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과 형성
벨리댄스는 튀르키예, 이집트를 비롯한 지중해 세계,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벨리댄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하체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사막 지형에서 자연스럽게 발달된 상체 위주의 춤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 유랑 민족인 롬인들이 추던 춤이 중동 각지에 전파되면서 유래되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가설이 전한다. 그 중에서도 사냥, 농사, 출산 과정에서 다산을 기원하던 고대의 제사, 종교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이 전하고 있는데 특히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시대에 제작된 벽화에서도 벨리댄스와 비슷한 춤을 추는 무용가의 모습이 등장한다.
벨리댄스는 9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번영을 누리던 중동, 아랍 세계, 이슬람 세계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았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제작된 페르시아 제국의 정밀화에서 벨리댄스를 묘사한 그림이 있어 그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벨리댄스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튀르키예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여성스러움, 관능적인 이미지를 띠게 된다. 특히 궁전에서 외부와 격리된 방인 하렘에 거주하던 여자들은 술탄에게 왕비나 후궁으로 간택되기 위해 관능적인 벨리댄스를 추기도 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에드워드 윌리엄 레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같이 중동을 여행했던 유럽인들은 이집트의 알마(Almah), 가와지(Ghawazi)를 포함한 중동 현지에서 본 무용가들에 대한 광범위한 글을 집필했다.
특히 유럽에서 낭만주의가 유행했던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서양에서 널리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이 오스만 제국의 하렘 생활을 해석해서 그린 회화 작품을 통해 벨리댄스는 유럽을 비롯한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 알려지게 된다.
벨리댄스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배의 춤"이라는 뜻을 가진 '당스 뒤 방트르'(프랑스어: Danse du ventre)를 영어로 번역한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특히 프랑스의 화가인 장레옹 제롬은 1863년에 《알메의 춤》(프랑스어: La danse de l'almée)이라는 회화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는 1864년에 벨리댄스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1876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세계 박람회에서 벨리댄스 전문 무용가들이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관객들로부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893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인 1893년 만국 박람회 공연에 출연한 리틀 이집트(Little Egypt)를 비롯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 무용가들의 놀라운 기술과 연기가 관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다.
특히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의 공연 담당자를 역임했던 미국의 정치인 겸 작가인 솔 블룸(Sol Bloom)은 종종 '당스 뒤 방트르'(프랑스어: Danse du ventre)라는 프랑스어 용어를 사용했는데 나중에 영어로 '벨리댄스'(영어: Belly dance)로 번역되어 사용되기에 이른다.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이 유행하던 빅토리아 시대를 비롯한 19세기의 감성에 익숙했던 관객들은 벨리댄스를 감상하면서 무용가들이 코르셋을 벗은 상태에서 허리를 과감히 드러내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을 춘다는 사실에 문화 충격 현상을 목격했다.
벨리댄스 전문 무용가들 중에서는 영화화된 경우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1896년에 제작된 단편 영화 《파티마의 춤》(영어: Fatima's Dance)이다. 이 영화는 니켈로디언 극장에서 처음으로 개봉되었지만 "파렴치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검열 조치를 당하고 만다. 1890년대에는 미국의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이 벨리댄스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중동이 서양의 강대국들의 식민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에 활동했던 서양의 여자들 중에서는 중동의 춤을 먼저 배운 다음에 이를 모방하는 사람들도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시대에 널리 활약했던 네덜란드 출신의 간첩이자 무용가인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 자와섬에서 온 무용가 양식을 따르면서도 자와섬의 춤 양식보다는 중동의 춤 양식에 가까운 신비스러운 춤을 구사했고
프랑스의 작가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도 벨리댄스를 모방한 춤을 구사했다. 뮤직 홀에서 활동하던 많은 무용가들이 오리엔탈 댄스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가끔 독자적인 해석을 그만두고 본래의 민간 전승적인 스타일로 되돌아와서 실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현대 무용가인 루스 세인트데니스 또한 중동의 춤에 영감을 받은 무용가였다. 특히 춤에 대한 세인트데니스의 접근 방식은 서양의 춤인 발레의 맥락에서 외국의 춤인 오리엔탈 댄스를 혼합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세인트데니스의 목표는 관객들로부터 보다 뛰어난 경의를 표하기에 적합한 춤을 창조하는 데에 있었다.
이는 1900년대 초반의 서양 사회에서 여성 무용가는 이슬람 세계와 마찬가지로 도덕성이 부족한 존재라고 판단하여 백안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미국으로 이주한 튀르키예·아랍 세계 출신 무용가들이 뉴욕의 나이트클럽, 음식점에서 벨리댄스를 공연했고 카바레 스타일을 접목시킨 벨리댄스가 유행하게 된다.
현대 문화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다양한 영화, 텔레비전, 음악을 비롯한 대중 매체, 패션을 비롯한 문화적 요소가 결합된 벨리댄스가 유행하고 있으며 요가, 필라테스와 같은 하나의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팝 가수인 샤키라는 벨리댄스와 라틴 팝을 접목시킨 음악, 안무로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1995년에 안무가인 안유진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도중에 대학교[안유진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교에 다닌적이 없다고 이미 여러차례 기사화되었음]에서 배웠던 벨리댄스를 처음 소개했다.
2005년에는 가수 미나가 벨리댄스와 댄스 음악을 결합한 노래 〈Kiss Kiss〉가 수록된 음반 《Kiss Kiss》를 발표했다.
따라서 빛베리님의 벨리댄스 입문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첫댓글 퍄
벨리댄스 임성미는 신입니다
ㄷㄱ
퍄
와우
뭔가 베리님같은데
22
맞네요 막줄 보니
벨리댄스 유래굿
간택되기위해 허억..
ㄷ
ㄷㄱ
ㄷㄱ
ㄷㄱ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