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전두환 리더십
요 약 29만원으로 조롱받고, 독재자 살인마로 매도되어 돌팔매를 맞아온 전두환, 매도하는 그대들은 전두환에 대해 얼마나 알아보았는가? 그가 아니었으면 한국이 경제 10대국이 될 수 없었다.
똥과 오줌으로 범벅돼 있고, 홍수가 나면 물난리, 가뭄 되면 악취가 진동했던 70년대의 한강을 기억하는가? 오늘의 한강은 그런 한강이 아니다.
그런 한강과 오늘의 한강 사이에 누가 있었는가?
오늘의 한강은 앙상블 문화의 꽃이다. 1981년 전두환은 당시 화폐로 1조(10억 달러)를 여기에 퍼부었고, 그 돈은 일본으로부터 얻어냈다.
매우 엉뚱하게도 그는 일본으로부터 방위차관이라는 새로운 명목으로 40억 달러를 받아냈다. 그 돈으로 IMF를 면했고, 88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시설들을 건설했다. 40% 이상의 물가고를 해결한 그의 지혜와 결단에 감탄사를 바치지 않을 국민 없을 것이다.
반도체 1위국, 핸드폰 1위국, 그가 만들었다. 그가 어떻게 했기에 LG와 삼성이 오늘날 세계의 TV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는지, 다른 선진국 제품보다 20배나 더 안전한 한국고유의 원자로를 제조하여 세계적인 인기품이 되게 했는지, 아는 사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일하기에 바빴지 그가 한 일에 대해 자랑할 줄 몰랐다. 오늘 우리 국민 모두가 누리고 있는 풍요, 문화, 안보는 전두환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명동 거리에서 장발을 단속하고 스커트의 길이를 쟀던 시절이 1970년대였다. 야간통행금지는 그 누구도 거론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국산화 애용이 애국이었다. 달러는 무조건 아껴야만 했다.
엄격한 문화였다. 미국식 교욱을 받은 전두환은 이 모두를 풀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유시대’를 열어준 지도자였다. 전두환 이후에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축소됐다. 지금의 자유공간은 최악이다. 전쟁 도중이었던 1951년, 이승만이 밴프리트 대장에 간절히 부탁해서 미육군사관학교의 복사판을 진해에 설립했다. 미국 육사생이 배우는 교과서를 그대로 가져다 현대식 교육을 시켰다.
전두환이 그 첫해에 사관생도로 뽑혔다. 미 육사의 규칙에 따라 밤 10시가 되면 전두환 동기생 모두가 강제로 취침을 했다. 그리고 미국 육사의 전통에 따라 10시 정각이 되면, 너무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침대 속에 들어가 있는 청년들에게 구슬픈 솔베이지송이 방송되었다. 자신을 풍부하게 가꾸고 싶은 전두환은 다른 동기생들이 잠든 사이에 살며시 책과 플래시와 판초우의와 신문을 가지고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로 갔다. 냄새가 진동하는 구멍을 신문지로 덮고, 그 위에 좀 무거운 판초우의를 얹어 냄새를 어느 정도 차단한 후 독서를 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독서는 일생으로 이어졌다. 중령 시절 청와대 경비 대장을 할 때 그는 청와대 각 사무실을 정중하게 방문하여 차를 마시면서 그 사무실이 무엇을 하는 사무실인지를 물었다.
국가경영에 대해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보안사령관 때는 매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셔다 아침 공부를 했다. 그의 일생은 공부, 학습이었다. 전두환 리더십이 이승만의 리더십, 박정희의 리더십과 어떻게 다른지 이 책에 설명돼 있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왜 공통적으로 빨갱이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이 3인의 위대한 대통령 중 유독 전두환만은 시체가 되어서도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이 땅의 포로가 되어 좌익의 영원한 영양창고 노릇을 하고 있다.
