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용이
10.
"쓰읍-. 어딜 타려고. 너 오늘은 내 뒤에 타고 가."
"....네?"
최승현 형이 태자님의 뒷자리에 올라 타려던 내 앞을 처억- 가로 막으며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나는 물론이고 태자님과 대성이까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듯 '저 새끼가 뭐래?' 하는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저는 그닥 형 뒤에 타고 싶지 않은데요. 하는 마음이 담긴 눈빛을 마구 쏘아보내니, 이번엔 타겟을 태자님으로 바꿔 그에게 한마디 던진다.
"권지용. 오늘은 내가 얘 태우고 간다?"
"뭐라 쳐 씨부리쌋노."
물론 태자님의 무지막지한 사투리 어택에 쫄아 깨갱- 대며 꼬리를 살짝 내리긴 했지만, 오늘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뒷자리에 꼭 나를 태우고 가리라 굳건히 다짐을 한 것인지, 최승현 형은 기어코 그 우악스런 손으로 날 질질 끌고 가기 마련이었다. 내가 아무리 운동선수였다지만, 내 몸에 두배나 되는 덩치의 최승현 형의 힘을 이겨내기엔 심히 무리가 있었으므로 그저 하릴없이 그의 손에 끌려 가고 있을 즈음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싸늘한 태자님의 목소리가 최승현 형의 뒷통수를 향해 날라와 꽂혔다.
"니 그 손 못 놓나."
"그냥 오늘은 내가 태우고 간다니까. 서울 동지랑 사이좋게 담소 좀 나누겠다는데 왜 시비 털고 그래?"
"니가 언제부터 가랑 담소를 나눌 정도로 친했나."
"참나. 너 몰랐어? 우리 짱친, 절친이야. 승현이들끼리만 통하는 썸띵이 있거든."
...전 그런 거 전혀 없는데요, 형. 어서 너도 맞장구 치라는 듯이 내 옆구리를 콕콕 찔러오는 최승현 형의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 자신의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양지 바른 땅에 묻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였기에 난 그저 어설피 웃으며 그의 말에 동의함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니꼽다는듯 잔뜩 구겨져 있는 태자님의 잘생긴 용안에서는 아주 미세한 변함도 없었다.
"오늘은 그냥 승현이 형이랑 같이 갈게요."
하지만 내 말에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구겨져 있던 미간을 펴는 태자님이셨다. 그리고 최승현 형은 보란듯이 우웩- 토하는 시늉을 해 보이며, "권불출 납셨네." 하는 말을 지껄여댔다.
"테니스공 한마디에 그런 극심한 표정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얘가 좋냐? 권지용, 이 배신자! 넌 내 사랑을 배반했어!"
"잘 태우고 온나. 아한테 허튼짓 하믄 확 죽이삔다, 니."
"네, 네. 명 받들겠사옵니다, 태자저하. 태자비 마마는 소인이 학교까지 옥체 고히 보존하여 모셔다 드릴테니 염려 붙들어 매시옵소서-."
조금은 비아냥 거리는 듯한 최승현 형의 말에, 태자님은 가재미 눈을 뜨고서 그를 한 번 째려봐주고는 이내 페달을 밟으며 먼저 앞서 나갔다. 태자님이 출발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쭈볏쭈볏 최승현 형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이로써 그의 뒷자리에 타는 건 두번째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찝찝한 건 매한가지다. 역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태자님의 뒷자리임에 틀림 없어. 다른 사람의 뒤에 타고 있는 와중에도, 태자님의 생각으로 정신 없는 내게 말 없이 페달만 굴리던 최승현 형이 문득 말을 걸어왔다.
"의외다, 너. 난 니가 끝까지 권지용 자전거 타고 갈 거라고 떼 쓸 줄 알았는데."
"제가 뭐 어린앤가요. 그런 거 가지고 떼를 쓰게. 그리고 형이 그렇게까지 저를 태우고 가려고 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서겠죠."
"올~ 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테니스공?"
"....절 얼마나 과소평가 하셨길래 이 정도 가지고 똑똑하다고 하는건지 의문이네요."
"원래 운동하는 애들 좀 무식하지 않냐?"
"방금 그거 전 세계 모든 스포츠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이었다는 거 꼭 아셔야 합니다, 형."
"조크도 못 쳐?"
