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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정보고등학교(구,진주상고) 3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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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스크랩 대중가요의 발상지 진주, 그리고 KBS 가요 무대
하하병호 추천 0 조회 30 15.11.23 17: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문화 예술의 도시 진주에 대중가요 공원조성을

 

2015 진주남강유등축제, 개천예술제 등 문화의 달 10월의 축제를 앞 둔 지난 21일 진주 남강둔치에서 ‘KBS 가요무대녹화가 있었다.

KBS 가요무대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만 녹화를 하지만 대중가요의 산실 진주에서만 매년 한차례 야외녹화를 한다고 한다.

진주 출신으로서 가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은 작곡가 김서정을 비롯, 작곡가 손목인(孫牧人), 가요황제로 추앙받는 가수 남인수(南仁樹), 아시아의 지휘자로 칭송받는 작곡가 이봉조(李鳳祚), 동양의 슈베르트라 불리는 작곡가 이재호(李在鎬), 그리고 영화음악 부분에서 3차례나 대종상을 수상한 작곡가 정민섭(鄭民燮)은 한국 가요사를 장식한 인물로 음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영화음악 작곡가이다. 진주 출신 6인의 음악가는 한 시절 혜성처럼 나타나 당대를 주름잡은 한국가요사를 장식한 분들이다.

진주출신으로 맨 처음 등장한 음악인은 1927년에 김서정, 다음으로 1935년 작곡가 손목인이 있다. 손목인은 그 당시 신인가수 고복수의 타향살이’, 가수 이난영(李蘭影)이 부른 목포의 눈물을 작곡해 명성을 날렸다. 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1928년에 처음 부른 황성옛터도 진주 출신 남인수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이봉조는 우리나라 가요를 세계에 알린 대표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 동경가요제에서 그가 작곡한 안개로 가수 정훈희(鄭薰姬)를 최우수 가창상을 받게 했다. 동경가요제를 계기로 이봉조는 아시아의 지휘자로 칭송 받았다. 그는 진주고보 시절에 작곡가 이재호로부터 음악성을 인정받아 악단지휘자 뿐만 아니라 많은 노래의 작사와 작곡을 했다. ‘당신의 뜻이라면의 가수 양미란의 남편이기도 한 정민섭이 남긴 족적은 영화음악에서 뚜렷하다. ‘난중일기59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또 작사가 정두수는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 정훈희의 그 사람 바보야’,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등 주옥같은 노래 3500곡을 작사했다. 전국 13곳에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한국대중가요에서 속칭 3대 명곡이라는 황성옛터, ‘산유화, ‘목포의 눈물등은 모두 진주의 음악인들과 연관이 있는 노래다.

오늘날 대중가요가 갖는 지역 홍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를 갖고 있다. ‘부산갈매기’, ‘목포의 눈물’, ‘서울찬가’, ‘대전블루스등이 그 예다. 진주는 음악인을 많이 배출했음에도 진주가 노래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지금이이라도 진주의 노래 홍보에 통 큰 투자와 시민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곱고 여린 목소리로 부른 애수의 소야곡’, ‘무너진 사랑탑1000여곡의 노래로 궁핍한 민중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우리 고장이 낳은 가요 황제남인수는 100여 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미성(美聲)의 한 시대를 풍미한 일대 가객(歌客)이었다.

그는 한국 가요 1세대를 대표하는 스타로서 그가 부른 가거라 삼팔선아에선 남북분단을 절규했고, ‘이별의 부산정거장6·25로 피난살이의 애틋한 사연을 담기도 했다.

진주의 위대한 음악가로 작곡과 겸 가수인 김서정·손목인, 가수 남인수, 작곡가 이재호·이봉조·정민섭으로 이어진 것을 보면 현재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의 열풍이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인 미국을 흔들고 있는 것도 진주가 뿌리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또 이상근은 젊은 시절부터 독창적인 현대음악의 분야를 개척하였고, 실내악 운동의 산파역할을 하였으니 활발한 창작 활동과 서양음악기법의 도입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음악의 세계화를 주도하였다.

KBS 가요무대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만 녹화를 하지만 매년 진주에서 야외 녹화를 해오는 것은 가요계의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 진주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그러나 진주가 배출한 훌륭한 음악인들은 많지만 우리시의 문화예술 행정과 문화·예술인의 무관심으로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KBS의 가요무대 녹화 현장에 참석해 왔다는 한 퇴직 교장은 우리 진주시가 교육 문화 도시로서의 뿌리가 될 꿈나무들인 진주 어린이 합창단진주 시립합창단이 해체된 것이 아쉽다면서 진양호 공원 일대를 대중가요 공원으로 조성하고 진주 음악인들을 위한 대중가요 기념관도 같이 건립하면 음악 도시로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고 우리 시의 관광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중가요 공원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2015. 9. 21. 시민명예기자 김용현(금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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