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시안’ 모두 거부
교사 "계량화된 평가는 교원 퇴출 음모"
학부모 "부적격교사 퇴출 기능 왜 없나"
초미의 관심사인 교원평가제에 대한 첫 토론회에서 교원과 학부모는 모두 교육 3단체가 내 논 시안이 ‘함량 미달’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교원들이 시안을 ‘전문성 제고에는 효과 없는 교원 퇴출용’이라며 반발한 것과 달리 학부모들은 ‘퇴출 기능 미흡’을 이유로 반대해 커다란 인식 차를 드러냈다.
이미 이들 단체의 입장이 발표된 탓인지 14일 광주교대에서 열린 ‘교원평가제도 토론회’에서 시안 설명에 나선 3단체는 “교원과 학부모가 시안을 ‘오해’하고 있다”며 해명을 곁들였다.
초중등교사 평가방안을 발표한 박명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원들은 이번 시안이 성과급 등 경쟁도구로 이용되고 교사 퇴출용으로 활용될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교원평가는 수업반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한 자료로 본인에게만 전달될 뿐”이라며 “부적격 교사 문제는 징계 문제지 평가를 통해 해결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평가 결과를 학교 차원에서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그건 막을 수 없다”고 설명해 여운을 남겼다. 실제로 평가시안에는 단위학교에 설치하는 ‘교사평가관리위원회’(학운위나 학운위 소위가 맡을)의 결정에 따라 평가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학부모들의 요구를 의식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교직단체와 학부모단체는 이런 해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교총 정동섭 정책교섭국장은 “수업전문성 제고는커녕 교사를 경쟁구도로 내몰아 되레 수업을 왜곡시키고 교원 퇴출 수단으로까지 변질될 것”이라며 “평가시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평가 결과를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은 급여나 연수기회, 승진에 반영하고 교원 퇴출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협력 관계에 있어야 할 교사들이 평가를 위해 서로 관찰하고 긴장하고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놓인다면 동료간 팀웍이 악화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활동을 수업계획, 수업실행, 평가, 수업전문성, 만족도 등 5가지 평가요소로 구분하고 다시 수업실행 등 평가요소를 발문의 적절성, 자료활용의 적절성 등 각각 몇 가지 평가지표로 나눠 평가하도록 한 것이야말로 교원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획일적으로 마련된 평가기준은 교사들이 보여주기식 수업을 하도록 조장하고 결국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왜곡시킬 수 있다”며 “더욱 큰 문제는 과연 수업 비전문가인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수업을 제대로 평가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 국장은 “한국교총은 평가 대신 현재 9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교원법정정원을 확보하는 등 후진적 교육여건 개선부터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수교원을 확보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동료장학”이라며 “수석교사제를 도입해 수업 연구와 동료장학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교원양성기관의 교육과정 강화, 교원임용제도 개선, 국가책임연수제 확립 등을 제안했다.
전교조 하병수 참교육연구소 사무국장도 “평가시안은 수업전문성 향상을 목표로 하면서도 실제는 일반 사기업에서의 인사고과 평가방식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이는 자기개발 도구로서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교원의 보수 및 인사개편과 연계시킬 수 있는 노동통제 시스템”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기본적인 평가방식으로 체크리스트형을 사용하도록 한 점이 그 예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시안은 점수산출에 중심을 두다보니 모든 교사가 공통으로 적용받는 평가항목을 설정하고 수치화가 가능한 체크리스트형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교사간, 교과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평가도구와 평가항목 설정과 상반되는 모순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즉 “시청각 기자재 대신 학생간 토론활동에 치중할 수 있고, 점수 잘 내기 위해 학원처럼 문제풀이식 학습을 하기보다 느리지만 깊이 생각하는 실험적 수업을 할 수도 있으며, 또 문제 학생은 많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서서히 학생을 일깨우는 교사만의 노하우가 있을 수 있다”며 “이처럼 다양한 수업을 어떻게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평가관리자가 가공해 다시 던져주기만 하면 교사의 수업 전문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교장·교감 평가방안에 대해 토론한 최동주 정읍여중 교장은 교직원과 학부모의 평가자로서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우려했다. 그는 “교직원들의 평가는 정확한 관찰과 자료에 근거하기보다 평가 대상자와의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고 학부모들도 자녀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근평에서 교장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의심받는 마당에 교직원과 학부모의 평가전문성도 논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최 교장은 “차라리 학교평가와 연계해 평가자를 재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교장 평가의 경우 관할 교육청 인사와 평가 교육을 받은 교사 대표, 학부모 대표와 외부 인사가 포함된 학교평가위원단, 교장 자신이 평가에 나선다면 시안의 문제점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평가방법도 “교장과 교감이 활동 관련 포트폴리오를 만들 경우 교직원들이 함께 시달리는 문제가 있고, 또 포트폴리오가 간접자료라는 점에서 문서 잘 만들고 자료 멋지게 꾸민 교장 교감이 우수한 평가를 얻는 결과도 우려된다”며 “이보다는 방문평가를 통해 평가 대상자와 직접 면담을 하고 실제 교육활동과 증빙자료를 관찰, 검토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이와 달리 학부모들은 시안이 ‘너무 약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미경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장은 “학부모들은 교내 부적격 교사 문제를 교원평가로 해결하자고 요구했지만 이번 평가시안에는 그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교직단체들은 징계를 통한 부적격 교사 퇴출을 말하지만 징계는 이미 범죄행위가 구체적으로 일어난 후에 고려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로 인한 피해를 이미 학생들이 당한 후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이 지부장은 “교원평가를 수업력 향상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학급경영, 학생지도 영역도 만들어 얼마나 인격적인지,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하는지, 공평하게 대하는지에 대한 평가항목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시안은 평가결과를 교사 자신의 성찰 및 개선자료로만 활용하도록 규정해 교육력 향상을 위한 결과활용에 대한 대안제시가 부족하다”며 “보다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안선회 교육과시민사회 정책실장도 “교원평가는 교원들에 대한 보상이나 퇴출과 반드시 연계돼야 하고 징계요청에 학부모의 평가가 반영돼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 수업뿐만 아니라 인성지도나 학급운영 등도 평가하는 영역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과 학부모가 반드시 교원평가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적격교사를 퇴출하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 정책실장은 “평가결과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부적격교사, 지도력 부족교사로 학운위가 의결한 경우는 그 사실을 상위교육청에 제공하고 재교육, 퇴출의 근거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상위 10퍼센트나 20퍼센트 교사에 대해서는 표창과 무료 교육연수 기회, 해외연수 기회 등을 제공해 보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유토론 시간, 방청석에서는 “도대체 동의하는 쪽도 없고 입장도 크게 엇갈리는 시안을 왜 그렇게 조급히 시행하려 하느냐”며 “교육부의 시행일정을 확실히 밝히라”는 교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교육부 황호진 교원정책과장은 “아직 어떤 내용도 정해진 게 아니다. 이후 토론회, 공청회를 거쳐 3학회가 보고서를 내면 교육부가 시안을 만들어 내년부터 아주 제한적으로 시범운영한다는 정도만 결정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최소한 교원정책은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교직단체를 참여시켜 충분한 논의와 동의를 얻어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시범운영을 기정사실화 하지 말고 교직단체, 학부모단체와 함께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