조크라고 치기엔 형 목소리에 깊은 진심이 묻어 나왔었거든요? 우리의 대화가 어쩌다 이런 삼천포로 빠져 든건지는 모르겠다만, 길가에 불뚝- 튀어나온 작은 언덕을 끙차, 하고 넘은 최승현 형이 다시금 운을 띄웠다.
"솔직히 권지용이랑 너랑 사귄다고 했을 때 조금 충격이긴 했다. 아니, 뭐, 충격이라기 보다는 왠지 모를 허탈함? 권지용이 너 좋아하는 거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긴 했었는데, 막상 너희 둘이 얼레리 꼴레리 한다니까 뭔가 권지용을 뺏긴 기분이었어."
"....형, 태자님 좋아해요?"
"니들 둘이 샤랄라 하다고 괜한 사람까지 호모로 몰아부치지 마."
"크흠....계속 하세요."
"권지용은 진짜 나한테 특별한 친구야."
"특별한 친구인 거 치고는 둘이 사이 엄청 안 좋아 보여요. 형도 느끼죠?"
"닥치고 들어, 인마. 여튼, 내가 반반한 외모와는 달리 어두운 과거가 좀 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 때 왜 그런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존나 유치하기도 하고 오글거리는데. 철 없을 때 얘기니까 패스하고. 나 이 촌구석으로 이사온 것도,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하도 사고를 많이 친 바람에 지방으로 강제전학 당한거야."
".....강제전학이요?"
강제전학이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인 내게는 상당히 이질감이 묻어나는 단어였다. 그렇지 않은가. 보통 학생들에겐 전학도 흔치 않은 일인데, 무려 강제전학이라니. 그가 말한 자신의 어두운 과거라는 것이 어느정도 어두웠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눈 앞이 까마득 해졌다.
"처음 여기로 이사 왔을 당시만 해도 온갖 지랄 다 떨어댔지. 가출이랍시고 읍내 나가서 피씨방이나 전전하고, 학교는 물론 밥먹듯이 제꼈지. 진짜 짜증나고 기분 잡칠 때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분 풀릴 때까지 주먹질 하고 그랬었어. 완전 청소년 드라마 한 편 찍었다, 나 혼자."
"형 조금 비정상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밑바닥...치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지금은 정신 차리고 그나마 사람다운 삶 살고 있는 거야. 권지용 덕분에."
"태자님 덕분에요?"
"너 권지용 선도부 부장인 건 알고 있지?"
"....좋은 정보 감사해요."
"이런 뷰웅신. 지 남친이 선도부 부장인 것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니. 좌우당간. 내가 맨날 학교 제끼고 출석일수 모자르니까 담임이 권지용한테 부탁한거야. 나 좀 제발 학교로 데려올 순 없냐고. 그러니까 권지용이 존나 시크하게, 너 권지용 특유의 무표정 알지? 그 무표정으로 알겠다고 하고, 그 다음날 바로 날 학교로 돌아오게 만든거야."
"바로요? 어떻게요?"
"그 새끼가 비오는 날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서 날 존나 개 패듯이 쥐어 팼어."
그, 그거 범죄 아닙니까?! 태자님이 주먹질이라니! 전혀 매치가 안 된다. 좀 냉정하고 무뚝뚝하긴 해도, 언제나 젠틀하고 이성적일 것만 같은 태자님이 폭력을 행사하다니! 생각보다 충격적인 그들의 청소년 드라마 속 한 씬에, 그저 넋이 빠져 어버버- 거리고 있을 즈음 최승현 형은 나름 위로랍시고 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다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거니까 너무 충격은 받지마.
"그 때 난 알았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그 놈 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걸. 그리고 그 때 권지용이 나한테 한 말이 뭔 줄 알아?"
"뭔데요?"
"내가 권지용한테 두들겨 맞고, 진짜, 존나, 레알 아팠단 말이야. 그런데 그 놈이, 너희 부모님이 그동안 너 때문에 아프셨을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니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나니까 정신이 확- 드는 거 있지. 내가 정말 여태까지 인간쓰레기처럼 살아왔구나, 싶어서."
"그랬구나...."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시골 촌구석에 의지 할 곳 하나 없고 반항심만 가득했던 나한테, 권지용 그 놈이 그나마 큰 위안이 돼 준거지. 거듭 강조해 말하지만, 친구로써니까 호모로 치부하진 말아주길 바래."
