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총·한국국방기술학회 공동 포럼 개최
2019년 일본의 소재 분야 수출 규제 조치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이후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중 부품·장비 국산화 흐름에 비해 소재 국산화 속도와 수준은 미미하다. 특히 국방 분야의 경우, 일부 핵심 부품 외에 첨단 국방 소재를 국산화하기 위한 제도는 거의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국방 소재 국산화를 위해 국방 소재 산업 육성 방안을 논의하는 포럼이 마련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무기체계 기술 국산화 달성을 위한 국방 소재 산업 육성방안’ 포럼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와 한국국방기술학회 공동 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날 포럼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소규모 관중과 함께 진행됐으며 유튜브를 통해 녹화 중계됐다.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글로벌 경쟁 시대에 한 치도 눈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안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면서 “군사력은 단순히 인력이나 병력이 아니라 과학기술 기반 전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또 “이런 시대에 모든 무기체계의 근본에는 부품과 소재가 있다”면서 “오늘 포럼은 자주 국방을 위한 기술 우위, 기술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현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남북 관계의 불확실성,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인한 주변 상황의 격동적 변화는 첨단과학기술군으로의 전환을 재촉한다”면서 “그러나 우리 방위산업의 핵심 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장비 국산화도 60%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일본의 소재 분야 수출 규제 조치에 따라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됐다”면서 “국방기술의 국산화를 위해서는 민과 군의 기술 이전 활성화 등 상생적인 시너지 효과를 통해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고하고, 향후 관련 산업 육성과 성장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연 섬유 개발 과제는 기술 이전과 경제성
이날 첫 번째 발제는 이성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장이 ‘국방 분야 적용 가능한 탄소 소재 기반 복합 소재의 개발’을 주제로 진행했다. 이 센터장은 전투복 등에 사용되는 다양한 난연 소재의 종류와 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이 센터장은 미국과 러시아 등의 다기능 전투복 개발을 소개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바이오 공격 대비 기능, 방탄 기능, 생체 정보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으며, 스켈레톤과 같이 인간의 힘을 극대화하는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전투복 개량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작년부터 난연 전투복 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워리어 플랫폼’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전투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기 위한 전투복, 장구류 등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투복은 다양한 성능이 요구된다. 기본적으로 위장성이 필요하고, 활동성도 높아야 한다. 극한 환경에 알맞게 적응할 수 있도록 방한 기능, 흡한속건성, 경량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완벽한 기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투복 원단의 소재가 중요하다. 이 센터장은 “전쟁 상황에서는 공격 무기에 의한 피해도 크지만, 화재에 의한 인명 피해도 많으므로 화염으로부터 전투원의 생존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의 난연 전투복 개발 사업의 경우, 듀폰에서 만드는 고가(1㎏ 당 7~8만 원)의 노멕스(Nomex)라는 섬유를 사용한다. 겉옷의 경우 발수 기능을 위해 고어텍스를 사용한다. 이 센터장은 “생화학전에 대비할 수 있는 스마트 의류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난연 섬유 보급의 걸림돌은 기술 이전 문제와 경제성이다. 이 센터장은 “실생활에서도 난연 소재의 수요가 많지만 군 보급 시에는 기술 이전 자체가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난연 섬유를 만들 때 섬유에 난연 소재를 코팅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세탁 시 코팅이 벗겨지는 문제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난연체·단량체를 넣거나 타는 섬유에 난연제를 투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고가의 제조 방법”이라며 어려움을 전했다.
아울러 이 센터장은 “섬유의 열처리 공정 중 산화안정화 공정을 거치면 섬유 자체에 난연성이 부여된다”면서 “이를 잘 활용해서 실제로 활용 가능한 의복을 만들 수 있다”고 소개했다.
