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도 국립공원인가요?
경주는 한국에서 제일가는 역사 탐방지일 것이다. 서울이 500년 동안 조선의 수도로서 역할을 하는 동안 수많은 문화 유적을 남겼지만, 급속도로 개발이 진행된 탓에 역사 도시라는 걸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라의 경쟁자였던 백제의 문화유산은 옛 도읍인 공주와 부여에 남아있지만, 신라보다 몇백 년 일찍 망한 백제의 유적은 신라의 유적에 비해 숫자와 질적 면에서 빈약한 편이다. 다행히 백제의 유적 또한 2015년에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에 지정되었다. 하지만 경주의 유적은 백제의 그것보다 훨씬 더 앞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경주 시내에 위치한 신라의 수많은 사적은 2000년에 이미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게다가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에 '경주역사유적지구'와는 별개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경주는 시내에서 몇 발자국만 걸으면 오래된 왕릉 사이를 거닐 수 있으며, 곳곳에 불교 유적이 남아 있어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문화 예술성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있는 대릉원, 반월성,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는 경주를 방문하면 반드시 찾아야 할 역사유적이다. 시내에서 조금만 걸어도 신라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건 경주 여행에 있어 크나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주국립공원이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립공원'하면 웅장한 산 또는 맑은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경주에 수많은 산들이 있긴 하지만 산세만 놓고 보면 다른 지방에서도 흔히 볼 수 산과 큰 차이가 없다. 동쪽 끝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동해 바다는 강원도나 경북의 다른 지역에 비해 특색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국립공원이 산악 또는 해양에만 지정된다는 편견 때문이다. 경주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사적형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경주 국립공원만큼 특이한 국립공원은 찾을 수 없다.
국립공원 이야기 37 - 경주 국립공원
경주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적형 국립공원으로 지리산에 이어 1968년에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불교문화의 백미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에 안은 토함산과 '불교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을 비롯해 8개 지구의 면적은 총 136.55㎢에 달한다. 경주 국립공원 곳곳에 잘 보존된 신라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자연경관 또한 뛰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찾고 있다. 경주는 1979년에 유네스코에서 아시아의 10대 유적지로 지정되어 세계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주 국립공원의 중심지는 토함산 지구와 남산 지구다. 토함산은 토할 토(吐), 머금을 함(含)의 한자를 써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해내는 산이라는 뜻으로, 경주 역사지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산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외에도 기림사와 골굴사 등 아름다운 사찰이 많으며,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보유하고 있어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석굴암은 빼어난 조형미와 예술성을 통해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라의 궁궐이었던 반월성 남쪽에 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남산은 북쪽의 금오산(金鰲山)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들을 통칭하여 부르고 있는 산이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나정과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왕릉이 같이 모셔져 있는 삼릉 등 남산 전체가 신라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동학의 발상지이며 천도교의 성지인 용담정이 있는 구미산과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 이차돈의 전설을 간직한 소금강산, 죽어서도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싶었던 문무대왕릉이 있는 대본 지구 등이 있다.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김유신 장군묘, 태종 무열왕릉과 같이 반드시 보존하고 지켜야 할 문화재들도 경주 국립공원의 또 다른 세 지구에서 만날 수 있다.
