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가는 철도의 교각과 교대에 쓰인 현무암. 흘러내린 용암이 쌓여 생긴 용암대지에 위치한 철원에서는 이렇게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마치 제주도 같이.
토성리 토성
철원군청 소재지인 갈말읍에서 북쪽으로 가면 한탄강의 지류인 화강에 이르기 전, 도로변에 마치 제방을 쌓듯 쌓아 올린 토성을 볼 수 있다. 넓은 들판에 폭도 넓고 높이도 높게 쌓아올린 보기 드문 토성인데, 원래는 4각형으로 길이 1km쯤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100m가량만 남았다.
병자호란 때 청의 장수 용골대와 마부대가 이 들판에 하룻밤 새에 토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압록강을 건넌지 8일 만에 서울까지 바람같이 내달았던 청군이 한가하게 이곳에 성을 쌓을 이유도 시간도 없었을 것 같다. 남하하던 청군이 예전부터 있던 토성에서 하룻밤을 숙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토성이 길게 이어져 있다.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600리를 이은 기나긴 성벽이 민족을 나누고 있다. 성벽처럼 이어진 남방한계선 우측이 DMZ이다. 시야 확보를 위해 안쪽 일정한 거리의 수목을 제거한 것 같다.
두루미와 재두루미, 민통선 내 들판에는 여기저기에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을 버스 창밖으로 볼 수 있었다. 낮에는 2~4마리의 가족 단위로 들판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어릴 때는 목이 갈색이어서 어린 새를 금방 구분된다. 재두루미는 두루미보다 키가 좀 작다, (1년 전 대마리에서)
부부와 아이 재두루미, 두루미들은 이렇게 가족 단위 생활을 한다. 워낙에 예민한 데다 조심성이 커서 사람이 접근하면 꽁지를 내밀고 슬금슬금 반대 방향으로 옮겨 간다. 그러다 좀 더 접근하면 바로 푸드덕 하며 날아오른다.
너른 들판에서 먹이 구하기가 쉽고 민통선 안이라 사람의 접근이 많지 않은 철원은 두루미에게 최적의 월동지이다.
낮에는 가족 단위로 흩어져 활동하지만, 저녁이 되면 하천이나 얼은 호수 위에 모여 밤을 보낸다 (1년 전 이길리에서).
두루미, 재두루미뿐만 아니라 고니, 쇠기러기, 청둥오리 등이 어울려 함께 밤을 보낸다 (1년 전 이길리에서).
이런 멋진 모습을 찍을 수 있다면......
DMZ철새평화타운에 걸린 사진을 다시 찍어봤다. ㅋㅋ (위, 아래 사진)
키가 140㎝ 정도의 대형 새인 두루미는 몸통을 비롯한 전체적으로 흰색이지만, 이마에서 눈앞, 턱 밑, 목에 이르는 부분은 검은색이며, 머리 꼭대기에는 붉은 피부가 닭 볏처럼 노출되어 있다.
눈 뒤부터 시작하여 뒷머리, 그리고 몸통은 흰색이다. 날개의 끝이 검은색이어서 날개를 접으면 꼬리를 덮어서 꼬리 부분이 검은색인 것 같이 보인다.
옛 철원 농산물검사소
번성했던 철원읍의 흔적들
경원선(서울-원산) 철도의 주요 역이자 금강산철도의 시발역이기도 했던 철원은 곡창지대인 처뤈평양의 중심으로 번성했다.
그러나, 6.25는 '철의 삼각지(철원, 김화, 평강)' 들었던 철원읍을 폐허로 만들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철원읍 대부분이 DMZ와 민통선에 갇혀 버렸다,
군청은 신철원이라 불리는 갈말읍으로 갔고, 현재 철원의 중심은 갈말읍과 동송읍이 나눠서 같고 있다,
민통선 안 옛 철원읍 내 자리에는 철원역을 비롯한 번성했던 옛 철원의 흔적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물론 옛 영화는 간데없고 폐허의 을씨년스러움과 처연함만이......
콘크리트로 만든 실내 금고만 남은 금융조합(은행)
경원선 철도의 간이역이던 월정리역은 DMZ 남방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다.
전쟁 당시 불탔던 역사 건물을 원래의 위치에서 가까운 현 위치에 축소하여 복원했다.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철의삼각지에 위치한 월정리역.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녹슨 기차는 한국의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성 터에 있던 석등은 잘 있을까?
월정리역 바로 옆의 남방한계선 안쪽 DMZ에는 궁예가 세웠던 태봉의 도성이 있다. 하필 도성의 한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지나며 도성 전체가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있다.
