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헤어스타일은 1980년대 초 컬러TV가 등장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연예인의 머리를 모방한 것이다. 맥가이버 머리, 긴 생머리…. 사람의 이미지는 헤어스타일 하나만으로 달라 보인다. 각자 개성에 따라 머리카락을 꼬불꼬불하게 하고, 색으로 변화를 주어 늘 새로운 모습,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대략 8만~10만 개 정도 된다. 이들 머리카락은 발생-성장-퇴화-휴지기라는 라이프사이클을 거친다. 일정 기간 자라면 빠지고 새로운 머리카락이 난다. 남자는 평균 2∼4년, 여자는 4∼6년까지 자란다. 매일 평균 0.2∼0.5mm씩 자라다가 휴지기에 돌입한 머리카락이 보통 하루에 50~100개 정도 빠져나간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손톱이나 발톱과는 달리 각각 「자라고-쉬고-빠지고」 하는 독자적인 「毛(모)주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털갈이 없이 항상 일정한 모발 수를 유지할 수 있다.
머리카락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케라틴에는 황(S) 원자 두 개가 나란히 「다리결합」(-S-S-)을 한 「시스틴」이라는 아미노산이 14~18% 들어 있다.
다리 모양으로 사슬처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다리결합이 머리카락의 탄력성을 유지해 주므로, 건강한 머리카락 한 올이 150g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아미노산은 주로 물과 친하지 않는 「疏水性(소수성)」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우리가 머리를 감더라도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
시스틴의 다리결합은 수소를 만나면 산화 반응을 일으켜 황-황(-S-S-)의 다리결합을 끊고 「메르캅토기」(-SH: 황·수소)가 된다. 여기에 다시 산소가 만나면 환원 반응이 일어나 원래대로 돌아간다. 파마는 머리카락의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한 과학적 작용이다.
파마의 원리
머리카락의 모양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틴 간의 황-황(-S-S-) 결합을 끊어 줘야 한다. 파마약이 그 결합을 끊어 주는 역할을 한다. 파마약은 머리카락의 황-황(-S-S-) 결합을 파괴시키고 수소를 붙이는 환원제로, 떨어져 나간 시스틴의 황 원자들을 파마약 내의 수소 원자와 결합(-SH)하게 만든다. 파마약을 바르면 원래의 이황화(-S-S-) 결합이 끊어져 머리카락이 탄력을 잃는다. 머리카락이 원하는 모양으로 변형된다.
머리카락을 「컬 클립」이라는 원통형의 도구에 원하는 모양으로 말아 머리를 고정한 뒤 얼마 후에 중화제를 바른다. 중화제는 파마약과는 반대로 산화제이다. 이것은 다시 산화 반응을 일으켜 시스틴에서 수소를 떨어뜨리고 새로운 위치에서 다리결합이 이루어지게 한다.
새롭게 비틀린 상태에서 다른 시스틴과 황-황(-S-S-)의 다리결합이 이루어져, 멋진 웨이브 머리로 고정된다. 이 상태는 처음 결합했던 시스틴의 위치가 바뀌어 원하는 모양이 만들어진 후 원래대로 이어 고정한 것이므로, 파마약을 다시 바르지 않는 한 처음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잃었던 탄력이 되살아난다.
이처럼 웨이브 머리를 하거나 다시 곧게 펴는 등, 원하는 대로 머리 모양을 만드는 파마는 산화와 환원 반응을 실험하는 일종의 화학실험이다.
헤어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染色(염색)」이다. 염색은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는 것으로, 자연의 모발 색상에 과학을 응용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욕구의 예술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던 머리 염색이, 이제는 화장이나 의상에 따라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됐다.
요즘처럼 우리나라 사람의 머리카락 색이 다양한 적이 없다. 한 대학에서 실시한 통계에 따르면, 학생의 80~90%가 염색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하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자르고, 기르고, 볶는 데 그쳤던 헤어스타일이 갈색과 금색은 기본이고 빨강·초록·파랑 등 「컬러 헤어 시대」로 돌입했다.
인종마다 다른 머리카락 색
우리의 머리카락은 겉으로 보기엔 매끈매끈해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표면에 마치 뱀이나 생선 비늘 같은 껍질의 큐티클 층으로 덮여 있다. 이 비늘형 큐티클 층 밑에 머리카락의 피층이 있고, 여기에 단백질 입자로 된 색소가 저장되어 있다.
머리카락 색은 인종마다 다르다. 흑인은 대부분 검은색이고, 백인은 금발이나 은색, 우리나라 같은 황인종은 보통 갈색이나 검은색을 띠고 있다. 머리카락 색은 그 안의 멜라닌 색소에 의해 결정된다. 멜라닌은 머리카락을 둘러싸고 있는 큐티클 층 바로 안쪽의 피질세포에 들어 있다.
