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실천되는 말씀(야고보서 2:26)
주일 생명 말씀(2022.11.6)
말씀/ 야고보서 2:26
삶으로 실천되는 말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한번은 원효대사가 ....혜공과 함께 걸식을 하면서 진리를 찾아 전국을 헤메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혜공에게서 배움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원효는 경전해석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경전해석은 당시 가장 유행했던 불교 연구방법이었고, 경전해석을 잘하는 사람이 귀족사회에서 높은 지위도 얻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그것만으로 속세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혜공은 자신과는 달리 거지들과 함께 다니면서 자유롭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효는 그런 혜공을 보면서 그의 생활을 통해서 무엇인가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 걸식을하며 돌아다니던 그들은 몇끼를 굶은 채 저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은 없고 마침 지나던 냇가가 있어 큰 돌을 던져 고기를 잡아먹자고 했습니다. 헤공과 달리 유복하게 자란 원효는 고기 잡는데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둘이 돌을 던졌지만 혜공만 고기를 잡게 되었고, 원효는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혜공이 잡은 고기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배불리 잘 먹고 나니 뒤가 마려웠습니다. 둘이 똥을 누었는데... 똥을 다 눈 혜공이 원효가 눈 똥을 보고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 잡아먹고 똥만 싸는 놈아"
갑자기 뜬금 없이 심한 욕을 먹은 원효는 화가 나고 무척 자존심이 상했지만 꿈 참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큰 깨우침을 얻었게 되었습니다. 실천이 없는 지식이란 것이...바로 살아있는 고기 먹고 똥만 싸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고기를 안 먹었으면 똥도 싸지 않았을 것인데...아는 것이 힘도 되지만 실천 없는 경전해석은 이렇게 더러운 똥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식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성경 많이 읽고 아는 것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실천이 없으면 죽은 것이며 더러운 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젊어서는 지식을 많이 자랑하고 싶었었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고, 책도 많이 읽고 싶었습니다. 용돈이 생기면 우선 책을 샀습니다. 제주 개척 초기에는 책을 무리하게 읽다가 머리를 다쳐 두통으로 오래 고생한 적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실천 없이 계속 지식만 쌓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때보다 책을 더 체계적으로 읽지마 욕심으로 읽지 않고 머리도 아프지 않습니다, 요즘은 매일 큐티 올리고 성경 12페이지 읽는 것이 벅차서 내년 부터는 좀 더 줄이려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말씀이라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천 없는 신학 교리, 실천 없는 말씀 역시 똥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이 들었습니다. 실천 없는 좋은 글 지식은 너무 식상 합니다. 그리고 이쁜 그림과 사진으로 포장한 말씀도 식상합니다. 말씀이라도 자신이 깨닫고 실천하고 또 실천하고자 기도하는 우리 동역자들의 작은 답글들이 더 은혜스럽습니다.
실은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혜공과 비슷한 이야기를 비유로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고소를 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시면서 흔하지 않지만 똥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자들이야 안 씻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지만 그들은 종교지도자들로서 사람의 정통을 지킨답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꼬집으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르반 신앙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부모 공경의 도리를 그들은 버렸습니다. 진짜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였더라면 역시 무모를 공경했을 것인데 그들은 핑계를 대고 자신들의 실리만 채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말만 하고 실제로는 오히려 공경하라는 말씀을 폐하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주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하셨습니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나중에 베드로가 비유의 뜻을 설명해달라고하자 예수님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하시면서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몸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 뒤로 나오는 똥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며, 저 외식하는 자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정말 더럽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척 하지만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바로 똥과 같다는 것입니다. 혜공이 옆에서 봤더라면 뭐라고 하였겠습니까? 언어가 좀 그렇지만 역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경건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는 똥만 싸는 놈들아“ 예수님도 혜공처럼 말씀은 안 하셨지만 경건의 말씀을 다룬다고 하면서 실천 없이 위선을 행하는 이들은 똥만 싸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더럽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혜공스님의 비유를 읽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내가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는 목사면서 실천 없이 똥만 싸는 목사가 아닌가!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저만이 아니라 이 사람 저사람 자신도 정신이 번득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효가 연구하던 경전이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읽고 연구하는 성경 말씀은 살아 있는 고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고기를 먹었으면 좀 더 살아있는 영적인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계속 죽은 행실의 더러운 똥만 싼다면 얼마나 어폐가 있는 삶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면 그런 심한 욕은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고기를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먹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인가 신선하고 살아 있는 삶의 열매를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 속에 나오는 것은 게으름 악함, 탐심, 음란, 미움 시기 거짓 질투같은 것이 될 때 실망스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실망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목사라는 사람이. 장로 집사라는 사람이 ,,,세상은 결코 용납을 하지않습니다. 살아 있는 진리를 듣고 배우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 다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좋은 말씀 듣고 알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면 당연히 행함이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죽은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지식이 홍수같이 쏟아지는 시대라고 합니다. 성경책도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옛날 성경이 부족할 때는 길에 떨어진 전도지 말씀을 듣고서 예수를 믿었다는 이야기, 북한에서는 성경이 없어서 한 페이지를 돌려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스마트폰에도 성경 어플이 깔려있습니다. 전화를 받기만해도 성경 말씀이 뜹니다. 여기도 말씀 저기도 말씀 지식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다고 말씀대로 삽니까? 정말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의 실천적 삶 이라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무슨 일을 하게 될 때 못 믿을라 카면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장로입니다. 