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20여 년 전인 서기 1392년은 이 땅에 조선이라는 정부가 들어선 해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부지만, 500년 이란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는 건 여러 면에서 인정 받을만해. 무엇보다 어느 시대 보다 풍부한 기록들이 잘 보존 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 후손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래서 아래의 이야기도 전해 진 거잖아.
성공한 쿠데타니 역성혁명이니 하는 찬반양론은 잠시 접어두고 옛날 이야기 하나 듣는 다는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래.
고려정부를 전복하고, 위화도 회군을 통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부를 부정하는 고려의 후손들이 많았다고 해. 대표적으로 단심가로 이방원의 하여가 와 시조배틀을 하신 정몽주가 있잖아.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두 명의 왕을 모실 수 없다는 지식인 모임이 있었어. 이 72명의 유생들은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산골로 들어 갔어. 귀농, 귀향을 한 게 아니라, 나름 잘 나가던 집안의 자제들과 당시 지식인들이 조선 정부를 부정하며, 모든 걸 버리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보인 거야.
이 들이 터를 잡은 곳은 현재 위치로 보면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의 골짜기라고 해. 이 곳의 옛 지명이 두문동 이었던 거지. 이제 퍼즐의 반쪽은 맞춰진 거야. 호우!
마을의 동서 쪽에 문을 만들고, 빗장을 걸어 잠가 버렸다고 해.(남북은 자연지형이 있었나?)
요즘으로 치면 자신들만의 지역 공동체를 만든 거지. 우리 나라에 군사정권이 들어 서서 70여명의 대학교수 들이 산 속으로 들어 갔다고 하면 지금도 탑 뉴스 감 이겠지만, 저 당시에도 빅 이슈가 되었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니, 이성계측에서도 아주 무시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 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정부니 민심을 고려 해야 하는 예민한 시기 이기도 했지. 거기다 지식층이 단결된 행동을 보이니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았을 꺼야. 이 72인을 600년 전에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면, 펜이 총 칼 보다 강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힘은 가진 것 같아.
이성계측은 회유 작전을 선택해. 한편으로는 그 들의 마음을 가지고 싶기도 했을 꺼야. 지금 시각으로 봐도 기백이 멋지잖아. 저런 사람들은 최소한 요직에 앉아서, 개 돼지의 피를 빨아 먹는 진드기 같은 삶을 살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해. 현직부장검사가 국민이 준 권력으로 친구 회사 뒤를 봐주고 주식 정보 받아서, 백 몇 억씩 시세차익 남기면, 숙주에 기생해서 피 빨아 먹는 진드기 지.
검사영감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 쪽 팔리게.
다시 옛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조선정부는 이 들에게, 낙하산으로 관직을 주기에는 남 보기도 민망하니, 그 들을 위한 과거시험을 마련해. 특별공채 시험이라고 부르고, 형식상 절차라고 읽는다.
“ 전 정부이지만 이토록 충절을 보이는 그 들의 기상을 높이 산다. 하여 과거시험을 통해 내 그 들을 요긴하게 새 정부 수반으로 쓸 생각이다. (이성계의 속 마음은 ‘참으로 쿨한 결정이다. 백성들이 역시 왕다운 배포를 가졌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호우^^)
하지만, 독자제위 여러분의 예상대로, 72인은 과거장에 나타나지 않았어. 이렇게 쉽게 회유 될 이야기였으면, 600년이 지나서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완성 되지 않았겠지?
이 후로도 이성계의 회유는 여러 차례 이루어 지는데, 72인은 요지부동 이었어. 이에 이성계 정부도 결단을 내리고, 두문동의 72인 거주지를 찾아가 마지막 회유를 해.
“ 지금이라도 나와서 조선의 조복을 받고, 새 왕조에 봉사 한다면 기꺼이 받아 주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너희의 거처지를 그대로 다 불살라 버릴 것이다”
새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72인의 선비는 두문동에서 불출(나오지 않아) 하여, 불타는 연기와 함께 하늘로……아! 왜 똑똑하고, 절개 있고, 청렴하기 까지 한 사람들은 왜 이리 요절을 하는 거냐고..