산세가 험한 다른 국립공원과 달리 경주 국립공원은 어린이들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탐방할 수 있다. 굳이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방문할 수 있는 오래된 사찰이 경주 국립공원에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주 국립공원을 방문하면서도 국립공원에 왔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주 국립공원 탐방은 남산부터
경주와 가까운 포항에 살고 있을 때 주말에 시간만 있으면 버스를 타고 경주에 가곤 했다. 경주 역사지구를 숱하게 방문하면서 사계절 내내 바뀌는 경주의 풍경에 흠뻑 빠지는 것이 좋았다. 건물만큼 높은 경주의 왕릉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거처를 구분하지 않는 옛 신라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신비함이 있었다. 반월성에서는 건물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 신라의 영광을 내 멋대로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고, 첨성대에서는 신라인들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시내에 있는 경주역사유적지구만 봐도 입이 벌어질 정도인데, 시내만큼 문화유산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경주에 또 있다. 경주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남산지구가 그 주인공이다. 신라의 귀족들이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 포석정지와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 신라 왕족의 무덤인 오릉과 왕릉 등 수많은 유적이 남산에 남아있다. 남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수많은 문화재를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만날 수 있다. 화강암에 새겨진 불상을 보면 불국정토를 이 땅에 구현하고자 한 신라인들의 불심을 느낄 수 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다양한데, 가장 인기 있는 탐방로는 삼릉에서 출발해 금오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삼릉숲은 소나무로 우거져 있어 많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삼릉에 묻힌 세 왕들이 가진 역사적 상징성보다 소나무 숲이 더 유명할 정도다. 해가 뜰 무렵 소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사진으로 담고 나면 경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포석정지는 통일신라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국왕들이 유흥을 즐기던 곳이었다. 물이 흐르는 수로에 술이 담긴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수로를 타고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구조인 것이다. 포석정지에 남아있는 수로를 기가 막히게 설계하여 술잔이 떠내려가는 도중에도 기울어지거나 부딪히지 않았다고 한다. 신라 귀족은 포석정에서 술잔이 떠내려가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3잔을 마시는 놀이를 즐긴 것이다.
삼릉과 포석정 사이에는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다.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불상 세 개를 모은 것인데, 이 석불들은 기본 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로 모셔진 걸로 추측하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육계가 있으며, 어린아이의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자비로운 불성을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띠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왼손엔 보병을 잡고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오른쪽의 보살 또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띠고 있어 신비함을 풍기고 있다.
서남산에 있는 위 세 개의 유적지는 모두 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출발점이 된다. 어떤 등산로를 택하더라도 오르는 길 곳곳에 숨어있는 불상이나 석탑을 만날 수 있다. 포석골에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경주배리윤을곡마애불좌상은 윤을곡의 ㄱ자형 바위에 새겨진 불상으로, 동남향으로 2구, 서남향으로 1구가 새겨져 삼존불을 이루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연꽃 대좌에 앉아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오른쪽의 불상은 본존불보다 작고 위축된 느낌이 든다. 왼쪽의 불상은 3개의 불상 중 가장 솜씨가 떨어지지만 광배 왼쪽에 '태화9년을묘'가 새겨져 있어 신라 흥덕왕 10년 (835)에 조각된 것을 밝히는 단서가 되었다.
포석곡에는 이름을 모를 폐사지에 오층 석탑과 삼층석탑이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너져 내린 석탑을 복원시켜 예스러운 맛은 덜하지만 석탑 옆에 서면 경주가 한눈에 보여 왜 이곳에 석탑을 짓고 절을 세웠는지 유추할 수 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부처의 자비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 역할을 하고 있어 자연미에 인공미를 더한 느낌을 준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려고 한 우리 조상의 슬기로움을 알 수 있게 한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은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해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또한 석가여래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은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다.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거대한 자연바위벽에 앉아있는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다. 몸은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겨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수많은 문화재를 둘러보면 남산의 두 봉우리 중 하나인 금오봉이 나온다. 높이는 468m에 불과하지만 남산에서 바라보는 경주의 경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많은 무덤 뒤로 경주시내가 있어 풍수지리학에 기초해 무덤을 만든 조선시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경주시내도 콘크리트 건물로 뒤덮여 있지만 고도 제한으로 높은 건물을 세우지 못한 덕분에 왕릉을 비롯한 다양한 유적이 한눈에 보인다. 교촌마을을 이루고 있는 한옥은 옛날 아름다웠던 한국 옛 도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서남산이 끝이 아니다!
경주 남산은 서남산과 동남산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서남산으로, 동남산에 비해 많은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남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르기 쉬우며, 대중교통이 편리한 것도 서남산이 인기 있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경주의 문화재에 홀딱 반한 이라면 동남산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서남산에 비해 수가 많지는 않지만 동남산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재의 가치는 서남산 못지않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산에 있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상이다. 탑곡에서 볼 수 있는 마애불상군은 불상뿐 아니라 탑도 바위에 새겨 불교의 세계를 바위 위에 구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나 또한 서남산에 이어 동남산에 가기로 결심했으며, 동남산 탐방도 서남산 못지않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서남산에 아직 들리지 못한 용장사곡에서 출발해 동남산의 탑곡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통해 남산의 진면목을 느끼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