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李瀷)은 18세기 전반 서학에 대한 인식을 본격적으로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부친 이하진(李夏鎭)이 연경(燕京)에서 수천 권의 서적을 구입해 왔는데, 그 가운데는 명말청초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문으로 번역된 서학(西學) 서적이 상당수 있었다. 그가 당시에 읽었던 한문으로 번역된 서학서적으로는 천문 · 역법 · 수학 · 지리 · 기술 · 문물 · 종교 등과 관련하여 20여 종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이 때에 읽었던 서학서적 가운데 『직방외기(職方外記)』 · 『천주실의(天主實義)』 · 『천문략(天問略)』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소개하고 논평하는 발문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는 서학 전반에 관해 폭넓은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서학에 대한 인식 태도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곧 서양과학기술의 적극적 수용태도, 서학의 윤리사상에 대한 긍정적 이해태도, 그리고 서학의 교리서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단호한 비판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가 서학에 담겨져 있는 복합적 내용을 합리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요, 동시에 유학자로서 그가 서학에 대해 얼마나 열린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것이다. (1) 이익은 서양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곧 그는 당시 통용되고 있는 시헌력이 아담 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하면서 역법의 극치라고 극찬하였으며, “성인이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이 역법을 따를 것이다.”라 하였으니, 서양과학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뢰를 엿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초기에 한문으로 많은 서양과학서적을 번역 · 간행하였던 마테오 리치를 ‘성인’이라 일컬었던 일도 있었다 한다. (2) 서학의 윤리사상에 대해서는 유교윤리에 대한 보완적 역할로 인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윤리에 관한 천주교 교리서로서 판토쟈(Pantoja)의 『칠극(七克)』은 인간의 일곱 가지 욕망을 극복하는 천주교의 수양론이라 할 수 있다. 이익은 이 칠극을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위해 유용한 것으로 인정하여, “일곱 갈래 가운데 다시 절목이 많으며, 조목이 일관하고 질서가 있는데다 비유가 자신에게 절실하다. 간혹 우리 유교에서 계발하지 못한 것도 있어 예를 회복하는 공부에 도움됨이 크다.”라 하였으니, 상당히 적극적인 긍정자세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3) 그러나 그는 천주교 교리의 신비적 신앙조목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천주교의 ‘천주’ 개념을 초월자의 측면과 신앙 대상의 측면을 구별하여, “천주는 곧 유교의 상제(上帝)이다. 그런데 천주를 공경하여 섬기고 두려워하여 믿는 태도는 바로 불교의 석가와 같다.”라 하여 ‘천주’와 ‘상제’를 존재에서는 일치시키지만 그 신앙의례에서는 단호하게 차별화하여 불교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유교의 ‘상제’와 천주교의 ‘천주’를 동일한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사람의 모습으로 아들을 세상에 내보낸다거나, 동정녀에서 태어나게 한다거나, 천주의 아들이 죽음을 당한다거나, 한 번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다는 등 천주교의 신앙조목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곧 그는 천주교 교리의 핵심은 경험할 수 없는 환상적인 자취를 얘기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미혹한 사람들은 더욱더 미혹한 데로 빠져 들게 하는 것이라 비판함으로써, 유학은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요 서학은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이처럼 그는 서학에 관해 과학기술은 물론이요 종교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극적 관심을 보임으로써 서학의 이해를 새로운 단계로 전환시켰으며, 서학의 이론적 기반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본격적 수용의 단계로 수준을 높였다. 따라서 그는 서학에 대한 적극적 수용과 비판적 논쟁의 선구로서 그의 학맥인 성호학파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서양과학의 수용을 비롯한 서학의 인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과 사유방법을 실학사상 속에 끌어들이기 시작한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출처] 한국유학의 탐구 13-2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서학(西學) 이해|작성자 풀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