"...사실은 아까 형이 했던 말에 동의 못 했었는데, 승현이들끼리만 통하는 그 썸띵, 있는 거 같긴해요."
"엉?"
"나도 태자님 덕분에, 맘에 드는 거 하나 없는 이 촌구석에 붙어 있고 싶은 마음이 생겼거든요."
완전 권지용 교집합이네. 최승현 형이 크큭, 대며 실 없는 웃음을 흘렸다. 겉으론 맨날 서로 시비 걸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처럼 티격태격 하긴 해도, 알고보니 꽤 끈끈한 우정으로 맺여져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 입가까지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꽤 의리파라서 한 번 우정을 맺은 친구는 무덤 속에 들어갈때까지 의리 지키는 타입이거든. 난 권지용이 어딜 가서 뭘 하던 누구와 함께이던 행복했음 좋겠다. 오늘 이 말 하려고 너 내 뒤에 태운거야."
"타길 잘한 거 같네요."
"그치? 참 다행이다. 권지용이 좋아하는 사람이 테니스공 너라서."
"왜요?"
"너도 잘 알겠지만, 권지용 그 놈 너 만나기 전까지는 표정 딱 하나였어. 존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재수없는 그 무표정. 그런데 너 만나고 나서부터 그 새끼 표정이 다채로워 졌다니깐."
"...그런가?"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질투도 하잖냐.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권지용한테 그런 버라이어티한 감정이 생겼다는 건 인류의 진화보다 더한 생물학적 기록으로 길이길이 남을 일이라고."
앞으로도 내 친구 권지용 잘 부탁한다. 아, 그리고 내가 권지용이 내 특별한 친구라고 했던 거 그 새끼한텐 비밀이야. 존나 쪽팔리니까. 하며 최승현 형이 내게 오늘 우리 둘 사이에 오고 갔던 심도 깊은 대화에 비밀을 안전보장 할 것을 신신당부 했다. 내게는 늘 기피대상 1호였던 내 전생의 철천지 원수 최승현 형이, 그래도 오늘은 꽤나 내 마음에 드는 면모를 보여줬으니 그 정도 비밀은 보장해 줘도 손색은 없을 듯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와의 거래를 성사했다.
"허이고. 누가 권불출 아니랄까봐 내가 혹시라도 너한테 허튼 짓 했을까봐 보초 서고 있는 것 좀 봐라."
최승현 형은, 우리보다 한참이나 먼저 도착했을 태자님이 우리가 학교에 당도할 때까지 정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최승현 형의 자전거가 태자님의 앞에 촤르륵- 하고 멈추어서기가 무섭게 자전거에서 뛰어 내려와 태자님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가는 나를 보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또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세트로 지랄들을 떠네, 라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디스와 함께.
"와 이리 늦었노."
"미안. 오는 길에 테니스공이 도랑에 빠지는 바람에 건져주느라고 늦었다."
"....아 잘 태우고 오라캤지, 이 문디 자슥아."
"니들은 왜 농담, 진담 구별을 못 하냐? 진짜 쌍으로 유별나다, 유별나."
누가 봐도 도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치기엔 너무나 깔끔하고 정갈한 나의 모습을 보고서도, 도랑에 빠졌다고 말장난을 쳐 오는 최승현 형을 향해 으르렁 거리는 태자님에게 최승현 형은 혀를 쏘옥- 내밀어 "메롱!" 이라는 유치찬란한 멘트를 마지막으로 학교 건물 안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여간 저 형이 덩치에 안 맞는 짓 하는 건 단연 세계 1위인듯 싶다.
"니 괘안나. 점마가 또 이상한 짓 한 거 아이제."
"안 했어요. 보다시피 멀쩡하잖아요."
오히려 더 소중한 얘기를 들었는걸요. 태자님은 누군가에게 있어 정말 특별한 존재라는 걸.
"태자님. 예전에 태자님이 나한테 그랬었잖아요. 나는 태자님한테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랬었제. 갑자기 그기 와."
"그런데 태자님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특별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나는요..."
"..........."
"태자님한테 내가, 좋은 의미에서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내게 특별한 존재인 것 처럼, 나도 당신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작은 욕심. 연인으로써 부리는 귀여운 나의 투정에, 한참동안이나 침묵과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태자님은 곧 씨익- 하고 멋드러지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때부터 이미 니는."