통계조차 안 잡히는 국방 소재, 전략적 투자 필요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광수 데크카본 회장은 ‘국방 소재 국산화 및 산업 육성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회장은 국방 소재에 대해 “전략 비닉 무기체계에 들어가는 국방 소재는 어떤 소재인지, 무슨 특성을 갖는지에 대해 보안상 알려지지 않아 관심이 있더라도 접근이 어렵다”면서 “무기체계에 들어가기 전에 장기간 시험 평가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인증이 되어야 상용화와 납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미국과 일본에서 국방 소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소개했다. 미국은 방위산업법 1조에 첨단 방산 소재를 전략적으로 관리한다는 규정이 있으며, 일본은 방산 소재를 무기체계와 동등한 수준으로 관리한다. 일본의 소재 국산화율은 90%에 이른다. 김 회장은 “소재 국산화율이 90%라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라면서 “규모의 경제가 되어야 하므로 해외의 경우 가치 확대 전략을 취하고 있고, 기업 안정성을 뒷받침해 혁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현황은 갈 길이 멀다. 김 회장은 “국방 소재는 국산화율이 통계조차 안 잡힌다”면서 “아직 우리는 일부 부품 단위의 국산화에만 집중하고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기체계를 다루는 대기업이 10여 개에 불과하고, 부품 소재를 다루는 중견 기업은 250여 개”라며 “매출액만 보더라도 무기체계를 다루는 대기업 위주의 불균형한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 소재의 연구개발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김 회장은 “국방 소재 개발 예산은 국방 R&D 예산의 0.4%로 미미하게 한정되어 있고, 당면한 대응을 하는 데 항상 시간에 쫓긴다”면서 “외국 무기체계를 뒤따라 개발하려고 외국 최고 수준 무기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으면서 부품도 최고 수준을 요구하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개발 시간이 촉박하다”고 토로했다. 또 “소재가 잘못되면 최종 무기체계가 잘못되기에 개발에 실패하면 방산 업체가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며, 성공하더라도 전략 비닉 등으로 시장이 제약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국방 소재의 대표적 사례로 탄소섬유를 꼽았다. 과거 탄소섬유는 수익성이 없었지만, 국내에 없으면 무기체계가 무너진다는 위기감 속에 국산화가 추진됐다.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지방자치단체, 민간 기업 등 민·관이 협심해 2008년 사업에 착수한 후 2020년 ‘탄소 소재 융복합 기술개발 및 기반 조성 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김 회장은 “10여 년 전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니셔티브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탄소섬유 시장 세계 5위에 오르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통찰력을 갖고 행동하지 않는 한 방산 산업에서 업체가 열악한 국내 시장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국방 소재가 국산화되기 위해 ▲핵심 소재의 경우 방산 물자 지정 규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성실 실패 제도 도입 ▲무기 도입 시 해외 시장 진출 가능한 소재 기업의 절충 교육과 우대 ▲소재 분야 지정 혜택을 통해 방산 원가 보상 및 국산화율 개선 방산 물자 지정 ▲국방 R&D 정책서에 방산 소재를 키워드로 포함 등의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장에 대한 수요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방 소재 업체가 나타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방 소재 국산화 관련 인프라 마련 시급
마지막 발제는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이 ‘국방 소재 산업 육성체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유 센터장은 “국방 분야는 산업 업종 분류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서 “국방과학기술표준분류에 8대 분야가 있는데 섬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아 분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방 소재에 대한 분류 자체가 없다 보니 어느 무기체계에 어떤 소재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면서 “첨단 소재는 군사력 증강에 직접 기여할 수 있으므로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할 것인지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센터장은 소재 국산화의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 요소를 지적했다. 그는 첫 번째로 “국방 소재 국산화나 기술 개발 사업화에 대한 규정이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면서, “국방·방산 소재 사업화를 위한 제도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는 “기존 정부 정책은 부품 국산화에 치중되어 있고 소재 국산화나 관련 업체 육성 전략은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으며, 세 번째로는 소재 국산화를 부품 국산화 절차대로 적용해야 하는 어려움을, 마지막으로는 미비한 국방 소재 관련 실태 파악을 꼽았다.
유 센터장은 “결론적으로 첨단 국방 소재 산업은 아직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시장에서도 해외 원천기술에 의존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첨단 국방 소재 국산화 개발 추진체계를 정립해서 무기체계 고도화와 국방 소재 산업 육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목표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센터장은 향후 과제로 ▲국방 소재 국산화 관련 법령 마련과 전담인력 및 기관 마련 ▲부처 간 협력과 명확한 역할 분담 ▲우수 국방 소재 전문기업 및 기관 간 협력 ▲소재 원천기술 개발 및 수출산업화 촉진 등을 꼽았다.
소재 국산화, 인식개선·제도정비·투자협력·산업육성 필요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한성수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첫 번째 토론자인 조준현 방위사업청 방산일자리 과장은 “방사청은 현재 부품 국산화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소재 국산화는 법과 제도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과장은 “소재를 개발하더라도 부품을 만들고 장비까지 개발해야 회사 매출도 발생하고 기술이 축적되어 선순환을 이루며 다시 기술을 개발하는 구조가 된다”면서 “소재의 경우 실제 기술만 개발하고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재는 향후 지원 방식을 R&D 중심으로 가야 할지, 일괄적 초기투자로 가야 할지 고심해야 한다”면서 “소재 국산화 제도는 부품과는 다른 차원으로 디자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방 소재 국산화와 관련해 ▲인식 전환 ▲제도 정비 ▲투자 협력 ▲산업 육성 등 4가지 키워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소재를 개발하고 활용해 부품과 장비를 만드는 것이 순서이므로 소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면서 “부품을 개발해서 무기체계에 장착하는데, 소재는 당연히 따라오는 비축 개념으로 생각하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와 관련해서는 “소재에 대한 중요성이 주요 정책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방위산업발전 기본계획에 소재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부품 국산화 종합계획도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계획으로 확대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자 협력,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이기 때문에 산업부나 과기정통부 등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MOU 체결 등을 통해 방위산업에 필요한 소재 개발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운규 웨이비스 대표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선행 핵심 기술을 개발할 때 국방기술품질원에서 국산 제품 개발과의 연계까지 진행해야 한다”면서 “무기체계의 탐색 개발 단계에서부터 진행하면, 무기체계 개발, 양산까지 순차적으로 국산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용환 KIST 자문위원은 “국방 소재는 기초원천기술이기 때문에 국가 지원 없이는 작은 기업들의 장기간 투자가 어렵다”면서 “국방부만 연구개발을 담당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므로 과기부, 산자부, 방사청 등 다양한 정부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자문위원은 “첨단기술은 결국 국방에 있고 기초원천기술은 공동 사용이 가능한 기술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고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