집사입니다 하면 인정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래서 더 못 믿어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식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필요한 것은 많은 신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소개한 ‘육일 약국’이라는 책을 소개하였는데 저자가 김성호씨입니다. 처음 4.5평에서 약국으로 시작해서 창업주가 되고 경영주 CEO간 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성경 말씀 신앙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일반 서적으로 분리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 시키고 변화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가? 실천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 중심의 경영, 작은 것 하나 배려하고 섬기고 베풀며 4,5평의 약국에서 시작하였지만 동네의 이정표가 되고, 안내자가 되고, 아이들이 숙제하는 곳이 되고, 운전사들이 동전바꾸는 곳이되고, 삶을 이야기하며 상담하는 곳이 되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 또 일정의 수입은 장학금으로 기부를 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 곳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기독교적인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목사였는데 그 분의 생활신조가 ‘정직’ 이었다고 합니다. 중학교시절 학비를 제 때에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언제나 5남 1녀를 위해서 하루 네 번씩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나누워지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한 손으로는 구호 물품을,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세계로 나가 베푸는 나라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자식들이 베풀고 나누는 자들이 되도록 교육을 하였습니다. “얻어먹는 근성을 경계하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얻어먹으려하지 말고, 네가 스스로 자립해서 오히려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거라” 이게 우주적 마인드 아닙니까? 그 기도대로 처음부터 베풀고 섬기는 삶을 사는 실천적 경영인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받고 변화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언제 기회되면 이 책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다 보면 먼저 받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손을 내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물질 문제를 극복하려면 받는 손이 아니라 주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받는 손이 부자입니까, 주는 손이 부자입니까? 당연 주는 손입니다. 현실이 가난할 지라도 우리는 부자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주님 말씀 그대로 주는 자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우리 교회 숫자와 형편을 보면 어떻게 사는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립이 어려울텐데 늘 베풀고 섬기는 것을 보면 신기 해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제까지 푸른초장교회를 받는 교회가 아니라 주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박중용 목사님 무안은 선교사님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임 때마다 얼마나 풍성하게 채워주십니까? 요즘은 아침 큐티 풍성한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을 세우고 세계를 섬기게 하십니다.
지난 주 월요일도 하나님이 후배 박목사님이 사역하는 울산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나이 60이 되었는데 파킨스 병으로 고생을 하며 약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서울 노회 모임에 오지를 못했는데 알고 보니 주일 예배 후에 쓰러진 모양입니다. 들어보니 특별히 치료약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딱 한가지 오흥상 목사님 클로로필 복용에 기도하고 희망을 거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목사님에게 전화 해서 클로로필 권유를 하고 의향을 물은 후에 오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클로로필 한 달에 30만원 1개월치 주문하고 6개월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진주에 들려 성담환 목사 부부와 함께 6시쯤 울산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시간에 두부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우리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전복밥, 홍어 전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기다리셨습니다. 성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분이 가족들 연고도 없고 주님 은혜로 살고 있다고하였습니다. 가까이 누가 특별히 살피는 사람도 없고, 성목사님이 한번식 돌아본다고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드보라 사모님이 먼길 와주셔서 고맙다고 특송까지 해주셨습니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멀다고 가까이 돌아보지 못한 것이 그나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성 목사님 때문입니다. 이 분은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서 이야기 하면서 왜 책을 읽는 줄 아는냐고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성경도 책들도 결국 알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고 머리에 지식은 아직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오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후배를 도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번은 겨을인데 별로 관계성이 없는 목사님이 기름값이 없어서 이불을 둘러쓰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해서 기름값 한번 보낼니 계좌를 불러 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기름값의 10배를 보냈답니다. 그랬더니 놀라서 전화과 왔답니다. 0이 하나 잘못 된 것 아닌가? 너무 많이 왔다고 기대치를 위밚서 감동을 준 것입니다. 제가 성목사님을 그래도 존경하고 가까이 하는 이이유는 실천을 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고 가면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먼 길에 피곤하고 졸립고 그랬지만 감사가 되었습니다. 돌아와서 박창준 목사님 사모님과 이야기 해서 6개월 큐티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3인 큐티 단톡을 만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 박ㅇㄴ영 집사님 카톡으로 박창준 목사님 이야기 듣고 고구마와 쌀좀 보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랬더니 지난 주 쌀 두 포대와 고구마를 보내주셨다고 어떻게 감사를 표할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고구마와 감해서 한 상자를 보냈습니다. 마음 씀슴이가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많은 성경 말씀을 배우고 읽으면서 잊지 말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계명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실천 사항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 그 다음에 ‘너도 이같이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7: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던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결국 신앙이란 사랑과 섬김의 실천입니다. 실천이 되어질 때 비로소 아는 것이며 바르게 믿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도 이렇게 말씀 하였습니다. "경전이나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하고 메마르다 그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참된 앎이란 타인에게 빌려온 지식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몸소 부딪쳐 체험한 것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태초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지만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처럼 낮아지셔서 사랑을 실천하시고 섬기심의 본을 보이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