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일하는 '2080 더 커피숍'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바리스타'가 실버 세대에서도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는 요즘, 커피 머신을 능숙하게 다루고 손님 접대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어르신 바리스타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2080 더 커피숍'을 찾아 어르신 바리스타들의 활약상을 지켜봤다.
- 2080 더 커피숍에서 일하는 어르신 바리스타들. 왼쪽부터 이병영, 이옥자, 강영자씨.
■20대부터 80대까지 찾는 커피숍
"카페라테 한 잔,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손님이 주문을 하자 앞치마를 두른 어르신 바리스타는 커피 머신 앞에서 숙련된 솜씨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일 오후 3시,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한 커피숍. 6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 바리스타들이 일하는 곳은 바로 서초구립 방배노인종합복지관(이하 방배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2080 THE COF FEE#'(2080 더 커피숍, 이하 더커피숍)이다. 더커피숍은 어르신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행복한 노후를 지원하는 매장으로, 2010년 11월 고령자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서울시 지원을 받아 방배노인복지관 1층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의 '샵(#)'은 어르신들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면 즐거움과 보람 등이 반음 정도 더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 더커피숍에는 바리스타 전문 교육을 받은 60세 이상의 어르신 12명이 4명씩 3개조를 짜서 1개조가 주 2회 8시간씩 근무한다. 이옥자(69·방배동)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많지만 몸이 건강하니 일할 수 있고, 일할 수 있으니 용돈도 벌고,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커피숍의 어르신 바리스타들은 모두 처음에는 커피 만드는 것이 어렵고 커피 머신 사용도 능숙하지 못했다. 캐러멜 마끼아또와 카페모카에 들어가는 재료를 혼동해 당황한 일도 많았지만, 복지관에서 제공한 바리스타 전문 교육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꾸준히 일하다 보니 숙달돼 지금은 큰 어려움이 없다.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바리스타가 된 어르신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내 가게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강영자(65·반포동)씨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라도 예쁜 게 있으면 내 돈으로라도 구입해 가져온다"며 "커피숍이 화사해지면 손님들뿐 아니라 일하는 우리도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2011년 커피숍을 확장해 빵까지 만들어 팔게 되자 강씨는 발품을 팔며 이름난 제과점에 들러 빵을 사서 먹어보고 레시피를 물어보기도 했다고.
이곳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의 평균 연령은 67세로 중학교 교장, 광고기획자 등 왕년에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많다. 전직 외교관 출신의 이병영(63·방배동)씨는 "노인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시니어를 채용하는 우리 커피숍처럼 앞으로는 대형 커피숍에서도 시니어들에게 일할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 시니어들은 그런 기회가 오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실력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험과 연륜이 더해지니 커피 맛 더 좋아요
더커피숍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가격이다. 커피값이 1500~3000원으로 시중 카페에 비해 저렴해 학부모 등 주민들이 즐겨 찾는 지역의 명소로 부상 중인 것. 이곳을 즐겨 찾는다는 곽인숙(68·방배동)씨는 "커피값이 싸고 맛도 좋은데다 또래인 바리스타 분들이 친절해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이젠 제법 바람이 서늘해져 유자차(1500원)와 생강차(1500원) 등을 찾는 손님이 많을 때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질이 낮은 재료를 쓰는 법은 없다. 식재료는 방배노인복지관 카페 담당자가 직접 가락시장에 가서 꼼꼼하게 골라 구매한다. 그 가운데 쌍화탕(3000원)은 경동시장에서 직접 구입한 한약재 등을 약탕기에 6시간 달여 판매하기에 인기가 많은 메뉴.
더커피숍의 운영시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다. 커피숍 바로 앞의 도로에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서초 토요문화벼룩시장이 열린다. 벼룩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더커피숍에 들르는 일이 많기에 방배노인복지관이 휴관하는 토요일에도 더커피숍만큼은 문을 연다고. 최현호(33) 방배노인복지관 복지1팀 팀장은 "내년에는 방배동 인근에 2호점 카페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사회적 기업으로도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르신 바리스타들은 "우리가 젊은이들의 민첩함을 따라가기에는 무리지만 그 옛날 물 한 모금도 천천히 마시라며 버들잎을 띄웠듯,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장소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