왜 그런지 이 책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29만원 이야기는 자신의 얼굴이 뜨거워져서 절대로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저자 지만원
목 차 프롤로그 10 이 책의 아이콘 “아니라는데 왜 전두환만 증오하나?” 16 제1장 레이건 전두환 나카소네 3총사 시대 개막 레이건, 당선 12일 만에 전두환과 회담 20 무임승차하는 일본에 안보세금 물려 22 40억 달러 얻어내면서 최고급 환대받아 25 제2장 40%대 고공 물가 잡은 경제 영웅 투 스타, 보안사령관 때부터 시작한 경제 공부 32 40%대의 인플레 38 인플레와 사재기의 악순환 39 인플레와 외채의 악순환 39 40%대 물가를 2%대로 끌어내린 기적의 리더십 40 봉급 동결, 예산 개혁, 구조 조정 41 제3장 보호 경제에서 개방경제로 국산품 애용이라는 국수주의 결산 46 시장경제의 시스템화 47 WTO 10여 년 전에 ‘한국형 WTO’ 시대 열어 52 경쟁의 약자, 중소기업과 농어촌 지원 54 단군 이래 최대 어음사기 사건의 주범 장영자 55 장영자가 촉발시킨 금융실명제 58 김영삼 정치와의 비교 61 제4장 올림픽과 한강 시대 개막 기적의 대명사 서울올림픽 유치 성공 66 한강을 서울의 얼굴로 67 보이콧 없는 첫 국제올림픽 70 올림픽을 방해하는 김일성과의 심리전 74 88서울올림픽이 동서냉전 붕괴에 미친 영향 78 제5장 김일성의 암살-방해 행진 김일성의 박정희-전두환 암살 공작 82 아웅산 암살 공작 84 북한 구호품 수령 90 금강산댐, 위협이 될 수 있다 106 KAL858 공중 폭파 107 가짜 김현희 조작 122 2012년, 김현희가 폭로한 노무현 횡포 123 기자들 피해 임시거처로 전전 125 제6장 통제문화를 자유문화로 야간 통행금지 혁명적 해제 128 연좌제 폐지 129 해외 유학, 해외여행 자유화 131 중고생 교복, 두발 자율화 132 전두환에 대한 당시의 비난들 133 전두환만이 ‘추대된 대통령’ 138 제7장 미국보다 먼저 IT 강국 열어 전화기가 곧 신분이었던 1970년대 144 최우선 사업, 전자식 교환기 개발 145 레이건의 IT 강국 147 전두환이 촉발시킨 반도체 강국 149 전두환이 세운 공적, 김대중이 북에 제공 150 제8장 기술의 해방 제품 개발 독려 154 흑백 문화에서 컬러 문화로 157 제9장 원전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이승만의 핵 162 박정희의 핵 163 전두환의 핵 164 탈원전 작태는 반국가행위 166 제10장 우후죽순 솟아나는 교육 문화 공간들 학교 평준화 170 교육시설 확대 171 사상 처음으로 문화국가 건설 172 독립기념관 건립 177 이후의 대통령들은 무얼 했나? 178 제11장 흔들리던 안보의 안정화 지미 카터의 철군 행진 182 한국 장군들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 장군들 184 6.25에 투영된 한국 안보 186 레이건의 약속이 곧 안보 195 제12장 브루투스, 너마저? 단임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200 노태우 지명과 6월소요 208 노태우의 후계 행진 211 노태우의 오기 220 노태우의 정신적 프로필 222 노태우의 배신 드라마 223 노태우가 앞장선 전두환 비리 조사 226 전두환 스위스 강제추방을 위한 레만호 작전 227 노태우의 목조르기 233 이순자 여사의 1990년 10월 말 수기 235 전두환이 내민 손, 마지막으로 뿌리쳐 241 제13장 정치자금들 노태우가 착복한 비자금 때문에 전두환까지 걸려들어 256 역대 정치자금의 성격 258 전두환의 정치자금 260 정치자금에 따른 부패 일소를 주도한 죄 268 전두환만은 정치자금 걷을 수 없다, 대법원 인민재판 272 전두환 추징금 징수에 나타난 역대 대통령들의 횡포 273 유난히 전두환에 악랄했던 박근혜, 왜 그랬을까? 277 제14장 전두환 집권과정의 미학 집권과정에 하자가 있다? 282 10.26과 12.12는 합쳐서 김재규-정승화의 내란사건 293 5.17과 5.18은 합쳐서 김대중의 내란사건 294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뒤바뀐 과정 306 광주사태 분석, 최규하가 가로막아 312 재심절차 없이 편법으로 일사부재리 유린 317 김영삼-권영해-권정달-홍준표의 반역 공작 317 1997년 붉은 대법원의 해학적 판결들 319 국보위는 탁월한 아이디어 뱅크 324 삼청교육대, 사회정화의 예술 327 제15장 광주의 횡포 시체까지 뜯어먹는 5.18 바퀴들 332 5.18폭동의 아이콘, 5월 21일 상황 333 팩트 전쟁에 밀린 5.18세력, 마지막 보루가 광주법원 334 국가도 헌법도 없는 5.18마패 335 이해당사자인 광주법원이 재판 독점하는 것은 세기의 코미디 336 도둑질하듯 몰래 늘어나는 5.18유공자수 338 에필로그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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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지킨 자와 백두산을 버린 자
🔵 박정희
한일협정이 물밑에서 논의되던 시기 일본은 한 명의 특사를 박정희에게 보낸다. 고토 마사유키...일본 육사의 박정희 선배이며 일본정계와 재계를 연결하던 최고의 우익 로비스트이자 다혈질적인 기질로 스스로를 쇼와 시대 최고의 사무라이라고 자칭하던 자이다.
거한의 체구와 특유의 거친 말투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어떤 상대도 협박하여 설득시키고야 마는 사람이였다.
고토의 임무는 단 한가지였다. 731부대에서 기인하는 미도리 제약회사의 신기술을 이전하는 댓가로 독도를 뺏아오는 것. 이 고토를 보냄으로써 독도문제는 해결됐다고 보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정계에 팽배해졌다.
고토는 술을 먹으면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하였다. 죠센진토 이우 모노와 곤죠가 타리나이../ 조선 놈들이라고 하는 것들은 근성이 없어.
이런 고토가 드디어 박정희와 독대하게 되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고토였다. "장군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는 별로 없소..아마 조용한 생도였는 모양이군요." "당신이 나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오늘 내가 여기에서 당신과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요. 본론을 이야기 하시요."