머리카락의 멜라닌 색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멜라닌」으로 주로 갈색에서 검은색에 이르는 색을 나타낸다. 다른 하나는 「페오멜라닌」으로 붉은색이나 노란색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색소가 모두 존재하지 않으면 흰색이나 은색이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머리카락 색은 이 두 가지 색소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결정된다. 사람마다 두 색소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머리카락 색이 다르게 보인다.
염색은 멜라닌 색소를 탈색한 후 원하는 색을 입히는 것이 기본 원리다. 염색약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컬러 무스나 컬러 스프레이 형태의 「일시 염색약」이다. 머리카락의 표면만 코팅하는 것으로, 분자의 크기가 커서 머리카락 내부로 침투하는 일이 힘들다. 염색 후 한 번만 머리를 감으면 색깔이 다 없어진다. 청색 1호 염료가 대표적인 일시 염색약이다.
둘째는, 염색제가 머리카락 피질에 흡수될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표피에 얇은 막을 입힘으로써 4~6주 정도 염색이 지속되는 「반영구적 염색약」이다. 이를 「코팅」이라고 부른다.
셋째는, 「영구적 염색약」이다. 염색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두 가지 약을 섞어 주로 탈색이나 물들이기에 사용한다. 그중 하나는 원하는 색을 내는 염료를 함유한 암모니아이고, 또 하나는 탈색제인 과산화수소(H2O2·산화제)이다.
암모니아는 머리카락의 큐티클 층을 느슨하게 부풀려 비늘과 같은 여러 겹의 껍질을 들뜨게 한다. 염료가 침투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껍질이 최대한 많이 들떠야 과산화수소와 염료가 머리카락 속에 좀더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암모니아는 분자의 크기가 작아 단백질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다.
순간 큐티클 층 안으로 침투한 과산화수소와 염료는 그 안에서 서로 화학 반응을 한다. 과산화수소는 멜라닌 색소를 파괴해 머리카락을 하얗게 탈색한다. 멜라닌이 파괴된 자리에 염료가 메우고 들어앉는다. 이 화학 반응이 끝나면 머리카락 색이 바뀌어 새로운 색깔을 띤다.
케라틴 단백질 속에서 새로 생긴 염료는 분자의 크기가 커져 머리카락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렵다. 그래서 머리를 여러 번 감아도 염료가 잘 씻겨 나오지 않는 다. 모발을 잘라 내지 않는 한 염색된 색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영구적 모발염색이라고 한다.
염료를 합성하는 과정, 염색
결론적으로 염색은 머리카락이라는 반응용기 속에서 화학 반응을 통해 머리카락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 염료를 합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미용실에서 머리염색을 할 때, 염색약을 바르고 30분∼1시간 정도 지난 후 머리를 감겨 준다. 그것은 머리카락 내부에서 멜라닌이 탈색되고, 염료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기까지 30분∼1시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염색 전후 1주일간은 파마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염색은 산화제를 사용하지만, 파마는 환원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염색 후 파마를 하면 안정되지 못한 색소가 빠져나가 염색된 부분이 빨리 퇴색된다.
반대로 파마를 먼저하고 바로 염색을 하면 염증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파마약으로 인해 두피가 예민해진 상태에서 강한 성질의 염색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알고 보면 미용실은 머리카락을 대상으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실험소인 셈이다.
멋보다 건강한 머리카락이 우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끈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은 미남미녀의 「기본 조건」이다.
건강한 머리카락은 건강한 두피에서 나온다. 두피를 올바로 관리할 때 모발의 건강과 아름다움의 생명력이 지속된다. 잦은 파마와 드라이, 염색 등은 갈라질 대로 갈라져 푸석푸석한 머릿결을 지향하는 지름길이다.
모근보다 모발 끝 색상이 밝다면 머리카락이 손상된 상태다. 모발 끝 부분의 수분보호막인 큐티클 층이 손상되었음을 의미한다. 머리카락의 10cm 정도 부분에서 지름 3cm가량의 원을 만들어 손을 놓는 순간 탄력적으로 원상회복된다면 건강한 상태다. 모발을 만졌을 때 푸석거리지 않고 매끈한 감촉이 느껴진다면 그 또한 건강하고 좋은 상태이나, 머리 빗을 때 정전기가 일어난다면 손상됐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손쉬운 두피 건강법은 올바른 샴푸 방법에 있다. 머리카락에 기름기가 많이 끼고 비듬이 많은 것은 두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샴푸는 머리카락이 아닌 두피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샴푸를 두피에 바르고 손으로 골고루 문지른 뒤 3∼5분 정도 기다렸다가 깨끗한 물로 헹궈 내면 깨끗한 두피를 유지할 수 있다. 샴푸 전 50∼100번 정도 머리를 빗질해 주면 혈액의 흐름이 촉진되고 피지 분비가 원활해져 머리카락에 윤기가 생긴다.
염색 후에는 약알칼리성 샴푸를 써야 한다. 약알칼리성인 색소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때 산성 샴푸를 쓰면 색소가 산에 의해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림 : 유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