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9월11일, 호산나교회, 빌1:1~2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경에 은혜라는 말씀이, 291, 평강 117, 평안 208, 바울서신에만 은혜란 단어가 101회 평강이 31회 사용되었을 정도로 많이 사용한 단어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입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은 시작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시고요, 끝마무리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합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은혜와 평강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는데요. 특히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가옥에 수감 되어 쓴 옥중서신입니다. 감옥에 가지 않아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 판에 감옥 안에서도 은혜와 평안과 평강이 넘치는 믿음이 바울에게는 있었기에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은혜와 평강은 늘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늘 넘쳐나시길 축원을 드립니다.
1, 평강이란? (결합하다, 하나가 되다) 누구랑?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 하나,
평강은 평안하면서 강하라는 말씀입니다. 평안하십니까? 라는 물음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뜻은 조금 전까지 염려되고 근심과 걱정이 있었다면 평강을 통하여 평안해지고, 주님과 결합 되어 하나가 되어, 주님이 함께하시는 은총과 은혜를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오늘날 평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문제와 가정과 직장에 여러 가지 문제로 염려 근심하게 될 때 예수님과 결합 되어지지 않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 할 때에 은혜도 있는 둥 마는 둥, 평강이 없게 됩니다.
마6장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6장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평강도 없고 염려와 근심이 자신이나 가정에 가득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도 채움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 가정 문제, 직장 문제, 오늘날 많은 문제 문제들이 나 자신을 괴롭게 합니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 귀신들은 문제를 문제로 문제를 사건으로 만들고, 문제가 크게 보이다 보니,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마귀 귀신들이 우리 인생에 개입해서 덫을 놓은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 덫에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사건은 보이는데 문제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귀 귀신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는 것입니다. 문제 속에 빠지면 우리는 상심하게 되고 염려와 근심, 걱정에서 빠져 나오기가 심히 힘이 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마귀는 귀신들은 우리를 분열시키는 선수입니다. 흩어지게 만드는 대장입니다. 마귀의 계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 자기 자신을 이기십시오. 가정에서 교회에서 흩어지거나 분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시기 전에는 우리에게 평안하라! 하셨고요, 요14장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6장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은 사건을 해결하시고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기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우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평안하라, 하시다가 부활 후에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평안에서 평강으로 말씀이 바뀌어집니다. 왜? 바뀌었을까요? 예수님의 완전한 생명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보다 강한 생명력입니다. 부활 전에는 예수님에게 생명을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하신 것이라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완전한 생명을 가지신 승리의 완전한 주역이시라는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 이제 함께 가자 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생명을 가지신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기었으니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평강은 평안을 넘어서 보다 강하여라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평안해야 하겠지만 더욱 강하고 승리를 위한 상태에서 평강해야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평강 합시다. 평안하고 강해야합니다. 평안과 평강을 더욱더 아름답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 없는 평강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습니다. 빵이 있으면 무엇 합니까? 빵과 조화를 이루려면 당연히 빵 속에 앙꼬가 있어야 빵을 조화롭게 하고 맛의 흥미를 더해 줄 것입니다. 빵이 평강이라면 앙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은혜(카리스)란?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들에게 주시는 신의 선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상태, 좋은 일이 많아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만족을 뜻하기도 합니다. 은혜로 만족하게 되어 지면,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면 감사가 생깁니다. 신나게 해주니까. 감미롭죠, 만족스러우면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생기도록 감미롭게 해주는 상태가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완성되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은혜는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과 긍휼이십니다. 은혜의 내용을 직접적이고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 고후 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요를 통해 우리를 만족케 해주시니 안 기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포기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십자가 구속을 위하여 저주받을 자리에 나아가신 우리 예수님 그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것 다 가져다가 우리를 만족케하시는 우리 예수님, 예수님의 부요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다주신 예수님 그 사랑이 우리를 부요하게 은혜로 만족시키심입니다.
또, 빌립보서에는, 기뻐하라 라는 말씀이 많이 쓰어져 있는데요, 헬)카이로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같은 어근에서 나온 은혜, 즉 헬)카리스에서 기쁨의 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 답의 배후에는 사도바울이 은혜의 체험이 있었기에 기쁨의 믿음 생활이 지속되었던 것은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의 실제이며 현실입니다. 은혜는 신앙생활의 실제적 체험이며, 현실 속에서 느끼는 은혜의 실제와 체험인줄 믿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것으로 기뻐하는 믿음의 현실로 하나님의 것으로 만족합니다. 입니다. 믿음의 만족 없이는 항상 허탈한 것 아닌가요. 채워지지 않으면 만족감이 없지요.
은혜는 신앙의 만족이며, 믿음의 만족이고요, 현재와 현실의 만족이 되어져야 합니다. 은혜 즉 만족이 채워지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은혜가 채워지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늘 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본능적으로 은혜로 기쁨이 충만해야하며, 충만해지지 않으면 갈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채우려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여기를 기웃 저기를 기웃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것이, 채워지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세상의 것, 육신의 것, 마귀의 것, 즉 욕망이 채워지면 마귀는 얼씨구나, 좋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성령님은 탄식합니다. 한번 잘못된 영은 끊임없이 방황하며 마귀, 귀신들에게 움켜잡히기만 하면 빠져나오기란 심히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육체 안에 있는 마귀 적인 것, 욕심 안에 있는 마귀 적인 것, 영 속에 있는 마귀 적인 속성을 늘 항상 빼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것 은혜가 채워지면, 우리 영은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고 만족하면 마귀는 귀신은 떠나갑니다. 마귀가 떠나가면 성령님께서 내게 임하여 은혜와 평강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이 임하시는 줄 믿습니다.
구약에는 은혜를 의미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은 (히)헨=호의, 우아함, 매력 은총, 은혜로운)이고요, 은총이란 (히)헤쎄드입니다. 즉 “헨과 헤쎄드”는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 하심과 하나님의 본성인 인자하심이, 덧입혀져 있는 상태로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와 사랑을 받았더라,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도 있고, 열심도 있고, 은혜도 있고 하지만, 평강이 없으면 내 영이 평온하지 않으면, 기쁘지 않으면, 막상 하나님의 것도 분별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혹 이것이 진짜일까? 저것이 진짜일까? 아니면 다 가짜일까? 너무 조심스러워져서, 진짜 하나님의 것도 패스 즉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도, 힘을 잃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주저주저 망설여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악한 것 선한 것 잘 골라내고 분별해야 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길 축원을 드립니다.
“헨과 헤쎄드”로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와 사랑을 받아 우리 예수님의 은혜가 넘치고 평강이 있는 복된 성도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은혜와 평강은 좌절에서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은혜의 만족감으로 평강이 있어야 우리는 믿음으로 늘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평강 없는 은혜도 안 됩니다, 은혜 없는 평강도 안 됩니다. 은혜와 평강이 함께 결합하여 복에 복이 감사가 감사로 넘치시는 복된 성도 여러분, 다 되시길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