"역시 듣던 대로시군요. 아뭏튼 장군. 바보같은 놈들이 다케시마 같은 하잖은 문제로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려고 하오. 조국을 부흥시킬려면 무엇보다 의약관계의 최신기술이 필요할 것이요.
내일 당장 신문을 이용해 선전하시요, 일본의 최신 기술을 이전 받기로 했고 공장도 지을 거라고 말이요. 그러면 민심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요. 그리고 다케시마 같은 것은 바보 같은 놈들에게 고기나 잡으라고 주어버립시다."
"이봐 당신, 나는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한 사람이요. 나에게 명령하는 것이요.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내 조국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사람이요. 그것이 독도이든 돌 한덩이든 내 조국의 것이라면 나는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요.
군인인 내가 조국에 할 수 있는 것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소."
순간 박정희의 기세에 이 거한의 고토는 기가 질리고 만다. 수많은 야쿠자들. 수많은 정치깡패들을 상대하면서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움을 고토는 이 작고 깡마른 체구의 사나이에게서 받은 것이다.
"장군 흥분하지 마시요. 장군의 조국에 대한 충정은 나도 이해를 하오. 하지만 작은 것을 보느라고 큰 것을 보지 못한 다면 그것도 장군답지 못한 것 아니요. 대의를 보시요. 자칫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소."
"이봐 당신 아까부터 자꾸 나에게 훈계할려고 하는데 그 태도를 나는 용서하지 못하겠소. 당신도 사나이라면 나와 술 한잔하며 사나이답게 이야기를 합시다.
서로 술이 취해 싸움이 된다면 덜 맞은 자의 말을 따르기로 하면 될 것 아니겠소 어차피 당신은 나와 싸우기 위해서 온 사람 아니요."
술자리에서 박정희는 고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부하들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아시오.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난 덕분에 우리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요. 사나이로서 이 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겠소.
선생. 돌아가서 전하시오. 다들 목숨을 걸고 조국을 부흥시켜 일본 못지않는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볼려고 하는데 계집애같이 앵앵거리지 말자고 말이요."
이 말을 들은 고토는 웃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면전에서 자신에게 계집애처럼 앵앵거리지 마라고 말하는 박정희의 눈빛에서 사나이의 진짜 미학을 찾았다는 유쾌함과 비장함이었다고 한다.
동경으로 돌아온 고토는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이, 장군은 조국을 위해서 죽기로 했다고 말했소. 당신들 면상을 보아하니 어느 누구도 죽을 각오를 하고 다케시마를 찾을 수는 없겠어. 돌아가서 마누라 엉덩이나 두드리든지 아님 긴자의 네상들이나 안고 한잔하자고...해산..해산..."
박정희가 암살되던 날. 아카사카의 한국 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던 고토는 술에 취해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고 한다. "빠가야로...조센진토 이우 야쓰라와 쇼가나인다나....."
"병신들...조선 놈이라고 하는 것들은 어쩔 수가 없구나..
자신들의 두목을 죽여버리면 어쩌냔 말이야..아버지와 같은 것이잖아...아...즐거움이 없어지고 말았구나..눈을 뜬 조선 호랑이가 이런 쓰레기 같은 원숭이들을 훌륭하게 단 칼에 베어 복수하는... 이것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병신들...마지막 사무라이가 죽었단다..죽고 말았단다." 놀라운 수출과 경제발전으로 일본과 경쟁하였으며 핵으로 힘을 가질려고 했던 박정희의 꿈은 마지막 사무라이가 죽고 말았다는 고토의 울부짖음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
사랑하던 손녀를 교통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자살한 고토가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박정희가 써준 우국충정이라는 친필휘호가 든 수석이었다고 한다.
🔴 김일성
간도협약으로 간도지방은 분실되었지만 백두산은 틀림없는 우리민족의 영토였다. 하지만 남침했다 혼이 난 김일성을 도와준 중공은 1950년 말에 이르러 참전 댓가로 백두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57년 주은래는 참전 댓가로 백두산 영토 250킬로미터를 중국에 지불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58년 천문봉에 기상대를 설치하고 60년에는 백두산 전역을 장백산 자연보호구로 지정한다.
이것에 북한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주은래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독대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의 국경수비대원들과 일부 조선 주민들의 불법 월경으로 긴장상태가 조성되어 양국 간에 시비가 벌어진다면 이것은 옳지 못하니 조치를 취해 주시요."
이 말에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동무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평양도 나누어 가질 수 있소. 양국 간에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혁명적 동지애뿐이며 남조선에서 미제가 물러나는 날 우리는 진정 하나가 될 수도 있소."
그리고 68년 12월부터 69년 3월까지 중국 측은 전 백두산 지역에서 북한의 국경수비대와 일반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결국 김일성은 북위 42도선을 경계로 백두산을 중국에 할양할 것을 승인하고 만다.
"조중 우호보다도 중요한 것은아무 것도 없으며 그것이 심지어 조선의 영토이든 바다이든 피로 나눈 혁명적 동지애로 맺어진 조중우의보다 위에 설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로써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양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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