실기를 참고로 한 것 같다. 이 중 검보는 후일 <무예도보통지>에 쌍수도(雙手刀)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그 법은 거의 같고 (그림에 다소 변형이 있음) 그 내용은 아주 초보적인 것이며 자법(刺法)도 없이 실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스럽다. <무비지>의 도법(刀法)도 이와 같다. 다만 그림만 있고 설명이 없다. 왜(倭)의 장도법(長刀法)을 기초로 한 것인데 중국식 검법이 대종을 이루고 있으니 이는 식검사적, 섬검퇴좌, 장검가용과 같은 검법의 편수자세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모원의가 <조선세법>을 조선에서 얻었다고 했는데 왜 우리는 이를 모르고 있었을까?
일차적인 해답은 녹슨 무기고의 칼이다. 당시 조선은 전혀 무기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혹 예전부터 내려오던 전대의 서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은 개국 이래 세조, 성종 때까지만 해도 궁중에서 격검, 격봉과 같은 무희가 성행하였으나 그 후 임진왜란 때까지 100여 년 간은 당쟁과 사화의 연속으로 내분만 있었을 뿐 군사의 조련은 전혀 도외시한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개국 초에 우리 나라 고대의 사상적 근원이 되는 서운관의 문적을 공자의 도에 위배된다 하여 일거에 불살라버린 점 등으로 미루어 선인 풍월도의 기풍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오직 사대모화만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대사상에 따라, 모든 무술이나 그 기기도 모두 중국이 만든 것이라 하고 우리의 무예는 궁시 하나뿐이라고 버젓이 기록한 것만 보아도 그 망발의 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세법>을 구해간 예로 보아 임진왜란 때만 하더라도 이 나라 어디인가에는 우리의 예것이 남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기록으로 따르면 신라 원성왕때 대사 무오는 15권의 병법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무오병법>이며, <김해병서>는 고려 때 각면의 병마사에게는 반드시 한 벌씩 하사한 병서였는데 혹 이런 서적들이 온전하게 아니면 그 편린이나마 중국이나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라 여겨진다. (일본에는 임진왜란 후에 居合術이 만들어졌는데 <조선세법>과 깊은 연관이 있다.)
2.세법(稅法)
①안법(眼法-눈싸움하는 법)
②격법(擊法-치는 법)의 다섯 가지
표두격(豹頭擊) : 정면치기
과좌격(跨左擊) : 왼쪽으로 걸어치기
과우격(跨右擊) : 오른쪽으로 걸어치기
익좌격(翼左擊) : 왼쪽으로 올려치기
익우격(翼右擊) : 오른쪽으로 올려치기
③세법(洗法-베는 법)의 세가지
봉두세(鳳頭洗) : 정면베기
호혈세(虎穴洗) : 훑어베기(확실치 않음)
등교세(騰蛟洗) : 올려베기
④자법(刺法-찌르는 법)의 다섯 가지
역린자(逆鱗刺) : 목 찌름(내려찌름)
탄복자(坦腹刺) : 배 찌름
쌍명자(雙明刺) : 명치 찌름(확실치 않음)
좌협자(左夾刺) : 왼편을 끼고 찌름(오른쪽으로)
우협자(右夾刺) : 오른편을 끼고 찌름(왼쪽으로)
⑤격법(格法-대적하는 법)의 세가지
거정격(擧鼎格) : 위의칼
선풍격(旋風格) : 어깨칼
어거격(御車格) : 가운데칼
* 출처: http://user.dhu.ac.kr/~dongmu/kumdo/josu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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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
조선세법 창시자 김재일 대한검도회 부회장
-50여년 검도 외길 인생
김준성 기자 (2000/12/09)/추천수:0
조선세법 창시자 김재일 대한검도회 부회장. 50여년 검도 외길 인생을 살아온 그를 그가 소장으로 있는 한국고무도연구소에서 만나보았다. 그는 평생을 검도 수련과 연구에 바쳤지만 최근에는 한국 고유의 전통 검술인 조선세법 보급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조선세법은 그가 중국 명나라 병학가인 모원의가 쓴 책인 <무비지>에서 발견한 한국의 고유 검술이다. 그는 1995년 중국의 연변대학을 방문해 당시까지 한국의 해동검도를 배우고 있던 연변대학생들에게 검도를 보급했고 연변대학의 허일봉 교수는 한국을 방문해 기공을 보급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김재일 부회장과 허일봉 교수는 5년에 걸친 공동연구 끝에 조선세법을 내놓았다.
김재일 부회장은 조선세법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조선세법은 도법(刀法)과는 달리 양날을 쓰는 검(劍)이기 때문에 도(刀)의 사용과는 틀리다. 다시 말해서 현대 검도에는 공격방법이 격(擊) 자(刺) 단 두 가지 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세법에는 격(擊), 자(刺), 타(打), 세(洗), 요략( 掠), 전(剪), 삭(削), 점검(點檢), 격(格), 참(斬), 절(切), 역린(逆鱗) 등 많은 많은 검리(劍理)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현대 검도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 된다." 그는 또 조선세법은 "무자비가 도(刀)가 아닌 아름답고 신속한 검(劍)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김재일 부회장은 이 조선세법을 전세계에 보급할 포부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는 "태권도 이상으로 많은 나라에 이 검술을 보급해 세계의 평화와 화해, 협력를 위해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무술 보급을 통해 세계를 한 나라로, 국경도 없고 전쟁도 없는 한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런 꿈같은 이상은 그의 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무력을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무(武)에 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세대로서는 검도계에서 최고 원로인 그는 1939년에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쭉 자랐고 1952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검도를 해왔다. 그는 한국 최초의 검도 국가대표였고 최초로 검도교본을 펴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최초로 검도를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검도총서>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또한 인천체전과 경희대, 부천시청을 거치며 32년간 검도 지도자의 길을 걸어오기도 했다. 조선세법이라는 새로운 한국 전통의 검술로 그는 과연 뜻을 펼칠 수 있을까? 조선세법이 세계화에 성공한다면 이는 태권도에 이어 한국이 세계인들에게 바치는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다.
* 출처: http://www.mooto.com/kor/webzine/news_view.asp?news_no=869
첫댓글 오~ 사군자님 이거 완전 테러수준인데요 ^^ 넘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