이 들을 두고 융통성 없다고 말 하면 곤란 할거 같아. 사회의 지식층이라면 그 들이 생각 하기에 잘못된 정책이나 조정 자체의 국정운영 까지도 강력하게 비판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싶어? 물론 우리 사회에도 훌륭한 분 들이 많지만, 이런 역사를 보고 뜨금 하는 지식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야.
두 번째 이야기는 이전투구에 연관된 이야기야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도 이성계 옹!
이전투구의 한자 뜻을 풀이하면 진흙탕에서 볼쌍사납게 싸우는 개 라는 의미 정도 되겠어.
조선 건국 후 이성계와 정도전이 달 밝은 밤에 술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 이 보게 도전.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 변방출신 군인과 귀향이나 다니던 선비가 새 나라를 만들었어”
“ 네 형님..우리 세상이 오긴 왔네요”
“ 도전 동생, 오늘 보름달도 좋고 술 도 입에 짝짝 붙는데, 우리가 세운 조선팔도 사람의 특징을 사자성어로 한 번 논해 보게. 내 고향이 함경도라고 개의치 말고 우리 고향까지 한 번 평해주게. 왕과 신하의 사이가 아니라 형 동생으로서 농으로 하는 이야기니 가벼이 받아 들이겠네”
한 참을 망설이던 정도전은
“ 네! 그럼 술 자리 안줏감으로 여기신다면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이라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고, 충청도는 청풍명월이라 맑은 바람 속의 밝은 달고 같으며, 전라도는 풍선세류라 바람 앞의 가는 버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상도는 송죽대절이라 송죽과 같은 절개를 가졌으며, 강원도는 바위 아래의 늙은 부처님, 황해도는 봄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 하며, 평안도는 숲 속의 사나운 호랑이와 같습니다.”
“허허허허! 재미있네 그려. 그런데 내 고향 함경도가 빠지지 않았는가? 이런 둘 만의 사적인 자리에서, 딴 소리 안 할 테니 어서 말해보게. 어허 괜찮데 도. 이 사람아^^”
“ 네 …저기 그럼,,,,함경도는 이전투구 이옵니다”
이성계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하며.
“ 야 이씨,정도전!! 안 그래도 두문동 72인이다 머다 날 무시하는 것들이 많은데, 너까지 이러기야? 난 왕이고 넌 신하야! 그래 내가 진흙탕에서 개 같이 싸워서 조선을 세웠다는 거야 지금?. 너도 니 손에 피 만 안 묻혔지. 조선의 개국공신이야 이 우라질 놈아”
후에 이성계 집안과 정도전의 관계로 유추 해 보면, 정도전이 뼈 있는 농담을 한 것일 수도 있어. 아무튼 정도전은 어색한 이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서.
“ 함경도는 또한 자갈밭을 가는 소처럼 우직하고 강인한 석전경우도 되옵니다. “ 라며 위기를 모면 했다고 해.
오늘의 교훈은 술자리에서 야자타임이나 진실게임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특별히 이 글은 회사불출하며 ,개 같은 상사와 이전투구 하는 이 땅의 직딩들에게 바칩니다!
P.S : 이 글을 정독 해주신 소중한 당신의 러블리한 댓글은, 다음 글을 위한 산삼보다 귀한 자양 강장제!
http://blog.naver.com/jy3180
첫댓글 이런이야기 좋아라 하는데
잘봤읍니다!
블러그도 종종들릴게요^^
호우! 감사합니다^^더 많이 준비 해 볼께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재미있으셨다니 저도 기분 좋내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 함께 행복한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함흥차사도 있지요.
이성계의 반란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루 말할수없는 고통을 당했지....이씨조선은 결국 일본에 먹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