궁예의 태봉 도성 터의 석등 2기는 지금도 잘 있을까?
사진 <조선고적도보>.
궁예 도성의 한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관통한다.
노동당사
해방 이후 소련군 군정 하의 철원은 짧은 기간이나마 38선 이북의 강원도 도청(인민위원회)소재지였다. 철원이 경원선 철도를 통해 북강원도 각지로 연결되는 길목이어서였을 것이다(북한은 1946년 12월 함경남도 일부를 강원도에 편입하고 도청을 원산으로 옮겼다).
1946년 3층 건물로 지어진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되었다. 6.25전쟁 때 큰 피해를 보아 건물 전체에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고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영화, TV 등에 많이 등장한다.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음악회 장소로도 활용됐다.
번듯한 앞면과 달리 내부는 심각하게 파손되어 붕괴를 막기 위한 보강재가 설치되어 있다.
도피안사(到彼岸寺)
피안(彼岸)이른다는 이름의 절이다. 과거 민통선 내 군부대 한 쪽에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도피안사는 민통선의 축소로 지금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법당과 요사채 단출하던 절은 이제는 여러 전각을 갖춰서 웬만한 절집 못잖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 출입이 번잡하진 않아서 조용한 분위기의 절이다.
도피안사 삼층석탑
불상 대좌 같은 팔각의 이중기단 위에 삼층석탑을 올린 특이한 탑으로, 다른 곳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형태이다.
보는 사람마다 "특이하다"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오는 독특한 탑이다.
군웅할거로 어지럽던 9세기 후반, 개성적인 지방색의 표현으로 봐야 하려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국보 제63호
당시에 유행하던 철로 만들어진 불상으로 등에 명문이 있어 경문왕 5년(865년)이라는 확실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다.
7년 앞서 만들어진 장흥 보림사 철불과 함께 신라말을 대표하는 새로운 양식의 불상이다.
체구는 크지 않으나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는 근엄이나 인자함보다는 이웃집 큰형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얼굴에 조명이 비치지 않던 몇 년 전 사진에는 얼굴의 잔잔한 미소가 더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불단에 가려져 볼 수 없는 팔각연화대좌. 대좌도 철로 만들었는데 아랫단에 솟은 귀꽃이 인상적이다.
대좌에 앉은 불상의 뒤쪽이 비어있는 것 같아 등 뒤로 광배가 있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몇 년 전 새로 지은 대적광전의 널찍하고 화려한 공간은 정작 주인공인 부처님을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게 한다.
이런 것이야말로 본말전도 아닌가?
과거 민통선 안쪽 군부대 안에 있었던 도피안사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닭한마리집들이 모여 있는 동대문시장 닭한마리집 골목을 20여 년 만에 가봤다.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시원한 김칫국물도 그대로였다.
첫댓글 어제 저녁 TV에서 철원 일대 소개하더만요
행여 내가 아는분 나올까 눈 디집고 열심히 봤는데 안나오더만요
답사 후기 덕분에 익숙한 철원 쉽게 이해하며 봤습니다
추울까봐 겹겹 챙겨입고 갔는데 날이 따뜻해 힘들지 않고 잘 다녀왔네요.
저녁식사 닭한마리~~좋았습니다. 광장시장 빈대떡은 아쉬움으로 남았네요ㅎ
함께못한 아쉬움이 찌~~인합니다.
이번 답사...진짜 아쉽네요. 철원..따로 가기 쉽지 않은 곳인데....ㅠㅠ
닭한마리 식당은 .. 넘 궁금해 검색하다 뿅~~ 저두 서울가면 여기 꼭 가볼 거예요. ㅎㅎㅎㅎ
두루미 위 아래 사진은
순간 포착!
그 아름다운 장면을 찍기 위한 기다림.
한 번 출사하는 사람 따라 갔다가 얼어 죽을 뻔 해서
긴 기다림 끝에 건진 한 컷의 노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철조비로자나좌불의 팔각연화대좌는 사진으로 처음 봤습니다.
재작년 도피안사 갔을 때는 외관 공사 중으로 어수선했는데
깨끗하게 정리 되었고
내부는 불빛이 화려해졌습니다.
추임새님 고맙습니다~~^^
대좌는 몇 년 전 대적광전 신축공사로 임시 법당에 모셔져 있을 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찍은~~ ^^
찬찬히 읽어보니 조으네요
반복학습의 효과와 그 날의 감흥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