"..........."
"내한테 좋은 의미에서 특별한 사람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그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였노라고.
* * * * *
햇살 따사로운 주말의 오전. 태자님과 나는 읍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곳 청운리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한 달에 한 번 한 집 씩 돌아가며 마을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해 드린다. 때마침 이번이 태자님네 차례였던지라 미리 주문해 놓은 떡을 받으러 가기 위해 읍내 장터 방앗간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밭 메는 일로 바쁘신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대신해 효자인 우리 태자님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힘 좋은 큰승현이 뒀다 뭐하고, 왜 굳이 작은 승현이를 데리고 가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꾸짖음에도 태자님은 끝끝내 나를 데려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어, 우리 태자님. 기어코 제 옆구리에 나를 매달고 나오는데 성공하자, 얼굴 가득 만족의 웃음을 띄워보이는 태자님을 보고 하마터면 충동적으로 '우리 태자님, 나랑 같이 가는게 그렇게 좋았쪄요? 우쭈쭈쭈.' 하며 그의 턱 밑을 간지럽힐 뻔 했다는 것은 평생 나만 아는 비밀로 안고 살 테다.
"아, 맞다! 태자님. 왜 선도부 부장이라는 거 나한테 말 안 해줬어요?"
"니가 언제 물어본 적은 있었나."
"그런 적은 없지만...난 왜 태자님이 선도 서는 걸 못 봤지?"
"니는 내가 선도 서기 전에 내랑 같이 학교 오니까네 못 보는 게 당연한 거 아이가."
"아...그렇구나."
달리는 버스 차창 너머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이는 교복점에, 문득 저번에 최승현 형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자님이 선도부 부장이라는 고급 정보 말이다. 태자님이 학교에서 권력 꽤나 휘두른다는 그런 고위급 간부 정도 되는 선도부 부장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서운함과 더불어 팔에 노란색 선도 완장을 차고 냉철하게 선도를 서면 상당히 멋있을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태자님과 선도부장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드는 환상의 조합이로다.
"태자님, 멋있어요...헤헤."
"뜬금없이 무신 소리고. 퍼뜩 인나 내릴 준비나 해라."
그렇게 시크한 척 말하면서 귀는 왜 빨개지는데요? 우리가 내려야 할 곳에서 멈추어 선 버스에서 몸을 내려 먼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태자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붙으며 장난 식으로 말하니, 태자님은 애써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무심하게 한마디 툭 내던졌다. 더버서 그런다. 하필이면 또 날씨가 아주 끝발나게 더워서, 뭐라 대꾸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아주 좋은 핑계다.
"날씨가 갑자기 이렇게 확 더워지는거 보니까, 곧 장마 시작 되려나봐요."
"니 각오 단디 해두는 게 좋을끼다. 장마 시작 되믄, 자전거 못 타고 댕기가 학교까지 걸어댕겨야 한다카이."
"가만보면 태자님 나 엄청 무시해. 나 전직 테니스 선수였다니까요? 그 정도 거리도 못 걸어다닐까봐 그래요?"
"전직 테니스 선수였다카던 머스마가 내한테 배드민턴을 그라케 사정 없이 져 부렀나."
"그, 그 땐 내가 봐준 건데요?! 나한테 지면 태자님 모, 모양새가 안 사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거라고요!"
"그만 떠들어 싸고 퍼뜩 떡이나 받으러 가자."
영원히 내 인생에 큰 오점이 될 배드민턴 사건을 다시금 되짚는 태자님의 짖궃음에, 그 때의 민망함이 스물스물 올라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는 내게 태자님은, 얼굴이 와 그리 빨개지는데. 라며 장난기 가득 섞인 말로 날 골린다. 그에 나는 보란듯이 답했다. 더워서 그래요, 더워서! 다시 한 번 느끼는거지만, 오늘의 날씨 덕에 한치의 의심도 없게 만드는 참 좋은 핑곗거리 하나가 생겼다. 하지만 이렇듯 사람 하나는 거뜬히 익혀버릴 수도 있을 법한 무더운 날씨에도, 태자님과 내가 마주잡은 손은 한 시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이것저것 구경 하는 재미에 빠져 허허 실실 웃는데 바쁜 와중, 갑작스레 태자님의 날렵한 콧잔등 위로 출처를 모를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져 내렸다.
