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이심을 인정한다
바리새인들은 직업적인 종교인이었다. 그들에게는 돈과 혜택, 영향력, 지위가 주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알리며 등장하시자,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왕국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갑자기 등장한 예수님의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자기들의 일자리를 지키려고 예수님을 제거할 계략을 세웠다. 이 음모를 실행하려면 예수님을 체포할 로마 군사들을 회유하는 내부 제보자가 필요했다. 때마침 사탄은 그 적임자를 찾아 그들에게 보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_마26:14~15a
무슨 동기로 유다는 그렇게 타락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적어도 성경이 기록한 분명한 동기는 바로 돈이었다. 상당한 협상 끝에 대제사장과 유다는 배신의 대가로 은 삼십을 주고받기로 합의했다. 유다는 일단 돈을 받자마자 새로운 고용주를 기쁘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_마26:16
배신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 그 밤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탁에 앉은 유다의 마음속에 일어났을 소용돌이를 상상해보라. 그때 갑자기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좌중에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_마26:21~22
유다의 심장은 틀림없이 쿵쾅거렸을 것이다. 그의 비밀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올 배신을 알고 계셨다. 어덯게 아셨을까? 누가 배신할지도 아셨을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_ 마26:23~24
유다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얼른 바리새인들에게 돌아가서 돈을 돌려줘야 할 것인가? 당장 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할 것인가? 주머니에 은 삼십을 가진 유다는 예수님 앞에서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_마26:25
정말 대단하다. 나 같으면 그 순간 몸이 후들후들 떨렸을 것이다. 나 같으면 몰래 저지른 죄가 드러났으니 즉시 계획을 바꾸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다는 충성을 돈과 바꾸었다. 단 돈 몇 푼에 자신의 운명을 팔아버렸다. 유다는 한때 자신이 따르기로 고백했던 예수님 대신에 자신에게 은 삼십을 지불한 사람들에게 충성하기로 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자백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가 선택한 것은 '고용안정(job security)'이었다.
:설마 나는 아니지요?
고용안정은 동기부여 효과가 강력하다. 리처드 닉슨(Richard Xixon)은 그가 미국 대통령직에 있을 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법과 타협했고, 재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스파이를 고용하여 상대편의 정보를 수집했다. 누군가가 그의 불법 행위를 발각하기 시작하자 그는 그것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하였고, 그 사건은 마침내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유다가 도사리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은 삼십에 맡긴 일에 충성을 다했던 유다의 삶이 추락하였듯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던 닉슨 대통령의 노력은 자신의 삶과 국가에 불명예만 남겼다. 우리는 모두 이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만약 당신에게 유다가 저지른 형편없는 재정 실수에서 굳이 배울 교훈이 없다는 아집과 교만이 있다면, 이런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라.
나는 화려한 결혼식을 치르고 불과 6개월 만에 빚더미에 빠진 젊은 부부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들의 수입과 지출에 대하여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나는 그 두사람이 모두 전업 세일즈맨인 것을 알았다. 더 깊이 질문하다 보니, 남편은 일을 시작한 이래로 자기 회사의 제품을 단 한 개도 판매한 적이 없음에도 월급을 받기 위해 위조된 문서를 제출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인은 남편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돈을 배상하라고 설득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는 계속 사기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가 결혼 전에 그의 부채와 수입에 대하여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 상담이 아주 불편해졌다. 그는 아내와 회사 모두를 배신 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사실을 털어놓고 모든 거짓말과 잘못된 행동을 고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고 상담은 그 순간 끝이 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들의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말은 유다가 범한 재정적 실수처럼 우리 개개인의 취약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위험한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죄로 가득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도 추락하고 말 것이다.
:결과
유다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게 만든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공포에 휩싸였다. 마태복음 27장1~10절은 그의 죄의 결과를 이렇게 기술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_마27:1~10
유다는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고 그리스도의 처형을 없던 일로 되돌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계획을 변경할 생각이 없었다. 유다는 그 돈을 성소에 던지고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았다. 유다가 죽은 그 피밭은 유다의 끔찍한 곳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마태복음6장24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_마6:24
이 말씀에는 흑과 백의 극적인 대조가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랑과 증오가 서로 합하지 못하는 것 같이 헌신과 경멸도 마찬가지다. 유다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척했으나 실제로는 그분을 경멸했던 전형적인 사례이다. 결국, 돈을 택한 그는 그릇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고용안정에 빠지는 함정을 피하는 방법
돈의 노예가 되려면 그 값을 얼마나 치러야 할까? 은 삼십이면 될까? 금 십온스면 될까? 천만 달러짜리 복권 당첨이 되면 될까? 만일 격주로 지급 받는 수입이 별 것 아닌 것처럼 그 가치가 아주 사소해 보인다면 어덯게 할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사치품이나 부유함이 아닌, 단순한 고용안정을 위해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팔아넘기곤 한다. 그들은 일을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재정적 안정을 도모하는 일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한다. 잠언 30장 7~9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이심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자기의 노력과 돈을 믿게 하는 함정을 피하기 위해 어떤 마음의 태도가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_잠30:7~9
이렇게 지혜로운 말을 남긴 아굴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걸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신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마태복음 6장11절의 주기도문 중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구절에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태도가 잘 담겨져 있다.
*척 벤틀리 지음 《돈에 넘어진 성경의 사람들》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