"태자님. 코에 물이...."
"...몽실이, 니 뛸 준비 해라."
"갑자기 뛸 준비를 하라뇨?"
"니 달리기 잘 하니까네, 내가 뛰라 하면 뛰는기다. 알았나."
뜬금없이 뛸 준비를 하라며 내게 엄포를 내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태자님은 하얀 나시티 위에 걸쳐 입었던 얇은 체크 남방을 벗어 대뜸 우리 둘의 머리 위로 씌웠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정말 거짓말처럼, 쨍쨍 하기만 했던 하늘에 희뿌연 먹구름들이 순식간에 모여들며 쏴아- 하고 굵은 빗줄기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퍼뜩 안 뛰고 뭐하노!"
눈 깜짝 할 새에 벌어진 상황에 이도저도 못 하고 멍만 때리는 나의 손목을 움켜 쥔 태자님이, 머리 위에 씌워진 남방을 방패막 삼아 근처 가게의 지붕 밑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들려오는 처벅처벅, 소리가 기분 좋은 멜로디처럼 들려와 차가운 비를 맞고 있는 와중에도 바보같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사람과 옷을 뒤집어 쓰고 비를 피하는, 이런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 했던 일을 지금 내가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주책맞게 가슴이 설레이기도 했다. 이 모든게, 태자님과 함께이기에 가능한 거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 카더니, 하머 벌써 장마 시작 됐나보네."
"오늘내로 떡 받아서 갈 수 있을까요?"
"일단 그칠 때까제 함 기다려 봐야제."
"그래도 분위기 있고 좋다. 그쵸? 운치도 있고."
그런 것 같기도 하네. 하는 나즈막한 태자님의 목소리가, 적적한 빗소리와 함께 어울러져 여느때 보다 더 감미롭게 들려오는 환청까지 인다. 둘이 있으니까....진짜 좋아. 이런 내 마음 속 혼잣말이 태자님에게까지 전해지기라도 한 모양인지, 태자님이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해사하게 웃으며 그 크고 부드러운 손으로 축축히 젖은 내 머리칼을 조심히 털어내 준다.
"지금 니 꼴이 딱 비에 젖은 강새이 같다."
"태자님은 비에 젖어도 멋있는 태자님이에요."
"...뭐라카노."
"지금은 비 내려서 하나도 안 더우니까 핑계 못 대는 거 알죠? 태자님 귀 엄청 빨개졌다, 헤헤."
"퍼뜩 뛰랄 때 안 뛰어가 잔뜩 젖은 주제에 뭐가 그리 좋다고 실실 대노."
"태자님도 똑같이 젖었으면서 뭘 그래요."
"내는 괜찮은데 니가 감기라도 걸려 버릴까봐 그러는기다."
다 알아요. 겉으론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무심한 듯 해도, 속으로는 나 엄청 걱정하고 생각한다는 거.
"....그럼 그냥 같이 아플까요? 혼자 아픈 것 보다는 같이 아픈 게 더 낫다고, 태자님이 그랬으니까 혹시라도 감기 걸려도 나 원망하기 없어요."
그렇게 우리는, 매서운 장맛비를 피해 숨어 든 처마 지붕 밑에서 조심스러운 첫 입맞춤을 나누었다. 입술로 전해져 오는 서로의 온기가, 마음까지 녹여버릴만큼 한 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 *
몽실이는 강아지가 아니라 여우인게 틀림 없어.
정엽 - 왜 이제야 왔니
첫댓글 꺄아아아~첫 입맞춤ㅋㅋㅋㅋ최고네요ㅋㅋ 요즘 경상스캔들 너무 달달해서져아요ㅋㅋㅋㅋㅋ 태자님 부끄러워서 귀 빨개질때는 우왕ㅋ 태자님 부끄러움도 타는구나!싶고ㅋㅋ다음편도 기대할께요!!
요즘 경스 완전 달달 포텐 터지죠~? 흐흐흐흐...저도 마냥 흐믓 합니당....ㅋㅋㅋㅋ 태자님 은근 귀여운 면도 있고...아놔...이 남자의 매력의 끝은 어디란 말입니까?
항상 이 픽을 보면 옆규리가 시려..... 왜케 달달한데!!!!!!!!! 솔로 염장지르냐!!!!!!!!! 근데 한편으로는 또 좋다능ㅋㅋ
저...저도요...옆구리가 너무 시려 죽겠어요....하지만 뇽토리니까 용서해 주겠어요...ㅋㅋㅋ
몽실이는 멍멍이가 아니라 여우로..ㅋㅋㅋ 태자님은 여전히 항상 멋있네요ㅋㅋ 달달모드 너무 좋아요- 담편도 기대할게요!
날이 가면 갈수록 여우로 진화하는 울 몽실이! 아주 좋은 변홥니다....ㅋㅋㅋㅋ
입맞춤이래 하헣ㅎ흐흫 정말 남들 쳐다보계 뽀뽀뽀를 하시고 그러세요 흐흫ㅎ 그리고 몽실이는 여우야 여우 이여우 오늘도 달달터져요진짜ㅠㅠㅜ
하여간 이 커플 거침 없는 건 알아줘야 합니다 ㅋㅋㅋㅋ 누가 경상도 남자+서울새침데기 커플 아니랄까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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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라 많이 바빴는데 시험 끝나고 나서도 일이 계속 생겨서 정신이 없네요....더헉....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항상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하투하투...♥ 몽실이는 강아지의 탈을 쓴 여우였나봐요! 지가 먼저 입술을 들이대고 왠일이니....태자님 멋있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고요....ㅋㅋㅋㅋㅋ 앞으론 자주 오도록 노력 할게요! 약속은 못 드리지만 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좋네요! 얼쑤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단 저 좀 울게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연인지 일부러 그러신진 모르겠지만 이번편에서 쓰인 브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완전 좋아하는브금인데.... 요즘 제가 너목들에 푹 빠졌거든여... 이종석..♡ 그래서 하루종일 저노래만 듣고 그러는데 용이님글에서 이 노래가 나오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브금 처음부분 살짝 듣고 너무 좋아서 지릴뻔했어여..... 하.. 정말... 용이님 스릉해여....♡ (수줍) 진짜 브금에 맞게 내용도 달달하고 너무 좋네요 ㅠㅠ
처음부분에 큰승현이 승현이 데리고 학교가겠다해서 저 되게 쫄았는데..... 저만 그런가여....? 저번편에 지용이가 대놓고 사귄다고 얘기했잔아여.. 그래서 큰승이 멘붕와서 자전거 타고 가면서 승현이한테 헤어지라는둥 되게 욕할줄 알았거든요 ㅠㅠ 제가 생각한거만큼 큰승은 모진 아이가 아닌가봐요! 큰승이 승현이한테 이야기한거 보니까 되게 많은 사연이있었네요ㅠㅠ 항상 승현이한테나 지용이한테나 까불까불대고 깝치...길래.. 큰승이 미워했는데 ㅋㅋㅋㅋ 옛날에 있었던 일 보면 지금 하는 행동이면 엄청~ 봐준거네여...ㅎㅎ..ㅎ... 그나저나 지용이 ㅠㅠ 너무 멋있어요 ㅠㅠ 선도부라니.... 비오는날 운동장에서 엄청 패버리고나서
하는 이야기... 너무 뭉클했어요 ㅜㅜ 부모님이 더 아프고 힘드실거라고.... 태자님 진짜 멋있네요 ♡ 큰승이 입장에선 되게 고맙겠어요 ㅋㅋㅋㅋ 근데 지금 행동보면 ㅋㅋㅋㅋㅋㅋㅋ 전혀 짐작못했던 이야기들.... 그나저나 큰승이 승현이태우고 간다는 얘기듣고 태자님 질투하는거 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웠어요 학교 도착하고나서도 미리 와서 기다리는모습도.... 큰승말대로 태자님에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거겠져 그래서 결론은 뇽토리는 천생연분...♡ 그리고 갑자기 비오니까 태자님이 남방으로 머리 가리려고 하는모습.... 저만 그거 생각났나요..? 그 강동원이 옷으로 머리위에 올리고 비 가리는거......♡♡♡♡♡ 설레서 미치는줄
알았네여... 그러다가 승현이도 고백같지않은 고백도 하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뽀뽀도하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게무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갱상도 남자 지용이랑 테니스선수 승현이가 이렇게 사랑에 빠질지 누가알았겠어여.....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럼 다음편 읽으러 가겠습니당!!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